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29
매니저나 일행 없이 자유로운 차림새였고, 선글라스와 모자로 가린 채 팔짱을 낀 채로 삐딱한 자세였다.
‘(말로만 저러는 건지, 실제로 배우들을 배려하고 헤아려주는 감독인 건지 궁금해지는데?)’
평소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던 ‘조니 덴’은 한없이 젠틀한 배우였으나, 그의 속내는 그리 젠틀하지 않았다.
특히 ‘감독’이라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도 그럴 것이 할리우드의 밑바닥에서부터 굴러 올라오며 여러 감독들한테 치였던 그였으니까.
사람을, 감독을 함부로 믿지 않았다.
조니 덴이 믿는 몇 안 되는 업계 사람, 그들이 추천한 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휴 잭슨 같은 형이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정도면 저 감독, 뭔가가 있는 사람인 거 같긴 한데⋯.)’
방금 래원에게서 들은 ‘배우를 자극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말은 조니 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허나 그가 특별 출연 결정까지 가기에는 뭔가 2% 부족했다.
한편,
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을 하던 중,
시종일관 자신을 쏘아보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본 그곳에서,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더랬다.
까만 모자에서부터 까만 신발까지 온통 까맣던 그 실루엣은, 래원이 쳐다보자 황급히 자리를 떠버렸다.
하지만 래원은 보고야 말았다.
그가 신고 있었던 특이한 문양의 검정 스니커즈 운동화를 말이다.
‘조니 덴이잖아? 뭐야, 나를 파악하고 있는 건가? 재보는 중이라 이거지?’
그의 의중을 알아차린 래원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내가 또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장단 맞춰서 응해줘야지.’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227화 – 리디북스
* * *
2주간의 ‘칸 영화제’ 일정이 끝나가면서, 수상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계 관계자들의 SNS는 저마다 자신이 미는 작품들에 대한 찬사가 올라오고 있었고, 전 세계 영화 팬들은 그들의 SNS를 연일 지켜보고 댓글을 달며 열기에 동참했다.
전 세계 외신들 역시 영화계 인사들의 SNS를 인용하며 기사를 만들어내기 바빴다.
가장 언급이 많이 된 인기작을 추려보면 크게 6개 정도였다.
– 달고나 게임
– 게놈 프로젝트
– 사운드
– 주니어 모나리자
– 마이 마더
– 어느 탑스타의 일기장
오스카 아카데미 때와 겹치는 것이 더 많긴 했지만, 사뭇 다른 구성이었다.
특히나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은 다른 시상식과 달리 특이하게도 감독과 배우들로 구성되기에 평단의 평가로는 결과를 알 수 없다. 예측 불허였다.
전세계 영화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드디어 칸 영화제 시상식의 날이 밝았다.
시상식은 오늘 저녁 7시.
래원은 호텔에서 간만에 늦잠을 잤더랬다.
아침이자 점심 메뉴를 고민하던 래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이이이잉——
– (도래원 감독님, 칸 영화제 기획팀입니다. 오늘 시상식 참석해 주시면 됩니다.)
칸 영화제의 시상식은 당일 낮에 주최 측의 연락을 받아야 참석 가능했다.
“이제는 무슨 상이냐가 문제인 건가?”
덕분에, 함께 칸까지 날아온 헤어메이크업 팀이 다시금 분주해졌다.
“개막식 때는 화이트 슈트 입으셨으니까, 이번에는 블랙이 나을 것도 같고요⋯.”
“으음, 그래도 도 감독님한테는 화이트 슈트가 제일 잘 어울려서⋯.”
“그럼 화이트면서 디자인만 개막식보다 포멀한, 이걸로 갈까요?”
협찬을 구해온 슈트 여러 벌을 이리저리 래원의 몸에 대어보며 고민하던 그들.
그렇게 고른 화이트 슈트에 약간의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까지 마치고 거울에 선 래원을 보며 다들 탄성을 질렀다.
꺄아악———
훠우우우우——
휘이휘휘— 휘휘호호——
같은 반응이 레드카펫에서도 터져 나왔다.
저녁 6시쯤, 시상식 앞에 모습을 드러낸 래원과 래미 그리고 소기중과 하경석을 보며 휘파람을 부는 이들도 있었다.
기자들과 리포터까지, 시상식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같은 시각,
프레스 센터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한국 기자들은 상기된 얼굴로 노트북을 두드리며 기사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시상식의 특성상, 참석이 결정됐다는 것은 곧 수상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 칸 영화제 시상식에 얼굴을 비춘 영화 와 – 양측 모두 수상 가능성↑ ] [ 도래원 감독 “오늘은 칸 영화제에 왔습니다.” ] [ 도래미, 칸에서도 여우주연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 ]프레스 센터의 한국 기자 중에는, 천하일보 조민도 있었다.
초청작으로 이름을 올린 한국 영화의 여론이 심상치 않자 오늘 아침에 막 칸에 도착했더랬다.
‘무슨 상을 가지고 가시려나⋯.’
여느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월드컵을 관전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표정을 한 조민이었다.
잠시 후,
제81회 칸 영화제 시상식이 시작됐다.
시상식이 진행되면서 점차 긴장은 고조됐다.
아직까지 영화는 호명되지 않았고, 그 이야기인즉슨 나중에 호명이 될수록 더 큰 상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
여우주연상도 남우주연상에서도 호명되지 않았다.
이에 도래미와 소기중은 속으로 아쉬워하면서도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아직 더 큰 상들이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제81회 칸 영화제, 감독상⋯.)”
시상식장 모두가 숨을 죽였고,
‘오늘 시상식에 초대를 해준 것을 보면 분명 상을 타긴 타는 건데⋯.’
프레스 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의 황준욱 감독!)”
와아아악———
프레스 센터의 한국 기자들이 아우성쳤다.
우리 대표님 선수가 골을 넣은 것마냥 기쁨의 아우성이었다.
‘달고나 게임은 감독상이고, 그럼 어느 탑스타는 더 큰 걸 받는다는 거야? 도 감독님한테 술 얻어먹을 수 있겠네.’
조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제 그랑프리와 황금종려상. 단 2개만이 남아있습니다.)”
심사위원 대표인 프랑스의 유명 감독이 단상에 올라서며, 심사 총평을 전했다.
“(올해 영화제를 지켜보면서 이제 영화계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거나 액션이 점철된 큼지막한 영화보다, 섬세한 감정 표현을 내세우며 공감대나 휴머니즘을 구축하는 작품들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영화는 우리네 인생의 거울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의 그랑프리, 황금종려상 또한 그랬습니다.)”
이 같은 심사평에 ‘어느 탑스타의 일기장’ 팀은 귀를 쫑긋 세웠더랬다.
‘섬세한 감정선? 휴머니즘? 이거 우리 영화 이야기잖아.’
‘그랑프리나 황금 종려상 둘 중 하나는 받는 건가?’
‘그래도 다른 영화에도 어느 정도는 해당하는 이야기니까 괜히 김칫국 마시지 말자.’
그랑프리는 심사위원대상으로 2등에게 주어지는 상이었고,
황금 종려상은 칸 영화제 최고의 작품에 주는 상이었다.
“(그랑프리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올해의 그랑프리, 스티븐 올드만 감독의 영화 )”
스티븐 올드만 감독이 옆자리에 앉은 여자 주연 배우 에바 베이지와 프랑스식 포옹을 하고는 단상 위에 올라갔다.
수상을 예측했는지 프랑스어로 유창한 소감을 선보였다.
이제 심사위원 대표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올해의 황금 종려상은 영화 , 도래원 감독! 축하드립니다.)”
래원과 배우들은 벌떡 일어나 격하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와아아아악——
꺄아아아악——
프레스 센터에서도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조민 기자 또한 환호성을 질렀다.
래원이 종려나무 잎사귀 모양의 금색 트로피를 받아들고는 단상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하게도 프랑스어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영어로 말하는 래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래원은 이제 편한 한국어로 소감을 이어나갔다.
“저는 그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행복해했던, 그래서 제 손으로 그 행복을 만들고 싶었던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메가폰에 대고 외치던 말들을, 직접 구현해준 촬영감독님을 비롯한 우리 스텝들과 배우분들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배우들⋯. 드라마 판에서 시작해서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저 같은 감독 때문에 고생 많았을 텐데 이 자리를 빌려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더욱 진심을 다해 만드는 감독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몹시도 뜨거운 밤이었다.
* * *
시상식 이후, 비공식 애프터 파티가 열렸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및 관계자들과 수상작에 관련된 사람들이 와인과 다과를 곁들이며 회포를 푸는, 일종의 네트워킹 파티였다.
래원의 주위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가 래원이 새 와인을 가지러 간 찰나,
“(도래원 감독님, 준비하고 계신 다음 작품은 클래식 음악물이라고요?)”
한 중년의 여인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래원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자마자,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안정원 실장님이 보여줬던 사진보다 실물이 더 고혹적이고 멋지잖아?’
나나 크루거.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단장이자 이사직을 맡은, 클래식 음악계의 대모였다.
빈 필하모닉은 이번 칸 영화제의 협력사 중 하나였다.
그녀가 래원을 먼저 알아봤다는 기쁨도 잠시, 래원은 칸에 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생각해둔 것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나나 크루거 이사님, 맞으시죠?)”
“(저를 아시는 걸 보니, 클래식 음악물을 준비 중이신 게 맞군요. 호호.)”
흡족하게 웃어보이는 나나 크루거였다.
“(몹시 기대 되는데요? 감독님의 드라마 ‘월미도의 선물’도 재밌게 봤거든요. 초반과 후반을 비엔나에서 찍으셨더라고요.)”
“(맞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름 없는 자들의 묘지’를 그런 식으로 해석해서 작품에 녹여낸 걸 보고 감탄했어요. 우리나라 감독들도 못 해낸 걸 해내셨더라고요!)”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나나 크루거는 차가운 인상과 달리 약간 푼수끼가 있는 아줌마 캐릭터였다.
“(죽음이 모여있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모아보기로 결심한다라⋯. 어쩜⋯. 굉장히 낭만적인 발상이었어요!)”
그녀가 연이어 감탄사를 내뱉자,
래원은 목이 타서 괜스레 와인을 홀짝였다.
감독의 의도를 알아차려 준 것은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나, 이렇게 면전에 대고 거듭 칭찬을 듣자니 쑥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나나 크루거나 작은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래원의 앞에 스윽 내밀었고,
래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술술 잘 풀리는 상황에 흥분감이 일었다.
“(월드 클래스 감독님께서 클래식 음악 드라마를 만드시다 보면,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거야 당연히 그랬다.
그래서 래원도 오늘 그녀와 안면을 트고, 훗날 촬영 협조 요청을 하기에 앞서서 라포 같은 것을 형성해 볼 참이었으니까.
그러한 래원의 계획이 술술 풀리다 못해 코앞에 저절로 밥상까지 차려진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같은 분께서 손을 내밀어 주시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네요.)”
이는 래원의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크으! 역시 상이 좋긴 좋구나.’
언젠가부터 시상식이나 수상에 연연하지 않던 래원이었다.
하지만 영화제는 드라마 시상식과는 또 달랐고,
이렇게 인맥을 만들 수 있는 자리라면 단순한 시상식 그 이상의 가치였다.
“(도래원 감독이 만드는 클래식 음악 드라마라면 뭐가 다르지 않겠어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드라마를 찍으면서 클래식 음악과 휴머니즘의 접점을 찾고 있습니다. 단장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달달했다.
래원의 기분이 달달한 건지, 와인이 달달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달달했다.
이후 래원은 약간의 취기를 빌려 영화계 거물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지이이이이잉———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는
– (감독님, 호텔 바에서 저랑 2차 어떠세요?)
홀린 사람처럼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지금의 래원에게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
* * *
같은 시각,
프랑스보다 8시간을 일찍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다음 날의 태양이 떠올랐다.
문화면과 연예면은 물론이고 사회면까지 ‘칸 영화제’ 소식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 유럽을 움직인 K-무비! 황금 종려상 , 감독상 ] [ 드라마에 이어 영화까지 씹어 먹는 천재 감독, 도래원 “영화든 드라마든 더욱 진심을 다하겠다!” ] [ 도래원 & 황준욱 – K감독의 전성시대 서막 ]특히 천하 일보는 도래원 특집 시리즈로 기획 기사를 내놓았다.
당연히 조민 기자의 작품과 오너 일가의 푸쉬가 빚어낸 콜라보였다.
각종 포털사이트와 SNS 및 사람들의 출근길 단체 메시지 방에서도 칸 영화제 소식이 단연 화두였다.
한편,
래원은 달달하게 취해 이 같은 소식을 모른 채로, 어느 배우와 함께 단둘이 2차를 즐기는 중이었다.
“(오늘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할리우드 감독님들과는 확실히 다르신 거 같아요⋯.)”
여자 배우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조니 덴.
그가 래원을 직접 찾아온 것이다.
“(아, 당연한 이야기를 제가 너무 진지하게 했나요?)”
“(아뇨아뇨. 진지한 모습 재밌네요.)”
유쾌하기만 한 줄 알았던 조니 덴.
술기운 탓인지 시간이 늦은 탓인지 그가 우수에 가득 찬 얼굴로 래원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제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겁이 많아요, 감독님.)”
“(⋯ 겁이요?)”
“(촬영장에 대한 겁, 감독님에 대한 겁이요.)”
“(아⋯.)”
이제 래원은 그가 자신을 떠보고 재보는 느낌을 받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할리우드는 감독들이 왕이라고 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 장르의 특성이기도 했지만, 할리우드가 영화의 본고장인 만큼 그 정도가 심하다고 들었더랬다.
“(솔직히 조금 놀랍긴 하네요. 배우님 정도 되는 분이 그러실 줄은 몰랐거든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배우잖아요, 제가⋯. 감독님들한테 배운 것도 많지만, 상처도 많습니다.)”
조니 덴은 이번에는 말을 잇는 대신 잔을 채웠다.
“(휴 잭슨 총괄자님과의 관계가 있어서 거절도 힘들고, 그렇다고 아무리 단발성 특별 출연이지만 낯선 한국 땅의 낯선 감독과 촬영하기에는 내키지 않고⋯. 그러셨던 거네요?)”
“(하하하⋯.)”
래원의 직설적인 말에, 대답 대신 격한 웃음으로 긍정하는 그였다.
“(그래서 오늘 저 나름대로는 용기를 내서 감독님께 연락 드린 거였어요.)”
이번에는 래원이 잔을 채웠다.
“(⋯ 저를, 잘 부탁드린다고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