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95
열일하는 과금 기사 94화
오랜만에 돌아온 숙소 침대에서 한참 동안 고민한다. 고민의 주제는 단 하나.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웹 소설 연재로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슬슬 한계에 이르렀다. 괜찮은 작품이 떨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명 제국이라든가, 신성 제국을 뒤지면 조금 더 찾아낼 수야 있겠지만…… 너무 위험해.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결과물이 없을 가능성도 크고.’
아르데니아의 핵심적인 대도시 대부분이 착점에 집중되어 있기에 벌어진 참사.
물론 지금 이대로도 수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도서출판 초록용용이입니다.]이북 정산서를 보내 드리오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인세가 들어왔다.
‘그래. 원래 웹 소설은 이 인세 때문에 쓴 거였지.’
[킬리언스 작가님 7월 정산서]이런저런 내용이 있었지만 중요한 건 맨 아래 있는 정산액이다.
정산액 : 4,182,000원
4백만 원.
초라하기까지 했던 초반 성적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물론 중세 시대 감성을 가지고 있는 아르데니아의 작품들은 온갖 매체로 단련된 현대의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극소수나마 매니악한 팬층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지막지한 물량을 쏟아 내니 글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 수익이 발생하게 되었다.
“…….”
그러나 미소는 피어오르지 않는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모자라다,’
고작 ‘먹고 살 만한 수익’ 정도로는 리벤지를 플레이할 수 없다. 수만, 아니 수십만의 국민을 이끄는 내 처지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4백만 원은 클래스 카드 4백 장을 뽑으면 끝나는 돈이 아닌가? 예전이었다면 충분히 만족했을 테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신화 성을 보유하고 제국을 선포한 지금, 그 정도 돈으로는 방어 건물조차 제대로 건설할 수 없었다.
“아, 그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후원자들 때문에 금전 감각이 완전 망가져 버렸어.”
그러나 상황은 이미 늦어, 커진 씀씀이를 다시 줄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지금 과금에 맞는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인가.”
첫 번째는 백과사전 같은 상황을 다시 노려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탕 대박.
정체불명의 후원자들은 뭔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거나 만드는 데 커다란 노력이 들어간 작품들을 선호하니 좀 위험하더라도 직접 움직여, 혹은 사람들을 풀어서 그런 작품들을 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신성제국에 있다는 [빛의 성서]나 황금마탑의 [마도전서]. 크리스털 연맹의 [세계수의 서], 혹은 [강철 불꽃 기술서] 등등.
당연히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겠지만 일단 구하기만 하면 백과사전 때와 마찬가지로 십수억. 어쩌면 그 이상을 후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원자들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짐작건대 그들은 예산에서 자유로운 초월자로 보였다. 작품이 마음에만 든다면 거침없이 거액의 돈을 써 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운에 기대는 방식이다.’
후원자들의 기준은 그저 내 짐작일 뿐이다. 만일 죽을 고생을 해서 강철 불꽃 기술서를 구하고 다시 긴 시간을 할애해 그것을 필사했는데 수백만 원 정도의 후원금이 끝이거나 아예 후원이 없다면 난 어디 가서 따질 수도 없다. 아무도 내게 뭔가를 약속한 적이 없으므로.
‘다른 방법도 있지.’
두 번째 방법은 현대에도 팔릴 만한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내가 쓰는 것은 아니고 문인들을 양성하는 방향이다.
던전을 돌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사치품도 병기도 쏟아져 온 국민 전체가 전투 민족이 되어 가고 있는 요즘이지만.
당연히 전투가 적성에 안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투쟁심이 모자라고 배틀 센스보다는 문학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분명 있겠지. 내가 그들을 후원하고 현대의 작법을 가르쳐 작품을 쓰게 한다면?
이건 확률이 아니다. 분명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문제는 너무 오래 걸린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셰익스피어를 납치. 웹 소설을 한 1만 권쯤 읽게 한다면 분명 셰익스피어는 현대인들에게도 먹힐 법한 웹 소설을 써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바로 될 리가 있겠는가? 현대의 웹 소설과 과거의 작품들은 그 근간을 이루는 세계관부터 달랐다.
“아! 머리 아프다, 정말!”
자리에서 일어난다. 개인 샤워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 로션을 발랐다. 아무리 머리가 아파도 움직여야 했다.
왜냐하면, 세 번째 방법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하는 스태프들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가는 내 등을 누군가 달려와 후려친다.
“야, 이놈아!”
퍽!
화끈한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하마터면 반격을 날릴 뻔했다는 걸 깨달은 난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돌렸다.
“……뭐지?”
최대한 자제한 질문이었음에도 절세미남, 성재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날 타박했다.
“뭐지? 뭐지이이이? 야, 스태프 분들 인사를 그렇게 받으면 어떻게 해? 촬영 얼마나 했다고 벌써 배우병 걸렸니?”
“……아.”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게 밝게 인사를 날렸던 스태프들이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아차…….’
내 실수였다. 아르데니아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부작용. 사람들이 눈만 마주쳐도 오체투지하고 고개만 끄덕여 줘도 황송해 하던 생활을 이어 나가다 보니 일반인의 태도를 잃어버렸다.
얼른 사과한다.
“아,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고.”
“아, 네에…….”
여전히 식은 답변이다. 하기야 반응을 안 한 게 아니라 고개를 까딱하고 지나쳤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휴! 신인들이 다 겪는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죄송! 제가 잘 교육할게요!”
환히 웃는 성재의 모습에 스태프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무안하게. 무슨 갑질을 한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괜찮아.”
애매해질 뻔한 분위기를 수습한 성재는 미소로 그들을 보내고 나를 식당으로 끌고 갔다,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오, 세연 누나. 블라우스 이쁘네요.”
“하인츠 형! 영상은 예쁘게 나왔어요?”
“사쿠라 씨! 어제 거인족 무시무시했어요. 하마터면 비명 지를 뻔!”
한 번 혼났기 때문인지 언제나 똑같은 성재의 행동이 다시 보인다. 탑 클래스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친절하고 살가운 행동. 놀랍게도 그는 촬영장 대부분의 사람과 친해 보였다.
물론 사람들하고 친한 게 과해서 사방에 염문을 뿌려 대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그가 인간관계에 능하다는 말이리라.
달깍.
음식을 담은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성재가 입을 연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니?”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태도가 하루아침에 그 모양이 돼? 조심 좀 해, 이 녀석아. 너도 이제 연예인이야. 이제 막 날개를 펼치려는 참인데 인성 논란 터지면 낙인이 박혀서 연예계 생활 내내 꼬리표처럼 달라붙는다고. 가뜩이나 넌 눈매가 사나워서 위험하거든! 정색만 하고 있어도 화난 것 같단 말이야!”
평소와 다른 엄한 목소리에서는 톱스타다운 관록이 묻어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라곤 하지만 그는 5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베테랑. 이쪽으로는 나와 경험치 자체가 다르다.
“미안.”
그걸 알고 있는 난 즉시 사과했다. 내가 황제인 건 아르데니아에서지 지구에서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되다니 내 잘못이 크다.
“아니, 나한테 미안할 일은 아닌데.”
“그리고 고맙다.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
사실 연기에 대한 욕심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히 ‘해 보니 생각보다 할 만하고 재미있는데?’라고 느끼는 정도.
그러나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매우 훌륭한 선택지다. 앞선 두 방법과 달리 아르데니아에 들를 필요조차 없는 세 번째 방법.
당연히 잃어버리거나 문제가 생기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알면 됐어. 그래도 인정은 잘하니 싹수가 있네.”
성재를 어깨를 으쓱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나 역시 배부르게 음식을 먹었다.
6성 호텔만큼은 아니어도 촬영장 식사 또한 매우 맛있는 편이다.
“그나저나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돈 걱정이지, 뭐.”
내 말에 성재가 웃는다.
“모든 현대인의 걱정이로구만. 내가 좀 빌려 줄까?”
순간 반색할 뻔했지만, 간신히 자제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필요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얼마가 필요한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딱 얼마가 필요한 그런 상황이 아니다. 쓰려고 한다면 정말 무한정하게 돈이 필요한 것.
어디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하는 게 아닌, 문자 그대로 끝도 없이 돈을 붓기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을 빌리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이다.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그냥……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벌이가 좋아질까 하는 거지.”
나는 접시를 들고 가 닭튀김을 더 받아왔다.
바사삭.
‘아…… 좋군.’
한동안 잊고 있었던 현대 요리의 맛.
황실에 취업한 요리사들도 제법 괜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한정적인 재료와 조미료의 한계로 성에 차는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짧은 기쁨을 느끼고 있는 내게 성재가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아니 그런데 사실 돈 문제라면 할 이유가 없잖아?”
뜻밖의 말에 닭튀김을 내려놓는다. 돈 이야기는 치킨만큼이나 경건하다.
“……어째서?”
“너 러닝 개런티로 계약했잖아. 배우 생활 40년 가까이 한 관록으로 보자면…….”
작은 그릇에 담아 온 우동을 호로록 마시며 성재가 웃는다.
“이 영화. 무조건 터질 테니까.”
“…….”
그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상 팀과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배우들을 단장하고 스턴트맨들이 합을 맞추고 있다. 마법사들이 몽환의 조각을 빚어 내 만든 괴수를 마찬가지로 마법사로 이루어진 조형 팀이 이리저리 주물러 모양을 만들고 열 종류도 넘는 카메라를 든 그립 팀이 촬영장을 뛰어다니며 더 좋은 각도를 찾고 있다.
이 수많은 사람. 하나같이 정도 이상의 능력자에 고위 능력자도 상당수다. 하물며 이들이 작업하는 장소는 지구도 아닌 이차원이고 그 안에서 사용할 물자들도 다 최고급품.
‘그러고 보면…… 얼마가 있어야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촬영 과정 전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곳의 관리자가 아닌 부품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엄청난 규모로 돈을 쓰고도 그 이상을 벌 수 있단 말인가?
“재연 씨! 왔어? 드디어 자네 마지막 촬영이야.”
앨런 감독이 나를 반긴다. 잠을 얼마나 안 잤는지 눈가가 퀭하고 안색이 창백한 상태. 그런 주제에 두 눈은 형형하니 보통 사람은 마주하는 즉시 압도될 정도다.
“그래요. 마지막입니다.”
“아! 시간이 너무 부족해. 으 빡빡하다. 몽환계 다 좋은데 시간제한은 진짜!”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대본을 던져 준다.
‘무슨 영화에서 쪽대본이야.’
쓰게 웃으며 대본을 살핀다. 마지막 장면은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인 도검이 자신의 고향별 행성, 그것도 자신이 황태자였던 제국 출신의 노예들을 구출하는 장면이다.
어지간한 제국보다도 강력한 세력, 우주 해적 바사라의 함대장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던 도검은 느닷없는 사건 때문에 인생이 꼬이게 된다.
대우주 최고의 학문 기관에 들어갈 정도의 인재. 병무와 그를 수행하는 궁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혜선과 얽히게 된 것이다.
거대한 폭풍에 휩쓸린 그는 본의 아니게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가게 된다.
신, 악마, 우주 괴수와 언네임드가 얽힌 아수라장.
그리고 영화가 종반부에 들어왔을 때, 도검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 번만 눈 감으면, 딱 한 번만 눈을 감으면 그토록 바라고 염원하던 함대장이 될 기회.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노예 수백 명을 우주 괴수들 사이에 내버리고 달아나야 한다.
“넌 누구야! 다 모르겠으니까 당장 꺼져!”
허름한 복장의 사내가 레이저 소총을 겨누며 위협한다.
“난…….”
나는 준비된 대사를 읊으려다 멈칫했다.
‘이게 맞나?’
도검이 제국과 그 신민(臣民)에 부채감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연기한 몇 개의 씬들에서도 그런 단서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 도검은 황제로서 살아 오지 않았다. 그의 근본은 황태자였으나 그가 살아 온 인생의 대부분은 무자비한 우주 해적.
비록 선을 지키며 살아 왔다고 해도 무도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수십 년을 살아온 내가 갑자기 감동적인 연설로 사람들을 휘어잡는다는 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
“뭐, 뭐냐! 뭘 그렇게 보는 거냐!”
조연 배우가 당황한 얼굴로 애드리브을 친다.
아마 속으로는 미친 듯이 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찍는 씬은 중간에 실수했다고 끊어 갈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키에에엑!”
산맥 여기저기에서 우주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언터쳐블을 감염시켜 하나하나가 완성자에 맞먹는 전투력을 지니게 된 괴물들.
그런 괴물들이 괴성을 지르고 있음에도 나는 달아나는 대신 수백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스스로도. 그리고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을 내 신민들이었다.
“따라 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누군데 따라오라고 하는 거야!”
기겁해 소리치는 그에게는 미안하다. 미리 말하고 허락을 받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내가 정면을 뚫을 테니 따라와.”
“아니, 당신이 대체 누구냐니까?”
“멈추지 말고 달려야 한다.”
“누구냐고!”
했던 말을 반복한다. 상황이 꼬여 버리니 장면에 맞든 아니든 그냥 준비된 대사밖에 내뱉지 못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는 모습.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는 숨을 들이켰다.
“봐라!”
인간을 초월한 성량에 공간이 쩌렁쩌렁 울린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얼어붙어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두두두두두!
“키야아악!”
이미 마법사에게 명령을 받은 괴물들이 달려오는 소리만이 주변에 가득한 상황. 나는 다시 소리쳤다.
“나를 봐라! 나는 너희의 왕도, 지도자도 아니다! 나는 너희를 보듬지도 보호하지도 않는다!”
“무, 무슨. 무슨 소리를.”
완전히 압도된 사람들을 등지고 검을 뽑아 든다. 그리고 검신으로 입을 가린 채 작게 중얼거렸다.
“냉기(冷氣). 현문(賢門). 개방(開放).”
쩌저저저적!
무지막지한 냉기가 피어오른다. 화점의 힘으로 발휘하는 요소는 아르데니아와 마찬가지로 수인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나는 그들을 다그쳤다.
황제로 태어났으나 황제로서 자라지 못한 사내의 난폭함이었다.
“나는 깃발이다!”
카드득!
전신이 얼음에 뒤덮인다. 무작위였던 얼음은 삽시간에 매끄러운 갑주의 형상을 취했다.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나는, 도검은 그들을 설득하지 않는다. 멸망한 제국의 황태자는 그렇게 살아 오지 않았다.
“그냥 따라와라!”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그 앞으로 새까맣게 몰려드는 괴물들!
“아, 모르겠다! 뛰어!”
“달려!”
“와아아아아!”
어찌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 중 누구보다 앞서 막아서는 모든 괴물을 쓸어 버렸다.
함성과 비명. 살점과 핏물.
‘끝이군.’
나는 검을 휘둘렀다.
기나긴 촬영이, 드디어 끝나가고 있었다.
* * *
“…….”
앨런 감독은 각본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전개를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바라보았다.
언제 도검이 황족으로서의 스스로를 드러낼 것인가?
그것은 앨런이 계속해서 신경 쓰고 있던 포인트였다. 과연 언제 밝혀야 할까? 언제 그것을 밝혀야 가장 극적일까? 그것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대본을 썼다.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자신이 황제라는 것을 밝히고, 제국을 그리워하는 신민들이 그를 따르는 순간을.
그러나 이 순간. 그는 깨달았다.
도검이 황족으로서의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는 방식은.
그가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건, 이건 정말…….”
영화계에서도 잔뼈가 굵은 그다. 이런 일은 많이 겪어 봤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혹은 전개나 대사에 불만이 있는 베테랑들이 종종 이런 짓을 했다.
재연이 한 것도 그 흔한 시도 중 하나일 뿐이다. 그가 대단히 복잡하거나 완벽한 대사를 뽑아 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그의 대사는 그가 써 놓은 원판보다 못한 상황.
그러나.
“……멋져.”
대단하거나 훌륭한 대사는 아니었다. 마치 날것처럼 투박한 대사. 문제는 그 대사를 읊어 내는 재연의 모습이었다.
그 아우라.
그 카리스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저 연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분위기가 그에겐 있었다.
“어제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대체 하루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앨런은 그저 홀린 듯 화면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