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204
열일하는 과금 기사 203화
불합리하다.
생체력 수련자는 끈질긴 생명력의 대명사고 극의지체를 완성해 초월지경에 이르게 되면 가히 불사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공격 한 번에 맥없이 죽는다니?
아니, 그딴 패턴이 있으면 탱커 왜 하나? 딜러나 탱커나 똑같이 한방에 죽는데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나!?
‘말이…… 되지.’
그래. 사실 말이 된다.
‘그게 즉사 패턴이지…….’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힌다. 그래. 생각해 보면 우주의 강자로 이름 높은 크로매틱 드래곤인 F·D조차 즉사 마법에 어이없게 죽은 적이 있다.
“일단, 후우…….”
몰려오는 탈력감에 심호흡하자 플라워가 나를 안아 눕혔다.
“업무는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식사하실 수 있겠어요?”
그녀의 말에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선구자의 가면의 스트레스 증가 효과 때문인지 입맛이 없다. 하지만 몸 상태 회복을 위해서라도 음식은 먹는 게 좋겠지.
“가져다줘.”
“네, 폐하.”
나는 플라워가 가져다준 식사를 마치고 그대로 잠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나는 아예 길게 쉬게 되었다. 생각보다 부활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어느 정도 회복한 몸과 달리 정신과 영혼에 어마어마한 타격이 남아 있는 상황.
나는 일주일 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그 후로는 플라워와 함께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정신에 남은 [스트레스] 수치를 해소해야 했다.
“폐하! 이번에 새로 개발된 막대기 빵이 그렇게 맛있다고 합니다! 공연을 보면서 좀 먹는 게 어떨까요?”
“뭐, 좋지. 좀 가져다주겠니?”
“네!”
신나서 뛰어가는 지성의 모습이 문득 신기해 중얼거린다.
“생각보다 좋아하는군.”
내 말에 플라워가 웃었다.
“폐하와의 첫 여행이니까요. 폐가 안 된다면…… 종종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
플라워로서는 드문 개인적인 요청에 잠시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농담으로라도 좋은 아버지가 아니다. 아들인 지성과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거의 없고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어찌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내 몸과 마음이 아프고 나서야 가족과 시간을 함께하게 되다니.
“……그래. 종종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지.”
“아.”
“음?”
신음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플라워가 꽃처럼 활짝 웃는다.
“네, 폐하.”
그 후로 난 매일매일 플라워와 지성을 데리고 놀러 다녔다.
“로즈리안 누님이 쓴 작품을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입니다. 지금 제국 전체에 인기지요!”
온갖 종류의 뮤지컬과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와. 이게 진짜 바다라는 거군요.”
카심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먼 바다에 방문하기도.
“특이한 강화 무기가 많습니다!”
정체를 숨기고 야시장에 가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보내고 나자 부활로 인한 타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보름도 넘게 쉬었네.’
물론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여유가 생긴 후에는 내 무공에 대해 정리했다.
쿠르르…….
명상에 잠기면 거대한 바다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면세계와는 다른 심상에 새겨진 이미지.
‘잘 쓰고 있기는 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
만약 내가 [내공]의 차크라로 천문을 열었다면 그 효과가 조금 더 직관적이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무한정에 가까운 내공을 휘두를 수 있었겠지.
천문에 도달해 완성된 소우주는 그만한 힘이 있고, 실제로 사례도 몇 있다. 무공과 차크라는 궁합이 비교적 잘 맞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무공이라는…… 이능의 카테고리 하나를 통째로 요소로 박는 경우는 사례도 드물고 그걸로 초월자에 도달한 경우는 더더욱 없다.
농담이 아니라 우주 유일일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나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
“대기만성의 대종사가 되기는 텄군.”
나는 대기(大器)라는 [생체기관]을 가지고 무공이라는 [소우주]를 연 차크라 마스터가 되었다. 이런 내가 사용할 무공은 특수성과 고유성이 너무 강해서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나 혼자 쓸 무학을 정리하는 게 전부겠지.
꾸르륵.
바다와 같이 드넓은 대기(大器) 속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나는 그중 떼 지어 몰려다니는 멸치를 보았다.
‘이건…… 쾌진공이군.’
한 마리, 한 마리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무리 지어 떼를 이루면 모든 걸 압도할 크기를 가진다.
현대 사공(邪功)의 정점.
무학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도 손쉽게 이류 무사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최신 무학.
촤악!
청새치 한 마리가 물살을 헤치고 지나간다. 한때 즐겨 사용했던 찰나결(刹那訣)이다.
꾸르르…….
거대한 덩치의 바다거북이 느릿느릿 물살을 타고 흘러간다.
신공철학(神功哲學),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
‘신기하군.’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이런 식의 단전을 지니지 못할 것이다. 이건 대기(大器)의 존재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현상.
‘대기가 차크라와 완전히 연결됐었다.’
그 증거로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것은 무공들만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 기둥처럼 서 있는 바위섬은 요소, 신체(身體).
내공의 바다에 몰아치며 잔물결을 만들어 내는 칼바람은 요소, 일격(一擊).
갈매기처럼 날아다니는 날치는 요소, 가속(加速).
그뿐이 아니다.
쩌저적!
바닷속에 인간의 모습을 한 여인이 걸어간다. 그것은 우상화점의 스페셜 보스 얼음 여왕.
‘물고기가 될 줄 알았는데 그냥 스페셜 보스 모습인가. 하긴 이미 명확한 이미지가 있는 녀석들은 새로 만들어질 이유가 없지.’
바닷속에는 내가 차지한 화점에서 비롯한 8개의 속성 또한 거닐고 있다. 바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은 내공의 심상일 뿐이니 그들이 머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후.”
심상을 어느 정도 안정시킬 때 즈음 부활의 후유증이 가라앉았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문제없이 싸울 수 있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더 푹 쉬어 두었던 것.
나는 식사를 든든히 하고 황실 전용 사제들에게 힐링 샤워를 받은 뒤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로그아웃.”
루테 행성으로 돌아간다.
[아니, 제길! 이게 말이 돼?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해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 버린다고?]저 멀리서 파워포스의 한탄 소리가 들린다.
‘다행히 부활은 바로 된 거였나 보네.’
체감 시간이 상당히 길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문제 없는 모양.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하늘에서는 빈사에 가까운 상태의 딥 아이가 칠색의 빛을 뿌려 대고 있다.
‘끝낸다.’
나는 그대로 대지를, 고정된 차원을 박차 솟구쳤다.
파워포스가 비명을 지른다.
[살아났어!?] [아니, 분명히 죽었어! 내가 봤는데!?]그러거나 말거나 딥 아이를 덮친다.
모든 면을 뒤덮는 칠색의 빛은 회피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다.
마침 얻은 아이템이 있기 때문이다.
띵-!
시공의 모래시계가 작동하고 시공이 동결된다. 나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칠색의 기운이 내게 와닿지 못하고 스러지는 걸 보았다.
나는 조건부 무적의 힘으로 즉사기를 넘어섰다.
“죽어.”
그리고 그렇게 딥 아이에게 도착하는 순간.
-YOU DIE.
* * *
멍한 표정으로 목 매단 사내를 본다…….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이하 생략이라고밖에 말할 가치가 없는 광경.
[선구자의 가면이 파괴되었습니다.]“로그…… 인.”
아르데니아로 넘어간다.
꼬박 이틀을 내리 잔 후 너무 열 받아서 소리를 질렀다.
“이야기 구조상! 어? 여기서는 당연히 시공의 모래시계가 먹혀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 어떻게 그걸 씹고 들어와?”
게임 전개라면 아이템 획득 구조상. 소설이라면 복선의 일종으로 당연한 흐름이었다. 아니 거기서 얻은 시공의 모래시계를 쓰고 죽다니!
이게 말이 되나!?
“말이…… 되지.”
그래. 내가 마검왕을 죽여 시공의 모래시계를 얻은 것은 딥 아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말하자면 독립 변수.
바로 직전에 시공의 모래시계를 얻었다고 그게 먹힐 것으로 생각하는 게 오히려 안이한 생각이다.
‘그나저나 전투 직감도 소용이 없네.’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아주 직전의 순간, 그것도 찰나지간을 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공격을 맞는 것을 볼 수 있을 뿐 그 결과 죽는지 사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맞는다고 바로 머리가 쪼개지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렇고.
뭐, 어쨌든 전투 결과 나는 또 일주일을 앓아누웠고.
“폐하! 하모니 누나가 10주년 콘서트를 한다고 합니다! 보러 가실 거죠?”
다시 또 일주일 동안 가족과 여행을 다녔다.
“행정학 개론이 훌륭한 지침서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제국의 현실과 안 맞는 부분도 많습니다.”
식사를 함께하고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대기(大器)라는 사기적인 생체기관을 타고났지만, 지성은 전투보다는 행정과 정치에 더 관심이 많았다.
녀석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고 근육 형성에 도움이 되는 고기보다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달콤한 디저트를 더 좋아했다.
“……해서 플레이어들의 클래스나 컬렉션 등록 수준을 세금에 반영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군…… 관련 정책을 생각해 보지.”
망할 놈의 즉사 패턴 덕에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기본적으로 워커홀릭에 시간이 남아도 주로 수련을 하는 내게는 드문 일.
원래는 이런 시간에 대체로 수련을 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힘들다. 스트레스 수치가 높을 때 수련을 하면 정신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한 달.
완전히 회복한 난 집무실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상 죽을 수는 없다.
선구자의 가면도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좋아. 가자.”
집무실 책상에 몇몇 아이템들을 늘어놓은 뒤 의자에 앉아.
“로그아웃.”
루테 행성으로 돌아간다.
바로 기막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미친. 아예 공략을 안 보고 온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신화급 몬스터랑 싸우면서 심상치 않으면 일단 빠져야지 그냥 들이대다니…….] [야, 저거 봐.] [또 살아났어.] [아니 이게 말이 돼? 불사신이야?]기막혀 하는 파워포스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기믹(gimmick)이군.’
게임에서 기믹이란 특정 요소. 그러니까 몬스터, 함정, 퍼즐 등의 동작 패턴과 진행 메커니즘을 뜻한다.
그리고 이 기믹이란 건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단순 스펙으로는 승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우르르 몰려가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며 몬스터에 대해 학습하며 ‘공략’을 하게 만드는 식.
나는 시공의 모래시계로 딥 아이의 패턴을 피했지만 소용없었다. 짐작하건대, 딥 아이의 발악은 기믹이 수행되지 않는 이상 즉사 패턴이 반복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리라.
쾅!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아니, 또 그냥 들어가!?]파워포스가 비명 지르거나 말거나.
나는 사방으로 쏘아지고 있는 칠색의 기운 중 적색을 향해 뛰어들었다. 적색이 내 몸에 와서 터지자 내 머리 위로 붉은색 아이콘이 생겨난다.
‘그래. 일곱 색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중구난방 쏘아지는 것 자체가 힌트다. 순서가 틀리거나, 실수로라도 다른 색에 닿으면 패턴이 발동된다 이거군.’
주황색 빛덩이에 뛰어든다. 다시 점프. 허공. 정확히는 차원을 박차고 노, 초, 파, 남, 보라색의 빛을 삽시간에 통과했다.
-저주스러운 돌파!
날카로운 내레이션과 함께 즉사 패턴이 종료되고.
쩍.
딥 아이가 가로로 쪼개진다.
촤라랑!
10개 정도의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낸다. 5개의 전설과 5개의 영웅 아이템.
그리고 거기에서.
웅!
초월병기 제로섬이 빛난다.
[저장된 드랍 조정량이 감소합니다.] [전설 301 → 291]“아, 꽝이군.”
전설은 우르르 들어왔지만 신화는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할 때였다.
[어! 너 뭐야!]“음?”
느닷없는 고함에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내 옆으로 쿵. 하고 수호성좌 파워포스가 내려선다.
녀석이 소리쳤다.
[아니, 왜 아무 말도 없이 아이템 다 쓸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