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53
열일하는 과금 기사 352화
* * *
“…….”
가장 먼저 눈을 뜬 건 역시나 생체력을 수련한 루비였다.
‘와.’
그녀는 대우주 전체를 뒤져도 최상위에 속하는 생체력 수련자였다. 생체력의 창시자인 광황이 직접 사사(師事)하였고, 다른 그 어떤 영능보다 소유한 육신이 중요한 생체력을, 수십만 년을 살아온 오두룡의 육신에 적용하였으니 그 경지가 어떠하겠는가?
대우주의 그 어떤 우주 괴수도, 심지어 고대신의 육신조차도 생체력을 적용한 오두룡의 힘을 이겨 낼 수 없을 정도.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데도.
‘죽을 거 같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널브러져 있는 F‧D 멤버들을 둘러보자 지난 두 달간의 시간이 꿈처럼 머릿속에 흘러간다. 본디 며칠 정도면 끝나야 했던 그 행위가 무려 두 달이나 이어지게 된 건 단순히 욕망이나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재연으로부터 첫 번째 정(精)을 받아들였을 때 특성이 작동했기 때문이지.
1. 완전한 토양.
신의 육체 나무에 [초월] 이상의 등급과 [천왕] 이상의 궁합을 가진 비료를 뿌린다.
뿌려진 비료는 소멸한다.
가혹하고, 열락이 넘치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중간중간 [선생님. 이 마라톤은 언제 끝나나요?]라며 지구식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그녀를 위한 치료였다.
‘녀석의 존재가 제대로 알려지면 드래고니안은 녀석을 얻기 위해 뭐든 하겠지.’
드래고니안은 극단적인 여초 사회다.
하나하나가 준 황제급으로 불리는 드래고니안 대표의 특수 병종, 전룡단(戰龍團)의 경우 100명 중 80명 이상이 여성이고 우주 함선에 탑승하는 승무원의 경우도 70% 이상이 여성. 그게 전함(戰艦)이기까지 하다면 또 90%가 여성이다.
우주 곳곳에 자신만의 영지를 건설하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 중에는 남성이 제법 존재하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드래곤은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 이유는 확연하다.
‘약하고, 귀하니까.’
용종 여성체와 용종 남성체는 종종 같은 종족인지 의심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전투력 차이가 극심하다. 마법에 대한 소양이야 비슷비슷하지만 드래곤 하트의 마력 용량이 여성체가 더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체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더 심해진다.
남성체 드래곤은 고룡의 영역에 들어서도 100미터를 간신히 넘기고 200미터 이상은 철저히 재능의 영역인 반면.
여성체 드래곤은 5,000살만 넘어도 200미터가 넘어가는 상황.
그나마 폴리모프 한 상태에서는 어떻게 비등비등한 전투까지 가능하지만, 본체를 드러내면 아무런 능력 없는 인간 여성과 인간 남성이 몸싸움을 하는 것만큼이나 압도적인 상황이 나온다.
그러나 그게 드래고니안에서 남성의 지위가 낮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남아 선호 사상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극단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중성(中性)이던 내가 남성체가 아니라 여성체를 가지게 되니 한탄하던 이가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니.’
똑같은 용족인데 남성체 드래곤이 왜 약한가?
그것은 남성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성장을 위한 에너지까지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깼어?”
그녀가 욱신거리는 온몸을 간신히 가누며 상체를 일으키자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소년이 고개를 든다.
재연과 꼭 닮은. 그러나 그보다 훨씬 작은 소년.
“아.”
루비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두근. 하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뛴다.
꽈악!
“으으…… 숨 막혀.”
버둥거리는 작은 재연을 껴안자 가슴이 충만해지며 입꼬리가 씰룩씰룩한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스스로가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 작은 녀석들이 우리를 그렇게 괴롭힐 줄은 몰랐지만.’
이 작은 분신들은 어느새 한 달도 넘게 소환되어 있는 상태다. 특성, [분신 생성]으로 만들어진 분신을 너무 오래 소환해 두면 자의식(自意識)이 생겨서 위험하다는데 재연의 분신들은 거의 상시 소환 상태이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재연이 원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아마도 원본의 비범한 정신과 광활한 내면세계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몸은 괜찮아?”
작은 재연이 묻는다. 루비는 그를 꼭 껴안은 채 말했다.
“응, 다 나았어. 고마워.”
“히히. 무리는 하지 말고.”
파스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분신이 조용히 사라진다. 루비는 안타까움에 무심코 손을 뻗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몸을 일으켰다.
“으으…… 와.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네…….”
잠시 휘청거렸지만 이내 똑바로 선다. 그렇게 [크로매틱 드래곤]의 [육체 능력]을 담당하는 루비가 온전히 서자 나머지 머리들도 하나둘 눈을 뜬다.
“……끝인가.”
“우와…… 우와…….”
“난 그냥 좀 더 쉬고프다…….”
“좋았는데…….”
F‧D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들에게 안겨 있던 분신들이 사라진다. 이쯤 되면 상황을 알고 있을 텐데 나신(裸身)인 본체는 가부좌를 취한 채 들어올 때보다 훨씬 넓어진 [평온의 집]에서 명상에 잠겨 있다.
‘진짜 여러모로 말도 안 되는 존재란 말이지.’
재연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 역시 알고 있다. 사실 지금 대우주에 그를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권능…… 아니, 이 정도면 단순한 권능 정도가 아니야.’
전지(全知), 대천세계(大天世界) 같은 절대 권능.
신들조차 몇 개 이상 가지기 어렵고 아래에 내려 주려면 최상급 신이나 되어야 가능한 그 막대한 권한.
물론 그는 최상급 신인 게임신의 사도라 알려져 있으니 절대 권능을 받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이 가능한 절대 권능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풍요와 번영의 신이라 해도 이런 권능을 내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뭔가 시간과 공간에 연관된 힘인 거 같기는 한데…… 아무리 시간을 다뤄도 말이 안 되긴 해. 기본적으로 초월인자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마나야 어떻게 회복시킨다 해도 인자를 만들어 낼 양분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실제로 그 힘에 은혜 입었음에도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면세계에서 식사를 하고 오지는 않을 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천히 걷는다.
슥.
스슥.
걸음걸음마다 F‧D의 멤버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문 앞에 섰을 때. 오룡은 사라지고 용들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가장 강대한 용종.
용황만이 자리에 서 있다.
딸깍.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나오셨다!”
“괜찮으신 건가?”
“대체 왜 두 달이나…….”
문 밖에는 수많은 드래곤들이 자리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1,000배의 가속이 걸려 있다 해도 두 달이면 현실에서도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미궁을 나간 탐험가들을 통해 드래고니안에 소식을 전달하고 기본이 초월자인 드래곤들이 20층에 오기에 충분하다.
저벅.
사실 해명해야 한다.
모든 용들의 우상이자 황제인 그녀가 연락도 끊긴 채 두 달이나 잠적한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녀가 단순히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드래고니안의 통치자이자 가장 강한 무력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일국의 대통령이 갑자기 잠적해 뭘 하는지 알 수 없기만 해도 난리가 나는데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황제가, 그것도 몬스터 사태라는 미증유의 위기 상황 속에서 잠적했으니 사안이 얼마나 중대하겠는가?
저벅.
그러나 그녀는 해명하지 않았다.
저벅.
걷는다. 그저 걸었다.
그리고.
고오오오오——-.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수백의 드래곤들이, 그리고 그 수백의 드래곤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 분위기를 살피던 천에 가까운 초월자들이 숨을 죽인다.
그곳에.
황제가 있다.
“경하, 경하(慶賀)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자리하고 있던 모든 드래곤이 몸을 엎드린다. 심지어 본체로 현신하고 있던 이들도 많았기에 그야말로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박력!
그러나 그 모든 용종의 존재감조차.
용황 하나에게 짓눌린다.
“……용황이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났군.”
“말이 안 되는군. 수백 년 동안 백약무효(百藥無效)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 오룡으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철저한 비밀이지만 그녀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짐승신. 삼족오(三足烏), 흑번(黑幡).
배가 고파서, 또 심심하다는 이유로 무수한 용을 먹어 온 그 신화적인 까마귀와의 전쟁은 드래고니안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고 용황은 그때의 부상으로 4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외적인 활동을 완전히 멈추게 되었다.
몬스터 사태가 아니었다면 수천 년 단위로 그랬을지도 모를 상황!
죽음만을 간신히 면했던 부상이었기에 황제 클래스의 격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지금 이 순간 엄청난 기세를 내보인 것이다.
“그냥 부상에서 벗어난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어쩌면 그 이상.”
“준 언터쳐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
“그렇게 말해 봐야 감이 전혀 안 잡히지만.”
“아니, 뭔가 상황이 획획 바뀌잖아. 우리 선계에서도 황제급 와야 하는 거 아냐? 검선(劍仙)님은 대체 뭘 하고 계신 건데?”
“선계야 선계 지키지…… 몽환의 미궁은 물질계만 커버하는데.”
“하기야 전 차원 커버하면 마왕들도 올라오지.”
초월자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칸이 명령한다.
“유리.”
“네, 폐하.”
시녀장이 고개를 깊이 숙인다. 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간으로 폴리모프 했을 때 언제나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금발에 차가운 인상의 미녀로 바뀌어 있다.
칸보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시녀장으로서의 권위를 위해 늙은 모습을 고집해 왔다는 걸 생각해 보면 거의 수천 년 만에 보는 모습.
그녀가 그런 모습이 된 이유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역시 드래곤들은 다 똑같은 느낌을 받는군.’
누구보다 이성적이라 알려진 용종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그 어떤 종족보다 탁월한 야성(野性)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야성을 가진 존재들은, 지금의 재연과 마주하면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본능이, 피가 외치는 끌림.
타고난 피의 힘이 그 누구보다 강렬한 초월종이니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남성(男性)은 전혀 못 느낀다는 점에서 더더욱 노골적이다.
“……폐하?”
가만히 바라보자 어쩔 줄 몰라 하는 시녀장.
칸은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 말했다.
“성채(城砦) 특성을 가진 녀석들을 모아 20층에 드래고니안의 영역을 만든다. 황궁의 예산이 얼마나 되지? 예산부 말고. 황궁 전체.”
“전체라고 하면 남은 예산이…… 대략 1,126조 게럴트입니다.”
그녀의 답에 칸이 웃는다.
“다행히 부족하지는 않겠군. 절반을 거기에 쓴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짜라. 산란소을 만들겠다.”
“……네? 폐하!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시녀장이 기겁해 소리친다. 당연한 일이다.
드래곤이 자손을 낳는 것은 그 자체로 신비(神祕)의 영역에 들어가는 대역사.
저 하위 문명의 드래곤들조차 알을 낳기 위해 차폐 결계로 레어를 현실과 완전히 분리해 완전히 안전한 환경을 추구하는 데 초월급 몬스터가 백 단위로 쏟아지는 공간에 산란소라니?
그러나 칸은 태연하다.
“대신 시간이 1,000배지.”
“폐하. 그 정도 환경은 저희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갑자기 임신한 드래곤이 대량으로 생겨난 것도 아닌데 이런 무리수를 두시다니요.”
“……대량으로 생겨날 수 있다면?”
“하지만 남정네들한테 그만한 여력이 없을 텐데.”
시녀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칸은 생각했다.
‘솔직히 독점하고 싶다.’
아무도 그를 모르게 하고 싶다. 자신의 레어에 가둬 두고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자신만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칸은 혼자의 몸이 아니다.
그녀는 대우주의 모든 용을 이끄는 자, 용황.
자신만이 아니라 종 전체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부터 드래고니안은 20층에 모든 여력을 집중한다. 이는 용황으로서의 명령이다.”
“……충!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우려를 표하던 시녀장이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시선이 슬쩍 허공에 떠 있는 작은 균열로 향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안에서 벌어진 일이…… 설마…….’
그녀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칸이 말했다.
“그리고 예산 중 1할은 한재연에게 배정하겠다.”
“……네? 폐하?”
“빼 놔.”
그 말을 끝으로 칸이 엎드려 있는 드래곤들에게 나아간다. 드래곤들의 웅성거림과 찬사의 말이 점점 높아지는 걸 보며 시녀장이 신음했다.
“1할이라니…….”
만약 이 이야기를 한재연이 들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당연하다.
1,126조 게럴트의 1할이면 112조 6천만 게럴트.
즉.
33경(京) 하고도 7,800조(兆) 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