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84
열일하는 과금 기사 383화
* * *
전투가 끝났다.
무슨 짓을 해도 이겨 내기 힘들 정도로 절망적인 격차는 그야말로 삽시간에 무너져 버렸다.
나는 물론이고 내 휘하의 초월자들까지 로그인&로그아웃 능력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거기에 황제급에 준하는 조력자 셋이 끼어들었으니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
촤라랑!
후두둑!
[저게 뭐야. 아이템들을 수거하네.]“뉴스에서 많이 보긴 했지만 정말 펫을 소환하는군. 나랑 능력이 다른데…….”
전투가 끝난 후 아이템을 파밍하자 여기저기에서 시선이 몰린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유권을 주장하는 녀석은 없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더 강해 양보하는가 싶었지만…… 이내 동민, 엘리스, 그로테스크 모두 거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개개인이 가진 장비의 수준이 스스로의 역량을 넘어서는 수준이라 그런지 떨어진 아이템을 그냥 신기하게 볼 뿐.
‘아니, 그래도 팔수가 있는데……. 하급 초월자 따리들이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재물에 초탈하네. 이거 참.’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이템 획득과 분류를 완료했습니다. 신화급, 그러니까 20레벨 장비가 59종, 전설급이 274종입니다.]역대급 대박이었지만 내심 실망한다.
황제급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흑검 같은 게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는데…… 아니 하다못해 마검 같은 것도 이제는 안 떨어지네.’
암흑검을 내게 빼앗긴 게 [그녀]에게도 꽤 큰 타격이었던 것인지 우주천마 스물을 잡아도 두 번째 암흑검은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마검이나 암흑검은 [그녀]에게도 시험적인 아이템이었을지도 모르겠군.’
그 후 드랍되는 검들은 마검 히페리온과 마찬가지로 20레벨이 넘는 신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검령을 품고 있지 않다.
[마검]과 [암흑검]이 잔뜩 있으면 내 여의보검을 풀로 돌려 이기어검을 양산할 수 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적당히 쓸 만한 것들 골라 보라고 해. 솔직히 지금은 거의 맨몸이나 다름없으니까.’
[네, 폐하.]심인은 사람은 물론이고 장비까지 구현해 주지만 당연히 그건 그저 강기로 이루어진 모양새일 뿐, 진짜가 아니다. 그러므로 녀석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싸우려면 현실용 드랍템들로 무장해야 하리라.
“그나저나.”
나는 적당히 먼 거리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무리에서 보라색 머리칼에 조각 같은 이목구비, 눈 밑이 검고 피부가 창백한 것조차 퇴폐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빼어난 외모를 지닌 미청년이 걸어 나와 아는 척을 한다.
나와는 구면인 그로테스크의 왕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재연 씨.”
“또 뵙네요. 프린스. 그때 98지구에서 떠났었는데 또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사실 위험한 일이었다.
최상급 신 킹의 자식이라 해도 프린스는 초월자조차 아닌 존재.
나와 서른 명의 황제 클래스들간의 싸움에서 어이없이 죽을 수 있었다.
‘솔직히 우주천마 녀석들이 조금만 깽판치려 들었어도 행성이 박살났겠지. 우주전이 되면 오히려 자기들에게 불리할까 봐 안 한 거겠지만.’
어쨌든 프린스의 죽음은 내게 별로 좋지 않은 일이다. 무난히 넘어갈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킹의 원한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하. 연구가 끝나지 않아서…….”
어색한 표정의 프린스를 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오랜만입니다. 세릴 연구원.”
쿵.
묵직한 발걸음과 함께 체고만 해도 4미터, 체중은 8톤에 이르는 거대한 덩치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임무 때 봤던 그녀의 정보를 떠올렸다.
[세릴 하룩 박사]우로보로스 소속 생물학자. 논문 작성을 위해 98지구에 들렀다 연락 두절.
8클래스 마스터, 9클래스 주문 2종 사역, 테케아 연방의 공주.
‘그래. 그러고 보니 공주였지. 그러면 이건 왕자와 공주 콤비인가?’
물론 테케아 연방과 그로테스크의 규모는 그야말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니 제국과 소국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뭐 어쨌든.
“다시 뵙게 되어 반가워요. 난데없이 폭음이 울리면서 지진이 벌어질 때에는 무슨 일인가 했는데.”
새침하게 말하는 세릴의 목소리는 꾀꼬리처럼 곱다. 포효 한 번 하면 초저주파가 수천 명을 압도할 것처럼 생겨서는 가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
“큰일 날 뻔했죠.”
“그나저나 진짜 황제가 되셨네요. 용병으로 고용했던 분이 저희 테케아 연방 역사를 통틀어도 단 한 명밖에 없는 황제 클래스에 도달하게 될 줄이야.”
머리통이 어지간한 사람 몸통만 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다가와 호들갑을 떤다.
당장이라도 한 입에 내 상체를 뜯어먹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광경이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내가 인간이고 그녀가 벌레 정도의 포지션이지.’
내가 여기에서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두르기만 해도 그녀는 죽는다.
이 힘의 격차라는 건 너무나 거대하고 절대적이어서 [격]이 다른 존재는 동급으로 여겨지기도 친구가 되기도 어려울 정도.
정의신, 진실신, 명예신이라는 특이한 개념이 존재하는 34지구라면 몰라도 다른 곳에서는 상위의 존재가 하위의 존재를 벌레 취급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며.
그런 면에서 내가 황제 클래스에 도달한 건 우주적으로도 엄청난 이벤트이다.
내가 속한 곳이 최상급 신위를 가진 게임 마스터가 있는 34지구니 망정이지 다른 문명이었다면 내가 아무 욕심이 없어도 내 존재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겠지.
“테케아 연방에도 황제 클래스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제국]급 세력이 만들어졌겠어요? 대외 활동을 거의 안 하셨고 대전쟁 때 언터쳐블에게 살해당하셔서 인지도는 별로지만요.”
“능력은 뭐였습니까?”
내 물음에 세릴이 반색한다.
“앗! 저희 용왕(龍王) 삼안(三眼) 님에게 관심이 있으시군요? 아시다시피 저희 공룡족은 마법에 특화된 종족이지만 텐 클래스에 도달한 건 삼안(三眼) 님이 최초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부적술의 시초이자 정점으로 알려지신 분으로…….”
‘아, 괜히 물었나.’
새처럼 재잘대기 시작대기 시작한 세릴의 설명에 난감해 졌지만 다른 황제 클래스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인 만큼 끊지 않는다.
대신 눈을 돌려 주변을 살핀다.
‘그나저나 참 애매한 분위기구먼.’
결과적으로 98지구에는 나는 물론이고, 나를 도우러 온 엘리스와 하모니, 김동민. 그리고 프린스를 구하러 온 그로테스크 여인까지 이런저런 일을 하며 대기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올 때야 게이트를 열고 공간을 찢고 로그인을 하는 등 근사하고 쾌속하게 등장했지만…… 이 광활한 우주를 가로지르는 건 결코 쉽지도 저렴하지도 않은 일이다.
올 때야 워낙 급하니 그 모든 걸 감수하고 날아왔겠지만 갈 때는 그럴 이유가 없다.
즉.
“그래서, 다음 열차는 언제 오는 거지?”
그렇다.
우리는 모두 뻘쭘하게 은하철도를 기다리고 있다.
[으으. 아니 아버지 여기 왜 오라고 하신 거지? 분위기를 보니 내가 안 왔어도 저 녀석이 알아서 살아남았을 것 같은데!] [너무 그러지 마, 엘리스. 그래도 우리가 와서 재연 님이 훨씬 편하게 전투를 벌였잖아?] [하지만 데우스가 박살이 났잖아…….]위이잉!
그그극!
격렬한 전투로 생겨난 크레이터 위에 거대한 공방이 생겨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수리하고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초월급 어빌리티, [기계신의 군수공장]이다.
“아니, 다음 열차는 언제 오냐니까?”
“영원히 안 온다고 해도 괜찮아. 너만 여기 있으면.”
“……느끼한 소리 하지 마!”
퍽! 소리와 함께 홀린 듯 멧을 바라보고 있던 동민이 바닥을 뒹군다.
항상 차분한 멧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모습이 꽤 볼만하다.
‘이제는 드래곤이 아닌 인간이라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기미는 안 보이네.’
다만 열차 시간은 나에게도 중요하다.
“에드워드. 다음 열차는?”
[731시간 11분 31초 후에 98지구를 지나갑니다.]“아니…… 그렇게 많이 남았다고?”
[원래 짜 놓은 일정의 열차는 지나가 버렸으니……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은하철도가 많아졌다지만 그래 봐야 60개가 안 되는 것이 현실.
반면 대우주는 어떠한가?
‘미친 듯 광활하지.’
내가 평소 딱딱 시간 맞춰 다닐 수 있는 건 동선을 고심해서 짜기 때문이지 무슨 지하철처럼 은하철도가 자주 지나다녀서가 아니다.
“에휴 뭐 은하철도라도 지나가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대우주는 너무나 광활하고 별과 별. 은하와 은하 사이의 거리는 신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농담이 아니라 은하철도가 없다면…… 내가 황제 클래스의 강자라 해도 98지구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수가 있다.
34지구는커녕 가까운 다른 문명조차 너무 멀어 이동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니다. 내가 있지 않느냐?]그때 내 앞으로 여의보검이 날아든다.
정확히는 그 안에 깃든 기가스다.
“히페리온? 네가 뭐?”
[내가 신급 기가스라는 걸 잊었나? 난 아스트랄 드라이브를 내장하고 있다.]“아하.”
그렇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우주 시대를 연 특이점이라 알려진 아스트랄 드라이브라면 우주 어디라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널 타고 34지구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가속 시간까지 치면…… 5년에서 7년 정도?]“아이고.”
절로 한탄이 나온다.
“열차 기다리자.”
[원래 성간 비행은 이 정도 걸리는 게 당연한 것이거늘…… 아스트랄 드라이브가 바로 전 단계의 기술로는 120만 년도 더 걸리는 거리인데…… ]히페리온이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열차 시간을 기다린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나를 도우러 모인 녀석들과 접촉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너희도 은하철도 타는 거야?”
“그렇다. 인간.”
“……어딜 보는 거냐?”
“원래 인간 따위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나는 노블리티! 날 때부터 오롯했던 그로테스크의 위대한……!”
“소리 지르지 마. 한 대 맞을래?”
오른손을 들자 노블리티가 크게 움찔한다. 그러나 이내 그런 스스로의 반응에 분노를 터트린다.
“너! 감히 인간 따위가!”
발끈한 노블리티가 무지막지한 기파를 뿜어 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마주하는 것만으로 즉사할 정도로 폭급한 살기(殺氣)!
그러나.
‘뭐 어쩔?’
당연히 내게는 상대가 안 된다.
쿠우웅!
그녀의 기파가 조금도 주변에 퍼져 나가지 못하고 짓눌린다.
자연경의 고수와 불과 수 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기세싸움을 하겠다는 건 그냥 죽겠다는 말이다.
빠득!
가볍게 주먹을 내려치자 살벌한 소리와 함께 노블리티의 두개골이 움푹 파인다.
금세 회복했지만 아무리 초월자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일 것이다.
“꺅!? 진짜 쳤어!?”
“자꾸 소리 지르면 더 맞는다. 이번엔 두 대 맞는다.”
“으으…… 이, 이 깡패 같은 놈. 내게 이런 굴욕을…….”
노블리티가 부들부들 떨었다. 꽤 애처롭지만 자비는 없다. 개념 없는 귀족 영애로밖에 안 보이는 녀석이지만 그 본질은 무시무시한 우주 괴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늘 말하는 거지만.
나는 그로테스크로 인해 멸망한 98지구 출신이다.
“그나저나 너희도 은하철도 탈 수 있는 거냐?”
“…….”
“대답.”
“……흥! 위대하신 왕께서는 게임신과 전략적 제휴 관계다. 동맹이 아닐 뿐 적대할 이유가 없지.”
“아 그러고 보니 대하 님이 킹 이야기를 했었지.”
“……이야기를 했었다고?”
노블리티가 관심을 보였지만 무시하고 대하를 떠올린다.
과거 나와 만났을 때 그는 분명 이런 말을 했었다.
“아, 그로테스크 이 등신 놈이 그걸 못 버티고 벌써 부르네. 나가 봐야겠다. 대충 설명 이해했지?”
짐작하건대 [그로테스크 등신 놈]이 바로 킹일 것이다. 게임신이 굳이 더 하위의 그로테스크와 놀 급은 아니니 아마 맞겠지.
게다가 은하철도에는 검마왕도 탔었다.
그로테스크가 연합의 주적이라고 하지만 마계도 당연히 적.
마계의 왕인 마왕도 타는데 그로테스크가 못 탈 이유가 없긴 하다.
[수리 끝! 으아앙! 게럴트가 소모됐어! 심검 개 그지같아 진짜!]“……엘리스 저 녀석 점점 성격이 가벼워지는 것 같지 않아?”
[아직 아이인 거죠. 사람과 사건들을 겪어 가며 스스로를 꾸미는 걸 관뒀다고 할까요?] [하모니!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시간이 흐른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98지구에서 시간을 보냈다. 동민은 멧과 붙어 알콩달콩했고 엘리스는 기가스를 수리하고 98지구에서 이런 자원을 채굴해 부품들을 수급했다.
그리고 프린스와 세릴은 98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다.
‘신기하네. 나도 발견을 못했었는데.’
그렇다.
98지구에는 생존자가 있다. 인원은 많지 않아 수백 명 정도가 전부.
솔직히 말해 겨우 이 정도 인원이 그로테스크로 가득했던, 그 후에는 몬스터에게 점령당했던 98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니 기묘한 일이다.
‘초월자 하나 안 보이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의문을 가지는 순간.
[가능하지.]“……!?”
깜짝놀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친? 기척을 전혀 못 느꼈다고?’
그것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근접.
그러나 감히 손을 뻗지 못한다.
“이게, 무슨.”
그것은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미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생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크리스털? 아니면 다이아인가?’
보석으로 깎아 만든 아름답게 빛나는 여인이 내 옆에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격이 느껴진다.
[이건……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운명인 것인지…….]차분한 태도로.
[너. 정명자(正命者)로구나.]그녀, 98지구의 성계신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