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80
래원 역시 이 소식을 접했다.
인천 공항에 발을 디디자마자 휴대폰을 켜서 맞닥뜨린 뉴스가 이것이었으니까.
래원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쯤 황태수 선배는 아주 신나셨겠네.”
래원은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김윤하 작가에게 말이다.
“작가님.”
– 감독님, 잘 지내시죠? 요즘 비엔나 로케 중이시라면서요?
“지금 막 인천 도착했어요.”
– 아아···. 부러우려다 말았네요.
“지협 선배랑 드라마 준비는 잘 되고 계세요?”
– 시간이 촉박하다는 거 빼고는 다 순조로워요. 시간이 원수죠.
“하하하. 축하드려요.”
– 네? 뭐가요?
“신석영PD의 덫에 걸리지 않은 거요.”
– 아아, 하하하. 그러게요. 우리 드라마랑 겹쳤으면 진짜 힘 쭉 빠졌을 거 같아요. 가뜩이나 지금 시간도 부족한데···.
“SBC 드라마국 안에서도 윤지협 선배 작품에 주목도가 올라가고 푸쉬도 조금 더 해줄 거예요. SBC는 될 작품에 더 밀어주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 어휴, 그럼 금토 미니는 지금 초상집이겠네요···.
“지금 작가님이랑 지협 선배네 코가 석 자예요. 누가 누굴 걱정하십니까? 하하.”
– 그래두 어느 방송사건에 토요일 10시 팀들은 지금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것 같아서요.
“뭐 어쩌겠어요···. 억울하면 신석영 만큼 잘나가는 감독 돼야죠.”
– 하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파이팅 할게요. 근데 어쩐 일이세요? 용건 있어서 전화하신 거 아녔어요?
“특별한 용건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주선자로서 진행 상황 확인차요.”
– 아닌데···. 용건이 있는 목소리신데요?
김윤하는 잘 알고 있었다.
바쁜 래원이 별다른 목적 없이 전화하거나 시간을 쓰는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저 영국 드라마 찍는 거요. 그거 소설이 원작이거든요.”
– 네. 들었어요.
“각색 작업에 참여하게 됐거든요.”
– 와, 정말요? 감독님 대본 보시는 것도 그렇고, 작가적인 감각이 있으신 분이라 잘하실 거예요.
“저 지금 막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다시 비행기 태우시는 겁니까?”
– 진짜예요. 저랑 작업할 때도 느꼈거든요. 작가적 안목이 있으세요, 감독님은···. 그러니 잘하실 거예요.
“하하.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 그거 때문에 전화하셨구나! 초고 나오면 어디 보내줘 봐요. 제가 모니터해드릴게요.
역시 김윤하는 래원과 죽이 잘 맞는 작가였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다.
“고마워요. 전에 사준다던 비싼 밥. 이걸로 칠게요.”
전화를 끊은 후,
래원은 입국 수속을 마쳤다.
김윤하의 입에서 먼저 흔쾌히 이러한 소리를 듣고 나니, 다른 작가들도 자신의 대본을 거절하지 않고 모니터 해줄 거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 래원.
“솔직히 나만큼 여러 작가랑 두루두루 사이좋은 감독이 드물긴 하지.”
다 이런 때를 위해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래원은 안정원과 헤어지고 집 방향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라타고서야, 밀린 카톡을 확인했다.
특히 단톡방에 카톡이 쌓여있었다.
[이재윤] 카메오요? 저는 브잇걸을 추천합니다!10부작 중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는 ‘5화’에 등장해서 드라마 내적, 외적으로 텐션을 불어넣어 줄 카메오.
중요하다면 중요한 문제였다.
이재윤은 기나긴 카톡 행렬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브라이트 걸스를 추천하고 있었다.
래원은 그의 속셈을 금방 눈치챘다.
“짜식···. 이나 만나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촬영장에서부터, 당시에는 남매로 출연했던 이나를 보는 이재윤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더랬다.
래원은 그때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서연지] 여배우들 중에서 원하시면, 감독님이나 작가님 원하시는 사람 있으면 말씀 주세요~! 전 제가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보다 그게 마음이 편해서요···!전생에도 인맥 넓기로 유명한 서연지다웠다.
[이재윤] 크으! 추천만 하면 다리 놔 주시는 건가요, 누님? [서연지] 응응. 가능한 친구면. [이재윤] 그럼 전현지, 송영애 이런 누님들도 가능하신 거? [서연지] 현지는 스케줄 없으면 바로 와줄 거고, 영애는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재윤] 역시 탑스타 포스-! 보겸이 형은요? [곽보겸] 나도 함부로 추천하면, 추천 못 받은 놈들이 서운해해서···. 그냥 다른 분들 추천에 따르겠습니다! [이재윤] 세라 누나는요? 누구 원하는 사람 있어요? [민세라] 지금까지 나온 사람 중에는 나도 브잇걸. [이재윤] 아아, 누나 같은 소속사구나! [민세라] 그것도 그렇고 멤버 중에 친한 동생도 있고. [이재윤] 할 수 없네요ㅋ 브잇걸로 가즈아~!! [서연지] 재윤이 너 전작에 이나씨랑 했었잖아? [이재윤] 넵! 제가 이 구역의 성덕입니당! 리보좌♥금발좌♥피카좌♥숏컷좌♥수십 개 쌓인 카톡을 모두 확인한 래원은,
맨 마지막에 메시지를 남겼다.
래원에게도 나쁘지 않은, 아니 굉장히 편안한 카드였으니까.
게다가 지금 활동 막바지에 접어든 브라이트 걸스의 앨범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잃을 것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다이아’는 방영 전에 미리 해외 판권 판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동남 아시아 쪽에는 이미 슬슬 접촉 중인 것을, 래원 역시 잘 알았다.
애초에 곽보겸과 서연지 캐스팅을 결정할 때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브잇걸이 나와주면 해외 판권 판매에도 보탬이 될 거 같은데···?”
래원은 곧장 박현만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컷! 다시 갈게요.”
셋트장.
월미도 패밀리 배우 민세라, 곽보겸, 서연지, 이재윤과,
카메오 브라이트 걸스 멤버 노노카, 이나, 래미, 솔라까지,
총 8명의 배우가 5화의 클라이막스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월미도 패밀리 vs. 브라이트 걸스
각종 경품을 차지하려 두 세력이 게임 경합을 벌이는 장면으로,
브라이트 걸스는 극 중에서 대학생 신분의 같은 과 친구들이라는 설정이었다.
“래미야, 조금 더 차분하게 캐릭터를 잡아보면 어때?”
“여기서 더?”
이미 한 차례 래원의 디렉팅을 받은 바 있는 래미였다.
“오ㅃ.. 아니, 감독님! 이거 경품이 막 드럼세탁기, 스타일러, TV 이런 건데 흥분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의욕적인 모습은 좋은데, 래미야, 첫 번째로 우리 드라마 장르는 코미디가 아니야. 두 번째로 너는 지금 카메오로 출연 중인 거고. 세 번째로, 극 중 캐릭터가 ‘낯가림이 심한 대학생들’이라고 대본에 쓰여 있으니까 톤을 조금만 다운시키자.”
“네···.”
래미는 반박할 말을 잃고 푹 풀이 죽었다.
래원이 헤드셋을 다시 쓰자,
배우와 스텝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 섰다.
“바로 들어갈게요. 레디, 액션!”
모니터 화면을 보는 래원의 미간이 점점 더 찌푸려졌다.
연기를 곧 잘하는 래미와 이나에게 대사를 몰아줬더랬다.
특히 래미가 제일 연기 경험이 많기에 대사도 장면도 많았는데, 그 누구도 예상치못한 의외의 복병이 래미였다.
‘노노카나 솔라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래미가 자꾸 걸리네···. 래미가 이런 중간 톤의 연기에 약하구나···. 아예 진지한 정극이나, 아예 확 가벼운 로코처럼 확실한 스탠스에서는 잘하는데···.’
래미는 방금 지적을 받은 것 때문인지 움직임이 움츠러들었고, 반대로 대사 톤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해서, 오케이 사인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컷!”
이에 래원이 헤드셋을 벗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현서야, 15분만 쉬었다가 가자.”
눈치 빠른 임현서가 재빨리 복식 호흡으로 촬영장 곳곳에 외치기 시작했다.
“15분만 쉬었다가 마저 가겠습니다! 15분 휴식이요!”
감독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래원.
잠시 스트레칭을 한 후, 주위를 둘러보며 래미를 찾았으나 래미는 보이지 않았다.
민세라도 안 보이는 거로 봐서는 둘이 함께 자리를 뜬 것 같았다.
‘그래, 이럴 때는 나보다 같은 배우들한테 조언을 듣는 게 낫지.’
이윽고, 래원 역시 잠시 머리를 비우고자 세트장 바깥의 외진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으로 말이다.
지이잉——
래원의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가 왔다.
[안정원] 감독님, 레이 쿠퍼 디자이너한테 세트 시안이 2개가 왔네요. 저번에 비엔나 회의 때 이야기 나온 거 반영해서 수정한 시안이랑, 아예 새로운 디자인으로, 총 2개요. [래원] 와우! 기대되네요! 오늘 촬영 끝나고 검토해서 내일 밤이나 모레까지 컨펌할게요. [안정원] 예! 수고 많으십니다. 검토해보시면서 제가 도울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시고요.래원은 바로 세트 디자이너가 보냈다는 시안 메일을 확인할까 하다가,
“괜히 집중력만 분산되겠지? 지금은 생각만 하자.”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촬영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나지막이 래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이해돼?”
“어.”
“좋아. 그럼 다시 한번 해봐.”
세트장 건물 한쪽 구석에서 이재윤이 래미를 데리고 연기를 코치해주고 있었다.
‘재윤이 녀석, 꽤 하네?’
래원의 디렉팅을 벗어나지 않은 연기 톤.
이재윤은 래미가 소화할 수 있는 언어로, 배우들끼리 통할 수 있는 느낌으로 이를 전하고 있었다.
과연 이재윤은, 어린 나이에 대학로 아이돌로 급부상해서, 훗날 영화계와 드라마계까지 누빌 스타의 재목 그 자체였다.
‘그래, 이재윤은 전생에서도 타고난 것 이상으로 노력파였어.’
노력으로 실력을 만들어낸 사람은,
다른 이의 실력 역시 끌어올릴 방법을 아는 듯했다.
이재윤에게 몇 번 코치를 받은 래미의 연기력과 대사 처리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지켜보던 래원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도래미 잘했어! 그거야! 방금 대사 톤 완전 최고다!”
“진짜?”
“감독님 앞에서도 이 정도만 해. 아까 감독님 디렉팅이 딱 이거였거든. 칭찬해주실 거야.”
“웅! 재윤 오빠, 우리 오빠한테는 이렇게 나 가르쳐준 거 비밀인 거 알지?”
“푸하하. 감독님한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어? 알았어!”
이재윤은 피식 웃더니 커다란 손으로 래미의 작은 머리를 부스스 쓰다듬었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나 너네 스타일리스트 누나한테 혼나겠다. 으으···.”
순간, 이 광경을 본 래원의 머릿속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한가득 터졌다.
‘뭐, 뭐야···. 재윤이가 관심 있는 게 이나가 아니라, 설마···. 설마 래미였어?’
래원은 예리하게 눈을 치켜뜨며, 이재윤의 저 따스한 눈빛과 표정이, 팬심인지 그 이상의 감정인지를 감별하기 시작했다.
‘에이···. 아냐. 아닐 거야···.’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74화 – 리디북스
래미는 이재윤과 함께 다시 촬영장 안쪽으로 들어갔고,
‘재윤이 녀석···. 앞으로 지켜봐야겠어.’
래원 역시 방금 본 두 사람의 모습을 곱씹으며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슛 들어가기 전에, 리허설 다시 한번 해볼게요.”
래원의 말에 4명의 주연 배우와, 4명의 브라이트 걸스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래미의 곁에는 스타일리스트가 붙어서 래미의 엉클어진 머리를 재빠르게 손질해주고 있었다.
이에 래원은,
“이재윤!”
괜히 이재윤을 트집 잡고 싶어졌다.
“네?”
“네 대사부터 해보자.”
“넵!”
그러나 이재윤은 연기는 물론 태도나 매너까지 나무랄 데가 하나도 없었고,
게다가 이번에는 래미의 연기도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조금 전에 래원이 우연히 목격한 둘의 연습 모습보다도 한결 나아졌다.
브라이트 걸스 무대 활동을 한참 하다가 와서 그런지 전보다 연기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지금은 움직임에 힘이 빠지면서 대사 톤 처리도 한층 자연스러워졌더랬다.
“좋네. 너무 좋다. 래미야, 좋아졌어. 잘하고 있으니까 조금 더 자신감 갖고 슛 들어가자.”
“정말..요?”
“어. 이대로만 하면 돼.”
래원의 칭찬에 래미가 환하게 까르르 웃으며 얼굴에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었다.
그런 래미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이가 래원 말고 한 명 더 있었으니 바로 이재윤이었다.
‘분명 뭔가 있네, 뭔가 있어···.’
하지만 래원은 그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래미를 바라보는 이재윤의 눈빛이 따스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이재윤이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래원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무슨 생각이냐?!’
다시 촬영에 집중하면서,
여기저기서 안도하는 스텝들 사이로 힘차게 외치는 래원이었다.
“자아, 다시 들어갈게요. 레디, 액션!”
* * *
“너, 이재윤이랑 무슨 사이냐?”
“무슨 사이?”
집에 들어가는 차 안.
래원의 옆자리 조수석에는 래미가 타고 있었다.
래미는 간만에 숙소가 아닌 래원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늘 밤과 내일까지 집에 머물기로 했다.
브라이트 걸스의 카메오 촬영분이, 처음에는 난항을 빚었으나 마무리는 순조롭게 빨리 끝나서, 내일 하루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이재윤이랑 무슨 사이냐고!”
“그냥 동료 배우지 뭐야.”
“아냐. 뭔가 있어. 누굴 속이려고 그래, 도래미?”
“아···. 이거 진짜 비밀인데···.”
래미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망설였다.
“오빠한테 비밀은 무슨···.”
“그럼 진짜 비밀 지켜줘야 해!”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