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08
열일하는 과금 기사 107화
은은한 빛에 둘러싸인 사내.
스페셜 보스, 광신자 에드워드까지도.
“뿌우우!”
녀석을 태우고 있는 가장 화려하게 치장한 코끼리 녀석이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린다. 무섭다기보다 신기하다.
‘아니 마수가 이렇게 길들여진다고? 무슨 어릴 때부터 키운 것 같네.’
마수를 길들이려는 시도는 아르데니아에서 수천 년 동안 시도되었음에도 실패했다. 인간을 향한 마수의 식욕을 끝끝내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에 오크 녀석들도 늑대 마수를 길들여 타고 다니려고 하더니…… 아무래도 마수는 인간과 몬스터를 좀 다르게 인식하는 모양이다.
“백색의 드레이크…… 그렇군요. 당신이 그 소문의 산적 남작이로군요. 말세가 도래한 이후 크게 세력을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새하얀 법의를 입은 금발의 미남이 사람 좋게 웃는다.
나 역시 사람 좋게 웃었다.
“말이 통하는군. 마치 사람처럼 보여.”
“물론 우리는 사람입니다. 모두 위대하신 천신님의 자식들이지요.”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아주 멀쩡한 녀석처럼 보인다. 나는 녀석 너머에 오와 열을 맞추어 도열해 있는 천신병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야말로 엄선한 정예병이군.’
어떤 화점이든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몬스터는 고급 등급이다. 얼음여왕의 군세 중에는 아이스 엘리멘탈(고급)이 그랬고 지금 서문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썬더 엘리멘탈(고급) 역시 그러한 종류.
‘성국 병사(고급)가 후방의 수송병뿐이라니.’
훨씬 압도적일 숫자일 게 뻔한 고급 등급의 몬스터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가? 지휘관의 입장. 그리고 몬스터들의 리젠 방식을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상대적으로 약한 병력은 수비용으로 돌려 착점을 지키고 각 착점에서 희귀급 이상 몬스터를 모집해 공격용으로 쓰는군.’
고급 등급의 몬스터를 방어용으로 쓰면 모자란 전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장점이 있다.
‘리젠 속도.’
희귀급 이상의 몬스터들과 달리 리젠이 빠른 고급 등급의 몬스터는 설사 죽는다 해도 빠르게 충당이 가능하다. 수성이 길어지면 죽었던 병사가 살아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
방어진을 단단히 굳히고 버티면 웬만한 병력으로는 착점을 차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 병력 사이사이에 천인마수가 있다면?
‘높은 등급을 가진 내륙 몬스터와는…… 다른 의미로 위험하군.’
객체로서의 역량은 중요한 문제지만 세력이 되면 단지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순간이 온다. 더 하위 등급의 인간 세력, 예를 들면 영웅급밖에 안 되는 [브라이트 반란군]이 전설급까지 있는 포자 숲을 정복한 것이 그 예이다.
인간형 몬스터라고 해도 그들이 스스로를 게임 속 NPC라는 걸 아는 건 불가능하지만.
다른 몬스터와 달리 온전한 지성을 가진 녀석들은 스스로가 죽으면 부활한다는 사실과 인간에게 살해당하면 아이템을 떨군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게임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 천신님의 자식들이 아무런 기별도 없이 내 성에 쳐들어오는 이유는 뭐지?”
내 물음에 날 내려다 보던 에드워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이거…… 이거 이거.”
놀랍다는 표정에 기쁨이 어린다.
“이거 정말로 산적 남작 본인인 모양이군요. 설마 저만한 군세도, 성도 내버려 두고 홀몸으로 오실 줄이야. 정말 대단한 영웅이십니다.”
당연히 칭찬이 아니다. 네가 오만하고 멍청한 탓에 일이 쉽게 풀려 좋아 죽는다는 말이지.
“그게 네 대답인가?”
나는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깨달은 광신자(전설)
에드워드
그래. 저 칭호와 등급 말고는 아무 차이점이 없다. 그들이 그러고자 하기만 한다면 인간과 뒤섞여 사는 것조차 가능하겠지.
“…….”
나를 바라보던 에드워드의 친절한 미소가 지워진다. 그는 잠시 나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다 말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침략군이 아니고 천신의 종이자 인류의 수호자이다. 인간의 영웅아. 당장 성문을 열고 빛의 군세를 받아들여라.”
웅!
녀석의 시선에 기세가 깃든다. 말투 역시 바뀌었다.
위압적인 분위기였지만 굳이 반응해 주는 대신 물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지?”
내 말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웅변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천신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인간의 영웅인 줄 알았는데 고작 이득을 말하는 모리배라니! 어리석고 탐욕스럽도다!”
“그러니까 아무 대가 없이 그냥 항복해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천신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천신의 발아래 엎드리는 영광 앞에서 네가 감히 대가를 말하느냐? 그렇다면 내가 질문하지! 네놈들의 죄악의 대가는 얼마나 될까?”
불과 30여 초 전의 온화한 인상은 어디로 간 것인지 살기등등하기 짝이 없는 모습.
그뿐이 아니다.
철컹! 철컹! 철컥!
중갑주를 걸친 천신병들이 둥글게 포위진을 짜기 시작했다. 그 너머에서는 천신의 사제(희귀)들이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우는 모습이 보인다.
“흠.”
그러나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울 수가 없었다.
“미치광이 에드워드.”
“저, 건방진 놈!”
“무례하다! 감히 교황님께……!”
분노해 악을 쓰는 병사와 사제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교황이 되셨어? 하긴……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군.”
광신자 에드워드는 신성제국의 이단 심문관이었다. 오직 천신만이 유일하다는 극단적인 믿음으로 인해 사제들 사이에서도 ‘미치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던 존재.
‘게임이 현실이 되니…… 이렇게 바뀌는군.’
스페셜 보스라 하더라도 게임 속의 에드워드의 직위는 이단 심문관.
그러나 지금. 스페셜 보스로서의 힘으로 거대한 땅을 차지한 그는 교황이 되었다. 그것은 몬스터들 또한 욕망과 정치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리라.
“즉, 어쩌면 꼭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지만…….”
수만 명의 병사 한가운데서 나는 카드 한 장을 허공에 던졌다.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쓸데없는 고민이겠어.”
그래. 쓸데없는 고민이다.
인간 같은 몬스터가 아니라 그냥 인간하고도 전쟁을 하는 게 인간이다.
쿠르릉…….
먹구름이 몰려 온다.
“녀석이 뭔가를 한다! 공격해!”
“불신자의 목을 잘라! 십자가에 매달아라!”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기도문을 외우는 천신교 성기사(영웅)이 빛나는 검을 들고 달려온다.
이것 또한 기묘한 일이다.
‘성기사란 몬스터는 없었는데. 무엇보다 영웅급이라니.’
그러나 깊이 생각할 틈은 없다. 성기사와 함께 천신병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기 때문. 저 멀리서는 사제들이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짜임새 있고 체계적인 공격이었지만.
‘한심하군.’
나는 화려한 가마 위에 앉아 있는 에드워드를 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력 중 최강일 텐데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교황을.
덕분에 녀석들이 내게 도착하기도 전 뽑기가 완료되었다.
[모두 칭송하십시오. 첫 번째 신화(펫)가 지금 이 자리에 탄생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한재연.] [지금 이 시간 부로 24시간 동안 모든 사냥터에 경험치 100퍼센트 버프가 주어집니다.] [중첩 발생!] [지금 이 시간 부로 24시간 동안 모든 사냥터에 경험치 300퍼센트 버프가 주어집니다.]쿠구구……!
땅이 흔들린다. 몰려오던 병사들이 나동그라지고 기사들조차 당황해 발을 멈춘다.
“따, 땅이!?”
“이게 대체 무슨……!”
“아, 아래! 아래쪽에서 뭔가가……!”
모두가 경악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에드워드의 안색마저 변하는 그 순간.
땅이.
솟아오른다.
훙!
주변 땅의 모습이 한순간 급격히 멀어진다. 엘리베이터 따위에서 느낄 수 없는 급격한 상승감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이내 터져 나온 괴성이 그 모든 소음을 뒤덮었다.
[우어어어엉—–!]터널을 통과하려는 거센 바람 소리를 수천만 배는 키운 것 같은 소리에 천지가 진동한다.
-산보다 거대한 것. 심연보다 깊은 것.
-그야말로 온 세상을 집어삼킬 재앙이로구나.
바글바글 모여 있던 천신군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나는 가로세로 3미터는 될 듯한 비늘 위에 서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에드워드를 내려다보았다.
“인사해.”
역시 성에서 안 꺼내길 잘했다. 도시가 다 박살이 났을지도.
“네 선배야.”
같은 스페셜 보스에 신화급이니 선배가 맞겠지, 아마.
컬렉션 달성!
대지의 재앙(완전체 랜드웜) 올스텟+10
산보다 거대하다는 묘사와 다르게 그렇게 크지는 않다.
금속성 광택이 흐르는 비늘에 뒤덮여 있는 이 거대한 웜은 고작(?) 지하철 16개를 포개 놓은 수준의 두께를 가지고 있을 뿐이니까.
다만 길이가 매우 길어서 땅 위로 백 미터 이상 몸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도 전체 길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뭐, 보면 알겠지.”
카심을 타고 여기에 왔을 때 인사 겸 신성포효를 갈기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펫 스킬의 쿨 타임은 모든 펫이 공유되기 때문에 하나를 사용하면 다른 스킬들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런 제한이 없었으면 플레이어들이 백 개도 넘는 펫을 반복해 소환하며 돌려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랜드 웜의 머리통 위에 꼿꼿이 선다.
그리고 명령했다.
“랜드 웜. 뛰어올라라!”
스킬 명령어 작동!
그러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시…….]“시?”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아니 이렇게 생긴 주제에 언어 능력이 있단 말인가?
‘그나저나 시? 시가 뭐지? 뭘 뜻하는 거지?’
의문을 품는 나를 향해 산만큼 거대하다는 신화급 괴수가 느릿느릿 말한다.
[시…… ]기다리다 화가 날 정도로 태평한 영파였다.
[른…… 데…….]“……?”
잠시 그 말을 이해 못하고 의아해 하다 신음한다.
“뭣이라? 싫다고?”
[네가…… 시키면…… 내가…… 해야…… 하나?]너무나 합당한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시킨다고 랜드웜이 꼭 해야 할 이유는 없겠지.
그러나 이제 와서 자유 의지 펫이라는 게 말이 되나? 나는 스킬 명령어를 포기하고 시스템 UI를 켰다.
그리고 [랜드웜 : 대파괴] 스킬을 마구 터치했다.
그러나 요지부동, 랜드웜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니 이게 무슨…….”
번쩍!
당황하는 내게 눈부신 빛이 작렬한다. 예지했지만 위치상 피하기 까다로워 그냥 맞았다.
“악마! 악마를 불러냈구나! 더러운 불신자 놈! 내가 천신의 자비로 네놈을 벌할 것이다!”
눈치가 제법인 듯 랜드 웜이 내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기습이 들어온다.
물론 의미 없는 일이다.
90% 감소된 광속성 데미지로는 내게 큰 피해를 줄 수 없다. 아이템으로서의 성능이 떨어지는 행운템을 걸치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런데 뜻밖에도 랜드웜이 말을 걸었다.
“오! 진짜!?”
[너는 왠지…… 친숙해…… 마음에…… 들어…… 가볍게…… 쩝쩝거릴 것만 주면…… 뛰어 줄게…… ]쩝쩝…….
뭔가 유아적인 표현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진정하고 물었다.
“먹을 걸 달라는 거지!? 뭘 주면 돼?”
몰려오는 천신병들을 보며 묻는다. 랜드웜이 답했다.
[황금…… 2톤…… 정도…… ]“……뭐?”
어이가 없어 반문하자 조금 자신감이 없어진 목소리로 다시 말한다.
[모자라면…… 1.5톤 정도로 만족할게…… ]“…….”
새로 고용된 신화급 펫은.
아주 비싼 몸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