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7
“(제가 일전에 신세를 좀 졌었죠. 아무튼, 그랬더니 본부장님께서 안 그래도 도 감독님이랑 드라마 준비 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무슨 작품이든 좋으니 참여시켜달라고 졸랐죠.)”
스무스하게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작품 이야기로 넘어갔다.
에바는 를 이미 여러 차례 읽고 캐릭터 분석까지 끝내왔더랬다. 그래서 대화가 한결 수월했다.
“나중에 캐릭터 각색 방향이랑 시놉시스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이번 작업 너무나 기대됩니다. 잘 부탁드려요, 감독님!)”
“저어···. 그런데, 에바 배우님.”
“(네?)”
“이건 그냥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의 어떤 부분이 취향에 맞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같이 작업할 배우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음⋯. 좋은 점은 여러가지 였지만 최고였던 건, 미스터리 스릴러인데도 브라운관 너머로 따뜻함이 전해지는 게 신기했어요.)”
래원이 그녀의 뒷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에바는 술술 편안하게 자신의 느낌을 털어놓았다.
“(특이하잖아요. 미스터리 스릴러 하면 새빨간 핏빛 이미지나, 차가운 금속의 총칼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감독님의 미스터리 스릴러는 이상하게 사람 냄새가 포근하게 풍기더라고요. 그게 참 좋았어요.)”
에바 페이지의 표현은 문학적이었지만 모호했다.
허나 를 아는 래미나 스미스 역시,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다고 생각했다.
래원은 어깨가 들썩이는 착각이 일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열심히 만든 작품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으니까.
그것도 업계 사람,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에게 말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라는 마음속 정답을 깨닫고 결정을 내렸을 때, 그때 생각했던 게 정말 답이 맞았나 보다.’
그랬다. 래원의 오랜 장점이자 지향점인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드라마’.
이를 유지하되,
루시아 작가와 만나며 깨달은 ‘자극적이어도 좋으니 시청자들에 삶을 버틸 재미를 주는 치열한 드라마’를 가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래원이 더 높고 멀리 그리고 더 오랫동안 비상하기 위해 택한 새로운 전략이었다.
는 물론 또한 그렇게 만들어 볼 작정으로 눈을 빛내는 래원.
운이 좋게도 래원의 새로운 드라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래원의 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 바로 앞에 앉아 싱긋 웃고 있는 에바 페이지를 시작으로 말이다.
* * *
이튿날, 래원은 서울의 안정원에게 연락을 넣었다. 원래 귀국 일정보다 늦어질 거라고 말이다.
안정원은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지 않았다.
이러한 스타일도 래원과 잘 맞았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맞춰주는 것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안 실장님 선물 정도는 챙겨가야겠네⋯.”
안정원과 통화하고 나서야 문득 생각이 났더랬다.
“새로 오빠 매니지먼트 해주는 여자 매니저님?”
“어어.”
“오늘 구두샵 간다며, 거기서 하나 사가.”
“거긴 수제 구두 집인데? 직접 발사이즈 재서 주문 제작으로 맞춰주는 곳인데?”
래미는 비엔나의 유명 쇼핑 아이템을 검색해보았다.
“그럼⋯. 단 거 좋아하시면, 모차르트 봉봉?”
“그런 건 아직 모르지. 같이 일하게 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어렵네. 그럴 땐 그냥 돈을 쓰면 된다, 오빠. 명품 아울렛 들러서 가방 하나 사자.”
“⋯ 그래, 그래야겠다. 그 정도는 사줄 만한 사람이지. 앞으로 고생시킬 일도 많을 테고.”
그렇게 남매는 명품 아울렛에 들르기 전에 일단 오늘 원래 일정이었던 ‘루돌프 쉐어’로 향했다.
래원이 빈에 오면 꼭 다시 들르고 싶었던 곳이었다.
촬영 초반 빈에 로케이션을 왔을 때, 함현우가 [현수] 캐릭터 구축을 힘들어했더랬다.
다행히도 당시 이곳의 사장이었던 ‘7대 쉐어’를 만나고 비로소 연기 노선을 잡을 수 있었다.
때문에 그곳에 다시 가서 장인 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는 ‘쉐어’를 만나면, 그때 함현우가 그랬던 것처럼 래원도 뭔가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루돌프 쉐어.
1816년에 문을 연 이래로 무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같은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공예 구두 샵이었다.
딸랑—
문을 열자 종소리가 먼저 래원의 일행을 반겨주었고, 뒤이어 직원들과 쉐어 사장이 인사를 건넸다.
“⋯!!!”
쉐어 사장은 래원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래미야, 구두 하나 골라봐.”
“정말? 여기 엄청 비싸 보이는데? 게다가 주문 제작이라며?”
래원을 알아보고는 저렇게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오는데, 역시나 이곳에서도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국제 택배로 받으면 되지 뭐.”
“우왕! 고마워 오빠! 제일 이쁜 거로 골라야지!”
래미가 디자인을 고르고, 직원이 래미의 발 치수를 꼼꼼하게 재어 볼 동안 ‘쉐어’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봤다며 재잘거렸다.
‘이분이 원래 이런 분이셨던가?’
그때는 분명 인상 팍 쓰고, 무게 잡으면서 구두에 대한 프라이드 팍팍 풍기던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낯을 가렸던 걸까?
어쨌든 그때와는 뭔가 달라진 사장,
하지만 그때와 여전히 똑같은 품질의 구두들.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던 래원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사장님, 루돌프 쉐어는 200년 넘게 노하우를 전수해서 같은 품질의 신발을 유지하고 있다셨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럼 사장님께서 구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궁금합니다. 계속해서 최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철학 같은 게 있으실까요?”
“(제가 고수하고 있는 구두 철학은 ‘처음 느낌 그대로’예요. 저희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다르셨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래원이 더 자세히 듣고 싶다는 눈빛을 보냈고, 이에 더더욱 신나서 말을 잇는 그였다.
스미스는 통역하며 덩달아 분주해졌다.
“(사람은 변하지만 구두는 변하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처음에 신었던 그 느낌 그대로요.)”
그의 ‘처음 느낌 그대로’라는 말은 두 가지를 함의하고 있었다.
그만큼 루돌프 쉐어의 구두가 처음 신을 때에도 편안하다는 것,
그리고 그 편안함이 변치 않고 지속될 수 있게 최고급 가죽으로 구두를 만든다는 것.
그래서였을까.
를 찍을 당시,
한동안 연기를 놓고 있다가 아주 오랜만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섰던 ‘함현우’도, 이곳 루돌프 쉐어의 사장의 구두 작업을 지켜보며 ‘처음 느낌 그대로’ 연기의 감을 되찾았더랬다.
따지고 보면 래원이 만들 드라마 도 ‘처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12년차 내과 전문의가 회귀한 후,
처음 매스를 잡았을 때,
처음 CPR을 할 때,
처음 사망 선고를 할 때,
그리고 의사가 된 후 첫사랑과 처음으로 다시 만났을 때.
그 ‘처음’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회귀자의 이야기 말이다.
‘이런 게 영감이구나.’
래원은 2백만 원이 넘는 래미의 구둣값을 계산하며 생각했다.
입가에는 뿌듯한 미소가 띄워졌다.
2백만 원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을 얻어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느낌 그대로.
드라마 의 각색 주안점이자 연출 의도를 이것으로 잡아야겠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 * *
한편, 서울의 ‘스튜디오 다이아’ 사무실.
“나흘 후랬지? 도 피디 서울 들어오는 대로 불러서 몸보신 좀 시키고 슬슬 프리 프러덕션 들어가자고.”
“아⋯. 이렇게 바로요?”
이선필의 말에 안정원은 의아한 듯이 반응했다.
도래원은 일반적인 매니지먼트 대상들과는 달랐다.
쉽게 말해서,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스튜디오 다이아와의 계약도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래원의 매니지먼트 업무를 담당하는 안정원으로서는, 일단 컨디션 관리가 우선이었다.
그 후에는 ‘까날 쁠뤼’와의 작업 진척 상황부터 들어봐야 했다.
유럽에서의 일정이 예정보다 많이 길어지는 것은 필시 그 작업과 관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프리 프러덕션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 일이었다.
“뭐 당장 드라마 찍으라는 것도 아니고, 바로 보면 어때? 배우든 스텝이든 팀을 꾸리려면 일단 도 피디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아냐.”
“⋯ 예, 알겠습니다.”
허나 이선필 본부장은 안정원과 달리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스타일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안 실장, 은 다 봤어?”
“예. 웹툰도 결말까지 보고, 영화도 봤습니다.”
웹툰 은 도시에서 무언가 하나씩 잃어버린 채로 월미도에 모인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함께 모여 살며 잃어버렸던 것을 하나둘 찾아 나가고 성취해내는 이야기였다.
“잘됐네. 그럼 각각의 주인공 이미지에 적합한 캐스팅 후보 찾아봐. 최대한 많이! 모레까지 나한테 보내주고, 내일까지면 더 좋고⋯. 스타성은 물론이고, 연기력도 필수야. 알지?”
이에 안정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섭외와 관련된 것은 안정원의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봐? 내 의견, 캐스팅 디렉터 의견, 그리고 자기 의견. 이렇게 3개 모아서 리스트 만들면 좋지 않겠어? 거기에 도래원 감독이 더 추가하든, 그중에서 고르든 말이야. 어쨌든 우리가 같이 도 감독 일거리 덜어주자는 거잖아.”
“예, 그렇죠. 그런데요, 본부장님···. 이 작품을 대체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래원이 입국한 후에 차근차근 시작해도 늦지 않는 일정이라고 들었다.
내년 겨울이나 후년 봄 방영을 목표로 한다고 했으니 겨울로 잡아도 2년 가까이 남았으니까.
안정원의 물음에 이선필은 그답지 않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에라 모르겠다는 투로 말을 툭 내뱉었다.
“JBC 개국이 종전 계획보다 앞당겨질 것 같거든.”
“JBC라 하시면⋯.”
“JC ENM에서 만드는 종합편성채널.”
“아⋯!”
“이제 우리도 TBN과 스튜디오 포닉스’처럼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이선필의 설명을 듣자,
안정원은 이제야 비로소 래원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왜 ‘까날 쁠뤼’와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도 함께 택했는지, 어떻게 이선필과 그 윗선의 불만을 잠재웠는지를 말이다.
안정원도 JC에서 만드는 방송국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진척이 되는 줄은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도래원 감독님의 이 ‘JBC’와 ‘스튜디오 다이아’ 양쪽의 브랜드 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주겠네요?”
안정원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 말은 이번 작품 한 방으로 도래원의 네임벨류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59화 – 리디북스
“그렇지. 이제 도래원 피디의 에 모든 게 달린 거야. 다 같이 사느냐, 다 같이 죽느냐.”
이선필 본부장의 말.
이에 안정원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했으나, 속으로는 실소가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다 같이 사느냐, 도 감독님만 사느냐겠지···.’
사실 도래원은 말고 까날 쁠뤼의 작업도 있었고, 기회야 앞으로도 많았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았다는 뜻이다.
혹여 이번 드라마 한 번 삐끗한다고 한들 도래원에게는 그저 한 번의 실수 정도로 치부될 것이다. 래원이 그간 쌓아온 것이 있기 때문.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한 ‘JBC’와 ‘스튜디오 다이아’의 입장은 달랐다.
이들은 현재 모든 달걀을 이라는 바구니에 올인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JC ENM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자기들의 유일무이한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돈 지랄’을 시전하는 중이었다.
을 무조건 성공시키기 위해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예산을 배팅했더랬다.
‘그렇다면···. 도 감독님은 이 모든 걸 이용하기만 하면 돼. 망해도 본전, 잘 해내면 완전 초특급 대박으로 입지 자체가 달라질 판이니···.’
여기까지 파악한 안정원의 얼굴에 저절로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예, 본부장님. 내일까지 리스트업 해오겠습니다.”
“껄껄껄. 모레까지는 여유 있다니까.”
안 실장이 눈을 빛내며 말하자, 이제는 되려 이선필이 손사래를 치며 여유를 논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월미도 패밀리가 4명이죠?”
“그렇지. 월미도를 텔레토비 동산에 비유한 편도 있었잖아.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크크크, 하여간 월미도88 똘끼는 알아줘야 해.”
“저마다 무언가를 상실한 4명의 인물이 월미도에 모여 서로를 채워주면서 함께 성공을 위해 나아가는 드라마니까···. 4명의 케미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네요.”
“그렇지. 그래서 캐스팅도 누구 하나 처지면 안 된다고. 4명 다 대박 배우들로만 엄선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원작 이미지, 스타성, 화제성, 연기력 모든 면에서 최고로···. 제 인맥도 동원해서요.”
지금 이 순간.
안정원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면,
이선필은 겉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안정원이를 내 손바닥 안에 넣고 쥐락펴락할 수 없다면···. 이렇게 떡밥을 던져서 내 장단에 맞춰서 춤추게 만들어야지.’
이선필에게도 안정원은 어쩐지 함부로 할 수 없는 부하 직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여느 매니지먼트 실장들과는 깜냥이 다를 뿐더러 태생부터 특별난 인물이었으니까.
게다가 안정원은 한다면 하는 여자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맞부딪쳤다.
겉으로는 한배를 타고 있는 듯 행동했으나,
이선필과 안정원 둘 다 속으로는 자기가 우위에 서서 상대를 이용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둘 중 한 명만 맞는 생각이었고, 다른 한 명은 혼자 착각에 빠져있는 것뿐이었다.
* * *
한편, 오스트리아 빈.
‘에바 페이지’ 그리고 ‘루돌프 쉐어’와의 만남을 끝으로 이제 래원의 일행은 자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첫 이틀은 궁전과 왕국 투어로 쇤브룬 궁전, 호프부르크 왕궁, 벨베데레 궁전을 돌았다.
래원은 드라마 감독으로서 미학 공부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베르사유 궁전만큼이나 유럽에서 화려하기로 유명한 쇤브룬 궁전.
별명이 ‘여름 궁전’인 만큼 겨울인 지금은 앙상한 가지들이 대부분이었고 분수도 멈춰있었으나, 궁전의 웅장함은 숨길 수 없었다.
오후에는 거대한 호프부르크 왕궁을 보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튿날 행선지인 벨베데레 궁전 역시 화려함의 극치였다. 이곳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금은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
덕분에 래원이 좋아하는 클림트 그림을 실제로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다음 이틀은 빈 미술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을 차례로 둘러 보았다.
가히 예술의 도시다웠다.
어제 다녀온 벨베데레 궁전이 ‘미술관으로 개조한 궁전’ 이었다면, 빈 미술사 박물관은 ‘궁전처럼 보이는 미술관’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광대한 전시물과 훌륭한 유물이 가득했다.
자연사 박물관은 여타 유럽 박물관과 다른 분위기였다.
실물 공룡 화석을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으니까.
궁전과 왕궁들 그리고 두 박물관을 투어하고 나니, 오스트리아가 누렸던 과거의 영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다음 날은 일찍부터 슈테판 대성당을 가보았다.
거대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이와 대조적으로 곡선이 점철됐던 가우디의 성가정 성당을 떠올리게 했다.
비엔나 안에서만 돌아다니던 래원의 일행은 래원의 제안으로 도시 외곽으로도 나가보기로 했다.
동남쪽 변두리에 있는 ‘이름 없는 자들의 묘지’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차 타고 가는 길부터 매우 한적했다.
스산한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화려하고 고풍스러움으로 가득했던 비엔나 중심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근처에 도착해서 묘지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을 올랐다.
그곳은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시신들을, 무연고자들을 안치해둔 곳이었다. 공공차원에서 최소한의 관리만 하는 듯했다.
서구의 묘지들은 보통 교회나 마을 중심에 있어서 공원 같은 분위기가 나는 반면, 이곳은 오가는 이가 없어서 그런지 규모도 작고 쓸쓸해 보였다.
래원의 일행은 각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곳을 둘러보았다.
분위기 탓인지 자연스레 말수도 적어졌다.
가끔 묘비에 이름이 적힌 무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채 십자가만 덩그러니 꽂혀있는 무덤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죽음’들이 모인 곳.
이곳에 모여서 조용히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은 ‘삶’들이 모인 곳?
래원은 순간적으로 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