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싸움꾼에게 무기는 사치 (1)
선원들도 보트리를 알아봤다. 농구공 같은 물고기는 쉴 새 없이 쏟아지며 우리를 덮쳐왔다.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나도 물고기에 얻어맞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젠장! 비처럼 쏟아지는 걸 어떻게 해치우란 말이야.”
피핀도 난감한지 쇠스랑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다가 자리를 피했다. 그때 동력실에서부터 타다다닥, 급한 발소리가 나더니 오키드 주교가 허겁지겁 나타났다.
“발아!”
오키드 주교가 외치자마자 배 주변의 바닷물이 일렁이더니 해초들이 순식간에 위로 솟구쳤다. 두툼한 해초의 이파리는 넓적하게 표면을 펴서 배를 보호하듯 감쌌다.
“방어벽을 펼치겠습니다!”
이어 그의 말대로 해초들이 배를 완전히 감싸 방어벽을 만들어 냈다. 해초로 만든 벽 위로 보트리가 퉁퉁퉁퉁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행히 보트리는 해초 위로 쏟아질 뿐, 배로는 접근할 수 없었다.
이미 배 위에 올라와 펄떡이는 놈들은 어쩔 수 없다지만, 당장에 배가 부서지는 일은 막았다.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오키드 주교가 자세를 고쳐가며 팔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그의 몸짓에 따라 해초는 더욱 크고 단단하게 얽혀 배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난항이네요.”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바닥에서 펄떡이는 보트리를 하나 잡아들었다. 물고기인데도 표면이 미끄럽다기보다 거칠거칠했다. 물기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물에서 살지만 물에 젖지 않는 몸뚱이를 가진 모양이다.
“신기한…….”
그때 피핀이 달려와 내가 손에 든 보트리를 잡아 배 밖으로 던져버렸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나는 보트리를 뺏긴 채 잠시 멍하게 있었다.
“어?”
묵직한 보트리를 단숨에 던져버리다니, 대단한 놈이긴 하다. 하지만 주인이 진지하게 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야, 피핀. 갑자기 던져버리면 어떡해. 보고 있었는데.”
“만지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본인도 맨손으로 잡아 던졌다.
“보트리는 건조한 환경에서 폭발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이를 해먹을 수 없어요.”
“잠깐만, 구이 요리 이야기는 됐고.”
나는 굴러다니는 보트리를 발끝으로 건드리며 물었다.
“폭발한다고?”
그 말이 사실인지, 뱃사람들이 젖은 장갑을 끼고 놈들을 배 밖으로 던져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 건조한 환경이나 불을 붙였을 때 폭발합니다. 적에게 피해를 주고 나머지 개체가 살아남으려는 전략이죠. 물론 불이 붙은 주변에 다른 놈들이 있으면, 연쇄적으로 폭발해서 다 같이 죽을 수도 있지만…….”
“물속에 남은 놈들은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머리에 반짝 불이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보트리는 아직도 해초 벽을 두드리며 우리를 위협하는 중이었다.
불을 붙이면 폭발한다? 그러면 우리를 공격해오는 놈들을 모두 폭발시켜버리면 되잖아?
황당한 듯하지만 합리적인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나를 두고 피핀이 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으리 이상한 생각 하고 계시죠…….”
“오해야. 나는 항상 합리적인 생각만 해.”
나도 뱃사람들에게서 젖은 장갑을 빌려, 배에 쏟아진 보트리를 밖으로 밀어내는 작업에 합류했다. 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거베라 프라이드가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시에라! 공작님이 직접 이런 일을 하다니. 서민들의 귀감이 되어주려는 거야?”
“재미없는 농담은 하지 말고 너도 도와.”
“배 위에 떨어진 물고기는 지금 문제가 아니야.”
거베라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녀는 동력실에서 배를 움직이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었는데,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까부터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내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거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키드 주교를 향해 소리쳤다.
“리비도! 해초로 배의 발을 묶어버리면 어떡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잖아!”
“죄송합니다.”
리비도는 나직하게 사과했다.
“이 방법밖에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리비도가 해초 더미를 풀기 위해서는 개화, 낙화 단계가 차례로 필요하다. 더군다나 해초 벽이 둥둥 울릴 정도로, 아직도 보트리 녀석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오키드로서는 지금이 최선을 다한 것이 분명했다.
다만 앞길이 막힌 것도 사실이다. 피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보트리는 워낙 많은 수가 몰려다니는 마수입니다. 지금 놈들의 공격을 막고는 있지만, 이러다간 끝도 없을 거예요.”
거베라는 애써 묶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간 언제 출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걸.”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나는 거베라에게 다가갔다. 거베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놀란 눈을 했다.
“웬일이야? 소극적인 시에라라면 멀리서 사람들이나 달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거야 원작의 소극적인 시에라 이야기고.
“피핀한테 들었어. 이 녀석들, 불에 닿으면 폭발한다며. 그렇다면 우리를 공격하는 놈들을 연쇄적으로 폭발시키면 될 것 같아.”
“뭐?”
거베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나더러 저 물고기 소나기를 맞으라는 건 아니지? 불을 붙이는 건 가능하지만, 저렇게 쏟아지는 놈들 사이로 나가서 불을 붙이는 건 사양하고 싶어. 너무 위험해.”
“그 방법이 간단하긴 하지만. 그렇게 무식하게 하겠다는 건 아냐.”
나는 배에 떨어진 보트리를 하나 주워들었다. 놈은 복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서 펄떡거렸다.
“내가 해결할게.”
내게는 그보다 좋은 해결책이 있었으니까. 황당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거베라에게 나는 씽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간단해. 공간을 찢을 거야.”
“공간을 찢는다고?”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아무튼 가능해. 내가 신호하면, 그 틈에 이 녀석을 던진 뒤에 불을 붙이면 돼. 아무도 다치지 않고 폭발을 일으킬 수 있어.”
“그게 무슨…….”
거베라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와중에 한쪽에 세워뒀던 라기아가 들뜬 듯이 마구 진동했다.
[공간파열! 우리 시에라의 새로운 특기올시다! 물론 원래는 이렇게 멋진 이름이 아니지만, 방금 내가 이름 붙여봤지. 어때? 멋지지? 멋지지?]나는 라기아를 잡아들었다. 한 번 휘둘러보고, 거베라를 쳐다봤다.
“한 번만 믿어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렇긴 한데…….”
“걱정하지 마.”
나는 라기아를 휘둘러 죽음의 문을 열었다. 아, 라기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간파열’ 기술을 사용했다.
지이익- 허공이 찢어지는 듯하며 시커먼 아공간이 열렸다. 죽음의 문의 한쪽을 연 것이다. 평소라면 여기서 나의 사령을 불러냈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하나는 됐고, 그럼 다음은…….”
다른 곳을 마저 찢어서 일종의 통로를 만들 것이다. 그 통로를 통해 보트리를 던져, 통과시킬 생각이다.
“이게 무슨…….”
거베라는 처음 보는 내 기술에 퍽 놀란 눈치였다.
옆에 서 있던 피핀은 무표정했다. 나의 기술을 대충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은 거베라의 반응에 조금 당황하는 것 같더니, 괜한 소리를 덧붙였다.
“어……. 이상한 게 아니에요. 나으리는 공간을 고기처럼 자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고기 같은 겁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설명이었다.
피핀 나름대로 내가 사령술사라는 걸 숨겨주려는 노력인 듯하다. 노력은 가상한데, 효과는 없다. 거베라는 아까보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죽음의 문을 번갈아 쳐다봤다.
“더 모르겠어.”
아무튼 여기만 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보트리가 나가는 출구가 있어야 했다.
나는 오키드 주교에게 소리쳤다.
“주교님, 해초 끝 좀 자르고 나갑니다!”
“예?”
나는 배의 끄트머리로 달려가 해초의 한쪽 끝을 라기아로 잘랐다. 오키드가 마법으로 붙잡고 있다고는 하지만, 식물은 식물이었다. 날카로운 낫이 베어내자 축축한 이파리가 힘없이 벌어졌다. 나는 그나마 붙들 만한 줄기를 붙잡고 배 밖으로 몸을 빼냈다.
“시에라!”
“나으리!”
다들 내가 미친 짓이라도 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미친 짓, 맞나?
하지만 나는 그리 겁나지 않았다. 이 게임 속으로 들어오기 전 내가 해왔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각종 알바를 전전하면서 익사이팅 스포츠 보조 단기 알바도 해봤다.
‘그때 했던 것들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
암벽등반의 원리는 알고 있다. 미끄럽긴 하지만, 마침 장갑도 끼고 있으니 생각보다 덜 미끄러웠다. 여차하면 라기아를 휘둘러 해초 사이에 얽어둔 채 버티면 된다.
“시에라 공작님!”
오키드 주교도 웬일로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조금만 버티세요! 줄기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조금만 버티세요. 해초를 걷기 편하게 굳혀보겠습니다.”
오키드 주교가 말한 이후로, 해초가 꿀렁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 잘 버텨야 해, 시에라!]곧 해초 더미가 꿈틀거리더니 푹신푹신하게 바뀌었다. 마치 줄기마다 꽃봉오리가 피어오른 듯했다. 오키드 주교가 기술 ‘개화’를 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데, 보트리가 마구 떨어져서 여간 위험한 게 아니었다. 한 번은 내 머리통에 떨어져서 어지간히도 아팠다.
“빨리 열어야겠어.”
보트리의 폭발을 미루며 시간을 질질 끌다간, 배가 영영 출발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줄기를 붙잡은 채 한 손으로 라기아를 크게 휘둘렀다. 공간을 엑스자로 찢자, 새카맣게 죽음의 문이 열렸다. 그 너머 무언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출구의 역할을 할 문이 열린 것이다.
나는 해초를 타고 주르륵 미끄러지며 배 안으로 돌아가면서 소리쳤다.
“거베라! 지금이야! 검은 공간 안으로 던지면서 불을 붙여!”
내가 배에 뛰어든 순간 거베라가 보트리를 죽음의 문 안쪽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 안쪽으로 불을 피워 던졌다. 나는 배에 발이 닿자마자 마력을 잠그며 죽음의 문을 닫았다. 방심할 틈은 없다.
“오키드 주교님! 좀 더 방어벽을 단단하게!”
“네!”
내 판단은 옳았다.
뒤이어 퍼버벅- 퍼버벅- 하는 요란한 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해초의 사이사이로 그을린 자국이 생겼다. 해초 너머로 엄청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폭발은 한참을 이어졌다.
“진짜 되잖아?”
거베라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시에라! 시에라 공작! 진짜 됐잖아? 대단해!”
“멀미 나니까 배 위에서 사람 흔들지 말아줄래?”
얼마나 지났을까. 폭발이 잠잠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배의 저편으로 물살이 세차게 흘러가는 것도 느껴졌다. 보트리 무리가 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간 것이다.
“방어벽을 해제하겠습니다.”
오키드 주교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