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1
열일하는 과금 기사 30화
짜— 악!
검을 휘두른다.
“악!?”
“끄아악!!”
모여들던 고블린들이 육편으로 변해 흩뿌려지자, 바글바글하던 놈들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악! 밀지 마! 밀지 마!”
“악! 팔이 날아와서 내 머리를 때렸다! 팔이!”
순식간에 빽빽하던 포위망이 헐거워지고 공간이 마련된다.
나는 드러난 공간으로 나아가며 검을 계속 휘둘렀다. 이번에는 힘을 빼고 고블린들의 목만 깔끔하게 잘라 낸다. 체력 배분을 위해서다.
“괴물! 괴물! 회복이 너무 빠르다!”
“벌컥벌컥, 우걱우걱하더니 회복했다!”
“싸우나? 도망치나? 도망친다!”
“하지만 하나다! 우리는 많다!”
나는 우왕좌왕하는 고블린들을 계속 베어 넘겼다.
다섯, 열, 스물, 마흔!
백, 백오십, 이백, 삼백……!
나는 탈진할 때까지 검을 휘두르고 포션을 마셨다. 그리고…….
“로그아웃.”
웅녀 철강에 도착한다. 작업장에 있는 세탁기에 내 옷을 집어넣고 작업복으로 환복한다.
“오우. 한 씨, 생체력 수련해? 근육이 어마어마하구먼.”
“하하, 뭐.”
“이능 수련도 좋지만 그래도 일해야 하는데 너무 과하게 하지는 마. 많이 피곤해 보이네.”
철판을 나르거나 인챈터들의 작업을 보조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과였지만 계속 지쳐 있으니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씨, 오늘 컨디션이 영 안 좋아 보이네.”
“하하, 그러네요. 병원에라도 한 번 다녀와야 하나 봐요.”
평소와 달리 작업 중에 핀잔까지 들어야 하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레벨 업!]37레벨이 되었다. 고블린 수천 마리를 죽인 결과였다.
“사냥 시간으로 치면 게임 캐릭터보다 훨씬 빠르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일반 클래스, 일반 수호령, 일반 펫, 고급 장비를 장착하고 사냥하는 캐릭터들과 아르데니아의 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리벤지 속 캐릭터들이 일일 퀘스트와 메인 퀘스트 등의 보상을 받고, 그 보상이 꽤 크다 해도 사냥 속도가 이 정도로 차이가 나면 결국 따라잡힐 수밖에 없겠지.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작업을 끝낸 나는 건조까지 끝난 사복으로 갈아입고 스타 게이트로 향했다.
아르데니아로 가서 고블린을 잡는다.
기도 일을 마치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다시 아르데니아로 가서 고블린을 잡는다.
웅녀 철강으로 간다. 아르데니아로 간다. 스타 게이트로 간다. 아르데니아로 간다. 편의점으로 간다. 아르데니아로 간다…….
“헤이~! 미스터 한.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엄청 아파 보여요.”
기도 일을 마치고 유니폼을 갈아입는 내게 한 여인이 다가온다. 스타 게이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DJ이자 인터넷 방송인이기도 한 스칼렛이다.
“아픈 건 아닙니다. 그냥 좀…… 지쳐 있을 뿐이지요.”
적당히 대답해 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왜 친한 척이지?’
클럽 기도와 DJ. 어쩌면 직장 동료라 할 수 있는 관계지만 스칼렛과 나는 통성명도 한 적 없는 사이다. 출퇴근 때 우연히 마주치면 눈인사나 하는 정도였는데 먼저 다가올 줄이야.
“좀 지친 정도가 아닌 데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요.”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다가온다. 아닌 척하는 시선들이 한순간 모여드는 것이 느껴진다.
170센티미터라는 훤칠한 키. 탄탄하게 관리된 늘씬한 몸매. 제 것인 양 어울리는 검청색의 머리칼. 전문 코디네이터가 붙어 골라 주는 의상까지.
‘아이돌 출신이라 했지.’
흔치 않은 미녀다. 아쉽게 충분한 인기를 끌지 못해 팀이 해체되고 이렇게 클럽 DJ나 하고 있는 신세지만 그것이 그녀의 미모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인 게 바로 연예계라는 마경이 아니던가?
“괜찮습니다. 요새 다른 일정이 좀 있어서.”
다음 알바를 가야 했기에 적당히 대답하는 내게 스칼렛이 한 발짝 다가선다. 그리고 작게 속삭인다.
“분명 무공을 익힌 것 같았는데요. 경지도 입문자밖에 안 되어 보였고.”
“…….”
몸을 돌리려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 나를 보며 스칼렛이 웃는다.
“그런데 이제 보니 좀 달라 보여요. 혹시 생체력도 익히셨나요?”
“……무슨 용무입니까?”
스칼렛과 마주 선다. 그제야 나는 지친 육신 때문에 늘어져 있던 정신을 바짝 세워 그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건, 제법이군. 제법 고위 능력자 같은데…… 무공은 아니다. 생체력? 아니다. 마법도 아니고…… 오오라도 아니고.’
답은 이내 나왔다.
‘차크라 수련자다.’
고작 클럽에 이만한 능력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너무 무서운 표정 짓지 말아요. 뭔가 대단한 용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호기심이 들어서. 앗! 혹시 뭐 비전 같은 건가요? 생체력하고 내공을 같이 익히는 건 미친 짓이라던데.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외공인가요?”
지구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은 이능력자다.
10살이 넘으면 가까운 시청에서 강제 각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상관없다.
영적 장애인이나 다름없는, [폐급 마나 적성]의 나조차도 내공은 깨우쳤을 정도니까.
‘나도 생체력 각성을 하고 싶었지.’
사실 내 육신은 반쯤 생체력 수련자나 다름없는 상태다.
불수의근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고 뇌 속의 호르몬마저 조절할 수 있는 게 어떻게 일반인이겠는가?
때문에 나는 강제 각성을 신청할 때 보험도 안 되고 지원도 못 받는 생체력 각성을 선택했다.
이미 생체력 수련자나 다름없는 육신이 생체 인자를 받아들여 진화한다면 더더욱 강해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난 생체력에 입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 [생체 진화]부터 막혔다. 조금의 마나 적성도 없는 이 폐급 육신은 200만 원이 넘는 생체 인자를 받아들여 진화하는 대신, 그것을 소화시켜 똥으로 싸 버렸다.
“내가 대답해야 합니까?”
나직한 목소리에 스칼렛이 깜짝 놀라 손을 내젓는다.
“엑? 아, 아니 왜 정색을 하고 그래요? 하하하! 미안해요. 나는 그저.”
그렇게 말하며 스칼렛이 내 손을 탁 잡는다. 사과라도 하는 태도.
그리고 그 순간.
팟!
스칼렛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어라?”
대화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훔쳐보던 웨이터들이 신음 소리를 낸다. 나 역시 약간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견한다.
복도 모서리 끝에 붙어 있는 스칼렛의 모습을.
‘놓쳤다. 이렇게 빠르다고?’
내가 내심 신음하는 사이 뒤늦게 스칼렛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도 놀라 웅성거렸다.
“어, 저기 있다!”
“지금 한순간에 저기까지 이동한 거야? 와 맙소사!”
사람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스칼렛은 마치 거미처럼 천장과 벽 사이에 붙어 나를 바라본다.
잘 관리되어 있던 그녀의 머리칼이 헝클어져 있는데, 겁에 질린 고양이처럼 온몸의 털이 바짝 일어나 벌어진 참사인 듯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차크라가……?”
“뭡니까?”
태연한 대답에 크게 확장된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던 스칼렛이 조용히 바닥에 내려선다. 그녀는 즉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뭐 하는 거냐고요.”
“아, 이, 이런 것도 불편하시겠네요. 죄송합니다.”
후다닥 일어난 스칼렛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느닷없이 변한 태도에 의문이 들었지만 슬슬 다음 알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됐습니다. 퇴근이나 해요.”
휘휘 손을 내젓고 몸을 돌린다. 그녀의 태도에 호기심이 치밀었지만 여기서 내가 ‘왜 이렇게 놀랐어요?’라고 캐물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는 정보를 넘겨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뭘 느낀 거야? 설마 리벤지 시스템을 느낀 건 아니겠지?’
그러나 좀 다른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차크라가. 라고 했어.’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나는 차크라를 수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강제 각성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최종적으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가장 범용적인 힘. 내공과 마력뿐이었다.
‘차차 알아봐야겠다…… 하. 가뜩이나 피곤한데.’
투덜거리며 편의점으로 향한다.
고블린을 닥치는 대로 쳐 죽이며 지구를 오간 지 어느새 50시간.
그러나 그것은 지구에서의 시간일 뿐 아르데니아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4시간에 불과하다.
체력이 어찌나 조루인지 조금만 싸워도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쉬어야 한다. 심지어 그 ‘쉬는 시간’마저도 현실의 근무 시간이기에 계속 피곤한 상태.
대신 그만한 보상은 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체력이 1포인트 상승했습니다!]‘체력 계속 오르네. 이건 진짜 꿀이다.’
레벨 업, 스텟 상승은 남자라면 미쳐 날뛸 수밖에 없는 보상이다. 아무리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이라도 공부할 때마다 레벨이 오르고 지능 스텟이 상승한다면 공부에 미친놈이 될 것이다.
‘겨우 50시간에 체력이 5나 오르다니!’
체력 뽕맛이 어찌나 강력한지 매번 한계까지 검을 휘두르다 지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
슬슬 작업을 하며 꾸벅꾸벅 졸 정도니 다른 수를 마련해야 한다.
‘하, 알바를 하나 취소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과금해야 할 게 한참인데 알바를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데니아에서 나는 늙지 않는다.’
나는 20대에 아르데니아로 넘어가, 20년을 살았다. 그럼 40대라는 말인데 그 누구도 나를 그 나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처음 아르데니아로 넘어갔을 때와 똑같은 외모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수염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고 손톱도 자라지 않았다. 칼을 맞거나 고문을 당해 손톱이 빠지거나 하는 ‘외부적 요인’만이 육체를 변하게 만들었다. 뽑힌 손톱은 원래 길이까지 자라지만 그 이상은 자라지 않는 것!
그러나 지구에서는 다르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수염이 까끌까끌하게 자라난다.
‘20년 동안 잊고 살았지만…… 원래 이 정도 속도로 수염이 자랐었지.’
아르데니아에서와 다르게 지구에서는 육신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른다는 말이다.
즉.
‘나는 지구에서만 늙는다.’
그걸 알고 나니 지구에서 잠을 자는 게 억울해 진 상태다. 지구에서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아르데니아에서의 시간은 무한대라면, 가급적 잠은 아르데니아에서 자는 게 이득이리라.
“결국 답은 하나네. 로그인.”
나는 아르데니아로 들어섰다.
“죽여! 죽여! 죽여!”
“네가 죽여라, 네가!”
“괴물! 괴물 인간!!”
멀찍이에서 악을 쓰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보인다. 완전히 겁에 질려 덤비지도 못하는 상황.
나는 지금까지처럼 녀석들에게 달려드는 대신 직업을 바꿨다.
★☆전직 완료☆★
[베리언트 레인저(영웅)]근력+80 민첩+160 체력+80 생명력+40 마나+40
[사거리 50% 증가] [어둠의 관측자]클래스 체인지와 동시에 땅을 박찬다.
“어!? 어!? 괴물 인간 도망간다!”
“잡아라! 잡아! 포위해!”
“앞에서 막아라! 앞에서!!”
여기저기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지만 녀석들과 하도 싸우다 보니 고블린의 습성을 알 수밖에 없었다.
‘입만 산 것들.’
목이 터져라 악을 쓰지만 죄다 선동의 목소리일 뿐, 스스로 움직일 생각이 없다. 머리에 피가 오르면 자신의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미친놈들이지만 여유가 생기면 누구보다 더 머리를 굴리는 몬스터가 바로 고블린이었다.
[중급 은신(패시브)이 발동합니다!]고블린 무리에서 벗어나 숲을 달리던 난 어느 순간 내 몸이 반투명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리언트 레인저의 직업 특성. [어둠의 관측자]가 가진 효과였다.
“인간! 인간 어디 있나!?”
“찾아! 찾아라! 이번에야말로 지쳤다!”
“아까도 지쳤을 거라고 아까도!!”
나무 옆에 서 있는 내 옆으로 고블린들이 지나간다. 나는 슬쩍 손을 내밀어 녀석들 앞으로 흔들었다.
그래도 모른다.
‘이것 봐라?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은데?’
나는 수색을 시작한 고블린들을 거슬러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1시간 정도 걷자 고블린들의 포위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하아…….”
나는 주변이 잘 보이는 언덕으로 이동해 바위 사이에 몸을 밀어 넣었다. 은신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마나가 소모된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하긴 특성 설명에도 [1분 이상 관측되지 않을 시 코스트 없는 중급 은신.]이라고 쓰여 있었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급격히 수마가 밀려온다.
“아이고…… 이것 참…… 사서 고생…….”
몬스터가 드글드글한 용맥의 어느 지점.
불편한 자리에서 불편한 복장으로.
나는 까무룩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