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32
열일하는 과금 기사 131화
언젠간 녀석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다. 막연한 계획이나 목표 따위가 아니라 내가 아르데니아를 살아가는 이상 반드시 벌어지게 될 필연.
그러나 그때는 지금이 아니었고.
장소가 여기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저, 저거 망령룡 아니야?”
다른 일행들도 새롭게 등장한 적의 정체를 눈치챘다.
“망령룡 레플리…….”
“맞아. 저 모습, 교과서에서 봤어.”
황급히 몸을 일으킨 성재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레아에게 물었다.
“레아! 어디 게임 출신인지 알 수 있겠어?”
60억이 넘던 34지구의 인구를 5억까지 줄였던 종말 프로젝트의 네임드, 망령룡은 이후 소설, 영화, 드라마 등 온갖 매체에서 활용되었다.
게임의 몬스터로도 쓰인 건 두말해 입 아픈 소리.
“망령룡은 게임에 따라 초월지경인 경우도 많단 말이야……!”
안타깝게도.
리벤지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훅.
순간 주변 공기가 위로 끌려가는 것을 느낀다. 마력을 모으고 있던 성재의 표정이 창백해진다.
“주, 주위의 마나가 전부…….”
레아 역시 비명을 질렀다.
“앗! 주문이 풀렸어요! 마나가 빨려 들어가요!”
위를 올려다보자, 하늘에 떠 있는 망령룡의 입으로 정체불명의 어둠이 집결하는 모습이 보인다.
“꽃마차 뒤로 숨어!”
“할 수 있는 모든 방어 능력을 사용해!”
모두가 발작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레플리가 숨을 내뱉자 어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둠을 잡아먹어 열매를 맺는 꽃이여.]모든 것은 1초를 수십 수백 개로 쪼갠 찰나에 일어났다.
마치 환상처럼 피어난 직경 수백 미터짜리 꽃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던 암흑의 기운을 잡아 삼켰다.
[심판의 불]그리고 백색의 폭염이 레플리의 몸을 뒤덮고.
쩌저적!
몰아치는 냉기가 수십 미터 규모의 얼음 검으로 변해.
텅!
그대로 레플리의 목을 잘랐다.
쿠쿠쿵!
레플리의 거대한 몸이 땅에 떨어지자 마치 폭탄이 터진 듯 먼지구름이 일었다.
그 무시무시한 등장과 달리 허무한 퇴장이었다.
“궁극 마법! 파이브 드래곤이다!”
“그래! 오룡님이 보고 계셔! 우리 쪽에도 초월자가 있다고!”
“와! 지금 이거 찍었나? 찍었지? 하긴 통신이 끊긴 거지 카메라가 고장 난 건 아니니……! 와, 대박이다!”
환호하는 사람들과 달리 난 기뻐할 수가 없었다.
‘공교롭다.’
대우주 전체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몬스터 사태지만, 그럼에도 그 사이에 초월급 몬스터가 끼어 있다는 말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하필 초월급 몬스터가 나타나고, 하필 그게 리벤지의 레플리라고?’
공교롭다. 너무나 공교로운 일이다.
“이, 일단 다른 사람들하고 만나야 해! 통신은요?”
“아직 안 돼! 비상 상황에 선착장에 모이기로 되어 있긴 한데.”
“그럼 이동부터 하죠!”
“모두 멈추세요.”
막 뭉쳐서 움직이려던 사람들 앞에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녹색의 머리칼, 단정한 디자인의 원피스에 커다란 녹주석이 박힌 지팡이를 든 여인.
보람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플라워 님? 왜…….”
“아직 안 끝났어요.”
훅!
그때 자욱한 흙먼지를 헤치고 망령룡이 고개를 든다. 온몸이 엉망으로 그을려 있고 목 부분이 검은색의 기운으로 대충 기워진 기괴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 움직인다.
쿠릉!
그때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
그 과정이 너무나 빨라 ‘엇.’ 하는 순간 이미 집채만 한 굵기의 벼락이 레플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쩡!
그러나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벼락이 갈라진다.
“벼락을…… 갈랐다고?”
어느새 레플리의 머리 위에는 한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레아가 신음했다.
“마, 마검왕 히페리온이에요! 블레이드&매직의 최종 보스! 그랜드 소드 마스터!”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오오…….
어둠의 기운이 퍼져 나가자 엉망으로 당했던 레플리의 몸이 복구된다. 레아가 허탈하게 웃었다.
“다크 메시아……”
“아는 게임 출신이에요?”
내 말에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 스타라고 데트로 은하 연방에서 작년에 나온 모바일 게임이에요. 34지구에는 아직 서비스하지 않아서 저도 시네마틱 영상밖에 못 봤죠. 기대작이긴 했지만……. 설마 게임도 못해 봤는데 1시즌 보스를 현실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레아의 말에 보람이 어이없어 한다.
“아니 오늘 최종 보스 총집합이야? 무슨 콜라보 이벤트 같은?”
초월자급 적이 셋,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초유의 사태에 모두가 망연자실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난 실망하고 있었다.
‘에이, 뭐야. 날 노리고 온 게 아니었네.’
그렇게 생각했다가 멈칫했다.
‘아니, 내가 미쳤나? 왜 실망을 하고 앉아 있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상황은 흘러간다. 우리 앞을 막아섰던 플라워가 레플리를 비롯한 몬스터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당신들을 온전히 지켜 주긴 어려워요. 가급적 마차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뿌드드득!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발밑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그녀를 허공으로 들어 올린다. 앗, 하는 순간에 그녀의 모습이 멀어진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초월자라니…… 망령룡에 히페리온이라니…….”
콰쾅! 쾅!
우리는 망연자실해하며 천지가 개벽할 듯한 전투를 지켜보았다.
문제는 새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초월급 셋이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크오오오오—!!
“불을 밝히도다! 꿈을 긍정하도다! 세상을 뒤집고 천하를 도탄에 빠져들게 하도다!”
“불불어어 오오는는 어어둠둠 데데스스나나이이트트의의 율율법법!”
수십. 아니, 수백 명의 시체가 뭉쳐 일어난 골렘, 광기에 빠져 마구 소리 지르는 사제복의 뱀파이어, 검은 갑주로 온몸을 가린 죽음의 기사까지.
온갖 게임에서 나오는 괴물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공통점이라고는 그들 전부가 어둠, 혹은 죽음 속성의 몬스터라는 것뿐이었다.
“진형을 짜! 꽃마차를 등지고 싸운다!”
“나랑 올리야가 정면을 맡을 테니, 뒤에서 보호해 줘! 혜영 씨는 틈을 봐주시고요!”
이미 하루 종일 같이 싸운 경험이 있던 우리는 능숙하게 쏟아져 오는 적들을 상대했다.
“꽃마차의 결계를 강화할게! 잘 버텨야 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보람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녀의 분신이 품고 있던 모든 기운을 사용한 것이다.
웅!
꽃마차의 결계가 한층 두꺼워지며 마치 성벽처럼 주위에 둘린다. 나와 올리야가 서 있는 위치는 말하자면 성문.
결계 강화 덕분에 공격이 정면으로 제한되니 전투가 한층 쉬워진다.
“성재야! 너 7클래스 마법 지금 쓰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성재는 나무 속성이 장기였지만, 단 하나의 주문만은 상황이 달랐다. 그것이 자신의 주문이 아니라 기연으로 사역하게 된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그 속성이 빛. 그러나 성재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이 시작된 지 너무 오래돼서 안 돼! 적어도 3시간은 자고 일어나지 않으면……!”
“아니 오늘이 시작된 지 오래된 게 무슨 상관이야?”
“내 주문이 아니라 사역한 거라니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못 쓴다는 말이다. 영화를 촬영할 때에는 항상 조건을 맞춰서 썼던 모양이다.
“아, 쉽게 가는 게 없군.”
투덜거리며 전투를 이어 나간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초월급 몬스터처럼 특별한 개체는 보이지 않는다.
‘차분하게 1시간 정도면 다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20분, 40분, 1시간이 지나고.
다시 2시간, 3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악…… 하악…… 선생…… 나 배고파서 더는 안 돼…….”
“끝이 없어…… 기껏 다 죽이면 또 나타나잖아?”
“저도 마나가…….”
몬스터들의 파도는 끝이 없었다.
다행히 그들끼리 진형을 짠다거나 전략 전술을 사용한다거나 하지 않고 무작정 덤벼들어 버틸 수 있었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싸우다간 결국 말라 죽는 미래밖에는 없다.
‘오룡이 세 초월급 몬스터를 해치우고 도와준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쿠쿵!! 콰쾅!! 콰르릉!!
안타깝게도 저 멀리서 들리는 폭음은 전혀 그칠 기색이 없다.
촤악!
몬스터들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혜영이 그림자 주인의 다리를 잘라 넘어트린 후 꽃마차의 결계 안으로 들어선다.
그녀의 얼굴이 밀랍처럼 창백하다.
“술식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 몬스터의 수는 아까보단 줄었지만, 여전히 백이 넘었다.
만 단위 적은 베어 버리던 입장에서는 조촐해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
‘녀석들의 면면이 만만하지 않아.’
하나같이 기괴하고 강력한 적들이다. 리벤지식으로 치면 영웅급 정도 되는 녀석들은 랜드 브레이커로 일격필살을 노리거나 몇 번 충돌해 방어를 뚫어야지 대충 칼을 휘둘러서는 죽일 수 없는 강적.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다.
‘백인참하고 천지검을 쓸 수가 없잖아!’
이 평타 확산 스킬들은 통제가 되는 능력이 아니다. 애초에 리벤지에서 다른 플레이들과의 갈등이 생기라고 설계한 스킬인 것이다.
아르데니아에서야 같은 파티, 같은 길드 뭐 이런 식으로 회피할 수 있었지만 지구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천지를 가르는 검은커녕…… 백인참만 잘못 써도 아군의 목이 다 날아갈 것이다.
‘아, 검신 말고 다른 신화 하나 있으면 교체해서 싸우면 될 텐데.’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로그인.”
아르데니아로 들어간다.
“후우.”
일단 한숨 돌린다. 랜드웜이 묻는다.
[야, 언제까지 대기해? 안 올라가?]“아,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가만히 있으면서 뭐가 바빠?]“하여튼 바빠.”
나와 랜드웜은 좌하화점에 와 있는 상태다. 이대로 땅을 뚫고 올라가면 스페셜 보스 염마왕을 만날 수 있다는 뜻.
그러나 지구 상황이 급박한데 여기에서까지 전장을 늘릴 수는 없다.
[그러면 그냥 이렇게 있으라고?]“가만히 있기 뭐하면 북쪽으로 꺾어서 길을 뚫거나 근처에서 놀고 있어.”
그렇게 대충 말을 넘긴 뒤 천천히 수인을 맺는다. 오랜만이어서 조금 헷갈렸지만 급할 것도 없었기에 차분하게 완성시켰다.
‘수인을 맺는 데…… 아이고. 이젠 9초가 걸리네.’
수인을 간소화시키긴커녕 속도마저 퇴보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새는 수인의 숫자를 위력을 늘리는 쪽을 고민하고 있다.
냉기(冷氣). 현문(賢門). 일격(一擊). 거문(巨門). 개방(開放).
빙참격(氷斬擊).
술식을 완성한 후 이번에는 내기를 운용한다.
뿌득! 뿌드득!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압축되어 날렵해졌던 근육이 스트롱맨이나 생체력 수련자같이 과장되게 커진다. 온몸을 휘도는 진기가 육체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내 평소 닿을 수 없는 영역으로 내 몸을 떠밀었다.
그리고 그대로.
“로그아웃.”
휘둘렀다.
랜드 브레이커(Land Breaker).
달려들던 시체 거인의 팔을 가로로 자르며 지나간다. 그대로 전진하며 검을 휘두르자 온 내공을 담아낸 검기와 냉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쩍!
포효하며 달려들던 암 속성의 괴물들이 일거에 썰려 나간다. 나를 중심으로 한 부채꼴 모양의 간격 안에 있던 모든 적이 죽었다.
크리티컬 따위도 필요 없는 거대한 참격!
심지어 그게 끝도 아니었다.
쩌저저저적!
쏟아진 냉기에 조각난 시체들이 꽝꽝 얼어 버린다. 신나서 달려들던 적들이 날카롭게 솟구쳐 있는 얼음에 충돌해 피를 흘렸다.
“로그인.”
아르데니아로 넘어가 그대로 엎어진다.
“끄…… 아!”
덜덜-.
몸 여기저기가 시퍼렇게 멍 들었다.
“아, 육체가 강해져도 이건 달라지지가 않네.”
생명력이 엄청 높아진 지금의 나는, 자다가 총을 맞아도 아무런 타격이 없을 정도의 내구를 가지게 된 상태.
그러나 그 강력한 생명력보다도 근력이 더 높다.
이건 성장 방향성의 문제라서 전력을 쏟아 내면 항상 이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쑥 송편(고급)를 섭취하였습니다! 4시간 동안 회복력과 마나 회복력이 100포인트 증가합니다!]잠시 의자에 앉아 쉬자 엉망이던 몸 상태가 점점 회복되어 간다. 회복력도 이미 꽤 높기 때문에 100포인트만 올려도 상태가 확 좋아진다.
“아, 그래도 일격필살 방식에 점점 익숙해지긴 하네. 한 방에, 전체 내공의 1할이라니.”
나는 랜드웜의 조종석에서 한참을 쉰 다음 지구로 이동했다.
“로그아웃.”
지구로 돌아오자 일행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이, 이게 뭐야? 이 정도면 4클래스 고코스트 마법…… 아니 그냥 5클래스 파괴 마법 정도는 되겠다. 내공으로 이런 공격을 해도 괜찮아? 효율이 안 높을 텐데…….”
“괜찮아! 이대로 한참은 더 싸울 수 있으니 다들 잠시 쉬어! 올리야! 너도 빠져서 뭐라도 먹고 잠이나 자!”
내 말에 올리야가 당황한다.
“하지만 먹을 게 없는데…….”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내가 가장 앞에 있는 상태였기에 내 입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르데니아. 중문(重門). 개방(開放).”
작게 속삭이고는 차크라를 열었다.
이제는 꽤 능숙하게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꺼내 든다.
“소환(召喚). 쑥 송편.”
팟!
송편 한 접시가 손에 잡힌다. 그냥 음식이 아니라 송편을 소환한 것은, 나와 달리 그녀의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
그러나 올리야는 부상을 걱정하는 대신 소환된 송편을 보고 황당해했다.
“아니 난데없이 웬 송편이……? 접시까지 있다고?”
“먹어 봐.”
뒤로 던지자 올리야가 황당해하면서도 정확하게 받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한다.
“……뭐야? 먹을 수가 없어! 그냥 입 안에서 녹아 버리는데?”
“아, 이런.”
혹시나 했던 시도의 무산에 혀를 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 혼자서 다 쓸어버리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송편을 남들한테 먹일 수 있으면 편할 텐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86,404,030원)
삑!
(86,141,220원)
시야 한편에 떠 있는 과금력에 변화가 있었다.
“……?”
잠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내 귀로 와! 하는 올리야의 탄성이 들렸다.
“아! 이제 먹어진다!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