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420
열일하는 과금 기사 419화
* * *
“하…… 윽……!”
가쁜 호흡을 뱉어 낸다. 언제나 빈틈없던 표정이 엉망으로 무너지고 군살 하나 없이 늘씬한 허벅지가 건축용 강철 기둥을 휘어 버릴 정도의 힘으로 조여진다.
나는 온몸을 푸들푸들 떠는 사랑의 귓가에 속삭였다.
“언터쳐블 만들어 줄 거지?”
“이 미친, 너 진짜 도라이야? 내가 살다살다…… 하윽?!”
설득의 시간은 길었다. 사랑이 생각보다 완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근조차 없이 침대, 소파, 욕실, 현관, 창가를 거쳐 다시 침대까지 서른 시간의 ‘마라톤’을 겪고 나자.
사랑은 결국 내 진심 어린 마음에 설득되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비명과 함께 혼절한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준다. 설득이 끝났으니 굳이 다시 깨울 필요는 없었다.
위잉.
창가에 걸터앉자 자동으로 창문이 개방되며 바람 마법에 의해 통제된 외부 공기가 들어온다.
나는 실내의 후끈한 열기가 날아가는 걸 느끼며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좀 가라앉아 있군.’
오랜만에 돌아온 34지구의 분위기는 예전과 꽤 달랐다. 미궁의 존재는 온 우주를 평등하게 위기로 몰아넣었고 완벽에 가까운 치안을 자랑하던 34지구도 거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회 시스템이 튼튼해도 34지구를 벗어난 미궁 안에서까지 구성원 모두를 보호할 수는 없다.
처음엔 봉인 주문으로 전투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몽환의 미궁이 업데이트 되며 무마되었다.
일정 나이 이상의 모든 인류가 미궁에 들어가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그래도 34지구 정도면 우주에서도 으뜸가는 수준으로 안전한 곳이지만……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
장소와 환경에 따라 생명의 값어치는 다르게 매겨지기 마련이다.
후진국이나 하위 문명에서는 지도자가 죽는다고 가족 친지와 부하들 수천 명을 땅에 묻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나 선진국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스무 명 정도만 죽어도 온 나라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듯 말이다.
실제로 항상 활기차던 서울의 분위기가 슬픔과 아픔으로 가라앉아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시은이 그곳에서도 항상 행복해.]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광화문 광장에 미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고, 꽃다발들이 놓여 있다.
고인이 자주 가던 식당이나 커피숍, 살고 있던 빌딩, 놀이터에도 추모의 글과 꽃다발이 보인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추고서는 꽃다발이 놓인 곳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기거나, 꽃다발을 두고 기도하기도 한다.
그중 한 노부부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들은 작은 분식집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는데, 분식집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게에서 나와 인사한다.
“우리 손주가 여기 김밥하고,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노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식당 주인은 자신의 가게 앞에 놓인 꽃다발을 보고 애도를 표한다. 비록 남이지만 모두가 겪고 있는 이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함이리라.
미궁 사태로 죽은 34지구의 희생자는 9,713명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은 피해지.’
34지구의 인구가 100억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0.0001퍼센트도 안 되는 어지간한 복권 당첨에 비견되는 확률.
그러나 34지구 입장에서.
종말 프로젝트 이후 발생한 최악의 참사다.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녀석이 많군. 경찰도 널려 있고…….’
실제로 범죄율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고 한다. 삼신의 권능은 사회 유지에 최적화된 힘이지만 범죄가 일어나면 반드시 죄를 묻는 힘이지 범죄 자체를 벌어지지 않게 차단하는 힘이 아니니까.
범죄자들이 순수한 악인보다는 미궁 안에서의 투쟁으로 현실 감각에 맛이 가 실수한 경우가 많기에 더욱 그러하다.
“으으…….”
“일어났어?”
“……나쁜 놈. 변태. 돌아이.”
푹신한 침대에 누워 이불로 몸을 가린 사랑이가 힐난의 말을 퍼부었지만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은 상황.
그러나 그녀의 마음이 바뀌면 곤란하니 그녀의 옆에 누워 설득을 시작한다.
“업데이트 요청을 내가 했다고 공개해. 리벤지 매출의 절반을 책임지는 핵 과금러의 요청이니 사람들도 이해할 거야.”
“하지만…….”
“그리고 과금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면 되잖아?”
“과금만으론 얻을 수 없게 한다고? 올 마스터처럼?”
의아해 하는 사랑에게 지구로 오기까지 생각한 구상을 설명한다.
“그 이상이지. 그러니까…….”
* * *
리벤지에 새로운 업데이트가 적용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기자와 정치인들마저 그 내용을 살폈다. 돈독 오른 게임사였던 네메시스 소프트는 대한민국의 세수를 드라마틱하게 상승시킨 대기업이 되었고, 악독한 BM으로 악명이 자자하던 리벤지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온 우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세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리벤지의 업데이트는 산업 하나를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정도.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핫바디 : 신앙?
일세대붉은곰 : 신앙에, 신성에…… 헉. 언터쳐블 클래스? 신이 될 수 있다고?
소리 소문 없이 적용된 업데이트는 굳이 공지사항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시스템 UI에 새로운 아이콘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신앙]대상 : 없음
기도 : 0일
모든 플레이어에게 신앙 아이콘이 추가되었으며 [기도하기]를 누름으로써 기도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아이디를 입력해야만 했다.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당나귀는당근마니아 : 아니 근데…… 이거 효과나 혜택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냥 해당 아이디에 10분 동안 기도하면 끝이에요.
일성의노예 : 흠. 같은 아이디에 100일 동안 기도하면 신앙의 대상이 결정되고 해당 플레이어에게 기도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대요.
휙하고샤삭 : ? 아니 이게 무슨 혜택이에요. 100일이나 매일 특정 플레이어의 아이디를 쳐야 하는데 귓말 보내는 게 다라고?
세상은민초가지배한다 : 이것 봐…… 기도 하루 빼먹으면 신앙 초기화 미쳤다.
플레이어들은 새롭게 업데이트된 신앙 시스템을 보고 기막혀했다. 그야말로 하등 쓸모없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도하는’ 쪽에만 쓸모없다.
‘기도 받는’ 쪽에는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쿠콰콰광 : 모든 플레이어의 과반수가 한 플레이어를 신앙하게 되면…… 그 플레이어가 [신]이 되어 언터쳐블 클래스를 얻게 된데요.
뉴비에오 : 아니 이게 뭔 -_-……?
수많은 플레이어들, 나아가 각종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이 오간다.
수많은 의견과 격론이 있었지만 최종적인 결론은 항상 같았다.
스미스 : 불가능합니다.
신성력SSS등급성기사 : 되겠냐 이게?
처음 나왔을 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던 올 마스터조차도 굳이 말하자면 고작 8명을 설득하면 될 문제였다. 그 8명이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지 어쨌든 8명.
그런데 [모든 플레이어]의 [과반수]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하다니!
이는 길가다 설문 조사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매일 10분씩 100일이나 써야 하는데 하루 빼먹으면 초기화에 기도한 사람에게 아무런 혜택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모든]이라는 개념은 정말 모든 플레이어를 말함이다. 캐릭터만 만들고 접속을 안 하는 플레이어마저 포함된 수에서 절반 이상!
업데이트 내용을 확인한 모두가 어이없어했다.
딜을줄까나 : 아니 이럴 거면 왜 만들었어 ㅋㅋㅋㅋㅋㅋ 언터쳐블 클래스 절대 안 만들겠다는 소리 아닌가?
튀긴감자 : 미친ㅋㅋㅋㅋ 이게 말이 되냐고 어떻게 이딴 조건으로 플레이어 과반수를ㅋㅋㅋㅋㅋ
뛰뛰빵빵 : 영원히 안 나오지 이거. 심지어 기도하는 10분 동안 사냥도 상점 이용도 불가능하네.
딜을줄까나 : 좋게 생각하면 그 정도가 아니면 신이 될 수 없다는 거긴 한데 ㅋㅋㅋㅋㅋ 설정 장난이나 팬픽 쓸 때 쓰라고 만든 건가?
크다면 큰 업데이트였지만 여론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쁘지도 않다.
‘당연하지.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수많은 플레이어와 관련 커뮤니티가 언터쳐블 클래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지만, 그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일반인들은 새로운 업데이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기도 탭이 시스템 UI 구석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았을뿐더러 실질적으로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휘오오오–!
오랜만에 아르데니아에 들어와 암흑성의 길드 타워 옥상에 선다.
몰아치는 바람을 느끼며 속삭인다.
“언터쳐블…… 업데이트.”
소유율 : 71.1퍼센트.
활용 가능 : 49,112,331.
속삭임과 동시에 소유율과 활용 가능한 흥행력이 표시된다.
단 한순간에 49,112,331의 흥행력이 0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차올랐다. 이는 짐작하던 일이다. 올마스터 업데이트에 실패할 때에도, 황제급 펫 업데이트에 실패할 때에도 겪었던 일이니까.
문제는 그 텀이 너무나 짧았다는 점이다.
“주식이 71퍼센트인데 이렇게 빠르다고……?”
쎄한 느낌을 받으며 계산을 시작한다.
“현재 네메시스 소프트의 시가 총액이 약 5천 9백조 원이고…….”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계산을 이어 나간다.
“현재 내 활용 가능 포인트가 49,112,331포인트…….”
암산한다. 마법을 수련하다 보니 숫자 계산이 제법 빨라졌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
그리고 나온 결과에 멈칫한다.
“하모니!”
“네, 폐하.”
부름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하모니가 옆에 내려선다.
“수첩 하나만 줘 볼래?”
“여기 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수첩을 받아 내 계산을 종이에 적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리 내서 천천히 읽는다.
“일. 십. 백. 천. 만…….”
“……폐하?”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하모니가 의문을 표했지만 거기에 답할 상황이 아니다.
“십만, 백만, 천만, 억…….”
단위가 끝도 없이 올라간다.
“십억, 백억, 천억, 조…….”
“폐하. 괜찮으십니까?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
하모니의 말대로 손이 떨린다. 왜냐하면 조까지 왔는데도 숫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십조, 백조, 천조, 경…….”
경(京).
그 단위가 나왔다. 국가 예산급이라고 말하기도 미안한 단위다. 34지구에서도 이 단위로 국가 예산을 짜는 건 강철계와 연결된 대한민국뿐이니까.
그런데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십경, 백경, 천경…….”
운석을 가볍게 받아 내고 땅을 디디는 것으로 지진을 일으킬 육신이 덜덜 떨린다. 나는 메모장에 쓰여 있는 숫자를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59,873,455,460,803,214,400.
그리고 그 끝에는 이것이 붙는다.
원(₩).
“…….”
저벅.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길드 타워의 난간으로 향한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나는 항상 이렇게 높은 곳에서 땅을 내려다보곤 했다.
온갖 자연 환경, 도시의 모습, 그리고 그 안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이 차분히 정리되곤 했다.
“흠.”
그리고 그렇게 도시를 내려다보며 나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수련할까?”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
6,000경이 말이 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