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빙 돌아오는 길 (3)
테네리페는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잡았다. 지팡이 끝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어서, 그의 마력과 공명하고 있었다.
“가장 자비로운 방식…….”
잠시 침묵한 테네리페가 고개를 들었다.
“데미안은 끝까지 내가 안고 가겠어.”
테네리페는 보석 장식이 다 떨어진 망토를 바닥에 내던졌다.
“우선 데미안의 몸이 더 팽창하는 걸 막아야 해. 내가 데미안을 억누르는 동안, 심연의 악마를 맡아.”
“네. 어차피 시간을 버는 게 목적이니까.”
뒤를 흘끗 쳐다보자, 타이머스의 금색 마력이 땅을 잡아먹을 듯 일렁이고 있는 게 보였다. 포탈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시에라 공작님은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가죠.”
나는 릴리와 함께 심연의 악마를 뒤쫓았다.
심연의 악마는 아네모네의 마력에 발목이 붙잡힌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마력 충돌이 느껴지지 않아요. 일부러 가만히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는…….”
악마의 행동을 주시하며, 나는 공간의 균열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울 스킬을 사용해 사방팔방에 균열을 복사했다.
멀리 있어도 달리아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달리아가 가까이 와 있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토로제 경! 균열을 향해 번개를!”
“재밌겠네요! 다 터뜨려 볼까요?”
릴리가 공간의 균열을 향해 창을 집어 던졌다. 균열을 통과한 창은 여러 개로 복사되며 심연의 악마를 향해 떨어졌다.
쿠과과광- 건물이라도 터뜨리는 듯 굉음이 흘러나왔다. 릴리는 균열 속으로 창을 끊임없이 쏘아 보냈다.
번개가 지나간 자리에 검은 연기가 남았다. 연기는 곧 흩어졌고, 그 안에 서 있는 심연의 악마는 차분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마력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심연의 악마 본인은 우리 생각보다 약할지 모릅니다. 저 괴물은 초월자 셋에게 자신의 마력을 나눠줬어요. 마력이 넘쳐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면, 직접 세상을 다시 시작하고 재건했을 겁니다. 초월자를 통해 이 세계에 간섭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심연의 악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관리자 스킬을 사용했다. 당연히 스킬은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쓰지도 못할 스킬을 사용한 게, 괜한 바보짓은 아니었다.
[아직 관리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이 메시지를 본 순간,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아직. 아직이라고 나온다.
심연의 악마 또한 관리자 권한으로 건드릴 수 있는 대상이라는 소리다.
“초월자로 인해 힘이 나뉜 악마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야. 어쩌면 승산이 있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나는 릴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릴리는 심연의 악마를 향해 맹렬히 공격을 퍼붓는 중이었다. 아직 유효타를 주지 못해 초조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토로제 경! 번개의 신은 언제 다시 사용할 수 있죠?”
“글쎄요, 이렇게 마나를 계속 소모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확신하기 어려운데…….”
“포탈이 열리자마자 아네모네의 축복을 받아 마법을 사용하면 좀 나을 겁니다.”
“그렇다면 오래 걸리지 않겠네요!”
릴리가 다시 한번 창을 쏘아 보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방어벽이 깨지며 심연의 악마 앞으로 창이 떨어졌다.
“해냈어!”
“이대로 하면 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심연의 악마는 가만히 서서 공격만 당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코스모를 땅에 내려놓고, 물처럼 모습을 변화시키며 바닥을 타고 흘렀다.
“토로제 경 잠시만! 거울의 궤도를 바꿔야……!”
세찬 강처럼 흘러온 심연의 악마가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길쭉하게 몸을 늘인 심연의 악마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악마의 녹색 눈동자가 어지럽게 일렁였다.
“환각의 아이가 불러온 이방인. 너라면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내가……?”
“우리는 같은 아픔을 갖고 있으니까.”
그 순간, 퍽하고 심연의 악마가 터져버렸다. 초록색 액체가 폭포처럼 내 위로 떨어졌다. 숨 막힌다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냄새를 맡았다. 병원에서 나는 특유의 삭막한 냄새가 콧속을 가득 채웠다.
“시에라 공작!”
릴리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잠시. 나는 휘청하는 몸을 바로잡았다.
촌스러운 듯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저릿저릿한 팔을 움직이자 손에 무언가 턱 걸렸다. 게임패드였다.
“어…….”
몸을 확 일으켰을 때. 나는 내가 시에라가 되기 직전의 풍경과 맞닥뜨렸다. 낡은 TV는 게임 화면을 보여주고 있고, 반쯤 비어 있는 생수병이 굴러다니는 방. 주영이와 나의 물건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오래된 보금자리에, 내가 돌아와 있었다.
“…….”
내가 지금껏 경험한 게 다 꿈이었나. 그렇게 생각해서 넘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실’이라고 말할 법한 공간에 돌아왔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심연의 악마가 내 위로 물처럼 쏟아졌지. 설마 그 세계에서 쫓겨난 건가?’
나는 어색하지만 그리운 집 안을 한 바퀴 빙 돌아보다가, 게임패드를 주워 들었다.
버튼을 여러 개 눌러보았는데, 게임은 진행되지 않았다. 성숙한 달리아의 일러스트가 치지직, 치지직 노이즈와 함께 흔들렸다.
“실물이 훨씬 나은 것 같아. 우리 막내는. 안 그래?”
나는 게임패드를 내던지고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집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 몸을 구긴 채 들어앉아 있었다. 아마 내가 이곳에서 눈을 뜬 뒤로도 줄곧, 이곳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겠지.
심연의 악마는 출렁거리는 몸뚱이를 슬쩍 내 쪽으로 붙였다. 나는 기 싸움에서 지기 싫은 마음이었는지, 일부러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가……. 네가 원래 살던 곳인가?”
심연의 악마가 물었다. 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어디서 용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 우리 집이야. 나랑 주영이가 살던 집.”
악마의 초록색 몸뚱이가 조금 움직였다. 인간의 신체와는 전혀 다른 구성이지만, 그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여긴 어디야? 진짜 우리 집이야? 아니면 가짜인가.”
“네 기억을 실마리 삼아 아주 작은 공간의 틈으로, 돌아왔어. 이 공간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 나는 자격이 없어. 하지만 너는 나갈 수 있다.”
심연의 악마가 말했다. 악마의 몸이 쭈우욱 퍼지면서 주영이의 방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어 작은 액자 하나가 악마의 몸 위를 부표처럼 타고 내 앞까지 흘러왔다. 나는 그 행동에서 큰 악의를 느끼지 못했기에, 순순히 액자를 받았다.
“…….”
오랜만에 보는 주영이의 얼굴은 무척 낯설었다. 내 동생이 이렇게 생겼던가? 내가 이렇게 생겼던가? 사진을 돌려서도 보고, 더 가까이서도 살폈다.
주영이의 입원이 길어지는 동안, 왠지 보고 싶지 않아서 덮어뒀던 액자였다. 나는 악마의 몸뚱이에 대고 먼지 쌓인 모서리를 쓱쓱 닦았다.
“가족사진이야. 우리 둘밖에 찍혀 있진 않지만. 그래도 가족사진은 가족사진이지.”
초록색 몸뚱이가 액자 쪽으로 쑤욱 기울었다.
“여긴 네가 속한 세상. 원한다면 돌아갈 수 있어. 네 동생이 속한 곳.”
“주영이는 이제 없어.”
나는 액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 세상의 권한을 가진 자에게 도전하면 된다. 시간을 돌이킬 수도 있겠지. 나처럼…….”
“그런 짓이 가능했다면 진작에 했을 거야.”
“이곳에 네 모든 것이 있다.”
“글쎄…….”
나는 다시 한번 집안을 둘러봤다. 사람 사는 구색은 맞췄지만 볼 만한 건 없었다. 낡은 가구, 버리지 못한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지금 당장 바닥에 누운 채 눈을 감으면, 익숙한 풍경에 파묻혀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안에서 눈을 감고, 무거워지는 호흡에 짓눌려 죽는 것은 꽤 평화로운 최후일 것이다.
“너는 뭘 하고 싶은 거야?”
이곳에 남겠다는 말을 하는 대신, 나는 질문했다. 심연의 악마는 조금 더 커지면서 우리 집을 덮었다.
“나의 아우를 세상에 돌려놓을 것이다. 그 아이가 죽지 않은 시간으로 돌아갈 거야.”
“네 그 계획은 실패했어. 실패한 지 오래야. 그저 불행한 사람만 잔뜩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야.”
“불행한 자들이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렇다면 불행 또한 없던 일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몇 번을 되돌아갔지? 몇 번 다시 시작한 거야?”
“…….”
“넌 그동안 어땠는데? 버틸 만했어?”
집안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던 심연의 악마는, 내 질문을 듣고 조금 움츠러들었다. 나는 심연의 악마에게 더 바짝 다가가며 물었다.
“너는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지? 네가 전지전능한 신이었다면 이미 마음대로 동생을 살려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그 세계를 쥐락펴락할 권한이 네게 없다는 뜻이야. 그 권한은 누구에게 있지?”
“본래 나와 아우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우가 죽음으로써 흩어졌다. 이제 그 누구도 관리자가 아니야.”
그 말을 들은 내가 관리자 스킬을 다시 한번 사용했다. 이전에 마력을 사용했던 기억을 더듬자 마법을 사용하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자 상태창이 떠오르는 대신, 치지직 흔들리던 TV 화면이 반응했다. 화면 위에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아직 관리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하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 그 세계의 관리자는 나야.”
“너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의미 없어. 나는 반복할 것이다. 나의 가족을 되찾을 것이다.”
“언제까지? 새로운 시체포식자가 망가질 때까지? 나머지 두 초월자도 괴물이 될 때까지? 아니면 네가 망가질 때까지?”
심연의 악마가 더욱 작아졌다. 어쩐지 그 모습에서 풀이 죽은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받아들일 때가 지났어.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이 말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지, 심연의 악마에게 하는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심연의 악마는 점점 더 작아져서, 나중에는 나보다 더 작아졌다. 녹색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뚫고, 경이로운 느낌을 주는 뿔이 크게 돋아 있었다.
나는 악마의 얼굴을 커튼처럼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살짝 걷어보았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이질적인 모양이 눈이 드러났다.
“우리는 실패한 거야.”
“…….”
“죽은 동생을 놓지 못해서 다른 세계까지 가버린 나도, 죽은 동생을 살리겠다며 네 세상을 몇 번이나 돌이켜 다시 시작한 너도. 두 방법 다 실패였어. 처음부터 동생을 위할 생각 따윈 없었던 거야. 자기 마음이 편해지길 간절히 원했던 거지.”
나는 괜히 잘났다는 듯 훈수를 놓았다.
“정말 동생을 위한다면, 대지가 된 동생의 시체 위에서 사투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줬어야 해.”
심연의 악마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놈이 물었다.
“환각의 아이가 너를 데려온 이유를 알아. 그 아이는 가족을 원했다. 너 또한 동생을 돌려받기를 원했다. 그 아이는 대체재가 되기를 자처했어.”
“그렇다면 실패자가 한 명 더 늘었네. 달리아도 실패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