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8
래원의 주위로 모두가 모여들어, 작은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화면 속,
진한 오렌지빛 광선이 수평으로 내리쬔다.
마치 눈을 마주치는 듯이.
올리버가 그곳을 향해 걷고 있다.
빛이 점차 강해진다.
올리버가 눈이 부신지 잠깐 걸음을 멈추어 선다.
다시 고개를 들어 태양 빛을 마주한다.
피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포기 하지 않겠다는 듯, 그 어떤 시련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듯,
의지 섞인 표정을 지으며 내달리기 시작하는 올리버.
그가 만들어낸 세찬 바람에 셔츠가 펄럭인다.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로 태양 빛이 작은 물결을 만들어 낸다.
짝..짝..짝짝..
래원이 먼저 박수 치기 시작하자,
짝짝짝짝짝짝——
다른 스텝들과 안소니도 미소를 띄우며 손뼉을 쳤다.
태양과 올리버, 망원렌즈를 끼운 카메라가 삼위일체로 달리는 엔딩 씬.
굉장히 고심했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마지막 장면이 이렇게 끝이 났다.
래원의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있었던 감정이 지금 이 순간 말끔하게 해소되는 듯했다.
개운함과 상쾌함이 밀려들었다.
드라마 는 여기서 끝나지만 올리버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환자들을 만나러 병원에 나올 것이다.
매일 떠오르고 지기를 반복하는, 모니터 화면 속의 저 태양처럼 말이다.
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메가폰을 쥐고 작품을 만들어 낼 거니까. 저 태양 같은 꾸준함과 열정을 품은 채로.
* * *
서울의 ‘스튜디오 다이아’.
“영화···? 하아···.”
이선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더니 목소리를 떨기 시작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트리트먼트를 테이블 위로 툭 던져버리는 그였다.
안정원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됐고, 안 실장이 도 감독한테 이거 분량 늘려서 미니시리즈로 만들자고 설득해 봐.”
“그건···. 그건 안 됩니다.”
“안 돼? 뭐가 안 돼!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드는 게 우리 일이야!”
“본부장님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작품 사이즈가 미니로 만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왜 안 돼? 일기장 내용 길게 빼고, 그 안에서 사건이랑 갈등 몇 개 더 만들면 가능하겠고만!”
이에 안정원은 따로 대꾸하기보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이선필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뭐..뭘 그렇게 봐! 내.. 내가 틀린 말 했어?”
안정원의 얼음장 같은 눈빛에 이선필은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아..아니, 도 감독은 말이야! 이따위로 해외 작업하고 영화하고 멋대로 굴 거면 대체 왜! 우리랑 계약한 거래?!!”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래원이 원하는 조건 다 들어줄 것처럼 굴던 자기 자신과 홍 대표의 모습 따위는 어느새 새까맣게 잊은 이선필이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안 실장이 힘을 좀 써줘야 해. 치사하고 더러워도 우리 일이 이런 걸 어쩌겠어? 응?”
안정원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자기가 시키는 게 치사하고 더러운 줄은 아나 봐?’
이선필이 다시 트리트먼트를 들어 펼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JBC도 그렇고 JC ENM도 그렇고, 지금 도 감독 차기작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차기작 발표만 되면 그게 무슨 작품이든 다 같이 상한가 찍는 건 그냥 식은 죽 먹기야.”
“그렇다고 영화에 맞는 작품을 드라마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도래원 감독 능력에 달린 거고···. 도 감독 실력 몰라? 안 실장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니까? 주제넘게 말이야···.”
“······.”
“자기는 강권만 하면 돼. 설득! 회유! 그게 자네 일이잖아.”
“··· 하지만, 도 감독님께 이거 영화 트리트먼트로 발전시키자고 말씀드린 게 접니다.”
“··· 뭐어??”
안정원의 폭탄 발언에 표정을 잔뜩 구기는 이선필.
“지금 뭐라 그랬어? 안 실장이 영화화를 종용했다고?”
“말씀 듣기 거북하네요. 저는 종용이 아니라 충분한 근거를 들어 권유했고, 직접 최종 결정을 내리고 트리트먼트를 쓰신 건 도 감독님이십니다.”
도래원이 누구한테 종용당할 만한 인물이 아닌 것은 이선필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지금 상황에 뭐가 맞고 틀린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아···. 안 실장, 자기 월급을 도래원이 줘?”
“······.”
“도 감독이 드라마 기획안을 내밀면 편수를 한 편이라도 더 늘리자고 해도 모자랄 판에···. 뭐? 영화로 발전시키자고 말을 해? 야!! 너 돌았어?!!”
이선필은 신경질적으로 넥타이까지 풀어버리며 노발대발했다.
“안정원! 도 감독 마음 네가 돌려놔! 이거는 무조건 드라마야! 도래원 차기작은 무조건 우리가 만들고, JBC에서 방영돼야 한다고!!”
급기야 안정원의 얼굴에 트리트먼트를 냅다 던져버리는 이선필.
이에 안정원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안정원이 가슴에 품고 있는 파일 안에는,
래원의 트리트먼트를 기반으로 만든 메인 PPL 제안서와 계약서, 공동 영화 제작사 섭외안, 투자사 제안서과 계약서 등등이 들어있었다.
특히 메인 PPL과 투자사 계약은 이미 다 된 밥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오늘 이선필에게 컨펌 받고 진행만 시키면 될 정도로 완벽하게 짜인 플랜이었으나, 이선필이 감정적으로 나오는 통에 내밀어 보지도 못했더랬다.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물러날 안정원이 아니었다.
도래원의 트리트먼트를 떠올리면, 7번 넘어져도 8번이고 9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녀였으니까.
“본부장님, 이번 기회에 우리 스튜디오 다이아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쪽으로도 발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요?”
“뭐어?? 안정원,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도래원 감독님의 첫 영화 도전. 이것만으로 굴지의 영화 제작사들에 공동 제작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투자사들도 돈다발 들고 줄을 섰고요.”
안정원이 가슴에 품은 파일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배급사 계약이야, 캐스팅만 잘 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업계 관례인데···. 천만 스코어 가진 배우들도 이 정도 사이즈의 작품에 당연히 구미가 당길 겁니다.”
그녀의 똑 부러진 설명에,
이선필의 삿대질 하던 손가락만 길을 잃고 허공을 맴돌 뿐, 그는 아무 말도 응수하지 못했다.
“괜히 드라마로 돌렸다가 작품 망쳐서 후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
“ 이거 영화로 대박 날 겁니다.”
“안 실장도 영화 제작사에서 일해 본 적 없잖아. 확신할 수 있어?”
이선필의 물음에, 안정원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예, 확신합니다. 이 영화 BEP 못 넘기면, 그때는 제가 책임지고 사표 쓰겠습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92화 – 리디북스
안정원의 폭탄선언에,
이선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쩌면, 이건···. 안정원을 내보낼 기회일지도···?’
그랬다.
영화가 잘 되면 ‘스튜디오 다이아’에게 이득이고,
영화가 BEP도 못 넘긴 채 망한다면 이선필에게 안정원을 내보낼 명분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선필은 안정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하 직원이지만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안정원은 내 밑에 두기에는 너무 불편해. 무슨 꿍꿍이인지도 모르겠고···.’
안정원의 뒷배경을 모르는 이선필은 왠지 모르게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에게서는 함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겼다.
당연했다. 안정원의 부친이 스튜디오 다이아의 최대 경쟁사이자 업계의 선발주자인 스튜디오 포닉스였으니까.
물론 이를 이선필은 꿈에도 모르지만 말이다.
‘좋아. 영화로 진행해봐도 되겠어. 홍 대표님께서 컨펌 해주신다면···.’
어느새 안정원의 설득에 넘어가 버린 이선필이었다.
“안 실장 뜻이 그렇다면···. 내가 홍 대표님이랑 진지하게 논의해볼게. 우리 스튜디오 다이아가 영화 업계까지 발을 넓힐 기회··· 내가 긍정적으로 말씀드려보지. 수고 많았어. 가봐.”
똑똑한 안정원은 이선필의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영화가 망해도 날 처리할 수 있는 카드를 얻게 되니,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묵례를 건넨 후, 본부장실을 나오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떠올랐다.
‘그런데 어쩌지? 도 감독님의 영화는 절대 망하지 않을 텐데···?’
* * *
– 한국 항공 111편. 기장과 승무원은 승객 여러분을 목적지인 대한민국 인천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이륙합니다. 좌석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라며,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는 꺼주십시오.
래원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다시 보지 못할 런던의 밤.
“시원섭섭하네···.”
갑작스럽게 귀국을 결정했더랬다.
의 편집과 후작업은 한국에서 해도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배우 및 스텝들과의 파티는 넷플릭스에 작품 걸리고 나서 하기로 했고,
다리오는 래원의 문제를 직접 듣자마자 서둘러 항공권을 끊어주었다.
문제는 촌스럽게도 향수병이었다.
래원이 타국에서 반년 이상 지낸 건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으니까.
졸음이 쏟아졌다.
곧 오랜만에 한국에 도착한다는 기대감과 안도감, 그리고 누적된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꿈에서 래원은 오랜만에 보게 될 얼굴들을 미리 만나보았다.
‘다들 깜짝 놀래켜 줘야지.’
귀국한다는 연락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한국으로 향하는 래원이었다.
* * *
인천 공항 입국장을 나와서 공항 리무진을 타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영어가 들리지 않는 세상.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리무진 안에서,
[ 부재중 전화 1통 : 강채령 ] [ 입금 – ‘스튜디오다이아’ 500,000,000원 ]비행하는 동안 휴대폰에 찍힌 2개의 소식을 확인했다.
“일십백천만, 십만백만천만..억? 5억?? 히익!! 무슨 상여금이 연봉보다 많아?”
일전에 홍 대표가 언질을 주었던 보너스가 입금된 것 같았다.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고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졌다.
쌩판 모르는 옆 사람이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래원은 애써 평정심을 되찾으며 앞으로의 일정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단 약속은 지켜야겠지?”
홍 대표가 귀국 일정이 정해지는 대로 연락 달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래원] 홍 대표님, 저 사나흘 후에 한국에서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거짓말은 아니었다.
사나흘 후에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고, 뵐 수 있다고 했으니까.
대신, 래원은 3-4일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래도, 말을 해둬야 할 사람이 있긴 하다.”
래원은 주머니에 넣으려던 휴대폰을 다시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
[래원] 안 실장님, 저 지금 막 인천 공항에 들어왔어요. 외부에는 3일 후 입국으로 해주세요. 그때까지 업무 신경 안 쓰고 자유 여행 다니면서 머리 좀 식히려고요.안정원답게 답장은 실시간이었다.
[안정원] 잘 생각하셨어요! 비밀 엄수할게요. 전에 요청주신 새로 이사하실 집 후보요, 몇 개 추려서 내일이나 모레쯤 영상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 *
충남 논산의 한옥 마을.
래원이 재충전을 위해 택한 숙소였다.
향수병 때문에 일찍 귀국했으니,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와 한국적인 음식 속에서 리프래쉬를 하고 싶었다.
“이야···. 이거 얼마만의 국내 여행이야?”
래원은 지금 이 여유와 기분을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나중에 두고두고 추억하고자, 휴대폰 카메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고즈넉한 여유가 풍기는 사찰,
덕담을 나눠주시던 주지 스님,
어린아이들 틈에 섞여 딸기를 한가득 딸 수 있었던 딸기 농원,
탑정호 출렁다리와 수변 생태공원,
배롱나무가 만개한 서원과,
장인의 손길만 구경해도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불멍도 할 수 있었던 도자기 공방,
혼자서 2인분을 먹어 치운 떡갈비 맛집과 장어 맛집까지···.
2박 3일간의 나 홀로 여행은 꽤나 즐거웠다.
간만에 즐기는 여유였으니까.
서울로 올라가는 날.
래원은 숙소에서 마지막 휴식을 즐기며, 그동안 찍은 영상을 돌려보다가 편집 어플을 내려받았다.
“요즘은 어플이 진짜 잘 나오는구나. 어도비나 파이널컷 저리 가라네.”
래원은 어느새 영상을 이어붙여도 보고 편집도 해보는 재미에 푹 빠졌더랬다.
불쑥,
지이이잉——
휴대폰이 래원을 요란하게 찾았다.
안정원의 메시지였다.
[안정원] 도 감독님, 임장나왔어요. 집안 구조랑 뷰 조망 영상 보냅니다.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휴대폰은 연달아 진동음을 토해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상을 전했다.
[래원] 네, 수고하셨어요!래원은 곧장 영상을 틀었다.
그 속에는 천장이 높은 펜트하우스와 50평대에서 60평대의 대형 아파트가 나왔다.
안정원의 안목은 역시 기대한 대로, 아니 그 이상이었다.
하나하나 래원의 마음에 쏙 드는 집이었으니까.
서울숲이 보이는 그린 뷰도 있었고, 한강이 내다 비치는 리버 뷰도 있었다.
“우와···. 이게 내 집이 된다고···? 내가 그동안 열심히 살긴 했지.”
입에 귀에 걸리는 듯한 기분.
감격 그 자체였다.
래원은 안정원이 정리해서 보내준 매매와 전세 가격을 살펴보았다.
각 매물의 주변 입지와 교통 및 호재 이슈에 대해서도 정리되어 있었다.
“주식으로 재미 좀 본 거랑, 스튜디오 다이아로 이적하고 받은 연봉이랑 성과급, 며칠 전에 들어온 상여금까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던 래원.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다.
“펜트하우스 전세냐, 대형 아파트 매매냐 그것이 문제겠네?”
이렇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래원은 안정원과의 메시지 창을 닫으려다가,
[래원] —(영상)— 이거 한 번 봐주시겠어요? 놀면서 허세 감성 한 번 부려봤어요ㅎㅎ지금까지 편집한 영상을 안정원에게 보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