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80
열일하는 과금 기사 379화
* * *
장례식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수련을 위해 대외활동을 멈춘 지 오래 되었지만 그럼에도 플라워는 제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존재였다.
인류제국의 정점은 위대한 황제라지만.
사실 황제는 지배자라기보다 신에 가까운 존재다.
경외와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신화적 초월자.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저 업데이트를 하거나 반란을 진압하거나 외계의 적을 쳐부수었을 뿐 제국을 경영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수시로 수련 삼매경에 빠져도 제국이 멀쩡할 수 없었겠지.’
결국 제국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존재는 나를 대리해 황실을 경영하던 플라워였고.
그녀의 슬픔은 당연히 모두에게 큰 슬픔이다.
“흑흑…… 황후께서.”
“최근 활동을 안 하시더니, 때가 된 것이었군요.”
“초월자도 아닌데 오래 사셨지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장례식의 상주는 그녀의 외동아들이자 인류제국의 재상인 지성이 맡았다.
200살이 가까워진 나이에도 여전히 2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녀석은 붉어진 눈으로도 차분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는 완전히 장성한 다섯 명의 아이들, 숙련된 초월자로서 내면세계에 머물던 미스릴, 플라워와 친하게 지냈던 고위 관료, 군인, 길드 마스터,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이 보인다.
“…….”
나는 그 모든 과정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집무실로 내려갔다.
시간이 지난다.
플라워를 시작으로 1세대 플레이어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초월자가 되지 못하는 이상, 클래스와 영능의 보조가 있어도 수명에는 한계가 있다.
환골탈태나 생체력 등으로 젊은 외모를 유지한다 해도 정신과 영혼의 노화는 피할 수 없으니, 그저 스트레스를 피하고 요양을 하는 것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면…… 어쩌면 나는 플라워의 수명을 깎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정을 잡는다.
“마지막 가는 길을…… 황제 폐하께서 함께해 주시다니 더 이상의 영광이 없군요.”
수색단의 단장이자 쉐도우 스토커 길드의 마스터였던 런닝맨이 눈을 감는다.
“함께하여…… 영광이었습니다.”
훈련소장이자 인류제국의 장군으로 활동하던 소드맨이.
“제가 가도…… 식사는 거르시면 안 됩니다.”
산적에서 용병, 여관주인을 거쳐 인류제국 최고의 요리사가 되었던 부쳐가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제국력 197년.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사람이 떠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하! 하하하하! 도달했다! 찍어 낸 양산형이 아닌! 진정한 대마법사가!”
나는 미친 듯 웃음을 터트리는 노인. 아니, 이제 거의 중년으로 보이는 사내를 멀리에서 감지하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되네.”
내게 [마도전서]를 진상했던 황금마탑의 마탑주, 사루만 하이 매직이 온몸에 마력을 휘감은 채 괴성을 지른다.
농담이 아니라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한 달이면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초월지경에 올랐다.
내 [밀어주기]를 거절한 보람이 있다고 하겠다.
“초월을 축하하지.”
내 치하에 집무실에 들어선 사내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경례한다.
“추, 충성! 김재연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재연입니다.”
“뭔 다 재연이야.”
“부, 부모님께서 워낙 폐하를 존경하셨기에…….”
사람들이 죽는다.
사람들이 태어난다.
나는 황제의 위치에서 그들을 떠나보내고, 만났다. 그들을 도와 초월지경에 올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 인재를 만나 가르침을 내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난다.
제국력 200년.
요소, [무공]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 이름은 태허공(太虛功).
모든 내공이 무검으로 이동해 텅 빈 단전을 활용하기 위해 북명신공(北冥神功)과 두전성이(斗轉星移)를 섞고 특화시켜 만든 무공이다.
‘다행히 성공이네.’
당연한 말이지만 [황제] 급의 차크라 요소에 대한 정보는 없다.
자연경의 경지나 10클래스에 대한 정보는 그나마 좀 남아 있는 편이지만, 황제급 차크라 사용자는 세상에 알려진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황제급의 차크라 사용자조차 없는데 그 안에서도 [무공] 같은 특이한 요소를 주력으로 끌어올린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하나하나 시도하며 깨달아 가야 한다.
‘내가 정성과 마음을 쏟은 무공이 하늘의 별이 되는군. 이게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내 개인적인 경우인지 모르지만…… 대기(大器)의 심상이었던 바다가 밑바탕이 되어 이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어.’
나는 암흑성의 길드타워 4개 층을 통합해 만든 무학서고를 돌며 34지구에서 베껴 온 무공들을 계속해서 궁구(窮究)하고 재조립했다.
베껴 온 사람이 나인지라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들을 나에게 맞게 조정하기 위한 발상을 얻으려면 모든 걸 다시금 되짚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국력 203년.
사도무공의 정점, 쾌진공(快進功)을 별로 띄워 올렸다.
제국력 205년.
정도무공의 정점,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을 별로 띄워 올렸다.
제국력 206년.
마도무공의 정점, 천마신공(天魔神功)을 별로 띄워 올렸다.
제국력 210년.
인류제국의 무공 수련자들을 모아 수업을 시작했다.
“쾌진공 수련자들을 모이라고 해.”
제국민들의 무학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무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목적이었던 만큼 일정은 내 맘.
그러나 그 느닷없는 말에도 하모니가 딜레이 없이 답한다.
“명단을 받아 두었습니다. 44,788명입니다.”
“거의 오만 명이잖아? 당장 모일 수 있는 녀석들이 그렇게 많다고?”
“폐하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생업을 내팽개치고서라도 오지요.”
플라워가 떠난 뒤 그녀와 에드워드가 내 비서 역할을 돌아가며 맡고 있다.
사실 이렇게 쓰기에는 과분한 인재들이지만 초월자들 중에서도 가장 빨리 내면세계를 오갈 수 있는 데다 현실 상황도 잘 알고 있는 녀석들이라 편하긴 하다.
“역근세수경 수련자들을 모이라고 해.”
“311명입니다.”
“천마신공 수련자들 모이라고 해.”
“132명입니다.”
제국의 수련자들을 모아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화후는 당연히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자신의 무공을 대성했고, 누구는 초입에서 헤매다 포기를 고민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재능에 자부심을 느끼고 누구는 재능의 벽 앞에서 절망한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를 살피며 무학을 가다듬었다.
제국력 215년.
순양무극공(純陽無極功), 태극신공(太極神功), 양의신공(兩儀神功), 자하신공(紫霞神功), 육합신공(六合神功)의 별을 띄웠다.
제국력 217년.
태양신공(太陽神功). 빙백신공(氷白神功). 현무신공(玄武神功). 태풍신공(颱風神功)의 별을 띄웠다.
제국력 220년.
“흠.”
무학서고에 턱을 괴고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
최근에 집중하는 화두(話頭)는 무공에 담긴 진의(眞意)이다.
‘꼭 재능만이 무공의 전부가 아니군.’
모든 무공은 각각의 철학을 담고 있고 거기에 적합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면 가진 재능을 뛰어넘는 성장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쾌진공. 이거 만든 놈들은 진짜 대단하군. 구결도 몇 자 안 되는데…….’
쾌진공의 진의는 만족(滿足)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적게 벌어도 배곯지 않을 정도면 상관없는 사람, 미디어나 SNS 등에서 호화롭게 잘사는 사람들을 보아도 전혀 속이 뒤틀리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소소한 만족을 느끼는 사람.
세상은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설사 무학의 재능이 최악 중의 최악이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또 깊이 쾌진공을 익히게 될 것이다.
‘거기에 단순한 구조와 구결. 아주 낮아도 충족 가능한 수준의 영적 적성. 그야말로 서민의 무공이라 할 만하다.’
더 위로 갈 욕망이 없는 마음이 오히려 수련에 도움을 주는 구조.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 패스트 쓰리 학파의 서클링도 이런 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내가 쾌진공을 못 익혔던 거군.’
폐급 마나 적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익히려 했을 뿐, 그때의 내 마음속에는 야망과 욕망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이래서는 쾌진공을 익히기 어렵다.
아마 폐급 마나 적성이 아니었어도 그때의 난 쾌진공을 익히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가장 하찮아 보이는 무공조차 못 익히는 스스로에게 절망했단 말이지. 어떻게 생각하면 천마신공에 비견될 만한 무학인데.’
천마신공은 굳이 말하자면 왕의 기질을 가진 존재가 익히기 좋은 무공이다.
천하(天下)를 오시(傲視)하고 수천수만 명의 말보다 나 자신의 결정과 판단이 가장 중요한, 심지어 그 결정에 전혀 흔들림이 없는 오만한 천재들의 무공.
‘물론 무공 자체가 어려우니 그냥 건방지기만 한 놈이면 입문 자체가 안 되고.’
그렇다면 역근세수경은?
‘우공이산(愚公移山). 삿된 길에 한눈팔지 않는 우직함과 성실함인가. 그냥 제일 좋은 걸 줬는데 어떻게 스틸스톤과 딱 맞았네.’
무공의 진의에 대해 고찰하게 되자 지금껏 익히고 있던 무공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살인 기술이라 생각했던 무공은 하나하나가 세상을 대하는, 또 삶을 마주하는 정신과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국력 221년.
요소, 일격(一擊)과 연계되는 극검세(極劍勢)를 별로 띄워 올렸다.
그 자체로는 약소하지만 이건 꽤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식의 소성(小星)은 별과 별의 연계(連繫)될 수 있는 가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력 225년.
무검(武劍)의 세상에 충실해질수록, 하늘에 별이 많아질수록 내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첫 번째 별이 연화공이라 다행이네.”
다른 수많은 별은 무검을 이루는 구성 요소에 불과하지만 첫 번째 별, 그러니까 모든 별들의 중심이 되는 북극성은 무검 전체의 기질과 방향성을 결정한다.
만약 [무공]으로 차크라 10층에 도달한 다른 사람이라면 이게 아무 문제도 안 될 것이다.
그가 띄워 올릴 첫 번째 별은 당연히 그가 평생 수련해 왔을 주력 무공일 테니까.
그러나 나는 다르다.
온갖 무공을 생체기관, 대해(大海)에 담아 썼지, 중심이 되는 무학이나 철학이 없었다. 그랬기에 무검이 만들어졌음에도 그것이 완성되지 않았던 것.
그런데 만약 내가 재능이 부족한 플라워를 위해 쉬운 무공, 그러니까 쾌진공 같은 무학을 개량해 그녀에게 가르쳤다면?
‘끝장이었겠지.’
그렇게 되면 쾌진공이 첫 번째 별이 되었을 테고 무검의 정체성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강해지긴커녕 오히려 퇴보했을 테고.
파앙!
그때 허공에 떠 있던 무검에서 새까만 기운이 튕겨 나온다.
“이런…… 또 실패야?”
“ㅠㅠ…… ㅠㅠ…….”
암흑검으로 돌아온 에레보스가 내게 몸을 치대며 징징거린다.
‘검이 몸을 비비다니.’
극의지체인 나니까 애교지, 보통 사람이면 신체의 여기저기가 잘려 나갔을 것이다.
먼저 실패한 히페리온이 말한다.
[아무래도 안 돼. 저건 평범한 신검 같은 게 아니라 무(武) 그 자체가 형상화된 물건. 무학에 대한 깨달음이 자연경쯤 되는 영혼을 검령(劍靈)으로 만들어야 이기어검으로 연마할 수 있을 거다.]“아니, 무슨 검령이 자연경이야.”
[그러니까 안 된다고.]“아, 우주최강 이기어검 나오나 했는데.”
투덜거리며 생각한다.
‘플라워.’
녀석에게 전수했던 무공의 기반은 거심공이다.
이는 거대기공에 특화되어 있으며 축기 과정 없이 지닌 내공을 정제(精製)하는 특이한 구조의 무학.
이건 무(武)의 세계(世界)에서 중심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수준의 무학이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등장도 할 수 없는,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선택지인 것이다.
“흠.”
이제는 내가 신경 안 써도 알아서 발전하고 있는, 심지어 스스로 마나코인을 생산해 과금까지 하는 인류제국을 내려다본다.
“슬슬…… 가능하겠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 때였다.
“폐하.”
여태 조용히 있던 에드워드가 문득 입을 연다.
“에드워드?”
“심검 한 방 부탁드립니다.”
‘느닷없이?’
뜬금없는 말에 눈살이 찌푸렸지만, 에드워드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번쩍—-!
에드워드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빛이 뿜어졌다.
“……?”
황당해 절로 입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내가 날린 심검이 빛으로 변해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짜잔! 이렇게! 멀쩡하게 막아 냈습니다. 하하하!”
“이게…… 뭐야?”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태극광(太極光)?”
“이게 뭔.”
어이가 없다. 맞고 버티면 버티는 거지 이딴 게 가능하다니?
황당해하는 내게 에드워드가 물었다.
“적어도 두 방은 막을 수 있습니다. 맞고 버티는 것까지 치면 세 방도 가능하죠.”
웃음이 싹 가신, 누구보다 간절한 얼굴로 에드워드가 묻는다.
“이 정도면…… 저도 싸움에 참가할 수 있을까요?”
“하하.”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래. 슬슬 가능하겠다.”
드디어.
현실에 나갈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