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6
가우디는 건축물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로 서두르지 않고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설계하고 만들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그가 타계한 이후에도 계속 건축 중인 이 ‘성가정 성당’처럼 말이다.
떡갈나무가 다 자라는 데에 몇백 년이 걸리듯이 자연의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우디.
래원 역시 가우디의 철학에 공감하는 바였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었으니까.
사실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내내 래원의 머릿속 한구석에는 숙제처럼 어떤 물음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가, 인가?
래원은 서울에서 쉽사리 답을 내리기보다, 이곳 유럽까지 와서 시간을 갖고 심사숙고하는 편을 택했더랬다.
특히 여기 바르셀로나에서 루시아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낀 래원이었지만,
천천히 고민해본 결과, 작품 스타일이나 작업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데다가, 이미 ‘도래원’이라는 브랜드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던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필요해. 기존에 내가 하던 작업을 택하고 양념을 가미하는 정도로의 변화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 정답은 래원의 안에 있었다.
시간을 갖고 돌아돌아 오는 동안 저절로 떠올랐으니까.
‘정답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작업을 택해서, 색다른 조리법이나 양념을 시도해보는 것. 안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도하게 새로운 모험을 하지도 않는 것⋯.’
유럽에서 만난 가우디와 두 명의 작가, 그리고 다리오와의 대화는, 래원을 정답에 도달하게 해주는 지름길 같은 것이었다.
래원은 이제 어렴풋이나마 그 정답에 근접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비로소 90% 이상의 확신으로 를 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루시아 작가님의 소설은 언젠가 다른 작품이라도 드라마로 만들어보고 싶다.’
래원은 지금 당장 이뤄져야만 인연으로 남는 것은 아니라고, 아직 시간도 많고 작품을 할 기회도 많다며, 스스로 아쉬움을 달래보았다.
Festina Lente!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것은 인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이었으니까.
* * *
바르셀로나 일정을 마치고 마드리드로 가는 렌페 기차 안.
래미는 아까부터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받지⋯.”
결국 포기했는지 휴대폰을 내려놓고 차창 밖 풍경으로 눈길을 돌린 래미.
한국과는 달리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겨울이었지만, 한국의 여름보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빛.
그 아래로 낮은 언덕과 넓은 들판 그리고 요상하게 생긴 나무들.
그러다 문득 래미가 물었다.
“오빠, 오빠는 왜 연애 안 해?
“연애? 루시아 작가님이 그러셨잖냐. 남녀 간의 끌림은 호르몬의 농간이라고.”
“아···. 노잼.”
“그리고 연애는 혼자 하냐. 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할 사람이 왜 없어?”
이 말에 자신의 얼굴을 멀뚱멀뚱 보기만 하는 래원을 보며 래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 둔탱이.”
“그러는 너야말로 남친 좀 만들어 봐.”
“아이돌이 무슨 연애야.”
“다들 몰래 하던데 뭐.”
방송국 밥만 전생과 이생을 통틀어 15년 넘게 먹었다.
래원에게는 아이돌과 배우들의 연애가 새삼스럽지 않았다.
“브잇걸이 더 자리 잡을 때까지 연애는 금지야.”
“뭐?? 박현만 대표가 그렇게 시켰어??”
“아니. 우리끼리 정했어. 멤버들끼리.”
대부분의 걸그룹이 겉으로는 다들 친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허나 브라이트 걸스는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는 듯했다.
“오빠는 연예인도 아니잖아? 연애 좀 해!”
“야!”
“왜! 설마 오빠 정도 되는 감독은 연예인이라고 말하려고? 오빠 연병 있어?”
“뭔 소리야! 아니야!”
“그럼? 설마⋯. 드라마랑 연애 중이다⋯ 이딴 소리 하려는 건 아니겠지?”
래미에게 속을 간파당한 래원.
래원의 동공이 흔들리자, 래미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어휴, 말을 말자, 말을 말어.”
“왜? 난 드라마에 진심인데? 지속적이면서 변치 않는 진심!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하지만 래미의 말에 끄떡도 않는 래원이었다.
곧 이어 할 일이 생각난 듯 앞자리의 스미스에게 말했다.
“스미스, 지금 바로 다리오 본부장님께 전해줘요. 제 드라마 로 결정했다고요.”
그러자 래미가 또 다시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고,
“어휴⋯. 저 일돌이, 일돌이⋯.”
지이이이잉——
그런 래미의 혼잣말에 대꾸라도 해주듯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엇! 세라 언니!”
– 래미야! 영상 통화 여러 번 걸었었네? 촬영 때문에 못 받았다가 지금 봤어.
래미의 휴대폰 화면 속에 나타난 것은 민세라였다.
“언니 얼굴 보고 싶어서요!”
– 나도 래미 얼굴 보니까 좋다. 유럽 간 건 들었는데, 거긴 어디야?
이에 래미가 화면을 360도로 돌려가며 렌페 기차 차창 밖의 풍경을 민세라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스페인이요! 바르셀로나에 있다가 지금은 마드리드로 가는 길이에요.”
– 와아⋯. 겨울 맞아? 햇살 좀 봐! 나도 영화 끝나고 여행 가기로 했는데, 스페인은 꼭 가야겠다!
“진짜요? 완전 추천해요! 다른 데도 좋긴 한데, 여긴 나중에도 또 오고 싶을 거 같아요.”
– 너무 부럽다! 언니는 요새 힘들어 죽겠는데⋯.
“영화 작업 많이 힘들어요?”
– 뭐⋯. 사실 엄살이지. 안 힘든 일이 어딨어. 이번 영화도 며칠만 더 찍으면 끝나.
“저어, 사실 언니 옷 사갈 거라서 전화했던 거였어요! 언니 사이즈 알려주세요! 여기 세일 대박이에요!”
민세라는 한사코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고,
래미는 그동안 받은 게 많으니 이 기회에 자기도 한 번 쏴야 한다며 징징댔다.
결국 자신의 옷 사이즈를 읊은 민세라.
“언니가 좋아하는 브랜드들도 왕창 세일한다니까요!”
– 언니도 영화 끝나면 다음 달에 유럽 갈 거니까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네!”
– 엇, 래미야! 나 가봐야겠다! 남은 여행 재밌게 하고, 래원 감독님한테도 안부 전해줘!
민세라의 뒤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진 것으로 보아, 이제 곧 촬영이 다시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민세라와의 통화를 끊은 후, 래원을 툭 치는 래미.
“들었지 오빠? 안부 전해달래.”
“어.”
래미는 민세라와의 통화 후에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누가 보면 너 민세라랑 연애하는 줄 알겠다, 래미야.”
“왜? 질투나?”
“넌 왜 그렇게 세라를 좋아해?”
“이유야 많지.”
래미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원더빅 들어간 것부터가 세라 언니의 문걸즈 마지막 무대 보고서였잖아. 그리고, 아이돌 거쳐서 배우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도 내 롤모델이고.”
“민세라가 일적인 면에서 너한테 점수를 받았구나.”
“그런 거 말고도, 난 세라 언니가 자체가 좋아.”
“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너처럼 민세라 좋아하는 애가 없어.”
물론 래원도 그녀의 차갑고 단단한 겉껍질 속에 숨어있는 여린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했다.
래원이야 전생의 경험도 있지만,
래미는 왜 그렇게 친구도 없고 안하무인인 민세라를 좋아하는 지를 말이다.
“나한테는 잘해주거든. 언니가 차갑게 구는 건, 문걸즈 연습생 때부터 사람들한테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랬댔어.”
그 사람들에는 배미란도 포함일 것이다.
지금은 몰라도, 과거에는 그랬을 것이다.
“언니는 양파 같은 사람이야. 껍질이 굉장히 많아서 친해지면서 하나하나 벗기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거든. 오빠는 모를걸?”
‘모르기는⋯. 래미 너보다 내가 더 많이 알걸?’
전생의 기억과 배미란까지 떠올리며 누구보다 민세라를 잘 안다고 자신하는 래원이었다.
허나 래원의 머릿속에, 어쩌면 래미의 말대로 자신이 아는 것이 민세라의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때아닌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래원의 일행을 실은 렌페 열차는 어느새 목적지인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도착했다.
* * *
한편, 프랑스 파리.
‘스튜디오 까날 쁠뤼’의 드라마 본부장 다리오 소렌티노.
그는 스미스의 연락을 받고서 바빠졌다.
“(닥터 올리버⋯. 닥터 올리버⋯.)”
먼저, 여자 주인공.
‘에바 페이지’와 구두 계약을 한 바 있기에 비서를 통해 연락을 넣었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남자 주인공 ‘올리버’를 캐스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1순위부터 10순위까지 리스트업 해둔 것을 래원에게 보냈다.
남자 주인공인 만큼 감독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으니까.
나머지 캐스팅은 캐스팅 디렉터와 래원을 다이렉트로 연결해주는 것으로 진행했고,
다음은 스텝을 꾸려야 했다.
촬영 감독과 세트 디자이너 섭외가 1순위였다.
촬영 감독의 중요성은 어느 드라마나 마찬가지지만, 는 세트 촬영이 많이 나오는 의학 드라마인 만큼 특히나 세트 디자이너의 역량이 드라마의 퀄리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다리오는 의학 드라마 경험이 있는 유럽의 세트 디자이너 명단을 긁어모은 후, 이 중에서 영국인들을 우선순위로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례적으로 본부장 업무 외에도 제작PD 역할까지 하는 다리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이번 드라마는 무조건 잘 돼야 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동양인 감독은 못 믿는다며 도래원을 반대하던 이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어보십시오. 도래원은 분명 되는 카드입니다!’
라며 호언장담했더랬다.
그래서 자신의 안목을 증명해내야 했다.
다리오는 지금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 그리고 도래원을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이 최고의 배우, 최고의 스텝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동안 팀 꾸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다리오에게,
뜻밖에 에바 페이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좋아요. 그렇게 연결해 줄게요, 에바. 래원 감독님도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할 거 같으니까.)”
다리오는 그녀와의 통화 직후 곧바로 래원에게 연락을 취했다.
“저를요??”
배우 ‘에바 페이지’가 최종 계약을 하기 전에 먼저 래원을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말.
이를 들은 래원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녀가 래원이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한다며, 다리오는 래원에게 현재의 위치와 목적지를 물었다.
“이제 마드리드 일정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에바 페이지는 지금 유럽 어디 있죠?”
“오스트리아 빈. 영화 촬영 중이라십니다.”
스미스가 전화 너머 다리오의 말을 전했다.
“그럼 저희가 거기로 갈게요!”
래미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래원도 스미스를 향해 동의 의사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몇 년 전, 로케이션 때 짧게 촬영만 했던 곳이라, 언젠가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일정이 갑자기 생기면서,
예정에 없던 ‘에바 페이지’와의 만남이 래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럼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시죠.”
“에바 언니 보러 가즈아!”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58화 – 리디북스
* * *
에서, 배우 ‘에바 페이지’가 맡을 ‘릴리’ 라는 역할은 주인공 올리버와 마찬가지로 이제 막 인턴 의사가 된 인물이다.
모교 의과대에서 5년 내내 수석을 한 후, 이야기의 시작부에 주인공이 있는 런던 최고의 의대 병원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그 후 인턴 2년과 레지던트 6년 과정을 모두 주인공과 함께 보내는 그녀는,
사실 과거에 주인공과 같은 동네에 살았던 주인공의 첫사랑이었다.
물론 이러한 전사가 시청자들에게 처음부터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래원이 그렇게 각색하자고 할 작정이었으니까.
일종의 소소한 서스펜스 장치를 릴리 캐릭터에게 부여할 계획이었다.
회귀 전의 주인공 올리버는 인턴 시절에 첫사랑의 그녀와 재회하고도 또다시 사랑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지만,
이번 생에는 과거에 실패했던 것을 하나씩 쟁취해나가며 그녀와의 사랑 역시 해피엔딩을 이루게 된다.
래원은 지금 이곳, ‘카페 문학’의 본고장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카페에서, 이렇게 원작 소설의 각색 방향을 정리하고 있었다.
래미 그리고 스미스와 함께 ‘릴리’이자 ‘에바 페이지’를 기다리며 말이다.
“어..어..? 에바 페이지다!”
그녀가 래원 일행의 테이블로 다가오는 것을 먼저 발견한 것은 래미였다.
하얀 치아가 시원하게 드러나도록 따스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는 그녀.
“(안녕하세요, 에바 페이지입니다.)”
래미는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래원과 스미스도 덩달아 일어서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제 막 영화 촬영 스케줄을 끝내고 온 것인지 에바의 얼굴에는 옅은 분장이 남아있었다.
“(페르소나 재밌게 봤어요! 여배우로서 ‘보라’라는 역할이 너무 탐나더라고요!)”
“하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인물이 보라였잖아요. 두 쌍둥이 형제 사이에서 중심을 잡았달까요? 똑 부러지는 캐릭터도 좋았고요.)”
“저도 배우님 부터 챙겨보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참여하셨던 몇 편의 비상업 단편영화에서도 배우님 연기가 인상 깊었고요.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래원은 지금 사실 굉장히 멋쩍었으나,
함께 일하게 될 배우 앞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저도요! 정말 너무 영광이에요. 제가 오죽하면 아는 프로듀서분들 전부한테, 리메이크하자고 조르고 다녔다니까요.)”
“하하. 근데 어쩌죠? 를 보다 더 잘 만들 건데요?”
진심이었다.
‘페르소나’가 당시의 최선이었다면, ‘닥터 올리버’는 지금의 최선이어야 했다.
게다가 래원에게 현상 유지는 퇴보나 다름없었다.
과거보다 지금이, 전작보다는 지금의 작품이 좋아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에바 언니 실물이 완전 인형 같아. 인형이 말을 하네? 그것도 우리 오빠한테!’
어느덧 래원을 보던 래미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는 래원을 향해,
에바 페이지가 수줍은 듯이 웃더니 말을 이었다.
“(네에, 좋습니다! 사실 다리오 본부장님께도 제가 먼저 리메이크 이야기 꺼내면서 연락드렸었거든요.)”
“굉장히 친하신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