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첫 방송(1)
다리가 후들거린다.
처음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는데 나중에 별소리를 다 질렀던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건 첫마디가 욕이 아니었음에 감사했다.
문득 인터넷에서 많이 봤던 댓글이 떠올랐다.
-내가 저상황이었으면 바로 욕 갈기고 연예계에서 퇴출됐음.
그래, 하마터면 하차할 뻔했다.
순간 방송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었으니까.
“진짜… 무서워….”
이 나이 먹고 이러고 있는 것도 수치스럽긴 한데, 나이고 뭐고 어려서부터 귀신의 집조차 한 번도 안 가본 내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예능감 테스트라며….
방송국놈들은 역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딱 맞았다.
방심하던 찰나에 당한 게 더 컸다.
배신감 든다, 진짜로.
“형…형!”
인터뷰장을 나서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는데 저 형이 이렇게 반가웠던 것도 처음이다.
진세현을 마주하자마자 풀썩 쓰러졌다.
“하아…하.”
같이 인터뷰를 들어갔었던 진세현은 한없이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어, 인터뷰 끝나고 왔어요?”
“…흐어. 네네….”
“왜 이렇게 창백하게 질려있지? 괜찮나?”
나만, 나만 공포 테스트였냐고.
예능감이라며. 왜 나만.
“안…안 무서웠어요?”
억울해지려던 순간, 진세현이 입을 열었다.
“아, 그거.”
아, 그거라니. 저 담담한 반응은 대체 뭘까.
진세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단호하게 말을 뱉었다.
“아, 그래서 놀란 거구나. 저는 귀신을 안 믿어서 안 무섭던데. 놀래키느라 열심이신데, 리액션을 확실히 해드려야죠.”
“아.”
“열심히 하고 왔어요.”
뿌듯한 저 표정.
뭔가 진짜 놀라서 리얼한 리액션을 가감 없이 쏟아붓고 온 내가 부끄러워졌다.
원래도 저런 성격이었던 것 같긴 한데, 진세현은 오히려 식은땀을 흘리는 내가 더 신기하다는 듯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그걸로는 내 파리한 안색이 진정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잠시 고민하던 진세현은 입을 열었다.
“제가 별로 안 무서워하는 방법 알려드릴 수 있는데.”
어, 그거 나쁘지 않다.
방금 전의 내 사실적인 반응은 방송국 인간들의 예능감 테스트 희생양이라 치고… 분량도 나왔으니 나쁠 건 없는데.
뭔가 언젠가 한 번 더 이런 곳에 나를 밀어넣을 듯한 서늘한 직감이 들어서 말이다.
“뭔데요?”
구미가 당겼다.
“과학적으로 귀신은 존재할 수가 없어요.”
“…….”
“질량이 없는데 어떻게 물건을 움직여요.”
…물론 이런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하나도 안 무섭죠?”
역시 이과는 좀 무서웠다.
* * *
스타더스트 데뷔 프로젝트.
이영채 피디로서도 이번 프로그램은 분기점 중 하나였다.
더블즈 엔터와의 통큰 합작. 반드시 스타를 탄생시켜야 하는 의무와 압박감이 있었다.
그간 각종 오디션 프로를 진행하면서 욕이란 욕은 다 주워먹었지만, 그 프로그램들이 이영채 피디를 이 자리에 있게 했다.
괜찮은 스타가 있다면 발굴해 내는 것.
이영채 피디는 오늘도 편집 영상을 스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야, 이번 이벤트 리액션 반응이야?”
“네. 은근 괜찮은 그림들 좀 뽑혔던데요.”
애당초 예능감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이는 애들로만 인터뷰를 구성했다.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당연히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진짜 대놓고 무서워하는 애들, 카메라도 잊고 욕을 내지르는 바람에 삐-처리가 된 애들.
“아, 이것도 재밌겠네.”
“그러게요. 표정이 리얼하니까 그림이 사네요.”
그뿐만 아니라, 한없이 당당하게 귀신 분장한 사람을 내려다보며 고찰에 잠긴….
진세현 같은 케이스도 있었다.
‘흠. 안녕하세요. 아. 놀라야 하는구나. 으아아악! 악!’
본인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놀랐다고 생각하는 저 뻔뻔한 표정이 가장 웃겼다.
이영채 피디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은데. 좀 더 화끈한 애들 없어?”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다. 그림이 겹치는 애들도 있었고 임팩트가 부족한 연습생들이 대다수였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이영채 피디가 밀고 싶었던 얼굴들은 없었다.
‘첫 촬영 때 괜찮았던 애들은 없나?’
이미 이영채 피디의 마음에 들었던 연습생들이 몇몇 있었다.
화려한 퍼포먼스로 잘만 하면 최종 멤버에 들 것 같은 케빈, 이 경우는 반응이 너무 노잼이라 뺐고.
서하임은 나쁘지 않았는데 텐션이 너무 높아 뺄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열은 좀….”
얘 독특한 캐릭터네, 진짜.
저 정도면 방송용 리액션이라고 욕먹는다.
본인은 진짜 리액션이었던 것 같지만.
괜찮은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 한참 동안 모니터링하던 순간.
이영채 피디의 시선이 한 사람의 영상 앞에서 멈췄다.
아직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이었다.
생글생글 화면을 향해 웃고 있는 앳된 얼굴의 연습생.
비주얼도 그렇고, 실력까지도 첫 턴부터 이영채 피디를 만족시켰던 시그널송의 센터였다.
“아, 얘가. 그 맴서한?”
급기야 성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이영채 피디의 한마디에 막내 작가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맞을걸요!”
“근데 얘는 말을 되게 진지하게 하드만. 내 조카 놈 보는 거 같아.”
“조카가 몇 살인데요?”
“스물다섯.”
쯧.
이영채 피디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생긴 건 누가 봐도 풋풋한 막내처럼 생겼으면서 말하는 거나 행동만 봐도 인생 2회차 마냥 진중한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별로 기대는 안 됐다. 매미 소리는 너무 의외라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웃음을 줄 만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예능감 테스트 말고 차라리 개인기를 시키자니까.”
“그래도 촬영팀 반응 괜찮던데요?”
“무슨 반응?”
“그… 영상 반응?”
“그래? 반응은 별로 재미없을 거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이영채 피디는 이내 제 눈을 의심했다.
‘아니…아니…진짜 아니…아. 왜 저한테 오세요….’
바르르.
벽에 붙어서 머리를 박고 떨고 있는 저 햄스터는 자신이 무대에서 봤던 그 얼굴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 당차고 당돌하던 표정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저의 장점은 물러서지 않는 당돌함, 그리고 패기. 마지막으로 자신감입니다.
‘아…아아 제발…. 살려주세요….’
‘히히히히히!’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제 모든 매력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저것도 나름 매력이긴 한데….”
‘제가 밥, 밥 사드릴게요! 하이고, 이게 아닌가… 으악! 오지 마세요!’
‘잘, 잘못했습니다…. 죄송해요!’
여기서 밥은 왜 나오는데?
한국인의 정서라 이건가.
일단 귀신이어도 밥부터 먹이고 보는 저 멘트가 황당했다.
문제는 저 말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바들바들거리는 표정이 감상 포인트였다.
이영채 피디는 다급히 영상을 중지시키고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얘 그 친구 맞아?”
뻔뻔하게 매미 소리를 읊었던 그 연습생은 어디로 가고.
이영채 피디가 정확히 원했던 반응이 카메라에 담겨있었다.
막내 작가는 이영채 피디의 눈치를 살피며 두 눈을 굴렸다.
“아, 조금 별로신가요?”
크흡.
그 와중에도 이영채 피디는 웃음을 참으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럴 리가.”
그의 짧은 감상은 이랬다.
“하, 얘 진짜 골 때리네.”
* * *
음방 촬영, 예능감 테스트에 이어서 팀별 자율 연습 시간까지.
하루에 모자랄 정도의 스케줄을 끝낸 후에야 숙소에 복귀했다.
사방에서 곡소리가 울려퍼졌다.
물론 나는 다른 의미에서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아… 진짜.”
아까부터 저 침대맡이 거슬린다.
깜깜해서 보이질 않아. 원래 그런 게 가장 무서운 법이었다.
무서운 거 보면 진짜 잠 못 자는데.
돌아버리겠네, 정말.
“으으.”
“서한아.”
“네?”
불안해하던 찰나에 하준서가 말을 걸어왔다. 매일 과다량의 카페인을 섭취해서인지 같은 팀원 중에서도 가장 늦은 시간에 잠이 드는 편이었다.
빼꼼-
하준서의 똘망똘망한 눈이 위층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 좋은데.
“형, 그 각도 좀….”
“응? 내 각도가 왜?”
“겁나 무서워요.”
찰랑찰랑.
하준서의 짧은 앞머리가 내 위에서 왔다갔다 할 때마다 어, 쫌 무섭다고!
하준서는 내 말을 뒤늦게 이해하고선 깔깔 웃어댔다.
“아, 맞다. 세현이한테 들었어. 너도 인터뷰했다며.”
“…그렇죠.”
“솔직히 이중에서 놀란 사람?”
하준서의 한마디에 어둠 속에서 서하임이 스윽 손을 들었다.
“저요!”
자는 줄 알았더니 깨어있었던 모양이었다.
서하임은 몸을 뒤척이며 말을 얹었다.
“저 진짜 놀라서 그 자리에서 오열했어요.”
“서한이는?”
“저는 놀라긴 했는데….”
그래도 내 정도 반응이면 서하임처럼 호들갑을 떤 수준은 아니지 않나.
나는 분명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 정도로는 안 놀랐던 것 같아요.”
“흠…?”
말이 끝나자마자 진세현과 눈이 마주쳤다.
뭔가 의문이 많이 담긴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뭐야, 그 반응.
진세현은 머리를 잠시 긁적이더니 다시 이불을 덮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하준서는 다른 게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일 첫방이지?”
“…!”
“허억. 그러네요?”
“아, 대박.”
숙소 안에 모두를 주목하게 할 만한 반응이었다. 다들 쏟아지는 연습에 매진하고 있던 터라 알고는 있었어도 정신없이 넘어가던 중이었다.
첫 방송. 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리 찾아오니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준서의 한마디에 잠이 싹 달아났다.
“첫 방송 어떻게 나오려나.”
“저 이상한 말한 건 없겠져?”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뻔했다. 사실상 첫 이미지가 결정되는 날이다.
어떤 식으로 캐릭터가 잡힐지, 분량은 얼마나 뽑힐지. 첫 번째 순위발표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저마다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 굴리고 있을 터였다.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저 지난 생보단 더 괜찮은 길을 달리고 있기를.
그렇게 빌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 방송이나 같이 보자.”
하준서가 불쑥 건넨 한마디는 상념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좋죠.”
“저도요!”
눈이 좀처럼 감기질 않는 밤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