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greatest Russian crown prince of all time RAW novel - Chapter (6)
#006
근신이라는 벌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 집이 저택이라면 사정이 다른 법이니까.
물론, 나폴리에서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오는 동안 보았던 귀족들의 저택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10평 남짓한 원룸에서 자가격리를 몇 번이나 겪었던 나에겐 이건 대궐이었다.
거기에 나의 자가격리, 아니 근신 생활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아버님.”
“조심, 조심하거라. 넘어질라.”
나탈랴와 표트르 두 남매였다.
처음엔 날 겁내는 기색이 역력하던 아이들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완전히 달라졌다.
대체 뭘 하며 놀아주어야 하나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그저 안아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이제는 익숙하게 내 무릎 위에 앉는 두 아이를 끌어안자 따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바, 아바···.”
“아이고, 아기씨 침이···.”
“표트르 더러워.”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챙기는 내 모습에 사용인들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몸에 빙의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며 이리저리 머리를 싸매고 행동하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내가 알렉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꿈일 거야. 얼른 깨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계속해서 일까.
잠만 들면 대한민국의 박민수의 삶이 나왔다. 그리고 깨어나면 지금의 삶이 또 꿈같이 멀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까닥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아버님, 아버님. 그래서요. 제가···.”
그러나 무릎에 앉은 아이들의 온기를 느끼다 보면 이 삶이 꿈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생쥐를 키우는 것은 별로구나. 차라리 고양이나 강아지가 낫지 않을까?”
“정말요?”
정원에서 잡은 생쥐를 키우겠다는 나탈랴의 말에 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럴듯한 대답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가 겨우 열넷에 죽는다고?’
원 역사에서 알렉세이가 죽은 뒤 표트르 대제가 두 남매를 데려다 키웠다고 했다.
그러나 안 봐도 뻔했다.
그 노인네가 손주들에게 무슨 신경을 썼겠는가. 그리고 애정을 주는 이 하나 없는 삭막한 황실에서 두 아이가 어떻게 살았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걸 생각하니, 나탈랴와 표트르 두 아이에게 아비인 내가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난 지난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표트르 대제가 죽을 때까지 버텨서 차르가 되어보겠다던 내 목표를 조금씩 더 구체화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안 하면 모를까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기왕 황제가 될 거라면···.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제대로 남겨야지.’
지배층을 제외한 일반 러시아인들의 삶을 살펴보면 볼셰비키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난 것은 필연적이었다.
프랑스에서도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혁명 이후에도 프랑스의 귀족들은 꽤 많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러시아는 달랐다.
황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귀족 가문이 박멸당하다시피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몇백 년 후의 역사를 바꿔보겠다는 목표가 허황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 품에 안긴 두 아이를 보며 난 결심했다.
‘이 아이들이 그리고 이 녀석들의 아이들이 오래도록 존경받고 사랑받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보자고.’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길 며칠이 지났을까.
“차르께서 입궁을 허락하셨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명확히 한 후 멍하니 시간을 죽이고 있을 수 없어 그동안 준비한 계획이 이제 시작하려는 조짐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차르의 시종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시종의 말에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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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궁한 날 보자마자, 대제는 밑도 끝도 없이 명령을 툭 던졌다.
“키예프로 가거라.”
“네?”
“뭘 그리 놀라느냐?”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나서야 루테니아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내 말에 대한 대제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가 꺼낸 말이니 네가 해보거라. 왜, 자신이 없는 게냐.”
대제의 말에 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뇨, 언제 명을 내리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흐음. 그래?”
“네, 한데 그러자면 일단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느니 하는 상투적인 대답 대신 필요한 것부터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주변에 서있던 신료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대제의 반응은 달랐다.
“그래? 무어냐?”
“키킨을 용서해주십시오.”
내 말에 대제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 것은 멘시코프였다.
“황태자 전하, 키킨은…”
“감히 어딜 끼어드는 거지?”
그의 말을 끊어버리자 멘시코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어붙었다.
“네 말대로 난 황태자고, 지금 부황과 대화 중이지. 헌데 감히 네깟 게 뭐라고 여기에 끼어든단 말이냐.”
“황, 황태자 전하?”
내 반응에 멘시코프는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전의 황태자는 멘시코프를 영 어려워했다.
알렉세이가 두려워한 것은 신하들이 아니라 그 뒤의 대제였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제는 물론이고 멘시코프조차도 알렉세이가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이거야.’
덕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 모습에 멘시코프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나와 멘시코프의 실랑이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대제가 입을 열었다.
“키킨을 용서해달라?”
“네, 그가 필요합니다.”
“하오나 차르시여···.”
다시 멘시코프가 끼어들었다. 간절한 표정으로 대제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난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본래 대제의 충실한 신하였던 키킨이 알렉세이의 편에 서서 그의 해외 도피를 도왔던 것은 동갑내기인 멘시코프와의 불화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맞는 것 같았다.
“계속 끼어들 건가?”
다시 한번 그를 노려보며 은근히 묻자 결국 멘시코프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물러섰다.
“큰일을 하자면 믿을 만한 수족이 필요하지요.”
“흐음. 뭐···”
“그이가 저를 해하려는 역도들의 손길을 제대로 막지 못한 죄가 있다고는 하나, 저를 충심으로 보필하던 공로가 있지 않겠습니까?”
본래도 키킨을 아끼던 대제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그래, 그건 맞는 말이구나. 그간 벌을 받을 만큼 받았으니 용서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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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전하.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나를 보자마자 엎드려 눈물을 쏟는 키킨은 신을 찾으며 감사기도를 읊조렸다.
그 모습에 나조차도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더랬다.
“너 역시 무사해 다행이다.”
사실 그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감정이 들 줄은 몰랐다.
기억 속의 그가 이 몸에게 헌신적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인물에 대한 감정이 뭐 그리 특별했는가.
그러나 직접 눈으로 만나고 목소리를 들으니 달랐다.
여러 기억을 종합해보면 나보다 20살이나 많은 키킨은 한때 표트르 대제의 오른팔이었다.
특히 조선업에 종사하던 키킨은 함대 건설이 일생의 목표 중 하나였던 터라 더더욱 신임받던 이였다.
물론 전부 멘시코프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전까지의 일이었지만.
여하튼 멘시코프와의 불화로 대제에게서 멀어진 그는 황태자에게 희망을 걸었다.
남자다움의 대명사인 대제와 달리 유약하고, 군사나 경제보다는 문화에 관심이 많은 황태자는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특히나 황태자와 멘시코프의 사이가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아는 키킨은 그사이에 끼어들었다.
“괜찮습니다.”
“잘하고 계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제게 맡겨주십시오.”
최근 몇 년간 알렉세이의 시종을 자처하며,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였다.
기억에 따르면 그런 키킨에게 알렉세이는 꽤나 많이 의지했었던 것 같다.
‘아버지까지는 아니고 믿을 수 있는 큰형?’
그러나 나는 달랐다. 애초에 그의 접근이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톨스토이는 이런 일을 같이하자고 하기엔 너무 늙었다.
탐나는 인물인 로만초프는···
“황태자 전하께서 제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이라는 것을 이제 잘 압니다. 차르의 뒤를 잇기에 모자람 없는 분이시라는 것도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충성은 차르를 향해 있다고 대답했다.
결국 자신을 손에 넣고 싶으면 차르가 되라는 이야기였다.
‘뭐, 쉽게 마음이 돌아섰다면 그건 그거대로 찜찜했겠지.’
거기에 알렉세이 황태자의 최측근 시종임에도 납치와 암살 시도를 막지 못한 죄로 끌려간 키킨을 구해준다면 그의 마음을 사기 좋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생각보다 둘 사이가 각별했나 보네.’
이런저런 계산 속으로 그를 구해온 나는 생각지도 못한 감정에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낯선 세상에서 믿고 부릴 이가 하나 생겼다는 마음에서였다.
황태자라고는 하나, 허울뿐. 내 손에 있는 거라곤 눈앞의 키킨이라는 시종이 전부였다.
그리고 의외로 키킨은 나보다 더 내가 가진 황태자라는 지위와 신분을 더 잘 써먹는 이였다.
“명하신 대로 모힐라 아카데미 쪽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래?”
키킨이 돌아온 이후 나는 장님 귀머거리 신세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내가 알기 힘들었던 현재의 갖가지 정보를 물어다 주는 것은 물론, 밑도 끝도 없이 주어진 나의 명령도 능숙하게 구체화 되었다.
“그런데 정말 아기씨 두 분을 데리고 가실 생각입니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카자크들을 휘어잡기 위해 난 그들의 중심지로 들어가자고 결정했다.
반농경, 반유목민에 가깝다고는 하나 완전히 체계가 없는 민족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귀족이 있었고, 지도자로 선출된 이가 있었다.
헤트만이라고 불리는 카자크들의 지도자는 본래 군사 부분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봉기 이후 민족 지도자와 비슷한 위치가 되었다.
그리고 드네프르강 동쪽의 루테니아 지방이 러시아 제국의 손아귀에 떨어진 이후 헤트만은 차르가 임명하는 지위로 변경되었다.
루테니아 지방은 북쪽의 키예프 주와 남쪽의 아조프 주로 분할되어 있었고, 현재 카자크들의 헤트만인 이반 스코로파드스키는 톨스토이와 사돈지간이었다.
덕분에 이번에도 톨스토이의 도움을 받았다.
‘확실히 그 노인네를 잡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그리나 키예프주라는 명칭과 달리 내가 가려는 도시 키예프는 현재 국경선에 있는 변방 도시였다. 때문에 키킨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는 내 결정에 걱정을 늘어놓는 것이다.
“떼어놓고 싶지 않아.”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키예프는 생각보다 안전한 지역이었다.
‘일단 내가 머무르는 동안은 전투에 휩쓸릴 일이 없으니까.’
역사를 아는 나는 확신하는 일이었지만, 주변인들에게는 아니었다.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오랜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굳이 키예프까지···”
키킨을 왜 알렉세이가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명령을 받아 모힐라 아카데미에 자리까지 다 마련해 놓고도 키킨은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의 투덜거림에는 알렉세이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담겨있다.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 좋은 생각이라고 대답했었잖아.”
“그야 전하께서 직접 가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기씨들까지 데리고 가신다고는 안 하셨잖아요.”
말과 달리 키킨의 일 처리는 거침없었고, 난 얼마 지나지 않아 키예프로 떠날 수 있었다.
‘시작은 키예프에서부터.’
지금은 그 지위조차 위태위태한 황태자가 쫓기듯 변방인 키예프로 떠나는 모양새겠지만,
‘다시 돌아올 땐 절대 이렇지 않을 거야.’
누구보다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이 제국의 주인으로 되돌아올 거란 다짐과 함께 말이다.
모힐라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