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Return to Home RAW novel - Chapter (9)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오늘 위령제의 사회를 맡은 영웅보 총관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지금부터 본보 대공자님의 위령제를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대의를 위해 희생한 무림 영웅들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일동 묵념!”
총관의 말이 있자, 연무장에 모인 삼천여 군웅들이 일제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는 단상 위에 앉아 있는 백여 명의 귀빈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영웅보주 백운목을 비롯해 악양 일대의 문파 수뇌부 고수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대부분 중소문파 장문인이었다. 천혈방 타도에 뜻을 같이한 대형 무관의 관주들도 있었다.
이는 그만큼 지금까지 천혈방의 압력이 거셌던 때문으로, 이제는 투항이냐 전쟁이냐의 선택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 때문일까.
군웅들의 표정에는 애도의 감정보다는 분기탱천한 비장감이 가득했다.
사실 군웅들 대부분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위령제가 실은 영웅대회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다른 목적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영웅보 부보주 백항과 그 아들 백철한, 그리고 십대장로였다.
그들에게는 이번 위령제가 후계 구도 변화의 의미가 컸다.
위령제를 마치면 대공자의 죽음이 기정사실로 되고 후계 지위는 부보주인 백항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어 어떻게든 군웅들이 모인 오늘 그 사실을 확실히 다짐받을 생각이었다.
백엽은 영웅보의 배려로 단상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백여옥이 백운목 옆에 자리를 마련했으나 부담이 된다며 일부러 구석진 자리로 옮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기분은 복잡미묘하기 짝이 없었다.
말이 위령제이지 실제로는 자신의 장례식과 다름이 없었다.
그 때문일까.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한가지 욕구가 샘솟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실종된 대공자임을 밝힌다면 어떻게 될까? 왜 나는 가족을 찾았으면서도 그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럴 거면 왜 이곳으로 왔단 말인가.’
짧은 묵념의 시간이었지만 백엽은 혼란스럽고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가족의 정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최근 며칠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십만대산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천마신교 무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교주가 된 후 천마신교를 새롭게 정비하고 혁신한 그는 나름대로 큰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림 통일이었다.
그것은 제1대 천마의 유언이기도 했다.
천마대장경에 수록된 천마의 유언은 그에게 강력한 압박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무림을 통일하는 것이 뭐가 부끄럽겠는가.
그 때문에 그동안 관례로 행해왔던 양민들에 대한 침탈을 엄히 다스렸다.
무림맹과의 충돌 역시 최소화하여 지난 십 년간 마교와 무림맹은 오랜만에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림맹 측에서는 이를 전쟁 준비로 해석했고, 실제도 그랬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백엽은 자신의 가문이 무림맹에 의해 멸문된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정당당하게 대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특히 양민들에 대한 수탈금지는 그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다만 무림맹과의 전쟁에서 그 방법에 관해서는 관대했다.
정파에서는 원칙적으로 암살이나 독, 암기 등을 사용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나 백엽은 달랐다.
싸움에서는 그 방식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천마살수 부대를 육성한 것도 그 계획의 일환이었다.
지난 십 년간 육성한 천마살수는 모두 천여 명.
그 재원은 이전과 달리 납치가 아닌 지원을 받았다.
천마신교 무사 중 원하는 자에게 상승무공을 가르쳐주고 그 대우를 높여 주었다.
백엽이 살수 출신 교주가 된 당시 천마신교에서는 그 지원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구 년 후 천마살수 부대가 완성되자, 백엽은 일 년 전부터 그들을 비밀리에 천하 각지에 파견했다.
이미 거점마다 천마신교의 비밀분타와 이를 대표하는 향주들이 있었지만, 분타 무사들은 암살 같은 특수전을 치르기에는 능력이 부족했다.
백엽의 계획은 정마대전이 발발하면 한 달 이내에 천마살수들을 이용해 무림맹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무림맹 총단이 있는 낙양에만 백 명의 천마살수들이 잠입해 있었다.
이곳 악양에는 열 명의 천마살수들이 있었다. 열 명이 한 개조를 이루기 때문이었다.
사흘 전 야산에서 천마음으로 그들을 부른 백엽은 악양 상황을 보고 받았다.
보고를 들은 백엽은 곧바로 암살 지시를 내렸다. 대상은 바로 어젯밤에 죽은 천혈방 악양지부장 조도생이었다.
조도생에 의해 간살당한 부녀자가 백여 명에 달한다는 보고에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조도생의 무공이 생각보다 강한 것이 문제였다.
임무는 성공했으나 조장이 중상을 입고 실종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번 기회에 천마살수의 실전 능력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결국 완벽한 작전은 실패한 셈이었다.
‘조장은 앳된 목소리의 젊은 여자였다.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겠군.’
백엽이 안타까워했다.
천혈방 악양지부를 빠져나간 것은 확인이 되었으나, 도주 도중 실종된 셈이었다. 마지막에 조도생의 숨을 끊어놓다가 반격을 당해 중상을 입은 것을 조원들이 목도한 바 있었다.
백엽은 곧바로 그녀를 찾을 것을 지시했고, 아직도 수색 중이었다.
‘내가 직접 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백엽이 묵념 도중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생각했다.
이전 같았으면 별 신경도 쓰지 않았을 터였다.
사실 지난 일 년간 천마살수들은 첩보를 모으면서 교를 위해 다른 임무도 많이 수행했다.
백엽의 지시를 어기고 양민을 수탈하는 교도들을 색출해 처단하는 임무였다.
총단 무사 중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각 비밀 분타에는 아직도 이전의 습관을 지우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
특히 향주들의 품성이 좋지 못할 때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백엽은 양민을 수탈한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할 것을 지시했다.
그 결과 실제로 천마살수를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은 지역 향주들이었다.
천마살수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도 감찰 때문으로, 집행과정에서 그 무공들이 대단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는 자연스럽게 곧 닥칠 정마대전에서 가장 큰 변수로 거론되고 있었다.
“묵념 끝!”
총관의 말에 군웅들이 고개를 들었다.
다들 위령제를 어서 끝내고 영웅회 결성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영웅보 대공자가 삼십 년간 실종되어 그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큰 관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영웅보 측에서도 위령제 절차를 대폭 간소화할 예정이었다.
다만 위령제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악완과 대공자가 맺은 혼약의 파기, 즉 파혼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웅보의 후계 구도 재정립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보주님의 추모사가 있겠습니다. 추모사가 끝나면 분향이 있을 것이며, 분향을 마치면 위령제는 종료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총관의 말에 백운목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먼저 이렇게 제 아들의 위령제에 참석해주신 여러 영웅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아들을 잃어버린 것은 삼십 년 전입니다. 당시 천하 각지에서 많은 아이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을 납치한 곳이 마교라고 생각합니다.”
백운목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추측에 불과했지만 마교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아버님께서도 짐작은 하고 계셨구나. 하지만 지금 와서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백엽이 찹작해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구를 수가 있단 말인가. 다가올 미래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구나.’
천마신교와 영웅보.
교도들과 가족.
상반되는 인연의 줄이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형국이었다.
백엽은 천마심공을 운공해 마음을 편히 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백엽이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백운목의 추모사는 계속되었다.
위령제의 성격 때문인가.
천혈방 이야기보다는 아들을 납치해간 원흉으로 추측되는 마교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이었다.
아들을 잃고 그동안 억눌러왔던 아버지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백여옥은 벌써 훌쩍이고 있었고, 백여희 또한 눈시울을 붉혔다.
“오늘 분향까지 마치게 되면 제 아들은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정혼 관계 역시 없던 것이 되겠지요. 아시는 분은 아셨겠지만 여기 계신 악 소저와 제 아들은 정혼을 한 사이였습니다. 악 장문인과 제가 오래전에 약속했었지요. 이제 위령제가 끝나는 즉시 정식 파혼이 성립함을 밝힙니다. 악 소저. 한 말씀 해주겠소?”
“네. 보주님.”
악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이번 파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소문이 많이 퍼진 터라 굳이 감출 필요도 없이 이런 공개적인 절차가 마련된 것이었다.
“화산파 제자 악완입니다. 영웅보 대공자님과의 인연이 이어지지 못하게 되어 저도 유감이에요. 비록 이번에 파혼하게 되지만 제가 다른 곳에 시집가기 전 대공자가 만일에 살아 돌아온다면 그 정혼 관계가 부활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하하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 마음만으로도 고맙소.”
백운목이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에는 이슬이 조금 맺혀 있었다.
백엽 역시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격동했다.
‘아버님 아들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언젠가는 아시게 될 겁니다.’
백엽이 당장에라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싶었으나, 이성이 아직 그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직 완전히 내상이 회복되지 않아 약간 파리한 안색의 백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이제 본보의 후계 구도에 대해 밝혀주십시오. 위령제가 끝나면 조카는 이제 죽은 사람이니 소보주 자리는 공석이 됩니다. 그럼 약속대로 차기 보주 자리는 부보주인 제가 맡게 되는 것이지요? 군웅들 앞에서 다시 한번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본보의 관례상 보주 자리는 아들만이 맡을 수 있습니다. 이제 소보주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니 부보주인 제가 차기 보주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닙니까? 이건 형님께서 약속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 문제는 여희가 설명할 것이다.”
백운목이 백여희를 쳐다봤다.
백여희가 단상 앞으로 나왔다.
“맹주님께서 본보의 보주 자리를 여인이 계승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위령제를 마치면 제가 소보주가 될 겁니다. 물론 언제라도 제 오라버니께서 살아 돌아오시면 그 자리는 오라버니께 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