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93
열일하는 과금 기사 92화
“어째 성이 싸다 싶더라니…….”
등골이 휜다, 진짜.
투덜거리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한다. 성 관리 탭에서 출입 조건을 설정하고 도시의 건물 중 일부를 열어 두었다.
‘영주성을 원래의 용도로 쓰는 건 불가능해. 답은 창고뿐인가.’
죄다 기본형에 단층인 다른 건물들과 달리 영주성, 정확히는 길드 타워만이 32층짜리로 설정된 건 괜한 이유가 아니다.
‘주로 길드원들의 하우징이지.’
그러나 여기에서는 길드 타워를 주거용으로 쓸 수가 없다. 이것들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야 창고로 쓰면 그만이지만 일반 건물들은 어쩐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땅을 파기도 쉽지 않을 텐데……. 건물이랑 바닥도 죄다 금속인 상황에 상하수도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난 시설 목록에서 욕실을 발견했다.
“욕실…… 이런 게 있었나?”
잠깐 로그아웃해 확인하니 전설 등급의 성부터 등장하는 시설이다.
‘딱 봐도 마지못해 추가한 요소다.’
물론 있을 법한 요소다. 게임 속 하우징에 변기를 굳이 만드는 미친놈은 드물어도 자기 캐릭터의 목욕 장면을 원하는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24시간 내내 자동 사냥을 돌리는 리벤지에 욕실은 무슨 욕실이란 말인가?
아마 원래 기획 의도에는 없는 것을 마지막에 대충 우겨넣은 모양이다. 하기야 그러니 욕실 정도로 간단한 개념이 전설 등급부터 있는 것이겠지.
‘가만.’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욕실이 있다는 건 상수도와 하수도가 있다는 뜻 아닌가?’
나는 시설을 설치했다.
드드드드!
아무것도 없던 최상층 한편에 격벽이 생겨난다. 가격은 30다이아. 그러니까 3,000원이다.
“……소리가 꽤 멀리까지 났어.”
즉, 변형된 것이 이 방 하나뿐이 아니라는 이야기!
쏴아아!
손잡이를 돌리니,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진다. 34층까지 상수도가 연결되었다는 뜻. 구매 한방에 성이 통째로 생겨나는 상황에서 따질 건 아니지만 참 현실성이라는 게 없는 장소다.
꼴꼴꼴.
배수구로 물이 빠져나간다. 하수도도 생겼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황당하네. 그래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해야겠지.”
물론 이걸로 도시의 모든 상·하수도를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천 원은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설치 개수가 천 번, 만 번을 넘어가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상·하수도가 마련된다면?
그렇다면 그건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다. 보기 좀 안 좋겠지만 옆에 구멍이라도 뚫어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 감시탑 설치하고. 5만 원밖에 안 하는 대형 분수도 당연히 설치하고.”
가장 필요하고 가성비 좋은 시설을 일괄적으로 설치했다.
리벤지의 대기업들처럼 방어 능력에 미친 듯이 돈을 쏟아부을 필요는 없었다. 아르데니아에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
결국, 다이아가 떨어졌다.
“아, 돈이 너무 없어서 뭘 할 수가 없네…….”
리벤지의 성주들은 세금으로 몇십만 다이아씩 걷는다는데 나는 벌써 10개가 넘는 성을 먹었음에도 벌이가 하나도 없다.
플레이어들이 거래소나 유료 서비스를 사용할 때마다 일정량의 세금을 거두는 게 리벤지의 시스템인데 아르데니아에는 과금 유저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 뭐 결국 내가 다 벌어야지.”
한숨 쉬고 있을 때였다.
플라워 : 폐하. 들어가겠습니다.
플라워가 채팅을 보내 왔다.
띵-
답장을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
언제나 차분한 플라워였지만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정경은 그녀에게도 압도적이었던지 잠시 멍하니 서 있다.
잠시 후, 뒤늦게 정신을 차린 플라워가 얼굴을 붉히고는 보고를 시작했다.
“대략적인 확인이 끝났습니다. 백만 대군이라곤 하지만 실제 인원은 그 절반 정도더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오십만이니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리벤지가 나타나기 직전 명의 총인구가 6,000만 정도였으니 인구의 1% 정도가 이곳까지 이동해 온 셈이다.
“그리고 병사와 전사의 수는 그 오분의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죽은 병사들의 제복을 걸치기만 한 수준이고 오랜 행군과 전투로 영양 상태도 좋지 않지요.”
“우리를 한 번에 잡아먹으려던 것도 나름대로 필사의 도박이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헌드레드 님께서 녀석들의 물자를 징발하셨는데 그 양이 상당하긴 해도 저만한 숫자라면 열흘도 버티기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굶주림을 못 버텨 명 제국의 잔당들이 멸망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쓸모없는 순서대로 칼받이로 써먹거나 떼어 놓고 왔겠지.
어쩌면 이미 그렇게 한 결과가 지금일지도 모른다. 50만이나 되는 저 엄청난 인원 속에…… 노안과 아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까.
“물은 먹였겠지?”
“대기하고 있던 광장에 분수가 생겨나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 다소의 소란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하기야 아무것도 없던 광장 바닥에서 대형 분수가 솟아났으니 포로들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래…… 그럼 일단 뭘 좀 먹여야겠군. 녀석들이 가지고 있던 식료품들은 어떤 종류지?”
“여기 목록입니다.”
나는 플라워에게 종이로 만든 서책을 받았다.
50만 명이 열흘을 먹을 수 있는 분량.
엄청난 양이었지만 대부분이 무나 배추 같은 채소였고 고구마도 감자도 아닌 정체불명의 뿌리 식물이 한가득이었다. 고기는 당연히 드물어 귀족들이나 먹을 정도. 그나마 곡물들이 꽤 있어서 다행이다.
“충분하겠군. 고기를 팍팍 넣어서 스튜를 끓여. 일단 배를 채워 준 후 병사, 기술자, 단순 노동자로 분류해. 마나 능력자들은 산산이 흩어서 정예병 사이에 섞어 두고. 그리고…….”
지시를 내린다.
다행히 플라워는 눈치가 빠르고 명민해 대략적인 방향성만 잡아 줘도 훌륭히 일 처리를 해 낸다.
‘업무가 너무 과중됐어. 인원을 더 뽑고 지구의 행정 업무 서적 같은 걸 옮겨 써 교과서로 만들어야겠다.’
물론 아직은 그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일이 복잡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 길드 아니, 인류제국의 황권은 너무나도 강력해 감히 그 통제에 반발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독재. 아니 독재 그 이상이다.’
지금 인류제국의 재정, 무력, 영토 모두가 황제인 내 손에 들려 있고 그것에 위협이 되는 세력조차 없다. 역사적으로도 이만한 권력을 가진 황제는 드물었으리라.
‘아, 무력.’
거기까지 생각이 진행되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플라워.”
“네, 폐하.”
“카심은 어떻지?”
내 말에 플라워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전혀 통제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강제로 명령을 내리면 적의를 드러내기까지 합니다.”
“…….”
지금까지 없던 반응에 고민에 빠진다. 이미 플레이어 중 펫을 쓰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뭔가 다른 펫들과 차이점이 있나?’
짐작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로, 격 차이 때문일 수 있어.’
플라워를 비롯한 간부들의 능력은 좋게 봐 줘도 희귀급에 불과하다. 아직 완성자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
전설급인 카심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나서 명령이 듣지 않는 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펫을 합성해서 신화급을 뽑는 것도 위험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 가설에는 빈틈이 있다.
‘소드 마스터인 헤이즈의 말도 안 들었어. 게다가…… 말을 안 들으면 안 듣는 거지 내 명령을 듣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던전에서 카심을 한 번에 소환했을 때 녀석들은 주인의 말은 들은 체 만 체하더니 내 명령에는 반응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설이 힘을 얻는다.
‘여전히 주인은 나이기에 벌어지는 일일 수 있어.’
카심은 다른 펫들과 약간 다른 케이스다. 다이아를 써서 구매한 것도, 명예 코인으로 산 것도 아닌 펫.
최초 내가 소유하고 있던 펫을 [복구 신청]으로 증식시킨 경우니 어쩌면 주인이 나라고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너는 가급적 소환하지 말도록 해. 혹여 돌발 행동을 보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네, 폐하.”
정중히 예를 표하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저런 물건을 난생처음 보았을 텐데 침착하게 이용하는 모습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뭐, 그럼.”
나는 플라워를 보낸 뒤 수호령 창을 열었다. 팡파레 소리와 함께 금색의 텍스트가 눈앞에 떠올랐다.
[화점을 정복하셨습니다! 신화 합성이 해금됩니다!] [이제부터 전설 카드(클래스, 수호령, 펫)를 합성해 신화 카드를 얻을 수 있습니다!]※화점의 길드 마스터 지위를 상실할 시 신화 카드를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에 제한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합성. 컬렉션에 등록되고 또다시 뽑게 된 동일 등급의 카드 4장을 합쳐 상위 카드를 얻어 내는 콘텐츠.
사실 나는 합성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이미 컬렉션에 등록한 저등급 카드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리벤지의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카드를 타인에게 넘길 수 있는 아르데니아에서는 카드가 부족하고 또 부족했기 때문이다.
“신화.”
그러나 네메시스가 유저 간담회 때 뿌린 전설 등급의 수호령과 펫. 그리고 한 달 세 번의 복구 신청은 내가 그 위의 영역을 노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번쩍!
여신상이 경악한 듯 눈을 크게 뜬다. 뽑기 때라면 심장이 떨릴 만한 광경이겠지만 지금은 정색하게 되는 광경.
“잠깐…… 아직 모르나? 아닌가?”
소환석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 황금빛은 영웅 등급부터 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소환석을 들어 올리면 그 정체가 드러나고 그 등급이 영웅급이면 금빛 속에서 보라색이 터져 나오고 전설급이면 더욱 환한 금빛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신화급은.
“아, 맞아. 꽝이구나.”
나는 검신 클래스를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카드가 검으로 바뀔 때부터 이미 오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구구구……!
-마음을 가라앉혀라. 극한의 격렬함은 가장 고요한 곳에서 시작되나니.
-검이 뽑혔을 때 너의 모든 것이 한 줄기 섬광이 되리라.
그럴싸한 문구. 나는 수호령을 확인했다,
사이클롭스 사무라이(수호령)
깨달은 예하탈(전설).
“꽝. 뭐, 그래도 각성 썬더버드보다는 훨씬 나은가.”
똑같은 전설급이어도 리벤지의 유저들에겐 엘리트 몬스터에 불과한 사이클롭스 사무라이보다는 각성 썬더버드가 훨씬 가치가 높았다. 애초에 합성 확률부터 다르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러나 마법사도 아니고 뇌속성 차크라를 각성하지도 못한 내게 번개의 힘보다는 근접 공격을 보조하는 수호령이 훨씬 가치 있다.
컬렉션 완성!
외눈의 절세검사(깨달은 예하탈) 근력+2
고대의 거인들(네버다이. 깨달은 예하탈)근력+5
기기괴괴(오우거. 트롤. 깨달은 예하탈) 근력+3
“오.”
사이클롭스 사무라이 한 장 얻어 낸 것만으로 근력이 10이나 올랐다. 척 봐도 이 예하탈이라는 녀석의 아이덴티티가 뭔지 알 만하다.
수호령이 변경되었습니다!
각성 썬더버드(전설) -> 깨달은 예하탈(전설)
나는 새로 장착한 수호령의 설명을 확인했다.
[깨달은 예하탈(전설)]끝없는 명상과 참오의 나날.
예하탈은 지나치다 여겼던 괴력과 어찌 다뤄야 할지 몰랐던 영성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5레벨 – 생명력+30.
10레벨 – 마나력+30. 근력 +30.
15레벨 – 근력+30.
20레벨 – 체력+30. 민첩+30. 근력 +30.
25레벨 – 민첩+30.
30레벨 – 마나+30. 마나 회복력+30. 생명력+30. 일섬(一閃).
35레벨 – 마나력+30.
40레벨 – 근력+40. 체력+40. 민첩+40. 극(極). 일섬(一閃).
“오. 스텟들이 참 마음에 든.”
뿌득!
문득 몸이 뒤틀린다.
“윽?”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린다. 당장이라도 온몸이 터질 것 같다.
뿌득! 뿌득! 뿌드득!
근육들이 풍선처럼 부푼다. 뒤틀리고 수축하였다가 팽창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스텟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난리의 원인을 알았다.
“근력이 700포인트를 넘겼어.”
999의 스텟은 흔히 한계 스텟이라고 한다. 어떤 종으로서의 한계가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가지는 한계.
쉽게 말해 드래곤이나 고대 거신족들도 900포인트 이상의 근력을 가진 경우가 잘 없다는 말이다. 900포인트 이상의 근력은 어떻게든 [초월]의 힘을 가져야만 돌파할 수 있고 1,000포인트 이상의 근력은 [권능]의 보조가 있어야만 도달 가능한 경지.
‘물론 이 모든 건 게임의 신. 게임 마스터님의 관점일 뿐이지만 말이야.’
어쨌든 중요한 건 700포인트의 근력이 가지는 의미다. 아무리 근력이 물리적인 힘이라지만 이 정도 선에 도달하면 그 자체로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
게임에서야 물리 데미지가 좀 늘고 말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
“후.”
근육이 진정된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쿵!
“앗.”
그만 천장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일어나기 위한 근육의 수축과 팽창이 몸을 위로 던져 버렸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마 남들이었다면 변한 육체 능력에 엄청나게 헤맸겠지만.
나는 시청의 공식 선별사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능력. [불가해한 신체 제어]의 소유자였다.
“죽이는군.”
온몸이 날아갈 것 같다. 지금이라면 굳이 내공 없어도 소드 마스터쯤은 그냥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
나는 후회했다.
“아, 펫 말고 수호령을 중심으로 받을걸.”
나는 복구 신청을 썬더버드가 아니라 카심을 중심으로 받아 두었다. 비상 사태 때 부하들에게 넘겨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카심을 잔뜩 쟁여 둔 것.
실제로 그 판단은 옳아서 수천 명 이상 더 죽었어야 할 던전 공략을 여섯 발의 신성 포효로 끝내 버릴 수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머지를 다 펫으로 가져온 건 실수였다.
신화급 수호령을 끼기만 한다면 난!
“……아냐. 신화급 펫도 엄청난 건 매한가지다.”
고개를 흔들어 유성룡을 떠올린다. 그렇다. 신화급 펫 정도 되면 그 정도 수준이다. 용종을 포함한 환상종들. 대우주에서도 귀족이라 불리는 신화급 존재들이 내 펫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합성한다!
구구구……!
-그것이 생물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저 거대한 괴물이 땅속을 헤엄쳐 다니다니!
[그레이트 어스 웜 흑산(전설)]합성한다.
-맹렬히 불타는 갈기가 실로 위엄차구나!
-감히 우리가 저 존재와 소통할 수 있을까?
[최상급 불꽃 정령 셀라이온(전설)]합성한다.
합성하고.
다시 합성한다.
그리고 그 결과.
“……그래, 이럴 줄 알고 있었어.”
나는 흥분하지 않기로 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알고 있었다고.”
신화 합성이 가능해졌다는 것이지 합성하면 무조건 신화가 나온다는 뜻이 아니다. 리벤지가 어떤 게임인데 멋대로 기대한단 말인가?
“아니, 후…….”
가만히 서 도시를 내려다본다.
스무 장이 넘던 전설이.
“시발.”
몇 장의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