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68
열일하는 과금 기사 367화
“……아, 헌원 님도 오셨네요. 오랜만입니다.”
바짝 긴장한 응룡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멀린은 태연하다. 심지어 응룡과 멀린은 구면인 분위기.
우웅-!
결국 응룡의 주위로 삼엄한 위엄이 내려앉는다. 단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털이 바짝 서는 무지막지한 마력의 파동이 흩뿌려지는 것!
내심 신음한다.
‘와…… 아직도 안 되겠는데?’
황제 클래스 중에서도 상위급 전투 능력을 가진 나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중하급에 불과하겠지만 로그인&로그아웃 능력과 클래스 특성이 가져다주는 전투력 뻥튀기가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용황이라는 이름으로 온 용들의 존경을 받는 칸조차 20층에서의 내 활약을 따라오지 못했고 그전에는 몬스터들에게 밀려 목숨이 위험하던 응룡이 내게 구함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응룡이 독하게 마음먹으면 나를 죽이거나, 혹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 수 있음을 직감했다.
로그인&로그아웃 능력도 단번에 당하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물론 그런 일은 헌원도 많은 것을 희생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무섭네. 이게 오래 묵은 황제급 술법사라는 건가.’
그러나 살짝 긴장한 나와 달리 멀린은 태평한 표정이다.
“아니, 왜 갑자기 오셔서 분위기 잡아요?”
[……윤 교수. 자네가 백경의 천재란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네. 본디 초월지경에도 오르기 힘든 게 백경이라지만 그 벽을 넘어섰다면 황제 클래스도 납득은 안 되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는 아니지. 지금은 혼돈의 시기니까. 하지만.]인간형인 응룡의 얼굴이 긴장과 불신으로 굳어 있다.
[하지만…….]아무래도 그에게 11클래스 마법이라는 것이 커다란 의미인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법칙 제어’를 재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네게는 자격도 역사도 없다. 이건 재능이나 기연으로 가능한 일이 아.]그 순간.
“그만.”
응룡의 주위를 휘돌던 마력이 씻은 듯 사라진다.
“응? 어, 뭐지?”
[이상한 기분이 드네.]“내가 뭘…… 아 그래. 다음 웨이브를 준비해야지.”
아닌 척 우리를 훔쳐보고 있던 초월자들의 시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방금 일어난 대화. 아니, 사건(event)이 사라진 것처럼 20층의 분위기가 단번에 원래의 것으로 돌아온 상황.
파라라락.
어느새 멀린의 옆에는 한 권의 책이 떠 있다.
[이건.]이제는 굳다 못해 창백해진 응룡의 얼굴을 보며 멀린이 웃는다.
“헌원. 세상 모든 것이 상식 위에서 흘러가는 건 아닙니다. 더 [큰] 사정이라는 게 있다는 것 정도는 드래고니아에서도 알지 않습니까? 금단 무기도 다루는 문명이신데.”
[……그런가. 내가 그만 조바심을 부렸군.]뭔가 느낀 바가 있는 듯 응룡의 기세가 탁 풀린다. 가만히 지켜보던 금낭이 묻는다.
“멀린 님. 11클래스 찍으신 거예요?”
“그럴 리가. 다만 꼭 11클래스. 그러니까 신급 마법사가 되어야만 11클래스를 쓸 수 있는 건 아냐. 애초에 나는 비초월자일 때에도 권능 주문 쓰고 그랬거든? 재료와 조건이 필요할 뿐이지.”
“……아니, 그게 말이 돼요?”
“마법사라는 건 원래 법칙을 재구성해 편법을 찾아내는 존재니까.”
피식 웃으며 멀린이 들고 나온 파라솔을 허공에 던졌다.
펄럭!
기묘한 문장이 새겨져 있는 파라솔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펼쳐지자 주변에 변화가 생긴다.
황제 클래스인 삼 인, 아니 이인(二人)과 일룡(一龍)이 가장 먼저 그것을 느꼈다.
[마나가…….]“저기 쓰여 있는 잔류 마나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거였나.”
궁극 마법이 터진 자리에서는 이미 그 마법의 효과가 다 끝난 상황이라고 해도 영능 사용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잔류 마나. 혹은 잔재 마력이라 불리는 것이 남으니까.’
마법이든 기공이든 그 종류에 상관없이 영능은 현상을 발생시키고 완전 연소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는 마나의 파편이 남기 마련이고 그것이 순수한 마나로 환원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이곳 20층은 특히나 그게 심하지.’
엔간한 수준의 능력자는 이곳에서 영능력을 제대로 쓰기도 어렵다. 셀 수없이 많은 초월자, 심지어 황제 클래스의 존재들이 쏟아 낸 초월적인 잔재 마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마나 장악력이 권능의 경지에 이른 자연경의 강자, 그러니까 내가 계속 통제하며 사용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20층은 초월자조차 들어서기 힘든 마나 재해의 현장이 되었을 것이다.
고고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20층의 그 잔류 마나들이 허공에 떠 있는 파라솔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저게 뭐야?”
그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자연경인 나라면 할 수 있고 실제로 하고 있던 일.
그러나 그 와중 어떤 마법도 신비도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마치 중력에 이끌린 사과가 땅에 떨어지듯.
마치 열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그 어떤 소모나 인위적인 과정 없이, 그저 당연하다는 듯 20층의 잔재 마나들이 파라솔로 빨려 들어간다.
“오케이! 성공이다! 야, 나 잠깐 나갈게!”
“멀린?”
“아니, 잠깐만요. 형님?”
[이게 무슨.]우리 셋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멀린이 세 발짝 뒤로 물러선다.
팟!
미궁에서 탈출한 것이다.
“아니 무슨.”
기막혀 하는 내게 응룡이 말한다.
[윤 교수와 친분이 있는 모양이군.]“교수요?”
[……우로보로스의 교수 말일세. 윤용노 교수는 증폭학의 창시자이자 벽을 넘은 백경(百京)으로 유명한 존재지.]백경.
10의 18승분의 1(0.0000000000000001)의 확률로 탄생한다는 돌연변이적 천재를 일컫는 말이다.
너무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재능이 벽이 되어 초월의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는 예외적인 존재들.
경지를 올리기 힘들 뿐이지 남들이 흉내 내기 힘든 특이한 발상과 재주를 가진 경우가 많아서 34지구에도 다섯이 넘는 백경이 이주해 온 상태다.
“흠. 우로보로스 교수쯤 되면 저런 걸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가 예외적인 경우지. 예전부터 가늠하기 힘든 존재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한탄하는 응룡을 보며 정지된 시간 속에서 목격했던 멀린을 떠올린다.
-안녕하세요. GM 대마법사입니다.
-잠시 시스템 조율이 있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양해 바랍니다.
-다소의 시간선 변경과 이벤트 어레인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이벤트 어레인지 진행 중……
-완료
-롤 백(Roll Back)진행 중……
-완료.
-양해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공지 사항도 있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의 공지 사항.
정지되고, 심지어 당겨지는 시간선을 인식할 수 있는 [신]들을 위한 공지.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신적인 권능이 그 본인의 힘일 리는 없다.
말하자면.
‘멀린은…… [그녀]의 사도인 동시에 [그]와도 연관이 있다는 말이겠지.’
안 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녀]에 관한 일은 [그] 역시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
이쪽 세상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던 것 같은 폭거만 아니면 상관없을 것이다.
웅!
그때 다시 10개의 문이 나타나고 두 마리의 황제 클래스가 포함된 몬스터 군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 왔네.”
[으음. 황제급 몬스터 둘이라.]“헌원 님이라고 불러야 하려나요? 하여튼 저희가 먼저 칠 테니 뒤에서 지원해 주세요!”
멀린이 빠졌어도 전력에서는 크게 문제가 안 되었던 만큼 태연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때.
웅!
하늘에 떠 있던 파라솔에서 무지막지한 마력이 뿜어진다.
“아, 이거 설마.”
“진짜……?”
나와 금낭이 황당해하는 순간.
[아폴론의 꺼지지 않는 태양.]어마어마한 태양빛이 섬광이 터져 나가듯 온 세상을 후려친다.
20층의 탐험가들이 당황한다.
“어? 올림포스계열 권능 주문?”
“멀린 나간 거 아니야? 헌원 님은 이거 안 쓰실 텐데.”
“모르겠고 일단 쳐!”
몬스터 군단과 이제 그들에 비해 오히려 많은 탐험가 부대가 충돌한다.
나와 금낭은 물론이고 헌원 역시 당연히 참가했다.
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라 해도 상대편에는 황제급 몬스터가 둘이나 있으니 견제가 필요하다.
차앙!
“……제길. 네놈들.”
[이 어리석은 자들이……!]크게 힘을 쓸 것도 없다.
권능 주문, 아폴론의 꺼지지 않는 태양에 얻어맞아 약체화된 몬스터들은 그저 심검을 쏘아내거나 권능을 발현하는 것만 방해해도 쉽사리 수세에 몰렸다.
간혹 사고가 발생해 크게 부상을 입거나, 재수 없으면 죽는 탐험가가 생길 수는 있어도 큰 피해가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 [입장이…….]그렇게 네다섯 웨이브가 흘러간다. 허공에 떠 있는 파라솔은 한 웨이브마다 한 방, 간혹 두 방의 권능 주문을 쏘아냈다.
“아니…… 저게 뭐야?”
“이게 말이 되나…….”
파라솔은 마법적인 힘으로 존재감을 감추고 있었지만 웨이브가 반복되자 탐험가들도 하나둘 상황을 파악한다.
뭔가가 권능 주문을 사용하고 있다.
오토(auto)로!
“자동 사냥 실화냐…….”
권능 주문이 몬스터들을 다 죽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모든 전투에 영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미궁의 토큰은 전투에 기여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분배된다.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새로운 탐험가들이 들어온다.
그 맨 앞에 서 있던 멀린은 들어오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오케이, 성공! 토큰 들어온다!”
환히 웃는 그의 모습에 어질어질하다. 노가다가 싫다고 온 우주의 초월자들이 죽고 죽이는, 세상의 존망을 좌우하는 대우주 최선전에서 자동 사냥을 돌리다니.
그러나 실용적으로 생각하면, 저 기묘한 파라솔은 엄청난 도움이 된다.
[기가 막히는 것과 별개로…… 의미가 있겠구려. 권능주문 한 방의 위력은 전장의 균형추를 기울이기에 부족함이 없을 테니.]“와. 이렇게 되면 우리 쪽에 황제 클래스 한 명만 있어도 전선을 유지할 수 있겠는데요?”
“전룡단들을 비롯한 준 황제급을 생각해 보면 없어도 가능하긴 하지. 웨이브마다 사상자가 잔뜩 나오기는 하겠지만.”
나와 금낭만 있어도 초월급 탐험가들과 20층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영원히 여기에서 세상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 로그인 해 휴식을 취할 수 있다지만, 그 대신 아르데니아의 시간이 과도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멀린의 주문 발사기는 상당히 의미 있는 개념이다.
“그럼 나는 이제 다시 나간다!”
“아니 진짜 갑니까?”
“충분히 막을 수 있으면 됐지. 나 바빠.”
바이바이. 하고 손을 흔들더니 멀린이 미궁에서 탈출한다.
“…….”
“…….”
[…….]세 황제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물론 그가 보인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뭐라 비난하기에도 애매한 상황.
나는 결국 헛웃음 지은 후 말했다.
“흠. 그럼 나도 잠시 빠질까 하는데.”
“아니 형님도요?”
“애초에 내가 먼저 빠진다고 했었잖아. 멀린 양반이 선수 친 거지.”
내 설명에 금낭이 어깨를 으쓱인다.
“뭐 안 될 건 없죠. 궁극 주문이 한 방 갈겨지고 시작하는 이상 저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고…… 좀 지치신 것 같긴 해도 헌원 님이 계시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헌원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인 후 20층에 설치된 거대 성채.
산란장에 들어간다.
“문을 열어 줘.”
성벽을 톡톡 치며 말하자 안에서 시녀장. 유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휴식이십니까?]“아니, 여길 좀 이용하려고.”
[이용이라니…… 하여튼 알겠습니다.]결계가 열린 성벽을 한 걸음에 뛰어넘으며 특성창을 조작한다.
토큰의 양은 이미 충분하다.
[평온의 집이 성장합니다.] [평온의 집의 싱크로율이 199.97%에서 200%로 상승합니다!]쿵!
벌써 80회가 넘는 강화를 받은 평온의 집은 마침내 차원의 틈 정도가 아닌 차원의 문이 되었다.
나는 산란소의 성벽 안쪽에 문을 설치하며 생각했다.
‘사실 내가 20층에 머물면서 끊임없이 웨이브를 막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노가다는 익숙하기도 하고.’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건 황제가 아니라 노예나 죄인이 할 일이다.
“나와.”
철컹!
내 말에 묵직한 디자인의 문의 손잡이가 돌아간다. 지금까지는 저것으로 끝. 그 안의 존재가 밖으로 나오지 못했지만.
끼익!
이번에는 달랐다.
“……하. 정말 가능하네.”
타오르듯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문 밖으로 걸어 나온다.
아쉽게도 실존하는 존재는 아니고 심인(心人)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 내면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하. 드디어.”
나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며 끊임없이 싸울 수 있지만 그건 황제가 아니라 노예나 죄인이 할 일.
그렇다면 황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멧?]“이 목소리는 시녀장님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래. 황제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