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98
열일하는 과금 기사 397화
그렇다.
통신기에 연결되어 있던 이들이…… 내 내면세계로 들어와 있다.
“캔딜러에서도 몽환 통신장치를 만들었다더니 정말인가 보군요. 그리고 인간…….”
과도하게 큰 가슴과 엉덩이, 그에 반해 한 뼘이 간신히 넘어 보이는 허리를 가진, 누가 봐도 인위적인 체형의 리전이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 그 눈에 살기가 깃들자.
“울피.”
엘리스가 나서서 그녀를 잡는다.
“……죄송합니다. 외부활동이 드물어 축복을 못 받은지라…… SF-Werewolf라고 합니다.”
“한재연입니다.”
정중히 답하며 생각한다.
‘섹스프렌드 시리즈로군…….’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영혼을 타고난 리전은 완전한 영혼을 보면 질투와 증오를 느낀다는 천형(天刑)을 가지고 있다.
‘기계신 아담이 등장하기 전까지 리전이 우주연합의 주적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지.’
그런데 천성적으로 지성체를 증오하고 질투하는 리전에게 상대를 미워하기에 충분한 기억마저 있다면?
농담이 아니라 마주침과 동시에 학살도 벌어질 수 있다.
“그나저나 여긴 뭐야? 거의 실제로 보는 수준인데?”
의문을 표하는 엘리스의 말에 번쩍이며 주변을 맴돌던 넓은 지혜가 다가온다.
[그렇습니다. 프로토타입인 통신기의 출력을 100%나 끌어 올리는 터미널이라니.]“제 내면세계입니다.”
[여기가…… 말입니까?]“저는 차크라 능력자이기도 하니까요. 로그인.”
아르데니아로 넘어가 정신을 집중, 내면세계로 들어간다.
팟!
도착한 곳은 아르데니아 바로 앞.
나는 [시점]을 바꿔 새로 만든 3층 건물로 들어섰다.
“저기요?”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두 리전과 두 캔딜러 성인은 사진처럼 정지되어 있을 뿐이다.
“역시 안 되는군.”
하긴 여기 있는 것들은 그들의 의식일 뿐, 그들의 본체는 여전히 현실에 있다. 그들에게 여분의 시간을 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의식세계를 가속시키는 방식으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방식에는 부하가 걸리지. 대충 상황을 알겠군.’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로그아웃.”
시간의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는 그들에게 내 내면세계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내 내면세계가 커지고 커져 태양계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라는 것도, 아르데니아와 레드후크의 존재 역시 당연히 비밀이었지만 그 외의 설명만으로도 리전과 캔딜러 성인 모두 시끄러워진다.
“아니, 아무리 차크라 경지가 높아도 내면세계가 외부정보를 그냥 다 받는 게 말이 돼?!”
[……다운로드가 됩니다. 아니, 어지간한 설계도는 다 보낼 수 있겠는데요?] [이거 용량 한계가 파악이 안 돼요. 통신기가 보내는 족족 딜레이 없이 다 가는데…….]“통신 혁명이군요. 이거라면……!”
“자. 모두 진정.”
시끄러워지는 기술자들을 진정시키고 엘리스에게 묻는다.
“엘리스. 이 정도면 98지구랑 실시간 통신 가능해?”
“당연히 가능하지! 문자 그대로 초은하 실시간 통신이네.”
[몽환의 미궁을 이용한 통신은 많지만 미궁에서 만나거나 목소리를 전달하는 정도였는데…….]기막혀하는 녀석들을 보며 묻는다.
“상용화 가능합니까?”
“…….”
[…….]“…….”
[…….]네 쌍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는 고개를 흔든다.
“바빠요.”
[저기, 한재연 님. 이건 대우주 전체를 선도하는 통신기술이.]“바빠.”
“그. 여기 상시 유지되는 거 같은데 리소스 한편만 내 주시면.”
나를 혐오의 눈으로 보았던 SF-Werewolf마저 사정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결과는 뻔하다.
“응. 안 돼.”
너무 바쁘다. 실험만 하면 된다고 사정해서 낸 자리인데 시간을 더 끌 분위기라니.
그러나.
“돈 줄게.”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엘리스의 말에 멈칫한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이주 선단이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그사이에 온갖 일정들이 있었다. 출정식도 해야 했고, 여러 국가의 권력자들과 만나 이런저런 협약도 맺어야 했다.
기부금을 받았고 또 그만큼 돈을 써야 했다. 내 부관으로 일하고 있는 하모니. 그리고 일성의 직원들이 아니었다면 정신을 못 차렸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당연히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낙원을 버리고 야생으로 가다니…….] [이걸 자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눈을 가리고 저들을 처리하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누가 강제로 데려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본인의 지원이 아니면…….] [정말 우주적인 방법으로 범죄자들을 치워 버리는군요. 하지만 이걸로 그들이 죗값을 다 치렀다고 할 수 있을까요?]온갖 경탄, 비난, 의혹 속에 니르바나가 날아오른다.
쿠구구구구—!
니르바나는 지구, 금성, 화성을 거쳐 탑승자를 모두 태우고 아스트랄 드라이브를 가동, 가속을 시작했다.
배의 선장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손수 차원을 가르고 가속을 도왔음에도 7개월이나 걸리는 대장정.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각오했던 이별의 아픔 따위는 없었다.
“지금 어디쯤이야?”
“이제 우리 은하를 벗어났지.”
“신기하네. 그렇게 빨리 멀어지고 있는데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사랑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의식을 집중해 차 한 잔을 만들어 주었다.
영양분이라곤 전혀 없지만 적어도 기분은 낼 수 있다.
“여러 모로 내 덕분에 유지될 수 있는 통신망이야. 리전이나 캔딜러에서 언젠가 비슷한 걸 구현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통신망을 유지하는 대가로 몇 개의 통신기를 얻어 그중 하나를 사랑이에게 주었고, 덕분에 지구를 떠나왔음에도 언제든 네메시스 소프트의 업무를 할 수도, 사랑이와 잡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냥 통신기인데 리벤지보다 동화율이 높다니…….”
“따로 뭔가를 구현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그대로 가져오는 거니까.”
물론 다른 녀석들이 이런 짓을 했다간 내면세계에 무지막지한 부하가 걸릴 것이다. 한 사람의 의식은 생각보다 광활하고 무거운 것이기 때문.
그러니까 남들은 그렇다는 말이다.
“흠……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갑자기 낮게 깔리는 목소리.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섹스는 못해.”
“뭐, 뭐래!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내가 그런 거 때문에 다행이라고 하겠어!? 언제든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공동 대표로서 네메시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일도 할 수 있고!!”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의 모습에 웃는다.
“그러게.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동화율이 이렇게 높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서큐랜드에서 쌓인 데이터가 좀 있는데…….”
사랑이가 고개를 돌린 채 버벅일 때였다.
[한재연 님! 잠시 미궁에 가 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 급하게 보내야 할 통신이…….]나는 천장을 뚫고 들어오는 빛 덩어리를 보며 한숨 쉬었다.
내 내면세계라고 해도 그 안에 들어온 정신체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건 내면세계의 시간을 건드려 긴 시간 헤매게 하거나 이 안에서 상대를 해쳐 정신을 손상시키는 정도.
‘그마저도 통신기의 보호장치에 의해 차단되고 말이지.’
나는 내면세계에 벽을 비롯한 물체를 만들 수 있지만 외부의 존재는 그것을 파괴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그나마 저항이 가능한 건 내가 특별히 구축한 [통신 중계소]라는 건물 그 자체뿐.
이마저도 저들이 작정하면 얼마든지 부수고 나갈 수 있다.
그저 그걸 부수고 나가면 내 내면세계에 타격이 간다는 식으로 금지했을 뿐이지.
‘뭐, 아르데니아나 레드후크랑 수백억 킬로미터 정도 떨어트려 놨으니 나가 봐야 볼 수 있는 건 백색의 영역뿐이겠지만.’
적당히 생각을 정리하고 말한다.
“넓은 지혜 님. 계단을 이용해 주세요.”
[급해서…….]불쌍한 목소리를 내지만 어림없다.
“호기심에 그러시는 거 같은데, 반복되시면 접속 금지예요.”
정색하고 노려보자 빛 덩어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나저나 무슨 일입니까?”
[아! 맞아 지금 접속이……!]“30분 정도 있다 하죠. 바쁘니 방에 돌아가 있어요.”
[흑흑. 돈 내고도 이런 취급이라니…… 이것이 직장 내 갑질인가.]징징거리는 넓은 지혜를 돌려보낸다.
현재 [통신 중계소]는 총 3층짜리 건물로 층 하나하나의 규모가 커서 덩치로 비교하면 대형 백화점 정도. 현재는 리전과 캔딜러 성인에게 각각 한 층씩 양도하고 한 층은 내가 쓰고 있다.
“흐음. 여기 층 늘릴 수 있어?”
“가능하지.”
내 대답에 사랑이 잠시 고민하다 말한다.
“흠. 통신기 하나 만들어서 우리 네메시스 소프트도 사무실을 만들어 볼까? 직원도 상주시키고.”
“몽환 통신장치를 만든다고? 4문명 기술이 들어 있다고 하던데.”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대우주 최신 기술이 들어간 첨단 물품!
그러나 사랑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꼭 4문명에 들어서야 그쪽 기술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야. 충분한 예산과 기술자가 있으면 얼마든지 구현 가능하니까.”
“그럼 3문명하고 4문명 차이가 뭔데?”
“흠, 그건…….”
사랑이 잠시 말을 고를 때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이동한 엘리스가 말한다.
“지식의 한계.”
슉.
금발의 소녀가 허공을 부드럽게 날아온다. 정신체를 다루는 데 익숙해진 듯 매끄러운 움직임.
‘이거야 원. 층에 구분을 둬야겠군. 심검을 응용해 봐야 하나?’
쓰게 웃으면서도 묻는다.
“지식의 한계?”
내 물음에 녀석이 설명한다.
“정확히는 축적 한계선이라고 하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너희가 흔히 쓰는 스마트 펫의 전체적인 구조에 대해 배우는 건 학부생이라면, 석사는 오른 다리 하나를 가지고 논문을 쓸 수 있을 거야. 박사라면 오른 다리의 세 번째 발톱이 할 수 있는 기능들로 논문을 쓸 테고.”
뜬금없는 말에 의문을 표한다.
“갑자기 웬 학생?”
“학문을 깊이 파면 팔수록 다루는 범위가 협소해진다는 말이야. 스마트 펫의 털 하나가 가지는 기능과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100년 가까이 과학을 공부한 대가나 가능하다는 뜻이지.”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축적되는 지식과 기술은 점점 방대해지고 고도화한다.
스마트 펫 하나를 만들어도 그 원리를 한 명이 다 알 수가 없다. 누구는 디스플레이에 대한 기술을, 누구는 통신에 대한 기술만을 이해한다. 기계근육 전문가는 워프 터미널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탐지장치 전문가는 운동역학을 잘 모르는 것이다.
“삼대 속성. 그러니까 시·공·무(時·空·無) 관련 기술은 더더욱 그렇지. 가장 기본이 되는 수준에 도달하려 해도…… 100년 이상의 학습이 필요해.”
지식은 이미 있다.
리전이나 캔딜러 성인이나 그리 보안에 목숨 걸지 않는다. 유출은 언제든지 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
‘그러나 지식이 있다고 끝이 아니지.’
마이튜브만 뒤져도 천마신공이 튀어나오고 도서관에 가면 9클래스 주문에 대한 레퍼런스가, 블로그에 가도 양자역학에 대한 지식이 쌓여 있는 시대.
그러나 그렇다고 모두가 그걸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4문명의 기술을 유출시키는 거야 스파이 한둘만 박아 넣어도 가능한 일이지만 그게 유출된다고 그 기술을 활용할 수는 없다.
‘중세시대에 스마트 펫에 대한 기술은 가져가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지.’
지식이 있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해해도 그것을 실행할 인프라를 마련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그게 종의 한계라는 거야? 인간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인간의 뇌로 다룰 수 있는 기술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야. 어느 선을 넘어간 기술은 고도로 발전한 AI에 맡기거나…… 초월자가 습득해야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지.”
대우주에 제대로 된 과학 4문명이 리전과 캔딜러뿐인 게 괜한 이유가 아니다.
극도로 발전한 AI는 툭하면 리전으로 각성하니 더더욱 그러하다.
“어?”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한다.
“잠깐. 그럼 사랑이 너는 통신기를 어떻게 만든다는 거야? 기술 구현이 불가능하다는데? 인프라도 없고.”
“아, 어리석다, 어리석어.”
사랑이 혀를 쯧쯧 차며 말한다.
“리전하고 캔딜러 족을 고용하면 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