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용이나 도마뱀이나 다섯 살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 (2)
용의 허리로 가는 여정은 의외로 조용했다. 이런 침묵이 낯설어서 내가 괜히 팔을 벅벅 긁고 싶어질 정도였다.
다섯 살이 두 명에, 기어코 숨어든 도적도 두 명인데 이렇게 조용하다고?
타이머스가 준비한 마차를 타고, 항구에 도착한 뒤 배를 탈 때까지도 대화라고 할 만한 게 오가지 않았다. 어색해서 내가 먼저 달리아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달리아도 받아주지 않았다. 피핀은 마수도감에 빠져 침묵했고, 코카는…….
“지금 공작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실지 상상도 안 가요.”
이런 이상한 말만 반복해서, 말 걸기를 포기했다.
“은둔자의 땅이 보일 때까지 항해를 한 다음엔, 용의 허리에서 마중이 올 겁니다.”
무뚝뚝한 선장의 말을 따라 바닷길을 가로질렀다. 이때는 좀 덜 심심했다. 피핀이 계속 멀미를 하면서 우는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피핀을 다독여주는 척 시간을 때우면 좀 덜 심심했다.
이전의 마수 토벌 때와는 가는 길이 달라, 항해에만 며칠이 더 소요됐다. 밤이 되면 밤하늘에 ‘어둡다’는 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별빛이 쏟아졌는데, 감상할 여유가 있는 건 나뿐인 듯했다.
넉넉히 빈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별이 찰랑거리는 하늘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이러다 세계를 구할 것만 같다.
사명감 같은 건 없고, 정의로운 사람이 될 생각도 없으며, 비교적 정상적이었던 윤리관도 애써 바꿔보려 노력하고 있다. 원래의 나였다면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는 모진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몸이 더 고생했던 게 사실이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데미안을 죽임으로써 나와 달리아가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 데미안의 보호자인 테네리페와 아는 사이인데도 말이다. 어찌 보면 이건 배신이다.
이렇게 사악한 나. 데미안을 없애면 결론적으로 세계를 구하는 꼴이 된다.
이게 맞나?
‘결과가 정의로우니 오히려 불편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 하나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이건 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분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하늘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소이 블렛이었다.
“공작님이 생각하는 ‘평범’은 뭔데요? 공작령의 대부분은 농경지죠. 농사라도 짓고 싶으신가요?”
“농사를 지으며 마음에 평화가 온다면 농사도 좋지……. 이건 아냐……. 이제 와서 도망칠 수도 없게 됐지만.”
소이는 내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나와 같은 자세로 웅크려 앉았다. 이제 궁상맞은 사람이 둘이다.
“달리아와 스위트피를 돌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
“둘 다 잠들었어요.”
“좋겠다…….”
“부러우면 공작님도 들어가서 주무세요.”
“잠이 안 와……. 너나 들어가.”
“저도 잠이 안 와요…….”
나와 소이는 모종의 동료 의식을 느끼며 다시 침묵했다.
“세계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그러니까 시체포식자를 잡는 데 성공한다면 말이야. 넌 뭘 하고 싶어?”
“뭘 하고 싶은 건 없어요. 뭘 더 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는 거죠. 돈을 열심히 벌어서 백작가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날씨가 쌀쌀하지만 분쟁이 없는 북쪽 변두리 마을을 골라 스위트피와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아갈 거예요.”
“돈이라면 나한테서 엄청 뜯어가지 않았나? 그걸로 부족할 리가 없는데?”
“귀족 영애가 살아가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해요. 백작가에서는 우리를 지원해주지 않죠. 억지로 얻은 양녀니까요. 오히려 저희가 매번 상납금을 바쳐야 해요. 거둬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공작님이 들어도 이상하죠? 하지만 백작령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예요. 생계 유지비가 남들의 배는 들어가니, 제가 수전노처럼 살아가는 거라고요.”
“그래서 이번 일도 그렇게 악착같이 비용을 받아 가는군그래.”
“일이 고달프면 추가 비용도 청구할 거예요.”
“지독하긴.”
소이는 얼마를 청구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알려줬는데, 금액이 장난 아니었다.
“너는 나중에 고리대금업자를 하면 딱 어울리겠다.”
“칭찬 감사합니다.”
“이걸 칭찬으로 듣는 것부터가……. 떡잎이 시퍼렇다고.”
의미 없는 대화지만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혀 크게 반짝이는 별을 손으로 덧그리며 말했다.
“공작성에, 저런 별 모양 전등을 달 거야.”
“달리아 아가씨를 위해서요?”
“아니? 날 위해서.”
“예?”
“쓸데없이 밝은 전등이 갖고 싶어. 한참 고민했거든. 나한테 필요한 쓸데없는 물건.”
“필요한데 쓸데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나한텐 중요한 일이야. 만일 전등을 다 달고, 기념으로 파티를 열게 된다면 너희 자매도 초대할게. 와서 달리아와 놀아줘.”
“물론이죠. 그때는 무료로 가드릴게요.”
나와 소이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좀 더 늦은 시각에 돌아갔다.
옷을 갈아입고 침상에 눕자, 문 앞에서 피핀이 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히 괴팍한 자장가였다.
[크크크……. 하하하하하…….]자장가에 코러스가 붙었다. 나는 라기아를 잡고 흔들었다.
“너까지 왜 그래? 이러다 불면증이 생기겠어. 피핀은 하루 종일 웩웩거리지, 너는 밑도 끝도 없이 웃고 있지.”
[우스운 일이 일어난 걸 어쩌겠어! 이거 내일이 기대되는걸.]“너라도 내일을 기대해서 다행이다.”
라기아를 괴롭히던 것도 잠시. 긴 항해에 지쳐 있었는지, 수마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에,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지난밤 불면증이 어쩌고 걱정하던 게 무색하게, 늦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그런데 바깥이 웬일로 소란스러웠다. 어선은 아니지만, 선원들은 심심풀이로 낚시를 하는 듯했는데, 마수라도 잡아 올린 모양이었다.
구경이나 해야겠다 싶어 문을 열고 나왔는데, 피핀이 나를 가로막았다.
“나으리. 괜찮으세요?”
“내가 할 말인데.”
며칠간 뱃멀미를 겪었던 피핀의 얼굴은 창백했다. 당장 픽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었다.
“너 여기서 죽으면 안 돼. 네가 죽으면 누가 날 지켜?”
“저기 공작님, 저도 있습니다.”
피핀 뒤에 서 있던 코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너는, 너는 자꾸 누굴 죽이려고 하잖아.”
“잉……. 하지만 공작님 명령 없이는 아무도 죽이지 않아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의아해할 새도 없이 피핀과 코카를 옆으로 밀어내고 갑판으로 나섰다. 그곳에는 두 어린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나와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모여 있어?”
모두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 뭔가 일이 벌어지긴 한 모양이었다.
“그게…….”
멈칫멈칫하며 다가온 선장이 평소에 쓰는 모자를 품에 꼭 안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선원이 하나 죽었습니다…….”
“아…….”
충격적인 소식이기는 했다. 누군가 죽을 줄 알았다면 어젯밤 궁상떨며 밤하늘이나 구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작으로서 무슨 조치를 취했겠지.
“사인은? 공작성에 소식을 전해야겠군. 유가족에게는 위로와 보상금을 전해줄 테니……. 후……. 다들 상심이 크겠어.”
나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고, 알베르토에게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쓰러 가려 했다. 그런데 선장이 도통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어…….”
내가 더 해야 할 말이 있나?
“다들 충격받았겠지만 은둔자의 땅이 보일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때까지만 좀 더 힘을 내라고.”
“…….”
“내가 타고 있는 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유감이야.”
“…….”
“아이들은 이 사실을 모르게 하고.”
“…….”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었다.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람. 선장을 그냥 밀어서 치울까 했는데, 피핀이 이쪽으로 몸을 숙이며 귓속말을 전했다.
“왜 죽었는지 물어보세요.”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해?”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오래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책임만 다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고…….
배에서 사람이 죽은 이유야 뻔하지 싶었다. 바닷물을 잘못 마셔서 급성 장염에 걸렸다든지, 괴혈병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선원들 대부분이 노상 술에 취해 있으니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의학적인 이유를 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차릴 리가 없는 것이다. 여기 의사가 있는가? 없다. 소이가 치료 마법을 쓸 줄 안다지만 외상에 한해서고 내장에 문제가 생긴 사람을 화타처럼 치료할 줄은 모른다.
현대에서 빙의한 나조차도 의학 지식이 전무한데, 시체 하나 갖다 놓고 ‘이 사람이 왜 죽었을까요?’ 하고 여기 물어보면 다들 충격만 받지 답은 얻을 수 없을 게 뻔했다.
하지만 모두가 뭐 마려운 개처럼 낑낑거리며 내게 질문해달라고 조르고 있으니, 물어보지 않을 수도 없다. 내가 ‘왜 죽었냐’고 묻지 않은 이유는 나더러 시체를 보라고 할까 봐 그런 것도 있었는데…….
묻고 싶지 않지만 물었다.
“그건 그렇고 그 선원은 왜 죽었지? 지병이 있었던 자인가?”
나는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병사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살해당했습니다.”
선장이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살해당한 게 분명합니다.”
그는 선원들을 주욱 노려보면서 적어도 외면상 열여섯밖에 안 된 공작에게 이렇게 일러바치는 것이었다.
“이 배 가운데 살인자가 있습니다!”
뱃사람들이 모두 술렁였다.
“살인자……!”
“우리를 의심하는 건가?”
“좋은 놈은 아니었지…….”
“지금 잭이 살해당해도 싼 놈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뱃사람들 사이에서도 언쟁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아까 코카가 한 말이 이해가 갔다. 코카를 돌아보자, 녀석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 아니에요. 정말로. 저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이유와 명령이 있어야 죽이는 충직한 호위 기사라고요.”
“으아…….”
마른세수를 하다 보니 어젯밤 라기아가 낄낄 웃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녀석은 감지한 것이다. 살인의 기척을.
“차라리 지루한 게 나았어. 지루한 게 나았다고…….”
나는 선장을 구석으로 끌고 갔다.
“어떻게 된 일이야? 범인으로 의심 가는 사람은 있나? 원한 관계라든지 그런 건 모르고?”
“저희도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칼에 꽂힌 채 주방에서 발견됐는데, 사투한 흔적도 없고…….”
“주방에서? 혹시 혼자 음식을 해 먹으려다가 부상을 입은 건 아냐?”
“칼이 등에 꽂혀 있던걸요. 사고로 그렇게 되기는 어렵죠.”
“젠장…….”
범인을 잡지 않으면, 은둔자의 땅으로 가는 길에 희생자가 더 생길지도 모른다. 선원의 일이야 나 몰라라 하면 된다 할지라도, 어린아이 둘까지 동행한 이상 위험 요소는 가능한 한 없애야 한다.
나는 마른세수를 멈출 수가 없었다. 마른세수를 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제기랄…….”
“도와주십시오, 공작님. 저희로서는 도저히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 하다 하다 탐정 역할까지 하는구나. 이럴 거면 당신들 세금 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