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49
249.
이린이 서월각으로 숨어들자 내부는 방금 전의 전투 때문인지 소란스러웠다. 덕분에 꽤 성공적으로 검성이 알려 준 대로 안쪽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아낸 거지.’
의아했지만 곧 검성이 일러 준 작은 전각을 발견했다. 다소 트여 있어 주변을 살피는데 중년 여인 하나가 쟁반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총총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일하는 사람인가?’
여인이 사라지고 조용히 다가가자 뜻밖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젊은 사내가 보였다. 쓰러져 있는 데다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으….”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지만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일단 연 대협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죠.
―아. 네.
사내가 눈을 떠서 침입자가 있다고 비명이라도 지른다면 곤란해진다.
청휘는 겨우 방 한두 칸 정도 될까 싶은 작은 건물의 창문을 두드리고 몸을 피했다.
“누구?”
“오빠?”
익숙한 목소리에 이린이 대뜸 달려갔다.
“린…! 린아? 린아니?”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려다 자신의 입을 막은 이현이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고, 눈물도 같이 흘렀다.
“무사했구나!”
“문 열어 줄게. 잠깐만 기다려.”
이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 있던 두 사내가 각자 제 검과 도를 휘둘렀고, 위장 따윈 생각도 않는 듯 호쾌하게 문을 부쉈다.
콰과광!
“…….”
“…….”
“잠깐, 이건 우리가 낸 소리 아냐.”
“알아요.”
마침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 덕분에 두 남자가 만들어 낸 소음은 묻혔다.
“신교 쪽인 모양인데… 일단 우린 오빠부터 빼내죠.”
이린은 부서진 문 사이로 나온 이현을 꼭 끌어안으며 눈물의 상봉을 했다.
“오빠 몸은 괜찮아? 다쳤다고 들었는데.”
“으음. 움직이는 건 좀 힘들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이현이 무인치고는 호리호리한 편이라지만 키가 큰 편이라 이린이 부축하려니 불안정해 청휘와 천영이 양쪽에서 함께 부축했다.
“나는 반대 방향에 불을 지른 후, 두 분에게 오빠를 무사히 구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갈 테니 두 사람은 먼저 오빠를 데리고 돌아가요.”
“하지만 연 소저.”
“그편이 빨라요. 경공은 두 사람보다 내가 훨씬 빠르다는 거 알죠? 걱정하지 말아요.”
이린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두 사내는 그저 미간을 찡그릴 뿐이었다.
떠나려는 일행을 이현이 막은 것은 출발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쓰러져 있는 익숙한 사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잠시만, 잠시만요.”
“?”
연이현은 쓰러져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이미 많은 피를 흘려 신음하고 있는 사내는 이현이 익히 아는 자였다. 이현은 놀라서 사내의 상처를 지혈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게 대체… 괜찮습니까? 정신 차려 봐요.”
이미 의식을 잃어 가는 사내의 뺨을 때려 눈을 뜨게 하자 위지선은 이상한 얼굴로 눈을 떴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까 격렬한 남매 싸움을 보았지만 그 여인이 한 일 같지는 않았다.
“하, 글쎄.”
위지선은 소운이 준 술을 마시고 난 후의 일을 떠올렸다.
[하긴 나도 소운은 싫어하지 않아.] [부교주님께서 그리 생각해 주신다니 영광이군요.]오늘따라 소운의 미소가 유난히 깊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키운 세하를 버리고 교주 곁에 붙을 정도의 여자였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바라는 게 뭐지?] [제가 부교주님께요? 그저 편히 술이나 드시고 쉬셨으면 할 뿐이죠.] [거짓말. 뭔가 바라는 게 있…!]푸욱.
이상할 정도로 빨리 술에 취해 의식이 흐려진 순간, 뒤에서 소검 한 자루가 자신의 복부를 꿰뚫었던 것을 기억했다.
[당신 말대로, 당신과 세하는 어릴 적부터 내가 키웠죠. 하지만 그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잖아요? 당신을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할 수는 없군요. 저 안에 갇혀 있는 사람과는 달리요.] […왜…?] [아비를 잘못 만나 비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 이제 와 아무것도 모르는 이를 벗으로 삼아 하하 호호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어요? 과연 그 아비의 그 아들답군요.]언제나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순종적으로 굴던 그 여인이 아니었다.
[곧 당신의 아비도 곁으로 보내 드리지요.]희미하게 들려오던 소운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가라.”
“네?”
“쿨럭.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가라고.”
“하지만….”
“그 여자 말대로야.”
“네?”
자신과 연이현은 전혀 다르니, 자신이 혈교의 부교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멍청한 사내도 분명 자신을 경멸하겠지.
“…이 정도 상처는…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른 놈들이 오기 전, 에, 쿨럭, 가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흥분해서 도리어 피를 쏟아 내는 것을 본 이현이 서둘러 멀어졌다.
“알겠습니다. 상처를 돌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보중하십시오.”
만약 내상까지 치료할 수 있는 영약이 있다면 자신들이 사라져 주는 편이 더 나을 거란 생각에 이현은 선선히 물러났다.
그런 이현을 보던 위지선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참으며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삼켰다.
“허억, 허억….”
약이 있으면 무엇 하나, 그마저도 연이현이 자신을 깨우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텐데.
수하들 중에도 자신이 죽어 갈 때 살리려 할 놈이 몇 놈이나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 그래도.’
이렇게 되고 보니,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얼굴은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위지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
이린이 한창 부서지고 있는 한월각으로 갔을 때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검성과 천마에게 몰린 혈교 교주가 중년 여인을 밀치고 하얀 머리카락의 여인을 끌고 가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그런데 저 사람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아직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기분이었지만 떠올리려 노력할 여유도 없었으므로 교주의 사각지대에서 조용히 상황을 관찰했다. 지켜보고 있으려니 저 여인이 신교 사람이라는 건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아, 아버지?!”
“연화문. 이 계집은 주선하의 딸이다. 설마 네 벗의 아이까지 죽일 셈이냐?”
“!”
“와, 저거 미친놈이네.”
주선하와 위지운이 부부였다는 사실은 곽선후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제 딸을 인질로 잡아?’
마교 놈들 중에는 인성 터진 놈들이 많지만 저 정도로 미친놈도 흔하지는 않았다.
어이없는 것과 별개로 확실히 섣불리 다가가기는 어려워졌다.
‘뭐 솔직히 죽어도 상관은 없는데.’
곽선후는 남의 집 딸이 죽거나 말거나 신경 쓸 정도로 섬세한 성격은 아니었다. 다만 옆에 있는 연화문의 표정이 심각하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귀찮은데 그냥 바로 죽일까?’
곽선후가 갈등하고 있던 그때였다. 소란 때문에 나온 듯한 여인 하나가 검을 든 채 위지운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곽선후와 연화문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주님! 무탈하십니까?”
“오오. 소운. 내 호위대는 아직이더냐? 내가 위험한데 아직도 오지 않다니,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푸욱.
“커헉?!”
“아악!”
소운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교주의 심장을 관통해 교주에게 목을 잡혀 있던 세하의 어깻죽지까지 파고들었다.
뜻밖의 공격에 두 사람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소운? 세하? 대체 무슨 일이…!”
앞이 보이지 않는 제갈윤주의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심장을 관통당한 위지운은 피를 왈칵왈칵 쏟으며 충혈된 눈을 하고 소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네년이…!!”
“그런데 교주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신녀와 부교주께서 선대 교주님의 자식이라니요.”
우드득―
“아, 아아악!!”
소운이 온몸의 힘을 다해 검을 살짝 비틀어 뽑자 위지운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덕분에 주세하는 위지운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검성과 천마에게 수세에 몰려 있다고는 하나 혈교의 교주라는 자가 고작 삼류 무인에도 못 들 여인의 어설픈 검에 찔려 저리 고통스러워할 줄이야.
“너, 너 그 검에 무슨 짓을…!”
“주세하도, 위지선도. 네놈이 선대 교주님 몰래 멋모르는 계집을 꼬여 내어 낳게 한 아이였지.”
그 말에 피를 흘리며 주저앉은 세하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이어진 충격에 몸보다 정신이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를 배려해 줄 이가 이곳에는 없었다.
“그런… 그럼 나는….”
“이 쓰레기가 어린 계집을 취해 낳아 놓고, 주워 온 아이인 양 데려와 선량한 얼굴로 선대 교주께 함께 키우자고 내밀었지.”
역설적이지만 상처와 맞바꿔 위지운의 위협에서 벗어난 주세하가 어깨의 고통도 잊은 듯 망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하, 세하!”
“대모님, 아니죠! 사실이 아니죠!”
달려온 제갈윤주를 붙잡고 외쳤지만 제갈윤주는 세하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자신이 주선하와는 아무 관계 없는 고아가 아니라, 위지운이 부정하게 얻은 아이였다니.
“아아아악!!!! 아니야! 차라리, 차라리 아무 관계 없는 아이라고 말해!”
고통도 잊은 듯 주선하가 미친 듯이 위지운에게 달려들려는 것을 제갈윤주가 온몸으로 붙잡았다.
“선하는 너를 친딸로 키웠다. 자신의 뜻을 이어 줄 사람으로.”
“그럼 나는, 나는 그냥… 그냥….”
그저, 뜻을 잇기 위해 키운 아이.
그것도 남편의 부정으로 만들어져 존재 자체가 기만이었던 아이.
“저런 것의 핏줄이란 사실에 연연하지 마라. 너를 키운 것은 선하와 나, 그리고… 소운. 우리 세 사람이다. 넌 우리 딸이야.”
“대모님….”
혼란스러워하며 제갈윤주에게 매달리는 세하를 보며 소운이 입술을 비틀었다.
평생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이가 아니라 부녀 관계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자의 친딸이었다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계속 위지운의 딸이 신교의 신녀 노릇을 하는 걸 놔둘 수는 없었다.
설령 주선하가 원하지 않더라도.
주선하의 뜻을 이어 가고 싶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이상 아무리 죄가 없다 해도 주세하까지 감싸는 것은 괴로웠다.
주선하가 죽은 뒤 바뀌어 버린 혈교를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그렇기에 몰래 혈교를 방해했다.
사문이라는 존재가 혈교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믿을 수 있는 이들 일부를 혈교에 보내거나 회유해 정보를 빼냈다. 그리고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혈교의 정보를 정파에 정하는 사문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는 백린의 비늘 무늬를 찍어 무림맹에 보내 혈교가 실패하도록 했다.
주세하가 실종되었을 때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주세하가 없으면 혈교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차라리 빨리 사라져 버렸다면 더 빨리 망할 수 있었을 텐데.
주세하가 실종된 후 소운은 마음이 변해 혈교에 투신한 척 교주에게 접근해 입안의 혀처럼 굴었다. 교주는 선대 교주인 주선하에게 짓눌려 살았다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사근사근한 연약한 여인을 좋아했다. 특히나 선하를 신봉하던 소운이 자신에게 오자 더없이 기뻐했다.
처음에는 조금 수상쩍어하는 듯했으나 소운은 무력한 여인이니 크게 경계하지도 않았고, 지극정성으로 자신의 상처를 돌봐 주는 소운에게 곧 경계를 풀었다. 오래전 검성의 검에 크게 다친 이후로 교주는 좀처럼 낫지 않는 상처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사람 돌보는 것이 능숙한 소운이 달가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안 그래도 비위를 맞춰 주는 존재에 목말라 있던 교주는 소운을 곁에 두고 죽은 주선하를 헐뜯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덕분에 5년간 그를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살기(殺氣)를 숨기는 것이 어려웠을 뿐.
분명 옛날에는 좀 더 교활하고 야망이 넘치는 자였건만, 20여 년 전 주선하를 잃고 말 그대로 빈사 상태에서 살아 돌아온 위지운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쓰레기 같은 남자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주선하게 곁에 있어서 멀쩡해 보였을 뿐. 실상이 뒤늦게 나타난 것뿐인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뜻밖에 죽은 줄 알았던 주세하가 귀환했다.
또 일을 그르칠까 싶어 한동안 걱정했지만 다행히 혈교의 뒷바라지는 포기한 듯 보였다. 죽을 때까지 모를 수 있다면 행복했겠지.
“후후후. 가엾은 것….”
복수는 끝냈다. 그 사실에 긴장이 풀린 소운은 풀썩 주저앉아 힘없이 웃었다.
끔찍한 부친을 갖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소운은 잘 알았다.
오라비의 노름빚으로 팔려 갈 뻔한 딸이 지나가던 협객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을 때 안도하며 웃던 소운의 부친은 오라비가 다시 노름에 손을 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집안의 여유 재산. 평소에는 돈을 벌어 오고, 집안을 돌보고, 수발을 들다가 가계가 위험할 때면 언제든 팔아 치울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자신이었다.
그리고 소운의 눈에는, 주세하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렇기에 주세하가 미워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어깨에는 피를 쏟으며 혼절할 듯 울어 대는 주세하를 보며 소운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화르르―
서월각에서 치솟기 시작한 불길이 이어지는 전각에 옮겨붙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