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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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수 선배의 비기(祕技)
16화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면서 동 시간대 1위, 17%로 막을 내린 드라마
이 17%는 황태수 선배가 찍은 엔딩 장면의 기록이었지만,
래원의 C팀 장면들은 시청률이 우상향 곡선을 그릴 수 있도록 변곡점 역할을 해주었다.
지금 래원의 폰 속에 확대된 분당 시청률 표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래원이 찍은 씬들에서는 하나같이 시청률이 오르는 구간이 만들어졌고, 그중 정건후와 한나은이 여진 선생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16%까지 기록했다.
래원은 이제 폰 화면을 끄고는, 침대 위에서 큰 대자를 그리며 기지개를 켰다.
몸은 물론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잘하고 있어. 숫자와 사람 모두 잡는 인생, 이번에는 반드시 해낼 거다.’
* * *
이른 저녁,
여의도의 고깃집 [저기압이면 고기앞으로]
종업원들은 업장 전체를 통으로 대관한 VIP 단체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고깃집 앞에는 기자들이 미리부터 한가득 대기 중이었다.
드라마 의 종방연 정보를 발 빠르게 입수한 것이다.
6시가 가까워져 오자 ‘청춘 런웨이’의 얼굴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기자들을 향해 인사하며 포즈를 취한 후 고깃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덧 배우들과 스텝들이 거의 다 모였고,
오겹살을 푸짐하게 불판 위에 올리고는 다 같이 술잔을 들었다.
“흥!해도 청!춘, 망!해도 청!춘”
“흥청망청!!!!!”
연출을 맡았던 황태수 PD의 건배사로 본격적인 종방연이 시작됐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다고 했다.
촬영 하는 동안 크고 작은 사고도 있었지만, 같은 시간대 1위로 시작해서 1위로 끝난 드라마 종방연답게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형, 우리 첫 작품, 정말 수고했다. 자축!”
래원의 옆자리에는 동기인 유찬이 앉아있었고
둘은 서로의 잔이 빌 때마다 챙겨주었다.
이 테이블에는 신영진 촬영감독을 비롯한 헤드 스텝들이 포진해있었다.
“이번에 우리 조연출들 수고 많았어.”
“특히 래원 조감독, 아니지··· 래원 감독 활약이 대단했지?”
“래원 피디, 올해 들어온 신입이라며?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타 방송사에서 왔어? 경력직이야?”
“하하. 아닙니다. 선배님들, 감독님들 덕분에 다행히 신입 티 안 내고 잘 버틸 수 있었어요.”
“에이, 겸손 떨면 재미없어. 사실 첫 촬영 때부터 1번 조연출이나 다름없었지. C팀도 잘 해내고.”
“하하하. 정말 과찬이십니다. 이번에 운도 좋았고, 인복이 따랐어요. 현장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우리 막내 래원이··· 일루, 일루 와봐아!!”
멀찍이서 김 부국장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래원에게 손짓했다.
“부국장님한테 가봐.”
“가보겠습니다.”
래원은 헤드 스텝들 틈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고 김 부국장이 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곳에는 공공연하게 김 부국장 라인인, 최지철과 황태수도 함께였다.
당연하게도 이 국장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래원까지 네 사람이 둘러앉은 테이블.
넷은 술잔을 채우고, 건배한 후 원샷을 때렸다.
“오늘 같은 날, 인혁이가 없어서 아쉽네요.”
최지철이 허전해하자
김 부국장도 애석해했다.
“짜식, 촬영장에서 조심 좀 하지···. 잘 회복됐대?”
“다음 주에는 복귀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합니다.”
황태수의 대답을 끝으로 이들은 화제를 돌렸다.
옆에 있는 래원 또한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하인혁에게 당한 건 셀 수 없이 많으나,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는데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게 얼마나 속상할지···. 왠지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었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래원은 바람도 쐴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 다른 테이블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엄하늘 배우였다.
엄하늘은 래원을 따라 나왔다.
“피디님.”
“아, 하늘 배우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래원은 멀쩡했지만
엄하늘의 두 볼은 분홍빛이었다.
살짝 취기가 있는 듯했다.
“나 아직도 피디님한테 그냥 배우님이에요? 말 좀 편하게 할 순 없나···?”
“하하. 다음번에 뵈면 그렇게 할게요.”
“그 약속, 꼭 지켜요. 래원 피디 연출 입봉작 주연은 내가 찜했으니까.”
의외의 반응이었다.
“와우.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열심히 해야겠네요. 빨리 입봉할 수 있게.”
“고마워요. 처음 만났을 때 한 약속 지켜줘서, 새로운 연기 할 수 있게 해줘서.”
“에이, 배우님이 잘해주신 덕분이죠. 인사는 저희 황태수 선배한테 해주세요.”
래원이 손사래 치자 엄하늘은 입을 삐죽였다.
“왜? 내가 진짜 고마운 사람은 도래원 씨인데?”
“··· 제가 감사하죠, 오히려.”
래원은 엄하늘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하늘아, 겉옷이라도 입고 나오지. 감기 걸려! 이제 가을이야.”
엄하늘을 챙기러 나온 마 대표였다.
래원은 그와 엄하늘에게 살짝 묵례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엄하늘은 래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 * *
종방연을 기분 좋게 끝낸 후, 늦은 귀가.
띡.띡.띡.띡.띠릭-
래원은 오늘도 조심스레 현관 번호키를 눌렀다.
오늘 래미는 놀이공원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이미 낮에 래원에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톡으로 잔뜩 보내줬더랬다.
피곤했는지 방바닥에 백팩과 교복을 던져놓은 채 곤히 잠이 든 래미.
래원은 래미의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고는, 백팩과 교복을 가지고 나와 정리해주었다.
교복을 세탁기에 넣기 위해 여느 때처럼 주머니를 확인하는데,
툭-
마이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래원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고,
‘설마 또 그 새끼 쪽지?’
바닥에 떨어진 하얗고 네모난 종이를 주워들었다.
[원더빅]이라고 쓰인 명함이었다.
“캐스팅 명함?”
래미가 연예기획사 명함을 받아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래미의 방을 청소하다가 몇 번 발견한 적이 있었다.
래미가 직접 말해준 적은 없었지만.
래미는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내 동생이지만, 래미가 귀엽긴 하지···.’
객관적으로 출중한 미모 덕에 어렸을 때부터 지금도 여전히 인기가 많다.
어릴 때 래미는 끼가 있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남들 앞에서 노래도 잘하고, 친구들과 가요 프로를 보면서 춤추는 것도 좋아했다.
지금처럼 남들 앞에서 얌전해진 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였다.
시기상 사춘기 탓이려니 했지만, 돌이켜보니 분명 그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래미의 길이 이쪽인 걸까?’
래원은 ‘원더빅’이라 쓰인 연예기획사 명함을 꽉 쥐며 생각했다.
‘허나 절대 쉽지 않은 길이다.
재능과 운이 같이 따라줘야 하는 일이지.’
지난 12년간 방송국에서 일하며 듣고 보아왔던 연예인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래미의 진로를 함부로 설계할 권리는 없어. 래미가 자기 꿈을 찾을 수 있게끔, 여러 자극을 받고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더 넓은 세상에 노출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 * *
다음날.
래원은 오후에 조퇴를 쓰고 은행에 들렀다.
직장인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제 SBC에 입사한 지 7개월이 됐다.
풀로 당겨서 35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았다.
원래 계획은 과거의 매제와 다시는 마주치지 않도록, 당장 이사부터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래미가 받아온 연예 기획사 명함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연초에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래미가 예술고 같은 특목고를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고 입시에 대해 래미랑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상의해야겠어. 래미의 진학이 결정되면 다니기 편한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니···. 그전까지는 이 3500만 원 불리는 거에 집중해야겠다.’
래원은 주식 어플을 켰다.
드라마밖에 모르던 삶이라 기억하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두 가지 이슈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먼저, 스튜디오 포닉스.
연말부터 내년까지 줄줄이 넷플릭스와 다른 OTT에 신작 드라마를 내며 상한가를 치게 될 제작사이다.
그리고, 유성 그룹.
이 세계적 대기업의 수장이 몇 주 전 별세했다.
방송국과 집만 오가던 래원이었으나, 유성 그룹이 자율주행 전기차 ‘갤럭시 카’를 개발한다는 소식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오던 수장의 공석으로 지금 유성 그룹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연말이 오기 전에 반등할 것이다.
래원은 고민 끝에 이 두 주식을 1500만 원씩 산 후, 나머지 500만원은 비상금으로 갖고 있기로 했다.
* * *
드라마는 끝났어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
황태수는 를 끝으로 이제 PD가 아닌 CP로 승진했다.
래원이 출근하니 황태수 자리의 명패가 ‘부장’ 직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래원은 황태수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출근한 흔적만 있을 뿐 부재중이었다.
“래원아? 태수 봤냐?”
최지철의 물음에 래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녀석, 어디 갔지? 이거 오전 중으로 사장실에 보고 해야하는데···.”
“······.”
“아아, 씨··· 내가 가야 하나? 아침부터 그 불여시 얼굴 보기 싫은데···.”
“혹시 제가 해도 되는 거면, 제가 보고드릴까요?”
난색을 보이던 최지철의 얼굴이 래원의 말 한마디로 밝아졌다.
“··· 그래도 되겠지? 이제 너 정도면 신입 딱지는 뗀 거니까?”
“네, 시켜만 주세요.”
“좋다, 우리 래원이가 다녀오자.”
* * *
SBC 건물의 제일 높은 층, 13층.
사장실로 가려면 먼저 비서를 통과해야 한다.
비서는 전화를 들고 사장실을 향해 전언했다.
“드라마국에서 왔습니다.”
– 드라마국? 누군데? 지금 회의 중이라 안 된다고 전해.
“도래원PD님 입니다.”
– ··· 도래원? 아, 그 친구라면, 지금 바로 들여보내.
비서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사장실.
사장이 앉아있는 소파 상석 건너편에는 의외의 손님,
황태수가 있었다.
‘···? 뭐지? 태수 선배는 사장실에 올라오면서, 왜 최지철 선배한테는 암말도 안 했을까?’
래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황태수도 눈인사를 건넸다.
“도래원 피디? 반가워요. 얼굴 보니까 면접 때 봤던 거 기억나네요.”
SBC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배미란 사장.
한 눈에도 여장부의 위용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래원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최지철 부장이 전한 서류철을 내밀었다.
“사장님께서 지시하신 자료라고 들었습니다.”
“네, 고마워요. 드라마국 일은 할 만해요? 듣자 하니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배 사장은 미소지은 채 서류철을 받아들며, 황태수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에 황태수가 뿌듯한 얼굴로 래원에게 눈길을 주었다.
“훌륭한 선배님들을 모시는 덕에 많이 배우면서 적응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봅시다.”
래원은 다시 한번 배 사장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황태수에게도 가볍게 묵례한 후, 몸을 돌려 사장실을 나왔다.
조용히 문을 닫고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나가려는데,
“박수받으면서 내려온 소감이 어떠신가, 황 부장?”
“사장님이 도와주신 덕이죠. 덕분에 ‘청춘 런웨이’.. 큰 문제 없이 잘 마쳤습니다.”
사장실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고 미끄러졌는지 문틈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사장님이 도와주셨다고?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
그 사이로 배미란 사장과 황태수의 대화가 새어 나왔다.
“황 부장은 이번에 부장 진급만 하고 당분간 연출은 계속해도 될 거 같은데? CP는 아직 이르지 않나?”
“저 연출 욕심 크게 없습니다. 저희 드라마국에 저보다 능력 좋은 후배들도 많으니 양보해야죠. 데스크에서 서포트 해주고 싶습니다.”
비서가 화장실에라도 갔는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래원은 의도치 않게 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고,
“그럼 자네 그 능력, 더 높은 데스크에서 발휘해보게. 이제 내가 팔 걷어붙이고 도울테니.”
그렇게 깨달을 수 있었다.
‘······?!!’
SBC 사장과 황태수의 진짜 관계를.
이것이 바로 황태수 선배가 그렇게 빨리 차기 드라마국 국장 자리에 오르고, 연임까지 할 수 있었던 비기(祕技)였던 것이다.
래원이 쥐고 있던 은 동아줄이 금 동아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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