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97
“대단하시네요.”
“배우 오디션 봐도 되겠다.”
“하하.”
시골의 이발소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끝이 아니다.
면도까지 해준다.
이발소에서 받는 면도는 옛 방식 그대로였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건을 덮은 뒤 면도날도 거칠게 난 수염을 삭삭 긁어낸다.
샤워하면서 대충 하던 면도기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얼굴을 때 밀고 목욕한 기분이다.
“와. 깔끔하네요.”
“솜씨가 기가 막히지?”
“저랑 서울에서 동업하실래요? 이정도 실력이면 서울에서도 꽤 유명해질 거예요.”
“허허허. 읍내에서 유명하면 됐지, 뭔 서울까지 가서 그러냐.”
스스로의 실력을 자부하는 듯 사장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한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이른 분을 보면 실로 존경심이 생긴다.
계산을 위해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려는 찰나.
이발소 사장님께서 나의 손을 막아선다.
“어허.”
“예?”
“넣어 둬.”
“넣어 두라니요?”
“두 번 말 안 해. 넣어 둬!”
“······.”
면도날을 들고선 단호하게 얘기를 하니 꺼내놓은 지갑을 주머니 속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공짜 이발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공짜 이발은 군대에서 겪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무작정 밀면 그만이었거늘!
“너는 인제부터 우리 산수 이발소의 명예VIP니까. 언제든지 이발하러 와.”
“아···왜 이런 호의를···제가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말문이 막혀서 말이 안 나와요. 사장님.”
“말 겁나게 잘하는구먼. 얼른 들어가 봐.”
“네.”
머리를 예쁘게 자르고 면도까지 했으니, 가을의 단풍처럼 내 얼굴도 화사하게 빛이 나는 기분이다.
정말 빛이 나긴 했다.
아재 냄새가 솔솔 풍기는 로션과 스킨을 듬뿍 발랐으니 말이다.
* * *
이발을 끝내고 나오는 길, 이번에는 가을 옷을 사기 위해 읍내 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말 장날이었다.
장날이라고 해서 인구 감소로 인해 시장은 예전의 북적거림을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시장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드문드문 약초가게가 있었다.
약초를 찾는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니 축제의 여파가 아직 식지 않은 것 같았다.
약초 가게를 구경하러 잠시 들렀더니 손님들이 찾는 것은 하수오였다.
발모의 신약이라고 소문나 전국에서 찾는 이들이 꽤 많았다.
비록 우리 집에서 판매하는 강화한 하수오가 아니지만, 하수오 자체 효험은 분명하니 약초를 찾는 이들이 효과를 봤으면 싶다.
‘옷가게를 가볼까!’
약초가게를 지나 조금만 걷다보면 할머니가 계시는 작은 옷 가게가 있다.
옷 판매 경력은 산수이발소의 사장님과 맞먹지 않을까.
왜인지 신뢰가 간다.
“안녕하세요. 남자 옷 좀 사러 왔어요.”
“그래요. 천천히 둘러보세요.”
“예.”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워낙에 오래 전에 봤던 터라 아마도 기억 못하시겠지.
예전에 읍내 시장에서 약초 장사를 며칠 한 적 있었는데, 옷가게 사장님과 마주친 적이 따로 없었다.
그때 미리 인사를 해둘 걸 그랬다.
나는 좁은 옷 가게에서 남자 옷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랬더니.
“거기는 여자 옷이에요!”
“예.”
반대편으로 돌아갔더니 남자 옷이 있었다. 흰색 와이셔츠부터 시작해 간단히 입을 티셔츠, 청바지와 면바지. 작업할 때 좋은 편안한 옷 등. 다양한 옷들이 있었다.
‘옷을 고르는 일은 항상 어렵다니까.’
매번 그랬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직접 쇼핑을 했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전 처 희숙이가 사주는 거 그대로 입었다. 사이즈도 딱 맞고 그게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내 취향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 취향이 뭐더라?’
의아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취향이 있던가?
반평생 자신의 취향을 모른다니.
돌이켜보면 희숙이가 내 취향을 만든 것 같다.
사주는 것만 입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희숙이에게 전화해볼까.’
간혹 안부 정도는 묻고 사는 사이였기에 이걸 빌미로 전화를 해볼까 했다. 마침 일이 끝난 시간인 것 같기도 하고.
“희숙아”
-어?
“내 옷 취향이 뭐더라?”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 한 거야?
희숙이의 말투에서 웃음기가 감돈 것을 보니 본인도 어이가 없나보다.
이럴 때는 뻔뻔하게 행동해야 한다.
“항상 네가 사준 것만 입었잖아. 그러지 말고 알려줘 봐.”
-너는 취향이 워낙에 까다로워서 뭘 사줘도 잘 입지 않더라고.
“그래?”
-바지는 청바지보다는 면바지를 잘 입었어.
“또.”
-갈색 면바지를 사주면 잘 입었어. 티셔츠는 그림 그려진 건 입지도 않아서 내가 집에서 입고 다녔고. 아, 셔츠는 잘 입더라.
“오. 내가 그랬구나.”
-지금 장난 해?
“고맙다. 희숙아.”
-옷 사러 온 거야?
“어. 읍내 옷 가게. 순간 선택 장애가 와서 너한테 전화해봤어,”
-아무거나 사 입어. 시골에서 멋 내고 다닐 일이 뭐가 있다고. 나 바쁘니까 끊어. 그리고 연희 대학 등록금은 생각해 봤어?
“등록금? 그건 걱정마. 머리 아픈 얘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 일 봐.”
-그래. 수고해.
“그래. 들어가라.”
희숙이와 전화 통화를 하고나니 선택의 폭이 훨씬 좁아졌다.
갈색 면바지와 셔츠라.
진열된 옷 중에서 갈색의 면바지와 파란색 셔츠를 골랐다.
거울 앞에 서서 셔츠를 맞춰보니 썩 잘 어울린다.
“사장님!”
“응?”
“이걸로 할게요.”
“그려.”
사장님이 내게 옷을 받더니 검은 봉지에 옷을 넣으셨다. 나는 계산을 위해 지갑을 빼들었고.
“옷이 마음에 드는가?”
“네. 너무 예쁘네요.”
“그려. 들어가 봐.”
“네. 얼마에요?”
“들어가 보라니까.”
“계산은···”
내 물음에도 답하지 않고 할머니는 뻥튀기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신다.
계산은 포기.
나는 엉겁결에 봉지를 들고 옷가게를 나왔다.
대체 이유가 뭘까.
내가 이 읍내의 시장에서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이런 대우를 해주시는 걸까.
참, 신기하다.
셀럽이 된 기분이 이런 걸까.
‘얼른 도망가야겠어.’
* * *
공짜는 나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녀석이다.
반평생 영업 했던 놈의 뇌는 어쩔 수가 없다.
공짜는 믿지 않는 다는 게 샐러리맨의 머릿속에 각인된 지론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 듯이, 선의를 받는 것 또한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받는 것과 주는 것을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받는 것을 고르겠지.
그렇다고 주는 것을 골랐다고 해서 손해 보진 않는다. 언젠가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게 시골 인심이니까.
그래, 공짜를 믿자.
“뉘여?”
“예?”
읍내 시장을 거의 빠져나갈 무렵.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저 도일이에요.”
“움메! 도일이여?”
“네. 아시잖아요. 여기서 장사도 했었는데요.”
“그게 아녀! 얼른 들어와서 떡볶이나 먹고 가라.”
“예?”
“얼른!”
“아···예.”
이런, 또 붙잡혔다.
대뜸 붙잡혀 엉겁결에 떡볶이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떡볶이 한 접시를 내주신다.
내가 좋아하는 쌀떡이다.
게다가 소스도 꾸덕꾸덕하니 딱 내 취향이다.
“와아. 쌀떡이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 인데요. 소스도 완전 옛날 맛 그대로. 완전 추억의 맛인데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떡볶이 아니겠는가.”
“예.”
변하지 않는 것은 또 있었다.
떡볶이 한 접시에 2천 원.
요즘 시대의 물가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심지어, 어묵도 하나에 300원이었다.
작년에 서울에서 먹었던 어묵은 하나에 천 원이었는데.
대체 서울 물가는 얼마나 높은 걸까.
서울에서 이곳은 세 시간 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사는 세상이 너무나 다르다.
“여기 어묵도 좀 묵어봐.”
“네. 어머님.”
“자네. 인물이 어쩜 그렇게 좋아?”
“네?”
“얼굴도 반반하게 잘 생겨. 옷도 훤칠하게 입고 다니고. 아주 멋들어진다.”
“하하. 어머님도 예쁘세요.”
분식집 어머님이 눈을 말똥말똥 뜨시며 내가 먹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신다.
“도일이 덕분에 축제도 성했고, 우리 읍내 시장 방문객도 예전보다 훨씬 늘었어.”
“에이. 어머님.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요. 그냥 저냥. 다 같이 하는 일이니까 저도 옆에서 거든 것뿐이죠.”
“삼정 회장이 우리 축제에 찾아온 것도 자네 덕이라며. 게다가 하수오를 천지에 알린 사람도 자네의 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겠지.”
“하하.”
“하여튼. 우리 시장 사람들은 도일이를 아주 고맙게 생각해. 그러니까, 시장에 자주 놀러와. 이 할매가 떡볶이도 맛나게 해 줄 테니까.”
“예. 어머님.”
그때였다. 떡볶이 가게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나란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왔어?”
“네! 떡볶이 1인분 주세요!”
“오냐. 아무 곳이나 앉아.”
어머님은 환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했고, 떡볶이를 볶기 위해 좌판으로 향했다.
마침 떡볶이 1인 분이 아이들이 앉은 식탁에 놓였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안 먹어?”
“아까 먹었어. 너 먹어.”
“응.”
뒤를 돌아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니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한 것 같은 남자 아이와 고학년으로 보이는 누나였다.
‘귀엽네.’
남자 아이는 게 눈 감추듯 떡볶이를 흡입하고 있었고, 누나는 침만 꿀꺽 삼키며 떡볶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양보를 하는구나.’
저렇게 예쁜 남매가 있을까.
음식을 양보하다니! 떡볶이가 한참 맛있을 나이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