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61
“작가님, 그러면···. 두 가지 버전 다 찍어서 편집실에서 비교해보죠.”
– 두 가지··· 다요?
“네. [이소은]이 다 알고 죽는 것과, 모르고 눈을 감는 것. 둘 다 가편집본까지 보시고 같이 골라보는 거 어떠세요? 콜?”
– 네? 네···. 콜!
“좋아요.”
–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감독님? 너무 번거로우신 거 아닌지···. 저야 너무 좋긴 한데···.
“그래봤자 몇 테이크 더 가는 건데요, 뭐. 작가님이 이렇게까지 고집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고, 저도 마찬가지니까··· 저로서도 두 개 다 찍어보는 게 더 마음 편할 거 같아요. ”
– 감..사합니다, 도 감독님!
“혹시 알아요? 찍어서 편집하고 보니, 제 생각과 다를 수도 있는 거고요.”
– 제가 틀렸을 수도 있죠.
“하하하. 뭐가 더 옳든. 우리 드라마 후반부의 핵심 장면인 만큼 후회 없이 만들고 싶어요.”
– 저도요! 헤헤.
래원과 차가을은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전화 너머로 들리는 서로의 웃음소리에 결국은 같은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드라마를 후회 없이 잘 만들고 싶은, 단 한 가지 마음 말이다.
래원이 이전의 삶에서부터 꿈꿔온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드라마.
이를 위해서라면 가장 가까이 있는 동료부터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존중’이라는 것을, 래원은 잘 알고 있었다.
“자아! 그럼 다시 38씬 슛 들어가겠습니다!”
“넵!” “조명 준비됐습니다.”
“감독님이 슛 들어가신단다!”
“음향 준비 완료요!”
“촬영팀도 됐습니다!”
촬영장에서 대기 중이었던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래원의 외침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여러분, 이번 엔딩씬은 테이크를 여러 번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아··· 그래요?”
“원래 대본이랑 콘티 대로 먼저 가고요, [이소은]이 숨을 거두기 전에, 이 교통사고가 우연이 아니라 [정성욱]이 사주한 것임을 다 알고서 눈을 감는 버전으로도 갈게요.”
“뭐, 네! 그렇게 하시죠.”
“중간에 쉬었다가 재콘티 드리겠습니다.”
“찍고 싶으신 대로 편하게 찍으세요. 저희는 도 감독님 디렉팅만 따르겠습니다!”
표인하 촬영감독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흔쾌히 답했고, 다른 스텝들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래원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오늘의 마지막 촬영 분량이라 그만큼 퇴근이 늦어지기 때문에, 왜 굳이 여러 버전을 찍는지 누군가는 따져 물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 입이 댓 발 나올 법한데도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작용과 반작용.
물리 법칙이 인간관계에도 적용이 된다.
래원이 팀원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팀원들 역시 래원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리더로서 의심 없이 따르고 있었다.
지금 이 촬영장의 스텝들과 배우들은 모두 ‘신뢰와 존중’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 중심은 도래원이었다.
* * *
같은 시각, 래원과 통화를 마친 차가을의 작업실에서는 모종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가을아, 나 이번에 너희 작품으로 평론 쓸까 하는데···.”
작업실을 같이 쓰는 언니, 차여름의 물음.
차가을은 잘 됐다는 투로 바로 부탁을 얹었다.
“그럼 언니, 지금 말고 13화까지 보고 써 줘.”
“왜? 13화에 뭐라도 나와?”
상기된 미소를 짓는 차가을.
“13화에 도래원 감독이 힘준 장면이 나올 거거든.”
이에 차여름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게. 그때 쓰는 게 너네 후반부 시청률에 더 도움이 되겠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62화 – 리디북스
* * *
“이모님, 저희 떡볶이 1인분이랑 튀김 1인분 세트요.”
래미는 이나와 함께 ‘원더빅 엔터테인먼트’ 근처 서울숲 떡볶이집에 왔다.
이제는 단골이 되어버린 이곳을 이나 언니에게도 소개해 주기로 한 것이다.
“래미야, 오늘 연습실가면 월말 평가 결과 나와있으려나?”
“그러게요. 궁금해 죽겠어요. 언니는 1등 누가 할 거 같아요?”
“글쎄, 우리 아니면 솔라랑 노노카 언니네?”
“그럼 우리 팀이랑 그 팀 중에서는요? 누가 더 가능성 있을까요?”
“··· 글쎄, 그건 좀 어렵다.”
“으음, 저는 그래도 우리가 조금, 아주 조금은 더 잘한 거 같아요!”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래미.
“우리가 잘하긴 했지. 탱고가 우리한테 딱 맞는 선곡이긴 했어.”
“언니가 너무 잘해서 제가 따라잡느라 힘들었지만 언니 덕분에 재밌었어요.”
“에이, 도래미! 엄살은···.”
“헤헤. 우리가 1등 먹었으면 좋겠다아···. 할 수 있을까요, 1등?”
래미는 자신이 있으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두 팀이 자타공인 막상막하였으니까.
래미와 이나가 1등을 염원하며, 월말 평가 때의 퍼포먼스를 곰곰이 반추하는 사이.
“주문하신 떡튀 세트 나왔습니다.”
곧장 포크를 들고 달려드는 두 사람.
“으아···. 맛있는데, 엄청 맵네?”
이나는 스위스인 어머니의 영향인 건지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했지만, 좋아했다.
래미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맛있게 먹는 이나의 모습에, 언니지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 저희 오뎅 4개 추가요!”
익숙한 목소리에 무심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 래미는,
바로 ‘솔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토끼 눈이 되어버렸다.
‘헐. 솔라랑 노노카 언니잖아···? 아까 우리 대화···! 다 들었겠지? 아아··· 어떡해···.”
순간, 떡볶이 때문에 빨개진 입술만큼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오른 래미.
“솔라야, 같이 합석해서 먹을래?”
무슨 배짱이었는지 먼저 말을 걸고 말았다.
“그래.”
“구로자.”
다행히 솔라와 노노카가 흔쾌히 자리를 옮겼다.
“노네 너무 잘 하도라. 호호.”
“언니네가 더 잘했죠. 헤헤헤.”
“아냐, 래미 너 춤 실력 완전 많이 늘었던데?”
“솔라랑 노노카 언니는 호흡이 진짜 최고였어.”
“이나 언니랑 래미도 연습 많이 했던데 뭐!”
함께 자리한 네 사람은 서로를 칭찬하기 바빴다.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에 머리끝까지 민망함이 밀려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일종의 연습생들끼리의 사회생활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네 사람 모두 반은 예의상으로 하는 말이었으나, 나머지 반은 분명히 진심이었으니까.
그만큼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강력한 라이벌이자 존재 자체만으로 자극이 되는 동료로 말이다.
그때,
지이잉—
네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엇. 결과 떴다!”
원더빅 여자 연습생 단톡방이었다.
[월말평가 매니저] 10월 월말 평가의 결과를 발표합니다.1위. 노노카 & 솔라
2위. 이나 & 래미
3위. 은영 & 혜인
···
“거봐. 노노카 언니랑 솔라가 1등이잖아!”
“에이, 보나 마나 언니네랑 점수 차이 엄청 적을걸?”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이나와 솔라가 호들갑을 떨며 입을 열었다.
“내가 봐쓸 때눈 이나랑 래미가 더 잘 해떤 거 가툰데···.”
노노카가 아직은 익숙지 않은 한국어 발음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민망한 듯이 눈웃음을 지었다.
“인정. 두 사람 진짜 잘했으니까.”
래미는 웃으며 진심이 담긴 축하를 건넸다.
진정한 승부사는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법이었다.
지이잉—
연이어 뜬 새 메시지.
[월말평가 매니저] 다음 달은 월말 평가가 없습니다. 대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12월 월말 평가는 연습실이 아닌 무대에서 치러집니다.“와! 무대에서 본대요!”
“대박!”
“악! 떨려 떨려!”
“기대된다!”
지이잉—
단톡방이 다시 한번 울렸다.
[월말평가 매니저] 원하는 연습생끼리 3명~5명씩 팀을 짜서, 보컬 1곡과 퍼포먼스 1곡. 총 2곡을 준비해주세요.이에 래미와 이나, 노노카 그리고 솔라의 눈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동시에 마주쳤다.
‘3명에서 5명으로 팀을 짜라고?’
지금 이 순간 이들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친 듯했다.
* * *
“흐흠···. 지금 컷 이지은 감정이 별로예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SBC의 종편실.
래원은 편집 감독, 편집 스텝과 함께 13화 종합 편집을 하고 있었다.
“오케이 커트 다른 거 있으니까, 바스트까지만 쓰고, 나머진 다른 커트로 갈까요?”
“네넵.”
편집실 뒤쪽에는 차가을 작가가 앉아있었다.
방금 전에 들어온 그녀는 래원과 편집 팀이 일할 동안,
호기심 어린 눈으로 편집실 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차 작가님, 이제 엔딩 씬 차례네요. 여기 오셔서 같이 골라보시죠.”
잠시 후, 래원이 차가을을 부르며 옆자리에 의자를 놓아주자 그녀가 다가와 앉았다.
“저 편집실 들어와 본 거 오늘이 처음이에요.”
“아 정말요?”
“네, 편집은 감독님들 고유 권한이잖아요. 그래서 왠지 여기는 작가가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랄까? 경력 많으신 작가님들은 몇 번 와보신 거 같은데 저는 그동안 초대해주신 감독님이 없었거든요. 초대 감사해요, 도 감독님.”
“와보시니 어떠세요? 그렇게 유쾌한 장소는 아니죠?”
“뭐랄까, 신기한데요? 저는 기계랑 안 친해서 이렇게 기계가 가득한 곳에 오면 쫄거든요.”
“하하하. 그럼 지금 작가님이 쫄아 계신 틈을 타서 엔딩씬을 빨리 정해버려야겠네요!”
“제가 그렇게 또 호락호락하진 않죠. 헤헤.”
래원과 차가을의 대화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편집 감독의 말,
“스탠바이 됐습니다.”
두 사람은 금방 진중한 얼굴이 되어 화면에 집중했다.
“먼저 이건, 원래 대본과 콘티대로 [이소은]이 교통사고의 정체를 모른 채 죽어가는 버전입니다.”
편집 감독이 촬영본을 재생시켰다.
.
.
밤늦은 시각.
교복 차림의 [박태하]와 [이소은]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다.
“소은아, 조심히 들어가!”
“내일 봐, 태하야!”
같이 걸어오던 두 사람이 사거리 앞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헤어진다.
홀로 횡단 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이소은].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초록 불로 바뀌자 길을 건너는 [이소은].
그때, 그녀를 향해 돌진해오는 헤드라이트 불빛.
끼이이이익——
툭 — 휘익——
순식간이었다.
차와 부딪힌 [이소은]은 튕겨 나가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굴었고, 횡단 보도 앞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그녀의 눈이 감겨가면서 서서히 블랙 아웃되는 화면.
.
.
“여기까지입니다.”
편집 감독이 정지 버튼을 눌렀다.
래원과 차가을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보니까 어떠세요, 작가님?”
“감독님께서 제가 대본으로 쓴 것 이상으로 잘 찍어주신 것 같아요.”
“과찬이세요. 대본이 워낙 좋았죠.”
“류소현 연기가 아주 제대로 물이 올랐네요. 이렇게 잘 해낼 줄 몰랐어요.”
“그렇죠? 저도 촬영장에서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사실이었다.
촬영 초반에 류소현이 공황장애로 쓰러졌을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그 이후로 그녀의 연기는 날이 갈수록 훨씬 더 좋아졌다.
다행스럽게도 전보다 촬영 현장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럼 편집 감독님, 이제 다른 버전도 보여주세요.”
래원의 주문에 편집 감독은 영상을 넘겼다.
.
.
끼이이이익——
툭 — 휘익——
차와 부딪힌 [이소은]은 튕겨 나가 나뒹굴었고, 쓰러진 채 피를 흘렸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쓰는 그녀.
저벅- 저벅- 저벅-
이때.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의 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