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7
같은 시각.
래원은 민세라와 래미를 배웅하고는,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느..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래원의 열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목을 정했으니, 다음은 기획 의도를 써 내려갈 차례였다.
– SNS로 타인의 삶을 너무나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 동시에, 타인의 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구석 깊숙이로 가려지는 시대.
이것은 한 남자가 어느 탑 여배우의 일기장을 손에 넣으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일기를 읽는 현재형의 남자와,
일기를 쓰는 과거형의 여자.
두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이 일기장을 매개체로 얽히며, 머나먼 유토피아처럼 보였던 타인의 삶이 가까운 현실로 진실이 되어 다가오기 시작하는데···.
이어서, 줄거리와 인물을 정리해나갔다.
래원의 머릿속에 퍼져있던 이야기가 활자화되며 서서히 질서를 찾아가고 있었다.
낯선 기차역에서 만난 익숙한 민세라.
익숙한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낯선 미소.
그때 그 어떤 이미지가 래원의 머리에 강렬하게 꽂혔더랬다.
“이번에는 나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남녀 간의 욕망을 넘어선 휴머니즘에 대해서···.”
이것은 민세라에게 시작해서, 오늘 그녀와 래미에게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였다.
타닥, 탁, 탁, 타다닥, 타닥——
고요한 어둠 속.
한참 동안 래원의 타자기 소리만 울려 퍼졌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어느덧 창밖에 해가 떠올랐고,
그 후로도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드디어 밤을 새우며 쓴 4장짜리 시놉시스가 완성됐다.
개운한 기분을 느끼며 기지개를 시원하게 켠 래원은,
“일단 실장님한테 보내볼까?”
이를 안정원에게 첨부해서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래원] 실장님, 이거 제가 정리해본 시놉시스인데요, 모니터 요청드려요.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자기도 모르게 곡소리를 내며 스트레칭을 하는 래원이었다.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저녁 일정 전에 잠깐이라도 눈 붙여야지.”
곧장 화장실에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지이이이잉———
예상대로 안정원 실장의 전화였다.
반응이 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것이다.
“참 빠르다, 빨라. 5분 대기조야, 뭐야···.”
피식 웃고는 혀를 끌끌 차는 개원.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의 흥분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 와아···. 감독님! 이거 너무 괜찮은데요? 요즘 사회 분위기에도 맞고, 다수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소재고요.
“실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가는데요?”
예상했던 것보다 격한 반응에 래원은 피곤이 싹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저 빈말 안 하는 거 아시잖아요. 진심 재밌어요. 가능성도 분명하게 보이고···.
“고마워요. 그러면 차기작 기획안으로 발전 시켜 볼게요.”
‘차기작’이라는 말에 안정원은 잠시 움찔했다.
– 예, 좋습니다. 기획안 쓰실 때 혹시 자료 조사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직접 시간 쓰지 마시고 저한테 요청 주세요.
“그럴게요. 좋은 밤 되시고 다시 연락 드···”
래원은 연신 하품이 났지만 그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리지 않게 신경 썼다.
비로소 통화를 마무리 지으려는데,
– 감독님! 잠시만요!
안정원이 소리치며 말을 이었다.
– 이거요. 드라마 말고 영화로 만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이 말은, 래원의 차기작이 한국 드라마라고 믿고 있는 이선필 본부장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였으나,
안정원에게는 ‘스튜디오 다이아’보다 ‘도래원’이 중요했다.
“영화..요?”
래원이 반문했다.
– 네. 미니시리즈의 확장성까지 보이지는 않아서요. 괜히 길게 늘이는 것보다는, 2시간 내외의 영화로 밀도 있게 보여주는 게 재밌을 거 같아서요.
래원이 생각하기에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이 서사의 사이즈 자체가 영화나, 끽해야 40분짜리 6~8부작 미니시리즈 정도에 적합하긴 했으니까.
“그 선택지도 적극적으로 고민해볼게요. 영화 작업, 언젠가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 예, 뭐든 응원합니다.
“뭐가 되든 더 써 볼게요. 드라마 기획안이든, 영화 트리트먼트든.”
– 좋아요. 일단 쉬세요, 감독님! 수고 많으셨어요. 파이팅 입니다! 글 안 나올 때는 언제든 편하게 연락주세요. 안 풀리던 것도 같이 고민해보면 뭔가가 나올 테니까요.
이렇게 래원의 차기작 가닥이 잡히고 있었다.
한편,
래원과의 통화 이후,
안정원은 래원의 시놉시스를 테블릿에 담아 다시 읽고 또 읽어보았다.
“역시 보통이 아니셔···.”
래원이 차기작은 자신이 골라 보낸 기획안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안정원이었다.
허나 그녀의 확신을 보기 좋게 뒤집어버린 이 시놉시스에 그녀 역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래원 감독님은 애초부터 내 손 안에서 놀만 한 깜냥이 아니시라는 걸, 잠시 잊었었네···.”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 흔드는 안정원.
“그래서 내 발로 도 감독님을 직접 찾아갔고, 이렇게 계속 모시고 있는 거지만···.”
래원이 이 시놉시스를 기획안으로 발전시킬 동안, 안정원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래원을 서포트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애초에 눈독 들였던 투자사와 각색 작가를, 도 감독님 기획안에 붙여버리는 건···?”
안정원은 괜찮은 발상이 떠올랐는지,
, , 의 투자사와 작가 명단을 다시 뒤져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도 감독님의 흥미로운 시놉과, 감독님을 도와서 시간을 아껴줄 유능한 작가, 작품을 단단하게 받쳐줄 투자사···. 내가 열심히 뛰어서 조합을 잘 만들면, 역대급으로 근사한 그림 하나 나오겠는데?”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영화 작업도 하는지, 성과는 어땠는지, 유수의 영화 배급사와의 관계는 어떤지 확인 작업도 잊지 않았다.
드라마 대본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일단 이 명단 속의 작가와 투자사가 제안한 기획안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나, 연락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전략이 필요했다.
알맹이와 오리지널은 도래원의 것으로, 대신 그들의 자본과 시간을 끌어다 쓰기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다.
생각이 정리됐는지 안정원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시간 다 됐네.”
돌연 시계를 확인하더니,
거실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을 켜는 안정원.
TV 속에서는 이제 막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생방송 중계가 시작했고,
마침 드라마 주연 배우들 4인방이 레드카펫을 거니는 모습이 브라운관에 비치고 있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91화 – 리디북스
* * *
제62회 백상예술대상으로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 뉴스 탭,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이고 드라마 커뮤니티까지 후끈후끈 열기로 가득했다.
국내 드라마 업계에서 1년 중 가장 큰 축제와도 같았으니까.
팀 내에서 가장 먼저 수상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이재윤이었다.
수상 소감을 하러 무대에 올라간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드리웠다.
“유럽 여행 일정을 빠듯하게 소화하고 서둘러 귀국한 보람이 있네요.”
이에 시상식 장내는 웃음이 터졌고,
기사나 여론 반응도 그의 수상을 응원하고 축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 ‘제62회 백상’ 이재윤, 신인연기상 수상 “진흙에 불과했던 저를 진주로 만들어주신 도래원 감독께 감사드려” ]ㄴ 그러고 보니 이재윤 드라마 2개 다 도 감독이랑 했네?
ㄴ 도래원-이재윤 조합 존좋이야!
[ 대학로 아이돌에서 안방극장 프린스로 발돋움한, 백상 신인상 이재윤의 연기 발자취 (종합) ]ㄴ 감개무량..! 우리 재윤이가 이렇게 유명해져 버렸어요!!
ㄴㄴ 연극 끝나고 소수정예로 팬 미팅하던 시절이 그립다..!
ㄴ 우리 엄마가 드라마보다가 저 배우 누구냐고 물어서 봤더니 내 배우네? 내 배우 재윤이 최고야! 짜릿해!
조연상과 주연상 배우들이 차례로 공개된 후에는, 드라마 커뮤니티와 토크톡 채팅방에는 아쉬움의 물결이 파도쳤다.
[ 연♥보 커플의 연보랏빛 시상식 나들이! 레드 카펫 밀착 취재! ] [ “상은 못 탔지만 여신은 나야나” 드레스 자태 뽐낸 ‘월미도 여신들’ 민세라&서연지 ]ㄴ 존예+존잘들!!!
ㄴ 월미도의 선물에서 화장기 없이 나오던 분들이 이러시면 적응이.. 잘 되죠! 너무 좋아!
ㄴ 우리 마음속 수상자는 당신들♡
ㄴ 남주가 워낙 쟁쟁해서 곽보겸 못 탄 건 그러려니 하는데, 여주는 둘 다 잘했는데 아까비···.
ㄴ 민세라, 서연지는 이미 탄 적 있어서 밀렸나?
ㄴㄴ 서연지는 여주받은 적 있는데, 민세라는 여조였어!
ㄴㄴ 서연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에 여주 민세라가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ㄴㄴ 민세라 이번에 진짜 잘했는데 말이야ㅠ
시상식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도래원의 연출상과 최우수 드라마상 수상이 발표됐다.
대리 수상을 하러 무대에 올라간 이선필 본부장은 좋아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더랬다.
무엇보다 드라마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 백상 연출상-최우수 드라마상 ‘더블 크라운’ 달성! ] [ 도래원 감독, 유럽에서 백상 수상 감사 인사 전해 “좋은 드라마로 완성해주신 시청자분들께 영광 돌리고파” ] [ 도래원 PD, 현재 유수의 유럽 창작·배우진과 넷플릭스 영드 작업中 “국적을 초월한 사람 사는 이야기.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수상 소식과 함께 래원의 현재 작업 소식 또한 관심을 받았다.
이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는 단순한 영국 드라마가 아니었다.
‘도래원PD가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알려지며 기대를 모으기 시작했으니까.
* * *
어느덧,
거리의 빛깔이 다양해지는 런던의 가을.
감기 걸리기에 딱 좋은 계절이면서도, 선선한 바람이 사람의 마음을 왠지 모르게 흔드는 그런 날씨였다.
래원은 의 시놉시스를 결국, 영화 트리트먼트로 발전시키는 방향을 택했다.
서사의 사이즈 자체가 영화에 알맞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무엇보다 영화 작업에 대한 욕심을 이번 기회에 펼쳐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이유였으니까.
그 사이 의 마지막 에피소드 촬영도 마무리에 접어들며,
래원이 콘티 단계에서 공을 들인 장면 중 하나인, 마지막 편의 마지막 엔딩씬 촬영 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으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머릿속에 그려져요. 그러니까 태양이 배우 눈높이에서 수평으로 꽂혔으면 한다는 말씀이시죠?)”
촬영감독 션 파크는 래원이 그리는 그림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찾아봤는데요, 도 감독님. 이거는 원래 촬영 예정일에 찍기 힘들겠는데요?)”
“(그런가요?)”
“(네, 다른 것들 먼저 다 찍고 나서도, 몇 주 더 기다렸다가 찍어야 해요. 태양이 일출, 일몰에 최대한 수평으로 꽂히려면···. 다음 달 첫 주 화요일에서 목요일이면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구도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일정 조정 요청해야겠네요.)”
태양의 위치가 중요한 씬이었다.
때문에, 일출과 일몰 시각, 하루에 30분씩 단 두 번의 기회만 있는 셈이었다.
“(일정은 내달 첫주 화, 수 이틀 잡겠지만 되도록 화요일에 쇼부를 봐야죠.)”
“(그날 구름이 안 끼기를 빌어야겠습니다.)”
하루하루 더 쓸수록 제작비가 수천만 원씩 추가되는 상황.
“(그래도 몹씬이 아니라 다행이네요. 올리버만 대기하면 되니까.)”
영미권의 경우, 배우는 물론이고 스텝들의 인건비가 만만치 않았다.
허나 프로듀서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스튜디오 까날 쁠뤼’의 다리오였기에, 래원의 계획대로 모든 스텝과 [올리버] 안소니의 일정을 확보해주었다.
어느새 가로수의 나뭇가지가 앙상해지고 길거리에는 낙엽이 가득 쌓일 무렵,
션 파크와의 협업으로 철저하게 준비한 마지막 촬영일이 다가왔다.
며칠 전부터 래원은 기상국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다.
혹여 ‘맑음’으로 떴던 예보가 바뀌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다리오가 일찍이 영국 기상국으로부터 들은 ‘첫째 주의 주중에는 맑을 확률이 90%다.’라는 공식 예보를 래원에게 전했음에도 말이다.
드디어 화요일 새벽녘.
래원은 일어나자마자 하늘부터 확인했다.
온통 검지만 투명한 어둠.
안개도 구름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병원 세트장 앞에는, 이미 촬영팀이 나와 레일을 깔고 있었다.
잠시 후, 안소니도 등장했다.
메이크업과 모든 세팅이 끝난 상태였다.
단, 30분의 기회.
이를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면
모두가 완벽하게 준비하고 대기해야만 했으니까.
전 스텝과 배우가 준비를 마치고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일출 5분 남았습니다.)”
조용한 현장에 진행 감독의 말이 울려 퍼지자, 조명팀과 음향팀 그리고 촬영팀이 스탠바이했다.
안소니의 스텝들도 그의 메이크업을 다시 한번 점검해주었다.
“(오오! 이제 슬슬 들어가 볼게요.)”
말갛고 붉은 빛의 태양이 저 멀리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얇은 곡선에서, 반원 모양이 되고, 점차 동그란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냈을 때,
래원이 메가폰에 대고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준비되셨죠? 자아, 갑니다. 액션!)”
저 멀리 주홍빛 태양이 카메라에 수평으로 비추고, 카메라 멀어지면,
한 남자의 뒷모습이 앵글 중앙에 들어온다.
올리버다.
자신을 삼킬 듯이 쏟아지는 태양 광선.
그 빛 속으로 기꺼이 내달리는 올리버.
망원 렌즈를 낀 카메라가 그런 올리버를 뒤에서, 옆에서 쫓기 시작한다.
올리버의 속도에 맞추어 레일을 타고 달린다.
보기에는 그저 빛을 찍은 것에 편집을 덧입혀서, 정서적인 측면을 부각한 씬으로 보이겠으나
실은 상당한 테크닉이 요구되는 장면이었다.
“(컷! 나쁘지 않았어요. 다시 한 번 갈게요.)”
리허설이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랜덤으로 쏟아지는 태양 빛의 각도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조절할 수는 더더욱이 불가능했으니까.
그저 30분간 계속 찍고 또 찍어서, 쓸 만한 커트를 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30분이 3분처럼 지나갔고,
같은 촬영을 저녁 일몰 때에 한 번 더 반복했더랬다.
내일 수요일도 일출과 일몰에 이렇게 모여야 하는지, 아니면 오늘로 촬영이 마무리되는 것인지 기로에 서 있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