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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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 있는 모험 (2)
래원의 확언에, 김 부국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래원이 보여준 행보에 의하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민세라가 유하나랑 느낌이 닮긴 했지···. 우리 투자사 원더빅 소속이기도 하고.”
“둘이 목소리도 좀 비슷한 거 같아요. 아이돌과 배우라 접점이 없어서 연결을 못 시켰는데,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지혜영이 거들자,
오늘 회의 시간 내에 한 번도 말을 않던 유찬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육촌인가 그렇대요. 민세라네 부친과 유하나네 모친이 사촌지간이라고 합니다.”
“찬이 네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코어 팬들은 다들 아는 겁니다. ··· 저어, 사실, 문걸즈 덕후입니다.”
유찬의 뜻밖에 덕밍아웃에 경직됐던 회의실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김 부국장이 웃으며 막내를 놀렸다.
“그래, 덕후가 세상을 구하는 법이지.”
허나 이 국장은 여전히 심각한 어투로 래원에게 쏘아붙였다.
“도 피디, 민세라가 정극 주연을 어떻게 하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잘할 겁니다.”
래원은 연기 천재 민세라의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 있게 피력했다.
‘쟤가 뭘 믿고 저러는 거야? 민세라 연기력은 증명도 안 됐잖아. 정극 주연을 해본 적도 없는데···.’
황태수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며 래원을 지켜봤다.
“민세라는 유하나와 이미지도 목소리도 비슷하고, 스타성도 충분하고, 게다가 투자사 원더빅 소속입니다. 연기력은, 정 걱정되시면 민세라 지명 오디션을 한 번 보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모셔놓고요.”
여기까지 듣자 더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민세라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케이, 오디션 봐보지 뭐.”
먼저 김 부국장이 흔쾌히 나섰고,
이에 이 국장도 못 이기는 척 래원에게 지시했다.
“좋아. 그럼 원더빅이랑 이야기해서 오디션 일정부터 빠르게 잡아보라구.”
오늘의 회의가 드디어 끝이 났다.
모두 들어올 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회의실 문을 나섰다.
회의실에 남아서 민세라 측과 일정을 잡기 위해 휴대폰을 보고 있는 래원.
황태수가 나가다 말고 슬며시 래원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래원아, 민세라 말인데···. 꼭 써야겠냐?”
“네? 무슨 문제라도? 아, 연기력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지명 오디션 보시고 나서 다시···.”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그..그냥 유하나한테 1인 2역을 맡기는 방법도 있고···.”
“1인 2역을 맡긴다면, 유하나가 아니라 민세라한테 맡겨야 합니다. 유하나는 [노미령]까지 소화 못 해요.”
“······.”
“그리고 1인 2역은 제가 최대한 피하고 싶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요.”
“두 가지 이유?”
“우선, 우리 작품의 반전 결말을 제대로 반전답게 만들려면 [노미령]과 [연홍]이 1인 2역으로 완전히 동일한 얼굴이기보다는, 둘이 같은 화면에 들어왔을 때 ‘어? 뭐지?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나란히 있으니 비슷하네?’ 라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똑똑한 시청자들은 1인 2역인 것만 봐도 바로 우리 반전을 눈치챌 테니까요.”
“··· 요즘 시청자들이 똑똑하긴 하지. 두 번째 이유는?”
“저 2화 하이라이트 장면이 정말 욕심나거든요, 선배. 오우삼 감독의 영화 아시죠?”
“알지.”
“서로 얼굴이 뒤바뀐,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마치 거울을 보듯 상대를 살피며 대치하는 장면. 그걸 우리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오마주 해보고 싶습니다.”
“[연홍]이 협박 편지를 보내도 [노미령]이 [박규산]과의 결혼을 무르지 않자, [연홍]이 정신병원을 탈출해서 직접 찾아온 장면?”
“네. 서로 닮은 두 여인이 거울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상대를 관찰하며 대치하도록 찍을 겁니다. 액션도 있어서, CG 처리를 하기보단 두 배우가 직접 하는 게 맛이 살 거고요. 이 장면 연출 잘해서 시청자들한테 ‘곧 [노미령]과 [연홍]의 운명이 뒤바뀌게 될 것’ 이라는 암시를 좀 세련된 방식으로 주고 싶어요.”
“네가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꽤 괜찮겠네. 잘만 찍으면.”
황태수가 이 정도의 표현을 한다는 것은 극찬이나 다름없음을 래원도 황태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래원이 이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게 된 근거는, 과거 민세라의 영화에 유하나가 카메오로 출연했던 기억을 떠올린 덕분이었다.
연기 천재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서 주연만 꿰찼던 민세라.
유하나는 그 영화 카메오 출연으로 민세라와 닮은 꼴, 닮은 목소리로 이슈 몰이를 하며 민세라의 인기에 편승했었다.
이것은 지난 삶의 과거이면서 이번 삶의 미래다.
래원은 현재에서 아무도 찾지 못한 해답을, 용케도 과거이자 미래에서 찾아냈다.
* * *
바로 앞 서울숲과 건너편 성수 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
그리고 여전히 벽 한가운데를 차지 하고 있는 독특한 문구.
「우린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우린 스타를 만든다.」
원더빅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박현만 대표의 사무실이었다.
“우리 래미,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여부가 있나요. 제 친조카처럼 서포트하고 키워보겠습니다.”
래원과 박 대표는 악수를 나눈 후, 계약서를 한 부씩 나눠 가졌다.
이제부터 도래미는 정식으로 원더빅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습생 신분이 되었다.
래원의 옆에는 들뜬 표정의 래미가, 특유의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닷!”
* * *
“이 날씨에 바로 집으로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래미야, 서울숲에서 산책 어때?”
원더빅 건물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래원은 래미를 데리고 서울숲에 들러 도심 속 삼림욕을 해볼 참이었다.
두 사람이 서울숲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엇! 떡볶이!”
래미의 눈에 길거리 떡볶이가 보였다.
래미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래원을 쳐다보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이모님, 저희 떡볶이 1인분이랑 튀김 1인분이랑, 또.. 오뎅도 1인분 주세요!”
신나게 먹는 래미의 모습을 보며 래원도 덩달아 맛있게 먹었다.
이 떡볶이 집 안에는 래원과 래미 말고도 한 명의 손님이 더 있었다.
지금, 래원의 등 뒤에서 먹고 있는 금발 머리의 여자 한 명.
래원이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허겁지겁 먹는 폼이 이상하게 눈에 띄었지만, 래원은 쳐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아, 나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래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떡볶이를 입에 넣고 있었다.
래원은 아직 성장기인 래미가 다이어트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길 바랐다.
“됐어. 하지마. 지금도 충분히 날씬해. 너무 말라도 보기 안 좋다.”
“나 카메라에는 더 불어서 나오더라고. 오빠가 더 잘 알면서···.”
“그래도 이쁘다니깐.”
“기사 봤는데, 민세라 언니처럼 마른 사람도 다이어트를 하고 살던데? 연습생 때부터 밀가루를 끊었대. 하아···.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를 대체 어떻게 끊지?”
“됐어. 안 끊어도 돼, 도래미! 아이돌도 배우도 사람이야. 먹을 건 먹으면서 살아야지.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불현듯,
“아앗!”
“앗, 뜨거!”
래원이 등 뒤로 짚어둔 손에 뜨거운 어묵 국물이 뜨끈하게 닿았다.
래원의 등 뒤에서 먹고 있는 금발의 그녀가 실수로 쏟은 것이었다.
“죄..죄송합니다!”
래원이 휙 뒤돌아 어묵 국물이 묻은 자신의 손을 재빠르게 뗐고,
당황한 그녀가 손을 떨며 휴지를 건네주었다.
금발 머리에 캡 모자를 눌러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모자 속에 가려진 자그마한 얼굴은,
놀랍게도 민세라였다.
화들짝 놀라서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래원을 보고 있었다.
양 볼 가득 떡볶이와 튀김을 빵빵하게 넣고 오물거리는 민세라.
래원은 살짝 미소지으며 눈인사를 건넨 후,
다시 몸을 래미 쪽으로 돌려서 모른 척해주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오빠, 괜찮아?”
“많이 뎄어요? 이거 대고 있어요.”
주인아주머니가 래원에게 차가운 물티슈를 건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때,
“이 집 떡볶이 완전 기가막혀!”
“정말?”
“어, 맞아. 이 근방에서 여기가 최고더라.”
갑자기 단체 손님들이 우르르 떡볶이집 안으로 몰려들었다.
래원의 등 뒤의 민세라가 또 한 번 화들짝 놀라며 불안에 떠는 것이, 래원에게도 느껴졌다.
그녀는 캡 모자를 더욱더 깊게 눌러쓰며 고개를 숙였다.
래원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떡볶이 하나도 마음대로 못 먹네···.’
래원이 두세 발자국의 뒷걸음질로, 그녀에게 자신의 등을 더 가까이 대고는, 그녀의 가림막을 자처했다.
민세라의 자그마한 체구가 래원의 커다란 등에 가려졌다.
덕분에 단체 손님들 눈에는 민세라가 보이지 않았고, 래미 역시 먹는 데에 집중해서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꼭 내 배우가 될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러고 싶었다.
민세라가 편하게 먹을 수 있게 잠시만이라도 세상과 분리시켜주고 싶었다.
* * *
“아, 배불러! 너무 많이 먹었나?”
래미가 배를 두드리며 뒤늦은 자책을 했다.
떡볶이와 튀김 그리고 오뎅을 싹싹 비운 후,
서울숲에서 피톤치드까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
래원은 주식 어플을 켰다.
지난번에 전셋집 자금 외의 여분의 자금은 전부 스튜디오 포닉스에 그대로 넣어뒀었다.
래원의 예상대로 그동안 스튜디오 포닉스의 주가는 많이 올랐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각종 OTT에 런칭한 신작 드라마가 줄줄이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래원이 기억하는 한 스튜디오 포닉스의 호재는 당분간 이걸로 끝이었기 때문에 이를 팔고,
대신 원더빅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매입했다.
말하자면, 래원 자신과 래미의 꿈에 투자를 한 셈이었다.
* * *
지이이이이이잉——
이튿날.
주말 아침부터 침대 위에서 래원의 휴대폰이 바쁘게 울려댔다.
[원더빅 박현만 대표]래원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 도 피디님, 어쩌죠?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뿐이 드릴 게 없네요···. 면목이 없습니다.
래원의 휴대폰 너머의 박현만 대표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당황스러운 목소리였다.
게다가 무슨 일인지 자꾸 뜸을 들였다.
– 저.. 그게···.
“네, 말씀하세요.”
– 그.. 우리 드라마에, 아무래도 민세라는 출연이 힘들 것 같습니다.
“네?? 갑자기요? 왜.. 왜죠···?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그..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민세라 씨도 오케이 했다고, 대본 재밌어한다고 그러셨잖아요.”
– 그게, 그랬는데···. 지명 오디션이 생겼다고 전하니까, 그럼 자긴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피디님.
“하아···.”
래원은 휴대폰에 대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이 확 깼다.
드라마국 선배들을 설득하려면 지명 오디션을 안 볼 수는 없었다.
민세라.
대중들에게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만큼이나,
본인 성격 자체도 호불호가 확실하고 마이 페이스로 행동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누구보다 차갑고 강철 멘탈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지.’
하지만 민세라는 지난 삶에서,
배우로서 최정점에 있을 때 돌연 자살을 했던 인물이다.
그것도 SBC 드라마를 찍다가 로케이션 현장의 호텔 방 숙소에서 말이다.
악플로 고통을 받아왔다는 게 대외적인 사유였으나,
래원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하는 심증만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내가 황태수 선배한테 반항했던 게 민세라 자살 사건 때부터였지.’
그때도 황태수가 책임 프로듀서를 맡았던 작품이었다.
자기 드라마 현장에서 자살한 출연자의 소지품을, 황태수는 너무 쉽게 없앴다.
마치 뭔가가 켕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땐 황태수 선배가, 지금처럼 후배들 잘 챙기고 괜찮은 선배인 줄 몰랐었지. 그땐 선배의 좋은 면을 겪어보질 못했으니까.’
그때 처음으로 황태수한테 대들었다가 밉보이게 됐고, 이후로는 그 당시 (지금과 달리) 황태수 오른팔이었던 하인혁의 이간질까지 더해져 완전히 황태수 선배의 눈 밖에 났더랬다.
그 때문에 지난 삶에서 황태수 선배가 차기 국장 연임으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래원은 연출 입봉도 밀렸고 드라마국의 제대로 된 서포트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래원이 지난 삶부터 지켜온 연출 소신이자 철학.
‘촬영장에서 스텝이든 배우든 누군가 다치면 그건 전부 감독 탓이자 연출부의 과오다.’
드라마 팀의 선장이나 다름없는 연출자는, 보통 반년 가까이 되는 항해를 무사히 마친 후 팀 사람들 전원을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려보낼 의무가 있다.
래원의 입장에서 당시의 황태수는 이를 우습게 생각하고, 죽은 민세라의 소지품에 함부로 손을 댄 실망스러운 선배였다.
래원은 과거 자신의 이 같은 소신과 철학이 헛된 게 아니었음을 이번 생에서라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당시의 내가 옳았던 거라고···.’
그래서 지금 더더욱 민세라와의 접점을 만들며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짜 이유가 뭐든, 중요한 것은, 지금 래원에게 [노미령]을 맡아줄 민세라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래원의 안에는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박 대표님, 제가 직접 민세라 씨랑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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