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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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도종건에게
래원이 먼저 다가갔다.
“괜찮아요. 다 같이 잘 만들어보자고 하신 말씀이잖아요? 자기 이름 걸고 하는 작업이니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종건 씨. 방금 씬 다시 모니터해 보시고, 더 찍고 싶은 샷 있으면 말씀 주세요.”
래원이 오히려 넓은 아량을 보여주자,
도종건 뿐만 아니라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던 다른 사람들의 눈빛 또한 누그러졌다.
“아닙니다, 도 감독님. 그러면 주제넘게 월권하는 거죠.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감독님의 판단이 맞습니다.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도종건이 깍듯해졌다.
옆에서 그의 매니저도 몸 둘 바를 몰라하며 래원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이내 촬영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모두가 분주히 움직였다.
한편, 신영진 촬영감독은 오늘 래원의 첫 ‘레디, 액션!’을 함께 할 수 있음에 보람을 느꼈다.
그가 래원에게 보여준 신뢰 덕분인지, 래원을 향한 일부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도 어느새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보통 촬영감독은 연출자보다 어릴 때 업계에 입봉하기에, 동년배라도 더 선배인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신영진 촬영감독은 40대 중반의 많지 않은 나이로도 업계 내에서 알아주는 베테랑이자 선배의 위치였다.
그래서 그간 수많은 신인 감독과 작업을 했더랬다.
‘도래원···. 이대로 잘만 크면 조만간 SBC에서 대단한 스타 피디 하나 나올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제아무리 유명하고 유능한 연출자에게도 신인 시절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성장의 시작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신영진 촬영감독 같은 고인물에게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 * *
SBC의 종합 편집실.
드라마 15화의 종합 편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방송 드라마 편집은 제법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먼저, 촬영된 비디오 소스와 오디오 소스를 대략적으로 다듬는 과정이 선행된다.
이것을 가지고 파인 컷팅(Fine Cutting)을 진행한다.
최종본과 같은 리듬과 스피드로 조절하는 작업이다.
파인 컷팅이 끝나면 그 결과물을 약 10분 정도씩 잘라서
CG팀, DI(색보정)팀, 음악팀, 효과팀 등에 나눠 보낸다.
그 후 각 팀에서 결과물을 돌려주면, 편집실에서 다시 오디오끼리 하나로 묶고 비디오끼리 하나로 묶는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
그렇게 만들어진 가편집 본을 가지고 바로 지금,
연출자인 황태수 피디와 편집 감독이 종합 편집을 하는 중이었다.
“이야··· C팀 감독님 이번 15화 촬영분도 기대 이상인데요?”
편집 감독의 목소리가 상기되어 커졌다.
“군데군데 잘 점핑해서 전체적으로 텐션도 좋고, 그렇다고 너무 급하지도 않고, 버리는 컷도 별로 없이 경제적으로 잘 찍었네요.”
옆에 앉아있는 황태수 역시 이에 십분 공감했다.
편집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캬, 이 씬은 진짜 예술이에요!”
한나은이 기권하겠다고 여진 선생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부모님이 만들어 준 1등은 싫다고 서럽게 우는 씬.
그러자 한나은에게 차갑게만 굴던 여진 선생이 처음으로, 그녀의 모델로서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며 본인에게 직접 상기시켜준다.
보통 클로즈업으로 당겨서 찍는 게 흔한 연출이라면, 래원은 풀샷 속에서 오히려 둘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화면 속 순간만큼은 세상에 오롯이 둘만 존재하는 듯 보였다.
시청자들에게, 어쩌면 여진 선생이 한나은의 미래일 거라는 암시까지 주고 있었다.
래원이 신영진 촬영감독과 치열하게 상의하고, 설득한 협업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황태수는 지금 애써 말을 아끼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흡족한 함박웃음이 차올랐다.
편집 감독 역시 이를 눈치채고는 말을 이었다.
“제 기억에는, 저번 14화 분당 최고 시청률도 C팀 촬영 장면에서 나온 거 같은데···.”
“네. 그랬더라구요. 하하하. 제가 후배 복이 좀 많아요.”
“에이, 황 감독님이 사수로서 본보기를 잘 보여주신 덕이겠죠.”
황태수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청출어람(靑出於藍)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도래원한테는 충분히 잘 어울리는 말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붙이고 싶은 말이었다.
‘도래원 이 새끼···. 정말이지, 믿고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편집하는 내내 황태수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 *
드라마 는 어제 15화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데에 이어서,
드디어 오늘 최종화인 16화 방영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래원의 집.
래미는 오늘도 완전히 드라마 덕후 모드였다.
“꺄아아악! 키스했어!!! 드디어!!!”
정건후와 한나은의 로맨스를 응원하던 래미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찐한 키스 씬을 보며 행복해했다.
곧이어 온전히 혼자 힘으로 서울패션위크 F/W의 오프닝과 엔딩 런웨이에 서게 된, 정건후와 한나은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느덧 중간 광고 타임.
래미가 벌떡 일어나더니, 래원이 지난주에 촬영장에서 받아온 텀블러와 수건을 꺼냈다.
그 텀블러에는
[♥청춘 런웨이 스텝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와 유하나 배우의 싸인이 새겨져 있었다.
유하나가 직접 스텝들에게 돌린 선물이었다.
도종건의 팬클럽에서 서포트해 준 수건에는
[★청춘 런웨이★]가 새겨져 있었고, 도종건 배우의 얼굴이 크게 수놓여 있었다.이 둘을 서둘러 래원의 손에 쥐어주고, 목에 둘러주는 래미.
“도래미, 뭐해?”
래미는 래원의 옆에 딱 붙어서 휴대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들었다.
“우리 반 애들한테 이 드라마 우리 오빠가 찍은 거라고 자랑했단 말야. 인증샷 보여줘야 해.”
찰칵-
래미는 신나보였다.
폰 카메라의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래원의 텀블러와 수건에 적힌 문구가 잘 보이게 셀카를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아, 쫌! 웃어 봐, 오빠.”
래원은 어색하고 무안했지만 나름대로 오빠 노릇을 하겠다고 활짝 웃어주었다.
찰칵- 찰칵-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우리 오빠 웃으니까 참 자알 생겼다.”
이윽고. 중간 광고가 끝난 후 16화의 나머지 2부가 시작됐다.
래미는 화면에서 두 눈을 떼지 못하는 한편,
손으로는 폰을 들고 토크톡 채팅방과 드라마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실시간 반응을 체크하고 있었다.
“와아! 오빠, 반응 대애박!! 내가 읽어줄게.”
래미는 TV를 보랴, 폰 화면을 읽으랴 정신없었다.
“‘엄하늘 의 메릴 스트립 포스나는데?’ 라네. 이거 나도 완전 동감!”
래원은 엄하늘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 ‘종거니가 런웨이를 찢으셨다! 거의 인생 드라마 수준!’ 이라는 반응도 있다.”
“어휴, 도종건 그 새끼···.”
래원은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으나
좋은 결과 덕인지 힘들었던 과정 역시 추억으로 미화되는 듯했다.
“푸하하! 이 말도 웃기다. ‘나으니 저렇게 이쁘게 찍어주신 감독느님 감사합니닷!! 덕후는 울어욧!!’ 이래. 이 장면 누가 찍었어?”
래원은 래미를 향해 씨익 웃으며 검지와 중지로 브이자를 그려 보였다.
“진짜아?? 진짜 오빠가 찍었어? 내일 애들한테 또 자랑해야지!”
래원은 이전의 삶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꿈에 한걸음 가까워진 것 같아 뿌듯했다.
다시 주어진 기회로 래미와의 이 행복을 생생하게 누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형언할 수 없이 감사했다.
* * *
같은 시각.
다른 배우들과 스텝들도 저마다의 공간에서 마지막 16화 방송, 그 유종의 미를 즐기고 있었다.
엄하늘의 펜트하우스.
거실의 벽면 가득 걸린 85인치 TV에는
엄하늘 본인이 실시간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커다란 안마 의자에 앉아 이를 보고 있는 엄하늘,
그리고 그 옆 소파에는 그녀의 소속사 ‘화이트 엔터’의 마 대표가 앉아 있었다.
“오빠, 내 말이 맞지? 배우 마음 움직일 줄 아는 연출부라면, 시청자들 마···.”
“시청자들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구? 그래 맞네. 이번에는 하늘이 네가 이겼다. 다행히도.”
“그치? 내 안목이 그냥 안목이야? 보통 배우들이랑은 다르지.”
“푸하하. 그래, 인정.”
두 사람은 한껏 들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영화 밀어내고 이거 들어간 건 백번 천번 잘한 일이었어.”
“그러게. 그런 블록버스터가 크랭크인이 무기한 연기될 줄 누가 알았냐?”
엄하늘이 불현듯 마 대표에게 물었다.
“차기작은?”
“사무실에 드라마 대본이랑 영화 시나리오가 아주 그득그득해. 쌓였다, 쌓였어. 이번엔 장르나 역할도 엄청 다양하게 들어왔더라. 너 청춘 런웨이로 연기 스펙트럼 하나는 확실하게 넓힌 것 같어.”
“혹시··· SBC 연말이나 내년 봄 편성 중에 대본 들어온 건 없고?”
“뭐? 또 SBC랑 하게?”
마 대표가 화들짝 놀라며 되묻자, 엄하늘 답지 않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 그럼 안 돼?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그냥, 뭐, 이번 드라마 잘 돼서 SBC랑 관계도 다시 좋아졌잖아. 대본 봐서, 뭣보다 괜찮은 감독이 연출하면 SBC랑 또 할래.”
“수상한데···. SBC랑 내가 모르는 뭔가 딴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엄하늘은 괜스레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딴 이유는 무슨···. 어? 종방연 문자 왔다!”
[ 의 모든 배우 및 스텝분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 저녁 6시에 있을 종방연을 안내해 드립니다.– 장소: ‘저기압이면 고기앞으로’ 여의도점 ]
* * *
래원은 간만에 모닝콜 알람 없이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오늘부터는 프러덕션에 속해 있지 않으니 준비해야 할 일도 없었고, 오늘만큼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 종방연 참석 전까지 다른 스케줄도 없는 하루였다.
침대 위 이불 속에서 뒹굴뒹굴하며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어제자 막방 16화의 ‘분당 시청률 표’가 메시지로 와 있었다.
오늘로 세 번째였다.
래원이 C팀 감독으로 찍었던 14화부터는 황태수 선배가 이렇게 방영 다음 날 아침마다 분당 시청률 표를 챙겨주었다.
[황PD] 네가 찍은 장면의 분당 시청률 추이를 꼭 체크하고 복기해봐라! 시청자들 호흡 익히는 연습에 이만큼 좋은 게 없어~황태수의 이 메시지는 볼 때마다 래원을 힘 나게 했다.
이전 삶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대우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래원이 ‘황태수가 밀어주는 후배’ 라인에 들어가게 됐다는 무형의 증표 같은 것이었다.
이제 곧 부장이자 CP(Chief Producer) 직함을 달게 될 황태수는, 훗날 어쩐 일인지 차기 국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현재 김 부국장과 최지철 부장은 자기들이 차기 국장/부국장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실상은 둘보다 아래 있는 황태수의 이름이 국장 명패에 먼저 새겨지게 될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황태수 선배 눈에 든 거 같다.’
래원은 무심히 누워서 폰으로 16부의 분당 시청률 표를 마저 확인했다.
“헐!!??”
돌연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래원.
잠이 덜 깨서 잘못 본 건가?
믿을 수 없는 숫자와 시청률 추이에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기대 이상의 숫자,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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