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빙 돌아오는 길 (1)
타이머스가 검을 거두자, 식물들이 꿈틀거리며 오키드의 몸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신이 완전히 땅에 파묻히자 타이머스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타이머스는 유리병 하나를 내게 건넸다.
“황실의 물건을 이곳에서 보다니. 마력을 읽을 수 있겠나? 리비도 녀석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 같던데.”
타이머스가 건넨 유리병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데미안이 갇혀 있었던 바로 그 유리병.
“마력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엔 시체포식자가 봉인돼 있었어요. 적어도 몇 시간 전까지는 말이죠. 시체포식자를 여신에게 넘겼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은데.”
나는 유리병을 타이머스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 마도구의 원래 주인은 타이머스일 테니까.
그런데 타이머스는 유리병을 허공에 던져버렸다. 허공에 떠오른 것도 잠시, 타이머스 주변을 배회하던 정체불명의 빛들이 유리병을 감쌌다. 곧 ‘팍’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유리병은 터져버렸다.
“아깝게…….”
“다른 마수도 아닌 시체포식자를 담아뒀던 마도구라면 부수는 게 마땅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리비도가 한 말은 아마 허풍일 거다.”
타이머스가 단정하듯 말했다.
“허풍이라뇨? 어떤 부분 말씀이시죠? 사실 리비도 그 사람이 한두 마디만 지껄이진 않았잖아요.”
“시체포식자를 여신에게 넘겼다는 부분 말이야.”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타이머스가 입을 꾹 다물자, 릴리가 끼어들었다.
“오키드 주교 안에 두 개의 영혼이 있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죠? 리비도는 데스트루도를 없애고 싶어 한 모양인데, 사실 식물을 다룰 수 있는 강한 마력은 데스트루도로부터 기인합니다.”
“아! 만일 데스트루도가 없어졌다면, 리비도가 식물을 다룰 수 없었을 거라는 말이군요.”
“맞아요. 그리고 그의 몸……. 땅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걸 봤잖아요. 분명 데스트루도의 힘입니다.”
“하지만 이미 몸이 없어졌는데, 데스트루도의 영혼이 남아있어 봤자 의미 없는 것 아닙니까? 결국 죽은 거고…….”
내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타이머스는 엉망진창이 된 정원을 한 번 둘러보더니, 어느 한 방향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흙이 솟아 있어. 저쪽이다. 저쪽에 데스트루도가 있어.”
“데스트루도의 영혼이요? 사령술사가 나설 차례인가. 맡겨주시죠. 귀신하고 대화하는 건 제 취미가 아닙니다만, 이제 와서 빼는 것도 웃기니까요.”
타이머스 뒤를 따라가는데, 릴리가 키득거리며 말을 붙였다.
“귀신과 대화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왜요?”
나는 저 뒤에서 어리둥절하게 따라오는 아네모네와 피핀의 눈치를 살핀 뒤,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다 봤습니다. 타이머스 전하께서 배신자의 목을 치는 장면을요. 목과 몸이 분리됐는데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요. 몸이 없는 영혼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귀신이라고 합니다, 귀신.”
“하하하하!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데스트루도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거대한 이끼 바위 앞에 도달했다. 이끼 바위 주변은 우리가 난리를 피운 덕분에 불씨가 남아있기도 하고, 사방팔방이 재로 덮여 있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이끼 바위는 달랐다. 바위를 덮은 이끼는 촉촉하고 파릇파릇했다.
또 크기가 얼마나 큰지 고개를 꺾어 들어야만 끄트머리를 볼 수 있었다. 불이 휩쓸고 간 난장판 사이에서 혼자 싱싱한 이끼 바위의 모습은 몹시 이상하고 기괴했는데, 어떻게 보면 성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황실의 일각에선 심연의 악마가 언젠가 문제를 일으키리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초월자 이외의 조력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죠. 초월자를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녀를 뒷받침하는 거인들을 추적하는 건 꽤 수월했고요.”
릴리는 이끼 바위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마법사 알라타, 도서관장 리드, 정원사 클로버. 이 셋 중에 황실에서 가장 먼저 접촉한 건 클로버였습니다. 클로버는 개중에서 가장 인간에게 우호적이었거든요. 우리는 그의 마력, 어쩌면 영혼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빼앗아 왔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관리하기로 했죠. 심연의 악마가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타이머스가 이끼 바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두둑, 바위에 붙은 풀 덩어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위는 기지개를 켜듯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우리 쪽으로 몸을 낮췄다.
타이머스는 이끼 바위 위에 덮인 낙엽을 손수 털어주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완벽하게 관리하고자 했는데 말이야. 데스트루도. 오키드의 몸은 어떻게 했지?”
“데스트루도? 이게 데스트루도란 말씀이세요?”
나는 큰 바위를 가리키며 놀라워했다. 릴리는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며 웃었다.
“데스트루도의 진짜 육체는 바로 이것. 이 거대한 바위죠. 진짜 이름은 클로버.”
클로버는 마땅히 눈이랄 것도 없었다. 녀석은 타이머스 쪽으로 몸을 숙인 채,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스운 점은, 클로버에게 귀도 마땅히 없었다는 거다.
“대화가 가능합니까?”
“인간의 몸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인간처럼 대화하려고 하는 건 어렵겠죠.”
릴리는 이다음의 일은 타이머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머스는 장갑을 벗고 클로버의 이끼를 만져보거나, 먼지를 털어내거나 하면서 여유를 부렸다. 나는 도대체 저 행동의 어떤 점이 대화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의외로 아네모네는 옆에서 납득하고 있었다.
“저 둘, 서로의 마력을 읽고 있어.”
“마력을 읽는다고? 어떻게 하는 건데?”
“그……. 이렇게, 그,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
아네모네가 이리저리 팔을 휘적거렸다. 본인이 알고 있으나 제대로 표현은 할 줄 모르는 감각이었다.
아네모네의 말도 안 되는 설명을 듣다가 고개를 돌리니, 타이머스가 다시 장갑을 끼고 있는 게 보였다.
“시체포식자는 아직 남아있다.”
“대화가 되었습니까? 이끼 좀 만진 걸로…….”
“이끼를 만진 게 아냐. 이끼에 남아있는 마력을 읽어낸 거다. 시체포식자의 마력이 옅지만 남아있어. 그는 아직 살아있다. 심연의 악마가 힘을 회수할 수 없도록 완전히 숨통을 끊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타이머스는 이끼 바위를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심연의 악마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줘.”
“…….”
클로버가 육중한 몸을 일으키더니 사선으로 무너졌다. 이끼와 풀이 길게 뻗으며 둥글게 우리 주변을 감쌌다. 새로 돋아나는 풀은 부드러운 연둣빛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타이머스가 아네모네를 쳐다봤다. 아네모네는 흠칫 경계하면서 타이머스와 눈을 마주 봤다.
“폭풍의 초월자는 우리와 함께하는 건가? 아니면 심연의 악마를 쫓는 건가.”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야. 나는 내 편이지.”
“그래? 네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이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도록 해. 인간의 마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초월자의 힘을 빌려야 할 때니.”
“시체포식자를 죽이는 일에는 협력하지 않을 거야. 나는 살인은 안 좋아하거든.”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지.”
단호하고 무뚝뚝한 말투에 약한 것인지, 아네모네는 흔쾌히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웅우웅 진동과 함께 풀들이 말라붙으며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어……. 구덩이네요.”
어디로 보나 구덩이였다. 심연의 악마라고 해도 사는 곳은 번듯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클로버는 움직임을 멈췄고, 타이머스는 부츠를 단단히 고쳐 신고 있었다.
“설마 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죠?”
내가 불길하게 중얼거리듯 물었다.
“들어가야죠!”
와하하 밝은 웃음소리와 함께 릴리가 내 등을 떠밀었다.
“잠, 잠깐!”
“나으리!”
이어서 우당탕탕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를 따라 피핀과 아네모네, 릴리와 타이머스도 뛰어내린 듯했다. 밑도 끝도 없이 발이 쑥 빠지고 있었다.
“좀 더 평화로운 이동 방법은 없었냐고!”
나의 외침은 어두컴컴한 구덩이가 완전히 삼켜버리고 말았다.
***
검고 어둡기만 하던 시야가 어느 순간 밝아졌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왔다는 실감은 하지 못했다. 시야가 밝아졌다고는 해도, 산뜻한 햇살을 마주한 것이 아니라 불그죽죽한 슬라임 속으로 빠진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곧 우리가 땅바닥에 떨어지리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달콤한 군체! 떨어지는 사람들을 잡아줘!”
급히 라기아를 허공에 긁어 군체를 소환했다. 개미 군체는 나보다 더 빨리 바닥으로 쏟아지며 바닥에 푹신하게 깔렸다.
“어억!”
“읏차!”
“으아아아!”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 대신 군체의 위로 떨어졌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다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아네모네와 피핀은 군체와 뒤엉켜 있었는데, 릴리와 타이머스는 꼿꼿이 자리에 서 있었다. 타이머스는 한술 더 떠서,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체술의 수준이 한심할 정도로군. 그만큼 마법 수련에 몰두했나?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이런 순간까지 비꼬는 걸 보니, 전하가 아주 멀쩡하시다는 건 잘 알았습니다.”
나는 어깨에 올라온 개미들을 털어냈다.
“여긴…….”
우리 주변은 터진 슬라임의 잔해로 가득한 듯 보였다. 발밑이 끈적거렸고, 저 멀리서는 폭약 터지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위를 보세요.”
릴리의 말에 하늘을 쳐다보자 황당함에 웃음이 나왔다.
“저건……. 우리가 들어갔던 러스트 성 아니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네모네가 놀라며 말했다. 아네모네의 말 그대로였다. 허공에 러스트 성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입구에서 정문으로 가는 길, 클로버가 있는 정원부터 반파된 성의 일부분이 다 보였다.
심연으로 떨어진 줄 알았더니, 하늘로 떨어졌다. 혹시 나는 구름을 밟고 있는 건가?
하지만 구름의 감촉이 이렇게 불쾌할 리가 있나.
“심연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심연의 악마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해.”
“어렵지 않겠군요. 벌써 누군가 있는 듯하니.”
릴리는 감이 좋은 피핀을 앞세웠다. 피핀은 피 흘리는 오리를 쫓는 사냥개처럼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녀석을 따라 한참 나아갔을 때.
반갑지만은 않은 얼굴을 마주칠 수 있었다.
“테네리페 러스트다.”
테네리페는 거대한 산을 향해 쉼 없이 마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화려하던 옷차림은 퍽 수수하게 변한 상태였다. 그가 보석을 바닥에 내던질 때마다 새로운 사령이 그의 편이 되어 싸움에 나섰다.
검푸른 연기가 몸을 웅크린 산을 향해 나아갔다. 푸른 불길이 일었지만 곧 사라졌다.
마력이 동이 났는지, 테네리페가 순간 비틀거렸다. 그 틈에 산으로만 보였던 물체가 꿈틀거렸다. 평범한 산이 아니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웅크린 몸뚱이에서 크고 마른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손톱을 세운 손이 우리가 있는 자리를 갈퀴처럼 긁으며 지나갔다. 거대한 몸뚱이가 일어나며 괴물의 몸에서 검고 질척한 무언가가 뚝뚝 흘러내렸다.
“데미안!”
테네리페가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