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94
열일하는 과금 기사 93화
스무 장이 넘던 전설이.
“시발.”
몇 장의 전설이 되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 이게 이렇게 되네.”
물론 내게는 복구 신청이 있다. 달마다 수천만 원의 과금을 누가 몰래 결재해 주는 거나 다름없는 사기적인 특혜!
문제는 그 정도 특혜를 깔고 가도 신화급이 까마득하다는 데 있었다.
‘복구 신청은 한 달에 세 번. 복구 신청만으론 한 달에 합성을 한 번도 시도할 수 없다는 말이야. 농담이 아니라…… 신화급을 뽑는 데 현실 시간으로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제 보니 화점만 먹으면 신화급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생각한 난 어리석고 안이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그야말로 머릿속이 꽃밭이고 행복 회로만 잔뜩 돌리고 있던 것과 다름없었다.
‘인터넷 공략 때문에 착각했어.’
공략에서 보았던 [화점의 주인에겐 공짜나 다름없다.]는 말은 그저 그들 사이의 이야기일 뿐이다. 화점을 먹을 정도의 과금을 한 플레이어라면, 이미 어지간한 전설 카드는 다 있을 테고, 그저 잔뜩 쌓아두고 있는 전설급 중복 카드만 합성해도 신화급을 뽑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컬렉션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물론 컬렉션 효과가 쏠쏠하게 들어오긴 하지만 그만큼 신화급은 멀어지는 것이다.
“천천히 가야 하나.”
물론 년 단위의 기다림을 단축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금.
그렇다. 과금하면 된다. 다이아를 주고 소환권을 구매해 합성하면 기다림의 과정 없이 바로 신화급에 도전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수호령과 펫만 노릴 게 아니라 신화급 클래스도 노릴 수 있다!
“하…….”
그러니까, 그럴 돈이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일단 여기 정리부터 하고.”
결국 당장 신화급을 노리길 포기하고 움직인다.
“돈 벌러 가야겠다.”
그러나 그 다짐과는 다르게 나는 한동안 지구로 돌아가지 못했다. 일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바빴다. 하기야, 명 제국에서 받아들인 포로가 50만 명이나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다행히 한 번 기가 크게 꺾인 데다가 개개인의 무력은 우리 쪽이 훨씬 높은 편이었기에 통제에 실패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탕! 탕! 타탕! 탕!
“전 사로 사격 끝 조정간 안정.”
“조정간 안정!”
“약실 검사 후 일 사로부터 보고.”
“보고!”
성벽 위에서 기관총 사격이 이어진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에 영맥을 따라 이어진 대로를 걷던 상인과 와일드 보어로 북상하던 훈련병들이 감탄하거나 겁에 질리는 모습들이 보인다.
무슨 민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해야 할 훈련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게 낫다. 이 압도적인 사격 훈련은 인류제국의 힘을 더욱더 강하게 각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격은 성벽에서밖에 못해. 기관총은 성벽에서 벗어나면 그대로 소멸하니까.’
흔히 오브젝트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기관총 같은 경우에는 공성 오브젝트였다.
오브젝트는 사용자의 레벨이나 능력치와는 전혀 별개로 작동하는 물건을 뜻한다. 50렙 신화급 검사가 다루든 1레벨 초보가 다루든 동일한 데미지를 뽑아 내는 물건.
본래 게임에선 스펙이 낮은 길드원을 위한 물건이다. 스펙이 좀 떨어진다고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구경하게 만들기보다는 총알이라도 쏟아부어서 아군을 돕게 만드는 것인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
‘총알이 당연히 탄띠로 리젠이 되어야지 탄환으로 리젠되는 게 어디 있어!’
게다가 알아서 총알이 장전되던 게임과 달리 현실에는 아무런 보정이 없기에 기관총을 쏠 때마다 탄환을 장전하며 쏘아야 한다. 기관총을 저격총처럼 쏘는 코미디가 발생하게 된 이유였다.
“런닝맨 소위! 987점! 1등!”
우렁찬 발표에 주위에서 ‘오오.’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내 옆에 서 있던 헌터 중위가 혀를 내두른다.
“대단하군요. 경비대의 평균 점수가 500점이 안 넘는데.”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일 킬로미터 거리에서 저격총도 아니고 기관총으로 이 정도 점수라. 민첩 스텟의 힘인가?’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다른 녀석들의 점수는 형편없는 상황. 녀석이 기관총을 내려놓고 빠지자 다음 인원이 성벽에 늘어선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투두두! 타탕!
다음 사격이 시작되는 모습에 헌터를 칭찬했다.
“성적들이 훌륭하군. 개중 탁월한 인원도 있고. 잘 교육했어.”
“폐하께 배운 바를 전달했을 뿐입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하기야 중세 랜드에서 기관총을 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연히 내가 가르쳐야지.
“그래. 잘 부탁한다.”
“충성!”
새로운 수도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아이언 캐슬은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50만이나 되는 전쟁 포로들은 신병이 되어 훈련소에 입소하거나, 개척지의 노동자가 되거나 하는 식으로 각 성에 뿔뿔이 흩어졌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흡수되었다.
평범한 국가가 자국민의 몇 배가 넘는 난민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인류제국의 케이스는 대단히 특이한 상황.
그러나 인류제국에게 끊임없이 멧돼지 다리를 쏟아내는 와일드 보어 성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일반적인 국가 운영하고는 좀 다르지. 상시 치트를 치고 있는 셈이니.’
먹거리의 힘은 실로 위대해서 당연히 있어야 할 소요 사태도, 반란이나 시위도 억제했다.
심지어 전쟁에서 패해 복속된 명 제국의 국민들이 더 극렬하게 [인류제국 만세!]를 외치며 충성을 다짐하는 상황.
간혹 명 제국의 귀족 출신들이 반란을 모의하거나 수작질을 부리려 들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 사실을 신고하거나 본인들의 손으로 무산시켜 버렸다.
“이제야 살만해졌는데 개짓거리하지 마!”
“맞아! 이제 우리는 매일 고깃국을 먹는다고!”
사람이 너무 부족해 비명을 지르던 게 원 상황이었던 만큼 명 제국 사람들은 쉽게 인류제국에 녹아들었다. 그들은 집과 땅을 받았으며 그 숫자는 그대로 인류제국의 생산력이 되었다.
플레이어의 수도 점점 늘어간다.
지속적으로 늘려 온 길드의 수가 어느새 서른 개를 넘어서자 출석 보상, 길드 콘텐츠 등으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명예 코인을 수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명예 코인이 쌓이면?
길드 상점에서 [하급 소환 카드]를 구매할 수 있다.
새로운 플레이어는 다시 명예 코인을 벌고 그들은 길드에서 하급 소환 카드를 구매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플레이어가 생겨나고의 무한 반복.
‘덕분에 나 혼자 등골 빠지게 클래스 카드를 대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위험 요소는 있다.’
지금까지 클래스 카드는 온전히 내 통제하에 들어와 있었다. 플레이어를 [정예병]이라 불러 왔다는 건, 플레이어의 대부분이 군인이라는 뜻이니까.
그러나 길드가 늘어나며 늘어날수록 소환 카드를 통제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황권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화점은 특별한 착점이지만 고렙 존은 아니다.
앞으로 나올 몬스터들이 기본이 희귀급이고 영웅, 전설급이 수두룩할 텐데 플레이어의 수를 제한한다면 인류제국에는 미래가 없다.
수의 폭력이라는 건 대단히 유효한 수단이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압도적인 차이가 나면 다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몰려올 적의 숫자가 적다는 보장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시간이 지나간다.
가을이, 겨울이 지났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인류제국은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주변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플레이어의 수를 늘려나갔다.
‘순조롭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인류제국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시간들.
문제는 그렇겐 발전하는 게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거 위험한데…….”
바둑판을 바라보는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다. 온갖 종류의 말로 어지럽던 바둑판이 점점 단조로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전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역시…… 다른 화점들은 외곽까지 영역을 넓혔군.”
하급 몬스터로 구성된 외곽의 던전들이 모조리 정복당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던전에서는 이제 속성 몬스터가 쏟아지고 있을 테고, 그들이 착점을 차지한 만큼 스페셜 보스는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내부의 고위 몬스터들도 점점 추려지고 있어.”
꼼짝 않고 있는 신화급 몬스터, 망령룡과 다르게 그 주변의 몬스터들은 하루가 멀다고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있다. 어제는 사이클롭스의 영역이던 착점이 오늘은 드레이크의 영역이 되는 난장판.
그리고 그렇게 멸망할 몬스터는 멸망하고 득세할 몬스터는 득세하는 식으로 상황이 정리되면, 그 여파는 반드시 우리에게 몰아치게 될 것이다.
플라워 : 영주님, 보고입니다.
“……후.”
내면세계에서 빠져나와 채팅에 답변하자 플라워가 집무실에 들어온다.
“무슨 일이지?”
“적이 접근 중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게 패드를 넘긴다. 거기에는 [스크린 샷]으로 찍어 낸 수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군세의 모습이 있다.
“올 게 왔군.”
지금 우리 영역에 맞닿은 몬스터 세력은 총 세 종류다. 서쪽에서 영역을 넓혀 가는 상변화점의 썬더버드. 남쪽에서 세력을 키워 가고 있는 우변화점의 광신자 에드워드. 그리고 안쪽. 그러니까 고렙 존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와이번이나 그리핀 같은 비행 몬스터들.
종종 간을 보는 녀석들을 카심을 타고 가서 박살을 내 버리며 진출을 막았는데 드디어 작정하고 몰려오는 것이다.
“목표 지점은?”
“이곳, 아이언 캐슬입니다.”
“이것들 봐라?”
어이가 없어 웃는다. 인류제국의 국경에는 다른 약한 성이 많아 걱정했는데 굳이 신화급 성으로 와 준다는 말이 아닌가? 광신자 무리는 인간형 몬스터라 머리가 제법 굴러 간다고 들었는데 더없이 오만하고 멍청한 선택이다.
“플라워. 전군에 3급 경계 태세를 내린다. 최소 인원을 제외하고는 던전 공략을 멈추고 수성전을 준비시키도록.”
“네, 폐하.”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띠링!
패드에서 알람음이 울렸다.
“……뭐지?”
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간단한 보고와 함께 새로운 스크린샷이 떠 있다.
샛노랗게 빛나고 있는 썬더 엘리멘탈과 전격을 몸에 두른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오와 열을 맞춰 전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위를 위풍 당당히 날고 있는 것은.
“썬더버드.”
띠링!
“…….”
또다시 울리는 알람에 플라워와 내가 동시에 얼굴을 굳혔다.
페이지를 넘기자 간략한 보고와 함께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있는 수천 마리의 와이번이 보인다. 보고 내용을 보니 역시나 목적지는 아이언 캐슬이다.
“동시에 온다고?”
이게 만약 우연이라면 대단히 큰 기회이리라. 녀석들끼리 싸움을 붙이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겠지.
그러나 이게 우연일 리 있겠는가?
“플라워. 1급…… 아니, 전시 상황이다. 던전 공략을 중지하고 수성을 준비하라고 전해. 아이언 캐슬뿐이 아니라 모든 인원을 성안으로 받아들여. 성문을 닫는다.”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플라워가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나는 그녀가 나간 후 도시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시끄러운 경고 방송이 도시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하.”
한숨이 나온다. 왜냐하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화급 성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 상태로 저만한 수준의 몬스터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쪽에서 썬더버드가 오고 있다는 건 남쪽의 군세에도 광신자(狂信者) 에드워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일 테니까.
다만 공포를 느끼진 않는다.
“돈…… 진짜 많이 벌어야겠네.”
뭔가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로그아웃.”
거의 반년 만의 지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