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421
열일하는 과금 기사 420화
6,000경이 말이 되느냐고.
“문제가 있는 겁니까?”
“세상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문제가 있지.”
정확히 말하자면 돈으로 해결할 수는 있는데 그 단위가 말이 안 된다.
‘증가 폭이 납득이 안 가는 수준이란 말이지.’
업데이트에 고작(?) 120조 원이 들었을 뿐인 올 마스터와 달리 황제급 펫에 3,000조가 넘게 든 것이야 이해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황제급 스펙을 구현하는 것과 진짜 황제급 존재를 구현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하지만 경지도 아니고 스펙만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6,000경이라니?
‘6,000경 원.’
그야말로 미친 단위다. 우주에서도 부유하기로 유명한 34지구의 재산을 다 털어도 저거의 반이나 될까? 우주 제일에 가까운 성세를 자랑하는 드래고니안도 이 정도의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신급 존재가 자신의 힘을 소모해서, 어마어마한 역사와 운명을 집약시켜, 혹은 행성을 통째로 살 만한 재화를 소모해 만들어지는 초월병기를.
‘저기 끝부터 반대쪽 끝까지 주세요. 할부요? 당연히 일시불이죠.’
이런 식의 허세를 부리며 구매할 수 있는 돈.
“아니, 그럴 것 없이 게럴트가 저 정도면 우리가 초월병기 생산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네.”
가만히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하모니가 말한다.
“좌절하셨네요.”
“……좌절?”
너무나 낯선 단어에 깜짝 놀란다. 고개를 돌리니 하모니가 부드럽게 웃고 있다.
“들어 보지도 못한 말이라는 표정이시네요.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감정이랍니다.”
“좌절.”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내면에 집중하니 마음속에 있는 스트레스 블레이드가 서슬 퍼런 예기를 흩뿌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 앞으로 10억의 빚이 생겼다면 자살도 고려하는 게 사람이다.
6,000경 원이라는 숫자가 스트레스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좀 정리되면 던전에 가서 휘두르고 와야겠네.’
생각을 정리하는 내게 하모니가 물었다.
“포기하실 건가요?”
하모니의 잔잔한 목소리를 듣다 보니 터무니없는 단위에 흔들렸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포기 안 해.”
“물론이죠. 그게 바로 폐하인걸요.”
부드럽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나 역시 웃는다.
“이것 참 괜히 걱정시켰군.”
“후후.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폐하께서는 영원을 살아가실 분. 아무리 아득해 보이는 목표라도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말대로 시간은 많다. 아르데니아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아니던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수천조의 돈을 번 내가 긴 시간 동안 심지어 해적들에게 그랬듯 강탈과 점령까지 반복하면 어느 순간 6,000경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좀 즐기면서 사셔도 될 텐데.”
“……고마워, 하모니. 이게 참 천성이 이래서.”
털털하게 웃으며 생각한다.
그래, 답은 시간이다.
나 스스로를 단련하고 또 수행을 쌓아 가며……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돈을 모으면 된다.
안 쓰고 벌기만 하는데 돈이 안 모일 리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일시불이 어렵다고요?”
“천문학적인 금액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이제는 젊은 미모의 여성이 되어 버린 드래고니안의 원로이자 칸의 시녀장인 유리가 설명했다.
“재연 님에게 지급될 대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가 내 앞으로 자료를 제출한다.
1. 인자 적용 10억 게럴트.
2. 출산 100억 게럴트.
3. 성숙기 해츨링 1,000억 게럴트.
“총액으로 치면 4조 4400억 게럴트입니다.”
34지구 돈으로 치면 1경 3,320조 원.
최종 목표의 6,000분의 1이 들어왔을 뿐이지만 그렇다 해도 시작부터 경 단위가 들어왔다는 건 굉장한 희소식!
문제는 이게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돈이 없다고요?”
“당연합니다. 아무리 드래고니안이라도 이만한 돈을 현금으로 쌓아 두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드래고니아는 우주적인 패권 집단이고 당연히 예산과 게럴트는 생명의 피처럼 끝없이 흐르고 있는 상황.
때문일까? 유리가 차분히 설명한다.
“지급이 어렵다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누어 지급된다는 뜻이지요. 늦게 받는 대금은 연 8%의 이자가 붙으며…… 총 6개월 동안…….”
유리가 이런저런 자료를 넘기며 상황을 설명한다.
“즉시 받길 원하신다면 20%에서 50%의 금액을 현물로 지급할 수 있습니다.”
“현물이라.”
나직이 중얼거리며 생각한다.
‘역시 이렇게 되나.’
사실 이미 겪은 적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내가 아직 초월자이던 시절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우주 용병 일을 닥치는 대로 처리하자 내게 오는 임무가 없게 되었던 상황.
임무가 없던 건 당연히 아니다.
‘고객들의 돈이 마른 것이지.’
그들이 정말 빈털터리가 된 것은 아니다. 어디 돈만 재산이던가? 땅. 건물 같은 부동산도 재산이고 우주선, 기가스 등의 동산들도 재산이며 작위, 자격 등 무형의 권리들도 재산이 될 수 있다.
‘다만 그게 내게 가치가 없을 뿐이지.’
그리고 지금.
돈의 단위가 경(京)에 들어서자 전 우주에 위명이 쟁쟁한 드래고니아조차 일시적인 자금 경색에 빠진 것이다.
고작 1경이 이러할진대 6,000경이라면?
농담이 아니라 온 우주가 자금 경색에 시달리게 될지 모른다. 일정한 가치로 우주 공용 화폐로 작동하던 게럴트가 마치 코인처럼 열 배 스무 배 비싸질지도 모른다.
“……게 됩니다. 현물 중 초월병기의 경우 넘버링은 3개까지 가능하며, 양산형일 경우에는 최대 20개까지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홀로그램을 띄워 초월병기를 보여 주며 설명해 주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세세하게 상품 설명해 주는 은행원 같다.
“이 초월병기는 정령사라면 한 번만이라도 직접 보기를 원하는 대자연의 분노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전사형 초월자들이 손에 넣고자 죽음을 불사할 정도의 욕망을 불태웠던 붉은 새벽이고. 아, 양산형 중에도 유명한 게 있군요. 최근 수많은 생체력 수련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뇌호갑…….”
그녀의 설명을 손을 들어 올려 멈추게 한 후 대답한다.
“할부로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뭔가 묘하게 시무룩한 유리와 작별하고 34지구의 집, 그러니까 드래곤 스타로 돌아온다.
‘게럴트를 모으는 건 적당히 해야겠어.’
안 그래도 대우주 전체의 게럴트가 마르는 시기다. 내가 다 빨아들여서 그런 건 당연히 아니고 몬스터 사태를 맞이한 수많은 문명이 종의 운명을 걸고 초월병기를 제작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럴트는 초월병기의 핵심 재료.
우주 전체에서 소모가 많아지니 귀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금이나 계산은 가급적 마나 코인으로 하자. 영향력에서도 편의성에서도 그게 나으니까.’
물론 온 우주에서 마나 코인을 생산하면 과생산된 마나 코인으로 가치가 폭락하겠지만.
‘상관없다.’
그렇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나 코인이 쌓여 가치가 떨어질 때마다 아르데니아로 던져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기함할 일이지만 이는 소량이나마 과금력이 오르는 일이며.
그렇게 들어간 마나 코인은 캐시샵에서 다이아로 교환할 수 있다.
“게다가…… 어차피 돈만 모은다고 될 일도 아니지.”
네메시스의 주식 100%까지는 그저 돈만 있으면 되는 문제였다. 이미 가치가 정해진 주식을 그저 돈 주고 사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한 흥행력이 네메시스 소프트의, 리벤지의 전체 흥행력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다.
“에드워드. 시가총액.”
[현재 네메시스 소프트의 시가 총액은…… 대략 6,000조 원입니다.]즉, 100%의 흥행력이 6,000조라는 말!
그런데 필요한 흥행력은 얼마인가?
6,000경(京).
“만 배로군…….”
퍼센트로 치면 1,000,000%.
네메시스 소프트의 주가를 100만 퍼센트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6,000경을 버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된다…….’
엔간한 잡주도 1,000%나 오를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0,000%가 올랐다면 그건 우량주가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는 주식이라는 뜻.
그런데 10만도 아니고 100만 퍼센트?
심지어 100만 퍼센트나 올라야 하는 회사가 전 세계, 아니 어쩌면 전 우주 매출 1위에 빛날지도 모르는 초거대 기업이라면.
웅!
“아. 스트레스 블레이드 더 날카로워지기 전에 한 번 써야지…….”
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섬뜩한 예기를 갈무리하며 에드워드에게 말한다.
“현일 님한테 전화.”
[용병청장에게 연결하겠습니다.]통화는 바로 연결되었다.
[뭐냐?]“임무 좀 잡아 주세요.”
[아니 또? 무슨 황제가 임무를 이렇게 많이 받아…… 미안하지만 너한테 맞는 임무가 없어.]“왜요?”
[왜요는 뭘 왜요야 다들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하루에 3,000억씩 과금하는 녀석이 수십억짜리 임무를 할 수는 없을 거 아냐?]정확한 말이다. 황제 클래스씩이나 되는 내가 하급 초월자 따리만큼 받고 일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일 처리가 아무리 쉬워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똑같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흠. 그럼 이런 건 어떻습니까?”
[이런 거고 저런 거고 다들 돈이 없다고. 네가 동산도 부동산도 안 받는다는데 대금을 어떻게…… ]“해당 문명에서 중계기를 아스트랄계에 띄워서 리벤지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 비용을 50%에서 최대 95%까지 깎아 준다고요. 참고로 할인 비율은 접속 인원을 기준으로 정할 겁니다.”
사랑의 부탁을 받아 중계기를 깔았지만 이 드넓은 우주를 생각하면 광활한 모래사장에 바늘 몇 개 던져 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중계기를 생산하는 것도, 그걸 설치하러 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으니 앞으로도 그 수는 지지부진할 것이 뻔한 상황.
그러나 고객이 알아서 중계기를 제조, 아스트랄계에 설치한다면 어떨까?
[어떻게…… 뭐라고?]뜻밖의 말에 현일이 말을 멈추더니 잠시 고민한다.
“가능합니까?”
[완전히 미친 소리지만…… 가능할 것도 같군. 제발 와 달라고 사정하는 고객 중에는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우주 문명도 상당하니까.]“다행이네요. 그럼 그 조건으로 공지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잠시 말이 없던 현일이 기막히다는 듯 웃는다.
[하하. 정말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해 보는군. 황제 클래스의 영업이라니.]“잘 부탁드립니다.”
[용병청 실적도 오르는 일이니 잘해야지. 일정이 잡히면 연락하지.]통화를 종료한 후 생각을 정리한다.
‘일단은 접속자를 늘린다. 유저 수는 흥행의 기본 중 기본이니까.’
[폐하.]“잠깐 생각 좀 하고.”
손을 들어 자제시키자 에드워드가 난감한 목소리로 말한다.
“뭐?”
그의 말에 감각을 넓히자 과연 드래곤 스타 입구에 서 있는 사랑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 그 바쁜 사랑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찾아오다니?
“일단 열어 줘.”
[네, 폐하.]사랑이가 드래곤 스타에 들어온다. 처음은 아니지만,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다. 그녀는 리벤지 대표로서 너무나 바쁜 몸이었기에 주로 내가 찾아갔던 것이다.
“안녕.”
사랑이 접객실로 들어선다. 드물게도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차분한. 그러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뭐, 뭐지?’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언터쳐블 업데이트 때문에? 하지만 설득은 충분히…….’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사랑이 말한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
머릿속에서 번개가 친다.
‘98지구의 자식들 문제 때문인가? 아니면 스텔라? 하지만 이미 충분히 이야기했는데…… 아니면 결혼 이야기?’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을 때.
사랑이 말한다.
“언터쳐블 업데이트.”
차분한 목소리에 혼란스럽던 머리가 정리가 된다.
“……좀 억지스럽긴 했지?”
“그래. 게임을 위한 느낌도 아니고. 그저 흥미 때문이라기에 그 먼 거리를 찾아올 정도의 일은 도저히 아니거든. 네 차크라 수련을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여러모로 말이 안 돼.”
구구절절 맞는 소리에 한숨 쉰다. 걸릴 게 뻔한 짓을 하다니 언터쳐블 클래스에 어지간히 정신이 팔렸었나 보다.
“……결국 이런 날이 오네.”
“결국 이런 날이라.”
눈을 가늘게 뜨는 사랑의 모습에 손을 내민다.
“뭔데?”
의아해하면서도 내 손을 잡는다. 이럴 때 보면 덩치가 큰 강아지 같기도 하다.
“보여 줄 게 있어서.”
“보여 줄 거라니 그게 뭐…….”
그녀가 의문을 표하는 순간.
우린 내면세계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