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83
‘왜 이곳까지 찾아왔을까.’
김권 회장은 내게 한 가지 권유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과 거래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철수와의 의리를 선택하여 그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게 마음에 걸린 걸까.’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가 한국에서 몇이나 되겠는가.
그가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었겠지.
한데, 나는 삼정의 김 회장 같은 사람, 그런 부류의 사람을 자주 만났다.
기업을 움직이는 사이즈는 다르더라도 회장 자리에 오르면 대부분이 비슷한 면모를 풍겼다.
‘호승지벽.’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성정이라고 할까.
그런 성미 덕에 상대하기가 벅찬 적이 많았거늘, 이제와 돌이켜보면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내겐 왜인지 딱해 보이기만 하다.
내가 만약 나이가 어리거나 인생 경험이 없었다면,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거나 그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애를 썼겠지.
그거야 옛날 일이고.
지금은 다르다.
삼정의 김 회장이 찾아왔다고 해서 나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손님일 뿐이니까.’
대통령이 찾아오든 누가 오든 간에 약초를 원해서 찾아왔다면 내겐 줄서서 기다리는 손님일 뿐이다.
특별대우는 없다.
“오랜만입니다. 김 사장님.”
삼정의 김권 회장.
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악수를 받은 뒤 말했다.
“여기까지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약초 맛 좀 보려고 왔습니다. 선생님도 좀 뵙고 겸사겸사.”
“천종산삼만으로는 부족하시던가요?”
“하하하. 150살 까지 살아야하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그래서 찾으시는 약초라도 있으신지?”
“찾는 약초라..허허.”
김 회장이 미간을 좁게 찌푸렸다.
찾으시는 약초?
김권 회장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권력의 정점에 섰으나 이곳에서는 평범한 손님 대우를 받을 뿐이니까.
치기어린 감정을 제발 저버리길 바라며 나는 그의 대답을 묵묵히 기다렸다.
“여기 있는 약초 전부 다 주시죠.”
역시,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소문대로 성미가 급하다.
“…..!”
“얼마면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자금은 넉넉하니 선생님께서 얼마를 불러도 괜찮습니다.”
“하..”
이걸 어찌 해야 할까.
수많은 시민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의 제안을 어떤 말로 거절을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죄송하지만, 전부 팔지는 못 합니다.”
“…..!”
“축제를 찾은 시민들을 위한 약초이니, 욕심은 거두어 주시죠. 회장 님.”
욕심을 거두어 달라는 나의 말에 김권 회장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나와 김권 회장의 대화를 지켜보던 시민들 또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김권 회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김권 회장의 그릇이 간장 종지 그릇이 아니길 바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하하하. 김 선생님 같은 분은 제가 처음 봅니다. 제가 김 선생님의 약초를 전량 구매하고자 함은 다름 아닌,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
“실례가 아니라면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시민들의 눈빛에서 흥미가 돋았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나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게 아닌가.
역시 보통 내기는 아니다.
1억을 불러버릴까.
아니면, 2억? 10억?
10억을 부르기 위해 입을 떼려는 순간, 어디선가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군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김 회장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군수가 다급히 김 회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회장님. 축제를 즐기러 오신 겁니까?”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군수는 나와 김권 회장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한 듯 어쩔 줄 몰라했다.
* * *
“하하하 그랬다고요?”
최갑수 군수가 털털하게 웃음 지었건만, 속으로는 땀을 삐질 흘리고 있었다.
김도일 선생이 그토록 단호히 거절한 것이 꽤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수의 태도가 조심스러웠다.
“김도일 선생은 산수 마을에서 약초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약초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방문하셔서 구매하셔도 될 겁니다. 너무 염려치 마시죠. 김 회장님.”
김 회장은 김도일 선생의 태도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세계 기업 삼정이 아니던가.
누구나 김 회장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일상이거늘, 오직 김도일 만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손님 취급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김 회장은 오히려 그런 김도일 선생의 성질을 큰 그릇으로 여겨 반겼다.
“군수님도 잘 아시다시피 김도일 선생의 아버지가 얼마나 유명했습니까?”
“잘 알죠. 아무렴 제가 모르겠습니까? 김석훈 선생의 약초 덕에 제가 알기론…..”
“맞아요. 저희 아버지도 김석훈 선생에게 100년 먹은 하수오를 구매하려다가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들었거든요.”
“맞습니다. 그만큼 약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분이고, 약초라 함은 반드시 필요한 분에게만 판매를 하시는 분이라.”
“허허. 참 신기한 부자라니까요.”
굳을 뻔 했던 분위기가 다행히 잘 녹아가고 있었다.
김 회장도 기분이 상할 만한 일이었지만, 다행히 큰 노여움은 없어 보였다.
“축제 진행이 원활하게 잘 진행됨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최 영감님도 계시더군요.”
“최 영감이라 함은?”
“군수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3선 국회의원에 도지사 까지 역임하신 분인데요. 주차장에서 교통 통제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아…정말 그랬습니까?”
“아무튼, 참 대단한 동네라니까요. 과거의 권력을 다 내려놓고 사시는 모습을 보니, 제가 다 반성하게 됩니다.”
“별 말씀을…아무래도 마을에 대한 사랑이 넘치시는 분들이라.”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혹시 축제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네?”
“무엇이든 괜찮으니 말씀 해보세요.”
최갑수 군수가 주위의 부하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이래봬도 군의 군수다.
마을과 읍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이참에 삼정의 대기업에게 협찬을 받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성과였다.
“축제를 준비하는 직원들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고 싶건만, 아시다시피 국민들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축제라 지출을 아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씀해보시죠.”
“축제 준비를 위해 힘써준 직원과 마을 주민들을 위해 무료 밥차라도 지원해주신다면, 다들 행복해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김 회장이 웃음 지었다.
생각보다 소박한 제안에 다시 한 번 시골의 소소한 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밥차라니요. 그것가지고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축제가 열리는 장소마다 밥차와 음료를 무한히 드실 수 있도록 준비 할 테니, 군수님께서 직원 분들에게 잘 알려주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사무실 안으로 최승희 사무관이 다급히 들어왔다.
그녀의 한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최갑수 군수가 궁금한 얼굴로 최승희 사무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아….저 김도일 선생님께서 이걸 꼭 회장님께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최승희 사무관이 김권 회장에게 검은 봉지를 건넸다. 최승희 사무관이 말했다.
“하수오 한 뿌리라고 합니다. 아까 미처 대답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답이라고 하시면서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
김 회장이 털털한 웃음을 지었다.
거액을 들여 약초를 전부 사려 했건만, 도리어 공짜 약초나 얻어 가는 게 아닌가.
‘그릇이 상당한 양반이네.’
김 회장은 그제야 김도일 선생은 돈으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회장이 검은 봉지를 건네받으며 씩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살펴 가시지요.”
김권 회장이 검은 봉지를 흔들거리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관이 곤혹스러운 기색으로 김 회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괘…괜찮으신가요?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
“괜찮네.”
“아니면 저희가 직접 축제 관계자에게 문의하여 김도일이 판매하는 약초를 전액 구매해서 자택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거 괜찮다니까! 하수오 한 뿌리면 충분하다고!”
김권 회장이 성을 내며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이번 기회에 김도일 선생을 반드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했거늘..
김권 회장도 사람인지라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빈손으로 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봐 오 실장!”
“네! 회장님!”
“거래처로 가서 약초 좀 구해다가 본가에 올려 보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또 언젠가 만나게 되는 날이 올 것이야.’
언젠가 김도일의 약초를 독점하고야 말겠다고 김권 회장이 다짐했다.
* * *
‘이게 웬 횡재냐.’
읍내 시장에 위치한 철수의 약초가게도 때 아닌 성황을 누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시장을 누비고 있었으니, 약초가게를 찾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중에서.
“최 선생님?”
갑자기 삼정의 비서관들이 철수의 약초가게를 찾아온 게 아닌가.
“아이고! 오 실장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약초를 좀 구매하려고 왔습니다. 자택으로 택배 좀 붙여주시죠.”
오 실장이 철수에게 약초 거래 품목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철수는 종이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많은 양을요?”
“서울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니 품질 좋은 것으로 잘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철수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정도 양이면 한 달 치 매출을 한 번에 올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영옥이를 불러 기쁨을 만끽했다.
“영옥아!”
“아이고 깜짝아! 귀청 떨어질 뻔 했잖아요.”
“삼정에서 우리 집을 찾아와서 이걸 다 준비해달라고 하거든? 대박이지 않냐?”
“이걸 다요?”
“흐흐흐. 준비 좀 해서 택배로 잘 붙여봐.”
“당신은 어딜 가게!”
“나가서 놀아야지!”
“또 도일 씨 만나러 가는 거지?”
“빙고!”
철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초가게를 나왔다.
많은 돈을 벌었으니, 도일이와 함께 오늘은 진하게 한 잔 하리라.
‘장어나 먹으러 가볼까!’
* * *
‘하수오 한 뿌리로 만족하려나.’
김권 회장의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였다.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것.
한번 거래를 트고 나면 이래저래 휘둘리며 다닐 게 뻔하다.
애초에 선을 그어버려야지.
적당한 타이밍에 군수가 찾아와주어 참 다행이었다.
김권 회장이 떠난 뒤부터 약초가게는 호황을 더 하고 있었다.
손님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기자들도 가게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