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7
천하제일 시한부 (37)
“이실직고하겠습니다.”
결국 남창묵가의 전 무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이어진 절정급 무사의 말에 난 그를 돌아봤다.
“그럼 답해라.”
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검을 내려놓은 채, 더욱 고개를 숙였다.
공격할 뜻이 없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다.
“자호 무사를 왜 고용했나?”
“자호 무사는…… 알면 안 되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절정급의 무사가 침음을 집어삼키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 알면 안 된다는 게 정확히 뭔지 읊어.”
“미약입니다.”
“미약?”
“정확히는…… 본 묵가가 자금을 벌어들이는 가장 큰 사업장이 바로…… 미약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아.
이거 더욱 열받는다.
미약은 엄연히 나라에서도 제조가 금지된 물품이다.
하지만 아직도 버젓이 기루나, 주루 같은 데에서 심심찮게 돌아다니곤 한다.
“미약 사업하는 걸 자호 무사가 알았단 말이로군.”
내 말에 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미약 사업은 황제가 직접 엄금한 금지 사업 중 하나입니다. 그런 와중에 하필이면 자호 무사가 저희 사업장 현황을 훑고 있다는 증좌를 찾아냈고.”
아무리 돈으로 고용했어도, 자호 무사는 외부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핏줄로 이어진 세가라면 더더욱.
굳이 찜찜한 위험을 남겨 두는 것보다, 확실한 입막음을 택한 것일 테고.
“저 많은 시체들은?”
“미약을 이용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사업주들을…….”
“하, 이 ×발. 이거 완전 양아치 새끼들이네?”
순간 욱한 감정이 치솟았다.
그렇게 고문해서 얻을 걸 얻어 낸 다음, 약에 중독시켜 마치 전염병인 것처럼 위장해 죽였다?
“너희가 사람 새끼냐?”
나 또한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켜야 할 선 같은 건 있었다.
일반인, 어린아이는 절대 건드리지 말자는 것.
하지만 남창묵가는 그 선을 완벽히 넘었다.
이럴 거면 사파, 흑도 놈들과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우득!
그대로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다 집어치워. 그것도 백번 그럴 수 있다고 내 이해해 보지.”
“…….”
내가 말과 함께,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놈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내게서 풍겨져 나오는 짙은 살기를 느낀 것이다.
“그래, 그렇게 다 이해한다고. 근데 너희가 가장 크게 실수한 것이 있어.”
우우웅!!!
기운이 요동쳤다.
까악! 까악!
때아닌 시체 냄새에 굶주린 까마귀 떼들이 무리 지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조카. 내 조카를 건드렸단 거다.”
난 저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다 죽여 버릴 것이다.
그 생각이 곧 의지가 되고, 내 의지는 곧 형상화된 기운으로 나타났다.
‘월하무.’
일식호흡, 첫 번째 장.
달빛 아래 추는 춤.
서릿발 같은 기세가 사방으로 뻗쳤고, 내 시야 안에 놈들을 가득 담았다.
“자, 잠깐!!”
상대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늦었다.
또한 들어 줄 생각도 없었다.
쩌정!
그대로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
잔상을 남기며 이동하는 탓에, 놈들은 내 움직임을 절대 간파하지 못한다.
꽈광! 쩌적! 쩌저정!!
천지가 요동쳤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남창묵가의 무사들이 우후죽순 쓸려 나갔다.
그래, 이건 내 단순한 화풀이였다.
조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
아니, 모르겠다.
그냥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용솟음쳤다.
그래…… 그냥 화가 난 거다.
이 뭣 같은 상황 자체가.
“후욱.”
가볍게 손을 털었다.
주변을 잠식하던 기세가 순식간에 걷혔다.
“…….”
“사, 살귀…….”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이라곤 단지 저 무사 하나뿐이었다.
주변 일대가 모조리 불에 탄 듯 잿가루만 펄펄 휘날렸다.
“너희 가주 어디로 갔나?”
“모, 모르오. 하, 하지만 오늘 안에는 돌아오신다고…….”
“그럼 넌 살려 주지.”
우득!
말과 함께, 난 겁을 잔뜩 집어먹은 무사의 팔 한쪽을 발로 지그시 밟아 부러뜨렸다.
말 그대로 살려만 줄 것이다.
“끄아아악!!”
“너희 가주에게 전해라. 조만간 다시 찾아올 테니, 목 닦고 기다리라고.”
혈맥을 완벽히 부숴 놨으니, 다시는 검을 들지 못하리라.
그 말을 끝으로 난 품을 뒤적였다.
품속에서 얼굴 반을 가리는 가면 하나가 나왔다.
아까 조카 놈의 시신을 수습할 때, 챙겨 뒀던 그 가면이었다.
자호 무사들이 잠입 임무나 암살 임무를 행할 때 지급되는 물품인 듯했다.
난 그걸 쓰고 그대로 남창묵가를 벗어났다.
남창묵가의 담벼락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벌건 대낮에 전각이 무너지고 큰 소란이 일어났으니 몰려들 만도 했다.
흠칫!
사람들은 내가 나오기 무섭게 주춤대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표정에는 잔뜩 공포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남창묵가는…….”
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였다. 약을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하고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에…… 벌한다.”
쿵!
말과 함께,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동시에 담장이 우르르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
내기를 대지에 침투시켜 담벼락 근처에 모조리 폭사시켜 버린 것이다.
“세, 세상에……!”
“워매, 이게 대체 뭔 일이래!”
“무, 묵가가 약을 썼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서 뒤편 묵가의 참혹한 전경으로 향했다.
“남창 제일가인 묵가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저걸 다 죽였다고?”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저런 고수가 뭣하러 굳이 거짓말을 할까?”
“그렇지! 홀로 가문 하나를 멸했는디!”
“쳇, 저런 놈들은 죽어도 싸지.”
사람들은 금세, 생각하기를 멈췄다.
어차피 조사해 보면 다 나올 일이기에, 난 그런 반응들을 뒤로한 채 그대로 몸을 날렸다.
* * *
“괜찮으십니까?”
“…….”
광흑이 눈치를 살폈다.
‘잠깐 사이에 세가 하나를…… 그것도 남창 제일가를 멸문시키다니.’
사실 광흑 역시 속으로 상당히 놀랜 눈치였다.
난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내가 가면을 쓴 이유.”
광흑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광흑은 내 말뜻을 대번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통제하겠습니다.”
혹여라도 내 이름이 거론되어선 안 되니까.
“하아…….”
그나저나, 앞으로가 걱정이다.
형에게 대체 뭐라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난 광흑의 인사를 뒤로한 채, 형 집으로 향했다.
“어?”
보통 때라면 형과 형수는 밭에 나가 있어야 했다.
“왔냐?”
하지만 형과 형수는 굳은 표정으로 정신없이 집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해? 뭔 일 있어?”
“남창묵가가 무너졌단다. 이거야 원…….”
근데 왜 소란일까.
“남창묵가가 무너진 게 우리랑 뭔 상관인데?”
“오라비!”
방문을 열고 서희가 달려 나왔다.
서희의 손에는 짐을 꾸린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세가끼리 전쟁이라도 난 것 아니겠느냐. 내 안 그래도 그간 남창묵가가 불안하다 했더니…….”
형의 말에 그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그러니까 지금 형은 남창묵가와 다른 세력 간의 세력 싸움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무슨 피해가 올지 모르니 빨리 돌아가라…… 그런 뜻인 듯했다.
“형은 어쩌게?”
“뭘 어째? 벗어나고 싶어도 이젠 어디 갈 데도 없고…… 철진이 그놈도 어디로 갔는지…….”
조카 얘기가 나왔다.
“형, 할 얘기가 있어.”
“나중에, 나중에 듣자. 지금은 일단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중요한 얘기야, 서희 너도.”
진지한 어투에 형과 서희가 동시에 날 바라봤다.
“이거…….”
난 품에 고이 넣어 둔 무명천을 꺼내 형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냐?”
곱게 접어 둔 천을 펼쳐 보며 형이 물었다.
“에고고, 뭐 하고 있어요? 얼른 도와주지 않고? 그건 뭐람?”
형수가 주방에서 나오며 소리쳤다.
그녀 역시 펼쳐진 무명천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색이 꼭 밀가루도 아닌 것이 꼭 뼛가루 같네.”
형수는 대수롭지 않게 툭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형을 지나쳐 마당으로 걸어갔다.
일순.
“…….”
형수가 걸음을 멈췄다.
형 또한 경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형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아, 아니지?”
“도련님…….”
형이 물었다.
형수는 눈빛으로 물어봤다.
“내가 너무 늦었더라고. 미안해.”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수가 풀썩 쓰러졌다.
형 또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천을 다시 고이 접었다.
형의 두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
“누가 그랬더냐.”
형은 놀랍도록 침착을 유지했다.
형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들어 물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알아냈고?”
“응.”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가만히 손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남창묵가. 그래서 내가…… 없애 줬어.”
“그래…… 알았다. 내 잘…… 알았다.”
형은 입술을 앙다문 채 쓰러진 형수를 부축했다.
부축하는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아마도 있는 힘껏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는 것이리라.
형수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는 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서희가 내 팔뚝을 붙잡았다.
서희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비…… 무슨 말이야? 오라비가 없앴다니?”
그래, 이제 알 때도 됐다.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으니.
“잘 들어, 서희야. 내가 네게 거짓을 말한 것이 있어.”
“…….”
서희는 불안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오라비는…… 네가 생각하던 삶이랑은 정반대로 살아왔어.”
“정반대……?”
“그래. 사람을 죽인 것도 물경 수천을 헤아려. 아니 더 될 수도 있고. 내 지시로 죽어간 사람까지 합한다면 배의 배가 될 수도 있겠지.”
“…….”
서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살진 않았다. 그냥 ……살기 위해서 검을 들었고, 검을 들었으니 베었어. 그뿐이다. 헌데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서희가 가만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사람들이 그러더군. 천하제일검이라고.”
* * *
“제길…….”
남궁세가의 총호법.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서진의 뒤를 쫓아 남창에 들어왔다.
그가 들어서기 무섭게 귀를 찌르는 소문 하나.
“웬 가면을 쓴 젊은 고수가 남창묵가를 홀로 멸문시켰대유.”
웬 젊은 고수.
총호법은 그가 주서진이라 확신했다.
홀로 남창묵가를 걸어 들어가서, 초전박살을 내 놓고 다시 걸어 나올 수 있는 자.
또한 그런 배포를 지닌 자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주서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총호법은 생각했다.
“이건 분명 경고다.”
그게 아니라면 서진이 굳이 자신이 올 시점에 맞춰 남궁세가와 동맹이나 마찬가지인 남창묵가를 무너뜨릴 일이 뭐가 있겠는가?
서진이라면 이미 남궁세가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속에서 천불이 솟아났다.
쾅!
“어윽!”
총호법은 앞에 앉아있는 남궁진성의 머리통을 냅다 후려쳤다.
“에라이, 버러지 같은 놈. 네놈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사단이란 말이냐.”
“…….”
남궁진성은 억울했다.
하지만 처맞기는 싫었기에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총호법이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이미 남창묵가를 공격했다함은 우리가 용서를 구할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뜻인가?’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정말 젊은 고수가 나타나 남창묵가를 무너뜨린 거라면?
머릿속이 복잡했다.
‘후, 이런 저자세도 짜증 나는데, 확 들이받아 버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총호법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룡대는 여기서 대기하라. 내 상황을 알아보고 올 터이니.”
총호법은 말과 함께, 무사들과 남궁진성을 남겨둔 채, 남창묵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