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8
이내 자연스럽게 월미도에 모여서 조용히 살아가는 4명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이곳처럼 스산한 분위기로 시작된 월미도에서의 삶의, 비엔나 중심가처럼 화려하게 꽃피는 그런 성장 드라마를 그려보고 싶었으니까.
‘제작비가 되면, 여기를 로케이션으로 잡아 보자! ‘이름 없는 자들의 묘지’에서 시작해서 빈의 화려한 궁전과 박물관까지 담는 거지···.’
돌연 래원의 가슴 속에서 흥분감이 일었다.
‘드라마 초반 로케로 찍으면 복선이 되는 거고, 마지막 부분에 등장시키면 상징인 거고!’
래원의 머릿속 뉴런의 시냅스가 자극을 받았는지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기 시작했다.
‘초반에 등장시키려면, 주인공들이 배낭 여행하다가 여기서 만나게 해야겠다. 이 인연으로 같이 월미도에 모여 살게 되는 거로···.’
묘지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움직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래원의 모습.
이를 보던 래미는 눈치를 채고는 ‘일돌이···. 또 일하는 중이구만?’ 싶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래미는 래원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대신 스미스를 따라 도나우강 변을 구경하러 그쪽으로 걸어갔다.
래원은 여전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음···. 만약에 드라마 초반에 빈에서 만나는 게 너무 작위적이면···. 나중 결말 부에 다같이 성공한 월미도 패밀리가 여기로 기념 여행을 오는 설정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래원은 사진과 동영상을 남기며 지금의 아이디어를 차곡차곡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엔나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비엔나 프라터 공원의 대관람차.
래원과 래미 그리고 스미스는 유럽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이곳으로 잡았더랬다.
이건 무조건 타야 한다는 래미의 성화에 오게 된 곳.
“와···. 줄 너무 긴데?”
하지만 근처에 도착하자 대관람차 앞에는 이미 대기 인원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보아하니 한 칸에 10명 남짓 탑승하는 것 같았다.
“배고픈데 이거 꼭 타야 하는 거..겠지?”
래원은 타지 말자고 하려다가,
래미의 찌릿하는 째림에 이내 어미를 물음표로 바꾸고 말았다.
“걱정 마세요. 예약해뒀거든요.”
“웅, 우린 줄 설 필요 없어.”
어쩐 일인지 스미스와 래미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더니, 줄 선 사람들을 지나쳐 안내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직원들이 예약 명단을 확인한 뒤 래원의 일행을 안내해주었다.
“우와아!!!”
래미의 탄성.
한 칸 전체를 프라이빗 레스토랑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다.
하얀 식탁보를 뒤집어씌운 원형 테이블과 의자 3개가 세팅되어 있었고 향초와 꽃으로 군데군데 꾸며놓은 곳.
래원의 일행이 자리하자, 직원들이 관람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에피타이저와 와인을 세팅해주었고, 뒤이어 코스 요리를 담은 카트를 안에 들여왔다.
콰앙, 탁——
직원 한 명이 함께 남으며 관람차의 문이 닫혔다.
위이이이잉——
슈우우우웅——
잠시 요란한 소음이 들려오더니 커다란 관람차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관람차가 올라갈수록, 프라터 공원의 모습과 나아가 비엔나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굽이 흐르는 푸른 도나우강과 그 건너편 시청의 뾰족한 첨탑이 눈에 띄었고, 며칠 간 둘러보았던 궁전과 왕국 및 박물관도 보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가 납득될 만큼 클래식한 풍광이 인상적이었다.
“크아! 유럽 일정 마무리하기에 완벽한 코스네!”
래미가 감탄하며 식사했고, 래원과 스미스도 두 눈은 차창 밖에 고정한 채로 포크 질을 했다.
관람차가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메인 요리인 슈니첼 스테이크가 서빙됐다.
이윽고, 두 번째 돌 때는 석양이 물든 비엔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람차가 4바퀴쯤 돌았을 때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은 야경을 보고 있는데,
파파팟——! 파바박——!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도래원! 생일 축하 합니다!”
직원이 상자에 숨겨둔 케이크를 꺼내어 서빙해왔고,
래미와 스미스가 눈빛을 나누더니 신나게 노래 부르며 폭죽을 터뜨렸다.
놀란 래원이 눈만 끔뻑거리는 사이,
어느새 래원의 얼굴 앞까지 다가온 케이크.
후우——
래원은 쑥스러워하면서도 감격한 얼굴로 촛불을 불었다.
“오빠! 생일 미리 축하해!”
“래원 감독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원래대로라면 래원의 생일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때문에 서울 도착하면 래미랑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유럽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래원.
“아···. 그러면, 설마···. 이거 내 생일이라고 예약한 거야?”
“그런 셈이지.”
그랬다.
(촛불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단지 마지막 일정을 기념하고자 예약했다기에는 과한 프로그램이었다.
래원이 감동한 얼굴로 케이크를 잘랐고,
세 사람은 이를 디저트 삼아 먹기 시작했다.
할 말은 잠시 뒤로 미뤄둔 채,
관람 차에서의 마지막을 비엔나의 생크림 케이크와 야경으로 조용히 음미했다.
마침내 관람차가 멈춰서며 문이 열렸다.
“오빠, 이거 오빠 생일 파티 겸 스미스와의 이별 파티였어.”
래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입은 웃고 있었으나 쓸쓸함이 느껴지는 얼굴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스미스는 오늘 밤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관람 차에서 내린 래원이 먼저 스미스에게 프랑스식 포옹을 건넸다.
“다음 일정 때 다시 만날 거니까,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게요. 건강하게 또 봐요.”
래미 역시 프랑스식 포옹을 나누며 스미스와 인사했다.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웃는 얼굴과 달리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이렇게 비엔나에서의, 아니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이 끝나갔다.
스미스를 배웅하고 호텔로 돌아온 래원과 래미.
남매는 호텔 방에 나란히 놓인 싱글 베드에 각각 누워 대화를 나누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으니까.
“아아, 이번 여행 너어무 좋았어! 특별히 좋았던 걸 꼽는 것도, 별로였던 걸 꼽는 것도 힘들 만큼 전부 다!”
래미에게는 이번이 난생처음인 유럽 여행이라 많은 것을 느끼고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4주를 계획하고 왔던 유럽 여행이었으나,
예정에 없던 일정과 인연으로 어느덧 5주 만에 한국에 들어가게 됐다.
“진짜 원없이 다녔다.”
“웅, 완전! 빨리 한국 돌아가고 싶어! 우리 멤버들도 보고 싶고!”
“언제 또다시 이렇게 시간 내서 다닐 수 있으려나···.”
“그러게···.”
래원과 래미 모두 당분간 바빠질 일만 남았더랬다.
래미와 노노카의 보컬 유닛이 성공을 거뒀고 이나와 솔라의 퍼포먼스 유닛도 성공을 거두면서, 올해 예정인 브라이트 걸스 그룹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래원 역시 드라마 2개의 프리 프러덕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난 브잇걸도 중요하지만, 연기도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좋은 생각이야. 응원해.”
아마도 와 의 작가들, 그리고 에바 페이지를 만났던 게 래미에게 적잖은 자극이 된 모양이었다.
“나도 응원해. 오빠가 해낼 드라마! 2개 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래원과 래미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한국에서 온 연락일까?
여기는 이제 자정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각이니, 한국은 지금 대충 오후 5시쯤 됐을 것이다.
왠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연락이라는 직감에 두 사람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
“어머···.”
너무나 놀라서 말문을 잃은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를 박차고 나와서 불을 켜는 래원과 래미.
“일단, 비행기표! 제일 빠른 거 찾아볼게.”
“웅! 짐 얼른 챙길게.”
원래대로라면 내일 저녁에 출국이었으나, 지금 한시라도 급히 한국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부고 문자였기 때문이다.
구엘 백작의 작고 소식을 들은 가우디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래원의 가치와 재능을 알아봐 주고 물심양면 지원해줬던 별 중 하나가 까만 밤하늘 사이로 저버리고 말았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60화 – 리디북스
* * *
한국에 도착한 래원과 래미.
집에 캐리어와 짐을 거의 던져놓다시피하고는, 간단히 씻고 검정 세미 정장을 입은 채로 다시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가장 큰 장례식장을 갖추고 있는 모 대학병원.
[ 고인(故人) : 배미란 ]배 사장의 사진과 이름 석 자가 떡하니 전광판에 떠 있었다.
그동안 현실감 없던 부고 소식이 그녀의 사진을 보니 이제야 피부로 와닿는 듯했다.
대한민국 방송계 거물의 타계.
이에 장례식장 지하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화환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생전 배미란의 화려했던 커리어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과 대표 이름은 전부 이곳 화환에 적혀있는 듯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SBC와 협약을 맺은 해외 방송사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이름도 각종 외국어로 새겨진 것이 눈에 띄었고,
유명 연예인들의 이름 또한 한가득이었다.
기자들 또한 바리케이드 밖에서 취재 경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도래원 감독님! 래미 씨!”
“이쪽 한 번 봐주세요!”
래원과 래미 역시 기자들의 타겟이 되었으나 서둘러 바리케이드를 넘어왔더랬다.
장례식 손님들이 대부분 업계 사람들과 연예인이다 보니, 그들을 배려해서 바리케이드가 처진 곳은 장례식장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비상구로 빠지는 옆 통로 구석에 누군가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래원이 둘러보지 않았다면 못 보고 스쳐 지나갔을 위치.
그곳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것은,
“세라 씨···?”
다름 아닌 민세라였다.
래원의 부름에 그녀가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넋을 잃은 동공.
“세라 언니!!!”
래미가 달려가 민세라를 부축했고,
민세라는 래원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울 일은 많았지만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꺽꺽대며 울고 있었다.
“··· 사장님이랑 인사 잘했어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로 고개를 가로젓는 민세라.
“마지막 인사는.. 해야죠.”
“들어가면, 상주분들한테 뭐라고 소개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나도 사실···. 내가 사실 상주인데···.”
민세라는 그 누구한테도 비추지 못한 진심을 지금 래원과 래미 앞에서 내보이고 있었다.
래미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래원은 알아들었더랬다.
“내가 도와줄게요. 일단 가요.”
그렇게 래원은 래미와 민세라를 데리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웃고 있는 배미란 사장의 영정 앞에 국화를 헌화한 후에, 잠깐의 묵례.
‘사장님···. 세라 씨는 당신께서 제게 남겨주신 숙제인가요?’
이윽고,
세 사람은 상주인 배미란의 부군과 아들을 대면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까지 SBC에 있었던 도래원 피디입니다.”
“아···. 아내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도 피디님 드라마는 꼭 본방으로 같이 챙겨봤거든요.”
“도래미 입니다. 배 사장님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항상 멋진 여성으로서 존경하던 분이었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매가 같이 여기까지 발걸음해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민세라의 차례가 되었다.
겨우 눈물을 멈추었지만 툭 치면 다시 꺽꺽거리고 울 것만 같은 그녀였다.
“안녕하세요···. 민세라 입니다. 배 사장님을 엄마··· 처럼 생각했었어요. 이렇게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게 돼서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일전에 레스토랑에서 만난 적 있죠?”
“네···.”
“아내가 민세라 양의 엄청난 팬이었어요. 우리 집에 문걸즈 앨범이 다 있을 정도로요. 출연하신 드라마나 영화도 SBC 작품보다 더 열심히 챙겨보더라고요. 딸처럼 생각한다면서···. 바쁠 텐데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저도 누나 팬인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부군과 아들의 따뜻한 말.
이에 민세라는 참았던 눈물을 다시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도 ‘딸처럼 생각한다’라는 대목부터였을 것이다.
“제가 감사해요···. 두 분께서 저랑 만난 걸 기억하고 이렇게 저를 아실 줄은 몰랐어요···.”
민세라는 배미란이 가족들에게 항상 자신의 존재를 숨긴다고 생각했으니까.
부군과 아들이 그저 ‘연예인’ 민세라가 아니라, ‘배미란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민세라라고 기억해 준 것에 감정을 쏟고 있는 듯했다.
배미란 사장과의 마지막 인사를 마친 후에,
“이쪽으로 가면 기자들 안 마주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갈 수 있어요.”
민세라를 따라서 래원과 래미는 기자들을 피해 비상구 쪽으로 나갈 수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는 민세라의 매니저가 대기하고 있었다.
순간 래원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매니저님, 저희 래미 좀 부탁드려요. 세라 씨는 제가 안전하게 모셔드릴게요.”
같은 원더빅 소속의 매니저에게 래미를 보낸 후, 대신 민세라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래미는 오빠가 세라 언니와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다는 눈치를 챘고, 민세라 역시 래원에게 할 말이 있었는지 순순히 따라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래원의 차가 민세라의 집 앞에 정차했다.
“장례식장에서 못했던 말들···. 다 털어놔 봐요.”
민세라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미동도 하지 않다가,
“···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었어요. 이번 영화 촬영 끝내고요.”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최근들어,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길래 이제 엄ㅁ.. 아니, 사장님도 늙었나보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암이었다니···.”
민세라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래원은 가만히 티슈를 건네주었다.
“흐흑···. 아아흑···. 이렇게 일찍 가버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불러줄 걸···. 엇나가지 말고 더 잘해줄 걸···.”
“충분히 잘 했어요, 세라 씨는···.”
“아녜요···. 도 감독님은 모르세요···. 아무것도 모르신다고요···.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