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9
“세라 씨가 예전에 저한테 그랬잖아요. 어머님이랑 잘 지내는 거 열심히 해볼 거라고. 그래서 결국 잘 해냈잖아요?”
“··· 네?”
“사장님이 이렇게 된 건, 세라 씨 잘못이 아니에요. 세라 씨는 할 만큼 했어요.”
“!!! 감독님···?”
“사장님은 그때부터 세라 씨한테 엄마 소리 듣고 세라 씨랑 여행 계획하시면서 충분히 행복하셨을 거예요. 딸 가진 모든 엄마가 그렇듯이요.”
“···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어느새 눈물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래원을 쳐다보는 민세라.
“걱정 말아요. 황태수 선배 말고는 저밖에 모르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요.”
민세라는 집으로 들어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 래원을 보았다.
그때마다 래원은 안심하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동안 민세라의 비밀을 지켜준 것.
딱히 민세라를 위해서 했던 행동은 아니었다.
처음에 만났던 당시 에서 래원은 전생을 통해 알았던 민세라의 잠재력을 자신의 드라마에 이용하고자 했고,
에서는 민세라의 자살을 막고 그녀가 배우로서 날개를 펼 수 있게 돕는 것이, 곧 래원의 성공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계속 그녀 곁에 머물렀던 것이었다.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지내면 되지 뭐. 서로 윈윈하는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달라질 건 없어.”
래원은 왠지 모를 씁쓸한 감정은 뒤로한 채 다시 시동을 걸며 집으로 향했다.
* * *
이튿날.
래원은 서울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했더랬다.
“많이 드세요, 도 피디님! 안 실장도!”
이선필이 껄껄껄 웃으며 손짓했다.
세 사람의 앞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오리 진흙 구이가 먹음직스럽게 발라져 있었다.
래원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때문에 이선필은 래원에게 처음부터 본론을 꺼내기보다는, 유럽 여행은 어땠는지 묻거나, 자신도 다녀온 적이 있는 도시에 대해서는 과거 추억을 들추기도 하며 편안하게 대화를 이었다.
이제 배가 불러가고, 테이블 위의 오리고기가 사라져갈 때쯤.
“그래서, 각색 작가는 누구로 할 생각이세요?”
오늘의 본론이자 이선필이 래원을 불러서 몸보신 시켜준 이유, 드라마 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쎄요. 여행하면서 각색 방향과 연출 의도를 정리했거든요. 이제부터 여기에 맞는 작가님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그동안 조용히 먹기만 하며 함부로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던 안정원이 입을 열었다.
“도 감독님께서 그간 호흡을 맞춰 본 적 있는 작가님들 중에 택하셔도 괜찮을 것 같고요, 만약에 새로운 작가님과의 작업을 원하신다면 저는 ‘임상순’ 작가님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임상순 작가.
래원에게 굉장히 익숙한 이름이었다.
전생에서는,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미래에 으로 하인혁을 스타PD로 만들어줬던 스타 작가였고.
이생에서도 이미 걸출한 신인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가는 자신의 정체를 꽁꽁 감추기로 유명했다.
첫 단막극과 미니시리즈가 대박을 터뜨렸을 때도 언론 앞에 얼굴을 비추지 않고 서면 인터뷰만 진행했으며,
재작년에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작가상을 받을 때도 담당 PD가 대타로 나와 수상을 했더랬다.
드라마 대본 리딩이나 종방연 등의 비하인드 영상에서도 그녀의 얼굴은 항상 모자이크 처리됐다.
그랬다. 임상순은 ‘그녀’였다.
30대 여자 작가라는 것 외에는 전부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한 작가.
‘임상순’이라는 이름 또한 예명이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드러나지 않는 예명을 택했다고 서면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야, 업계에 도는 말 중에, ‘임상순은 작가계의 도래원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하는 작품마다 족족 시상식 휩쓸고 시청률 탑 찍고. 도 피디님이랑 행보가 비슷하긴 하더라고요.”
“그러네요. 단 두 작품 만에 백상 작가상을 타셨으니···.”
“그렇지? 안 실장도 들은 적 있는 소리지?”
“근데 그분 항상 작업하던 PD님이랑만 하시잖아요?”
래원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정원이 바로 대답했다.
“원래는 그랬는데, 차기작 준비 중에 두 분 사이가 틀어지셨다고 합니다. 그 기획 자체가 그 피디님 거라서, 임상순 작가님은 아예 새 작품 구상을 하셔야 하는 상황이고, 지금은 잠시 쉬고 계신대요.”
“아···.”
임상순 작가는 전생에도 최대 두 작품이었다.
한 명의 PD와 하는 최대 작품 수가 2개였다는 뜻이다.
항상 러브콜이 끊이질 않는 작가였으니 아쉬울 게 없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임상순 작가님께서 에이전트 통해서 직접 연락을 주셨습니다.”
“직접 연락을 줬다고요? 임상순 작가님이요?”
“예, 현재 작가가 공석인 걸 어떻게 아시고는···. 도 감독님이랑 작업해보고 싶으다셨어요.”
“으하하하! 두 분이 같이하시면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행보를 이어온 작감의 만남으로 이슈도 될 것 같고, 여러모로 완벽한 호흡 아닐까 싶네요.”
이선필도 껄껄껄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서는 임상순이면 최고의 카드였으니까.
이선필과 대조적으로 안정원은 목소리를 낮추고 래원의 의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었다.
이내 가방에서 서류 파일 하나를 꺼내어 래원의 앞에 스윽 내미는 안정원.
“임상순 작가님이 보내오신 기획안입니다. 각색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면서 아예 기획안을 보내오셨습니다.”
래원은 이를 받아들고 펼쳐보았다.
가히 임상순다웠다.
영화에서 삭제된 것과 달리 그녀의 기획안 속에서 ‘한귀진’ 캐릭터는 멋지게 살아있었다.
한귀진은 4명의 주인공 중 하나로, 월미도88이 자신의 20대를 투영한 페르소나 같은 캐릭터였기에 이번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했다.
“각색의 포인트는 잘 집으셨고 원작에 충실하려는 의도가 돋보여서 좋네요.”
“예, 혹시 몰라서 임 작가님 에이전트와도 이야기해 봤는데, 진행하게 되면 그쪽은 작가님 에이전트 업무만 담당하고 제작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리해뒀습니다.”
안정원은 혹시나 걸림돌이 될 것을 미연에 정리해두는 유능함을 보였다.
허나 래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기획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만···.”
때문에 이선필은 침을 꼴깍 삼키며 래원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임상순 작가를 잡고 싶었으니까.
“제가 생각해둔 연출 의도나 각색 방향과는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건···. 서로 맞춰보면 되지 않을까요, 도 피디님?”
“글쎄요···. 제가 이미 처음부터 결말까지 짜둔 그림이 있어서 저는 지금 그리고 있는 것에서 크게 달라지기 힘들 것 같은데···.”
이것이 기획안을 받아든 후로 래원의 미간이 계속 펴지지 않는 이유였다.
임상순의 작가적 고집에 대해 익히 들은 바가 있었기에, 이미 30페이지짜리 기획안까지 써둔 상태면 타협이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린 래원이었다.
“그래도 작가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최종 결정 전에 같이 이야기 정도는 나눠볼 수 있겠지만···. 이미 이정도까지 세세하게 기획안을 짜두신 거보면 승산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래원이 입장에서도 임상순을 놓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아쉬웠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었다.
그녀와의 인연은 다음으로 기약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해가던 찰나,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도 감독님.”
안정원이 단호하면서도 희망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고, 래원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61화 – 리디북스
“임상순 작가님께서 이 기획안은 이 작품에 대한 자신의 열의를 보여주고자 함이고, 얼마든지 폐기 처분하셔도 된다고···. 그러니 도 피디님의 각색 방향에 따라 써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안정원의 말을 들은 래원은 눈만 끔벅거렸다.
“그분의 이번 작품 참여 목적은 이 아니라, ‘도래원 감독님’이라고 하시면서요.”
이제는 놀람을 넘어서 임상순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래원.
‘그 임상순이···? 이렇게까지 나를···?’
래원에게도 임상순 작가라면 구성력, 필력, 글 쓰는 속도까지 뭐 하나 아쉬울 게 없는 장사였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이번 드라마는 임상순 작가님과 해보겠습니다.”
이에 쾌재를 부른 건 이선필이었다.
도래원과 임상순의 만남만으로 이슈화는 따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더욱 상기됐다.
“도 피디님, 그럼 캐스팅 이야기는 자리 옮기고 마저 진행할까요?”
“아뇨. 길어지는 거 아니면 여기서 간단히 마무리 지었으면 합니다. 제가 뒤에 선약이 있어서요.”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래원의 말에 안정원은 눈치껏 캐스팅 리스트 파일을 내밀었다.
“주인공 4명에 대한 캐스팅은 대본 각색 작업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 같아서 리스트업 해봤습니다.”
이를 훑어보는 래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것을 보고 이선필이 또 한 번 껄껄껄 웃었다.
“으하하하! 안 실장이 애 많이 썼습니다.”
“와우···. 대한민국 탑 배우를 다 모아놓은 리스트인데요? 이게 실제로도 가능한 거··· 아니, 일단 이분들 개런티 맞춰주실 수 있으세요, 본부장님?”
“네, 4명 다 맞출 수 있습니다.”
“네?? 저희 제작비 예산이 얼마인데요?”
“아직 책정 중이라···. 정확한 액수는 안 실장 통해서 곧 다시 정리해드릴 거고요, 일단 거기 적힌 배우들은 데려올 수 있는 액수입니다.”
“··· 정말이십니까?”
이선필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이 말은 당초 기사로 나간 금액보다 증액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유럽 로케이션도 가능한 부분이겠네요?”
“도 피디님께서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당연히 예산 편성해드려야죠.”
래원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좋아! 비엔나 로케이션도 가능하겠어!’
빈 여행 마지막 날 짜뒀던 로케이션 계획을 이룰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는 래원이었다.
래원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찬찬히 캐스팅 리스트를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개런티는 맞춰줄 수 있다셨고, 섭외는 가능한 부분일까요? 이 대배우들을?”
“예, 거액의 개런티와 원작 명성, 우리 팀의 인맥 거기에 도 감독님의 이름값까지. 이 정도면 충분히 부딪혀 볼 만하고 승산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안정원 실장이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이를 들은 래원의 반문에 거드는 이선필.
“제가 연락할 수 있고, 연락하려던 배우들도 이미 여기에 적혀있기는 한데···. 그외의 인맥이라면 또 어떤···?”
“인맥이야 정 힘들 때는 홍 대표님 도움받아도 되고요, 무엇보다···.”
이선필이 안정원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저도 몰랐는데 우리 안 실장 인맥이 꽤나 화려하더라고요. 그렇잖아, 안 실장?”
래원은 물음표를 띄우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답지 않게 볼에 홍조까지 띄우며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 안정원.
전생에는 인연이 없었던 인물이라, 래원은 그녀에 대해 전부 다 알지는 못했다.
“제가 뭐라고요···. 너무 띄우지 마세요, 본부장님···. 캐스팅 리스트에 있는 배우분들은 제가 한두 다리 건너서 섭외 연락 가능한 분들로만 넣었으니,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 주시면 됩니다.”
부드러운 말씨였지만 여전히 단호했다.
안정원이 워낙 튀는 것을 꺼려하는 성정이라 그렇지, 그녀에게는 분명 든든한 뒷배가 있는 듯 보였다.
래원은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 자세히 캐묻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그녀를 지켜보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럼 세 명 정도는 이 리스트에서 캐스팅 진행하고요, 한 명은 제가 따로 섭외하고 싶은 배우가 있어서요···.”
“아,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배우를 생각하고 계시는지···?”
“일단 기다려주시면 가장 완벽한 그림, 완벽한 퍼즐로 완성해서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본부장님.”
이선필을 보는 래원의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래원 자신의 몫임을 선언하고자 선을 긋는 것.
래원은 이선필이나 홍 대표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들은 그저 래원을 위해 판을 벌여주기만 하면 되는 자들이었다.
래원은 캐스팅 리스트를 다시 한번 쓱 보고는 잘 접어서 뒷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주인공 4명의 조합이 중요해. 내가 잘 요리할 수 있는 배우들과, 약간은 까탈스러워도 현장에서 나한테 자극을 줄 수 있는 배우들을 적절히 섞어봐야겠어.’
* * *
SBC 앞 골목길 안에 있는 족발집.
문에 들어선 래원이 두리번거리자 저 구석에서 황태수가 손을 번쩍 들고는 흔들었다.
“여기! 래원아, 이쪽이다!”
전생부터 래원의 단골집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황태수의 단골집이 되었다.
전생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이생에서의 래원과 황태수의 연을 대변해주듯 말이다.
“불족 2인분 먼저 시켰다.”
“잘하셨어요.”
래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스페인에서 사 온 선물을 내밀었다.
프리미엄 와인과 명품 담배 케이스였다.
“뭘 또 이런 걸 사왔냐? 나는 뼈 빠지게 일할 동안 너는 탱자탱자 놀다 왔다고 자랑하는 거냐?”
“그냥 고맙다고 하시고 받으시면 되지···. 그런 셈 칠게요.”
황태수가 괜스레 겸연쩍었는지 말이 길어졌고, 래원은 이를 알아차리고 피식 웃었다.
“그래, 자식아! 고맙다.”
황태수가 껄껄껄거리며 래원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며 첫 잔은 원샷으로 넘겼다.
황태수의 어깨에 힘이 축 빠진 게 느껴졌다.
이제 SBC에 래원도 배미란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장님이 생전에 래원이 너를 엄청 붙잡으셨었어···.”
“저를···요?”
“어. 너를 한 작품만 더 데리고 있자시더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겠다 시면서···.”
“······.”
“얼마 안 남은 인생. 마지막까지 널 놓지 않고 싶으셨던 거야···. 하이씨···. 사장님도 나한테 말씀을 하시지! 그랬으면 내가···.”
황태수는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하며 목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 후회하세요, 선배?”
“뭘? 너 일찍 내보낸 거?”
“네.”
“그건 아닌데···. 배 사장님이 나한테까지 병을 숨기셨던 게 너무 속상하다. 혼자 외로이 정리하셨을 생각을 하니까···.”
연거푸 소주만 마시는 황태수.
래원은 그의 앞에 족발을 놔주었다.
“안주도 드세요. 속 버립니다. 배 사장님이 끝까지 말씀 안 하신 건, 선배가 못 미더워서라거나 그런 거 아니란 거 아시죠?”
“하아···. 새해부터 갑자기 있는 연차, 없는 연차 다 끌어다가 쓰실 때 뭔가 일이 터진 걸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정말로 쉬시는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었던 게 아직도 후회스러워···.”
“워낙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잖아요. 마지막까지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하아···. 그래도 그렇지···.”
“끝까지 정정하고 당당한 사장님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으셨나 봐요. 선배가 이해해주세요.”
“야속하신 분···.”
래원과 황태수는 한동안 말없이 각자 소주잔을 비우고 족발을 입에 넣고를 반복했더랬다.
“배 사장님 말씀 거역하시고 저 일찍 내보신 거···. 그게 마음에 많이 걸리시는 거죠, 선배?”
“새끼···. 아니래두···.”
기어들어 가는 황태수의 목소리.
“제가 더 잘 될게요. 선배가 배 사장님에 대한 죄책감, 부채감 전부 떨칠 수 있게···.”
그래서 황태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
래원은 그것만이 자신이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2개의 드라마를 성공시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 안에 ‘민세라의 성공’도 함께라면 래원 역시 배미란 사장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황태수가 피식 웃으며 래원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새끼···. 네 차기작이 잘 되는 건, 나나 배 사장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와···. 섭섭한데요, 선배?”
“··· 바깥세상이 어디 그리 녹록할 줄 아냐?”
“껌이죠. 제가 또 SBC 드라마국에서 단련된 정신과 몸으로 무장했잖아요. 하하.”
이에 황태수가 처음으로 껄껄껄 웃었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뜻.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드라마국의 지난 빌런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