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the Sacheon Dang's Swordsmaster-Rank Young Lord RAW novel - Chapter (142)
< 142화
이장로 당명신이 천마신교의 생존자들을 치료하고 해독해준 것은 당연히 그들을 통해 천마신교와 접선하기 위해서였다. 이쪽에 투항의 의사가 있음을 전하고, 또 가급적이면 서로가 어떠한 것들을 원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과연 자신들의 투항을 천마신교 측에서 진정성 있게 고려해 줄 것인가― 어쩌면 잘 꾸며진 함정으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 미진한 바가 있다 여기던 차에.
“이장로님.”
서장으로 넘어가던 길목을 지키고 있던 건정대 무인들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나포해 데려왔다. 모두가 양민으로 보이는 차림새였지만, 당명신은 그들 중 상당수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걸음걸이와 같은 사소한 동작에서도 무학을 익힌 태가 났고, 기감으로도 어느 정도 내공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가장 뛰어난 것은 무리를 이끄는 것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이미 한바탕 건정대와 손을 섞은 것처럼 보였다. 낭패한 기색으로 보아 내상을 입었거나 독에 당한 모양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 것으로 보이는 노인의 얼굴이 왠지 익숙하다 여기며, 당명신이 입을 열었다.
“이들은?”
“수상쩍은 자들이 저희의 감시를 피해 서장을 넘어가려 하기에 제압했습니다. 자신들을 상인이라고 주장하긴 했습니다만, 지닌 무공 실력도 그렇고 남녀노소가 골고루 섞인 것이 꼭 일가 전체가 대피하는 모양새 같아서 말입니다.”
“흐음.”
당명신이 보기에도 확실히 수상하긴 했다. 그저 상인이라기에는 무공 성취가 뛰어난 편인 자들이 몇 있는 듯했고, 혈육지간인 것처럼 서로 닮은 사람들이 많았다. 적어도 근방에서 살던 이들은 아닌 것 같았다. 숨길 수 없는 오랜 여행의 흔적이 옷차림이나 짐 따위에서 묻어나오기도 했고.
“귀하들께선 어디로 가던 길이오?”
“…서장으로 상행을 나선 것이라 수하 되는 분들께 이미 누차 말씀드렸소. 도리어 이쪽에서 묻고 싶소이다. 왜 통행을 제지한 것이오? 그것도 당가의 분들이 이곳 곤륜산 인근에서.”
노인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자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노인, 현양문주 남진순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때 성도에서 상단을 운영했었기에, 남진순은 한눈에 지금 말하고 있는 상대가 당가의 이장로 당명신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호칭도 그렇고, 다들 독과 암기를 쓰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 바였다. 조금만 더 가면 천마신교의 영역인 신강인데, 사천도 아닌 청해의 끝자락에서 하필이면 당가의 인물에게 붙잡히다니.
‘전투가 있었다. 그것도 꽤 격렬하게!’
남진순은 한쪽에 쌓인 시신들을 빠르게 살폈다. 흑색 무복을 입은 자들과 당가의 무복을 입은 자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정체불명의 세력과 당가 무인들이 격돌한 모양이었다. 검을 든 채 죽어있는 자들이 꽤 많았는데,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이 당가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사인(死因)이 암기나 독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상잔(相殘)한 것인가?’
왜― 라는 의문을 떠올릴 틈은 없었다. 당명신이 그를 알아보았기에.
“어째 낯이 익다 했더니. 귀하께선 현양상단의 상단주 아니신가.”
“분명 남가 성을 쓰셨지.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군. 그래, 가산을 모두 처분하고 흑사련에 투신했다고 들었는데.”
“현양상단이라면, 성도 인근에 있는 현양문의 전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양상단주였던 남진순은 숙부께서 말씀하신 대로 상단의 기반을 정리하고 그걸 공물로 바쳐 흑사련주로부터 무학을 하사받았습니다. 대력심법과 흑사검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그걸 바탕으로 문파를 개파했습니다. 현양문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현양촌입니다.”
당명신이 노인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몇 가지 떠올리고 말하자, 당지혁이 금세 그 내력을 줄줄이 읊었다. 한때 독왕대주였던 그는 무력대의 수장으로서 자연히 사천의 세력들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었다.
결국 남진순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소. 본인이 남진순이외다.”
“상인이라는 말이 썩 틀린 것은 아니었군. 상행을 나선 것은 아니었겠지만 말이오. 그럼, 현양문주 남진순― 귀하는 어쩐 일로 서장에 넘어가려 한 것이오? 마교와 곤륜이 방파 대전을 치르는 이 판국에.”
“그게 무슨…?”
당명신의 추궁에 도리어 남진순이 크게 놀라며 되물었다. 난데없이 방파 대전이라니?
청해, 그중에서도 특히 곤륜이 자리한 남서쪽의 대지는 몹시도 척박한 땅이다.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그럴듯한 마을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남진순 일가도 사천을 벗어난 뒤로는 줄곧 야숙을 하며 이동을 해왔으니 마교와 곤륜 간의 방파 대전은 처음 듣는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몰랐나 보군. 귀하들을 나포한 것은 그래서요. 보다시피 신강에서 이쪽 방면으로 내려오는 마교도들이 적지 않소. 사정을 모르는 자들이 괜히 서장으로 넘어가다 봉변을 치를 수 있겠지. 또한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서 신강으로 향하는 자들도 있을 수 있고.”
당명신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남진순을 바라봤다. 마치 그가 마교로 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현양문주 남진순”
당명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는 흑사련 소속이지. 분명 서장이나 신강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을 텐데. 무슨 일로 이 멀리까지 걸음 하였을까. 속히 실토하도록 하시오. 예의를 차리는 것은 여기까지이니.”
“아무래도 자극이 필요한 모양이군.”
당명신은 건정대 무인들 중 하나에게 눈짓했다. 뒤편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을 끄집어내라고. 지시를 받은 건정대 무인은 여인의 팔을 잡고 거칠게 끌어냈다.
“아, 아버지….”
속절없이 끌려나오는 여인. 아무래도 그녀는 남진순의 딸인 모양이었다. 당명신이 남진순 일가로 보이는 이들 중에서 굳이 그녀를 택한 이유가 있었다. 만삭(滿朔)은 아니지만 제법 배가 불러 있었던 것. 저 정도면 회임한지 대여섯 달쯤 되지 않았을까.
“이게 무슨 짓이냐, 이놈들!”
남진순의 입에서 노성이 터졌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미 산공독에 중독되어 내력이 좀처럼 모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대력심법으로 쌓은 진기를 운용할 수 없는 그는 그저 늙어 기력이 쇠한 노인일 뿐이었다.
당명신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네 손주의 목숨부터 없애주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독을 이용하면 태아만을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어차피 네놈들은 흑사련 소속이니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인다 하더라도 뒤탈 또한 없을 터.”
“어찌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남진순은 빠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당명신을 노려봤다. 가급적이면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는 쇠락했다고 하나 뿌리 깊은 정도 무가 출신 아닌가. 이곳에 온 것도 필시 천마신교와 방파 대전 중이라는 곤륜을 돕기 위해서겠지.
그렇담 자신의 둘째 사위 연우중이 사실은 천마신교의 인물이었다는 것― 그 사실 자체로 약점이 될 수 있었으니까.
하나 그렇다고 해서 딸과 손주를 못 본체할 수는 없었다. 비단 자신의 혈육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끝까지 머리를 굴리는군.”
이제 됐다― 그렇게 말하며 당명신이 손짓했다. 여인이 밴 아이를 죽이라는 의미였다. 현양문주 남진순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직감에 추궁을 했던 것인데, 입이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냥 다 죽일 참이었다. 원래 당명신은 인내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또한 현양문 따위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느냐 하는 생각에서였다.
당명신이 미련을 버리고, 건정대 무인이 독병을 꺼내 여인에게 먹이려 하자 남진순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만! 네놈들이 지금 누굴 해하려는 것인지 아느냐!”
“고작 남가의 핏줄이 뭐 대단하다고. 어서 죽여라.”
당명신이 실소를 흘리며 재차 손짓했다. 그러자 다시 움직이는 건정대 무인. 여인의 입을 벌리고 독병을 가져다 댄다. 여인은 이미 혈도가 제압되어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였다. 두려움에 찬 눈으로 기울어지려는 독병을 무력하게 쳐다만 보고 있을 뿐.
결국 남진순은 진실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가 잉태한 것은 천마(天魔)의 핏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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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명은 오랜만에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부서진 전각을 보수하고, 다시금 제갈가의 진법을 설치하고, 흑사련의 보고에서 얻은 재물들을 처분하여 금전으로 바꾸는 등의 일들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지만, 소가주의 신분인 당연명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할 일은 없었다.
덕분에 모친인 당지혜와, 당원진을 비롯한 봉위대, 경합 칠조의 친우들, 당미소 등을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흑사련과의 일전은 당가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당가 내부에는 원래 다양한 파벌들이 있었다. 전대 가주를 따르던 인물들, 장로원과 연이 닿아 있는 이들, 현 가주인 당지혜의 오래된 심복들, 그와는 무관하게 소가주 당연명을 따르는 이들. 또 제갈가까지.
그들 모두가 멸문을 각오하고, 서로 어깨를 맞대고 흑사련과 맞서 싸웠다. 전우라 불러도 무방한 사이가 된 자들이 많았다. 목숨을 구해주거나, 구해지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전투를 하는 것만이 싸움에 공헌하는 것은 아니었다. 야장들은 밤을 새워가며 암기를 만들어댔고, 의각에서도 전투에 쓰일 독을 계속 제조했다. 또한 제갈가의 진법이 있었기에 내원의 인물들이 안전할 수 있었고, 외원에서 무력대들이 안심하고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제갈가가 당가에 복속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이가 전혀 없었다. 목숨을 걸고 함께 가문을 수호한 것에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니 구성원 간의 결속력이 남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가주 당지혜는 어떠했나.
그녀는 화경의 무위를 드러내면서 가주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무려 사도육존의 합공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틴 것이다. 가솔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처음부터 전면에 나서 강기를 휘둘렀다. 그런 당지혜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자들은 이제 충심으로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소가주 당연명의 무위였다. 애초에 사천지회에서 화경에 이른 구환교검 상명일을 격살한 것이나, 그 자리에 모인 구름처럼 많은 사파 무인들을 모조리 살해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알고 보니 흑사련주 유길준마저 죽였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솔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천의 지존으로 일컬어지던 거인을 무너뜨린 것이, 약관도 되지 않은 자신들의 소가주라니!
조만간 세가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가문 전체에 퍼졌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터였다. 세가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 인정하고 불러줘야 하는 것이므로.
어쨌건 그러한 확신이 퍼지자, 그동안 흑사련에 억눌려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당가의 식솔들을 잠식하고 있던 패배감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자부심과 독심으로 새롭게 무장한 가솔들은 누가 독려하지 않아도 알아서 세가에 걸맞은 인물이 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 때문일까.
어느새 제갈영영도 제법 달라진 모습으로 수련에 매진하게 되는데…..
< 14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