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5
천하제일 시한부 (55)
“이게 무슨……?”
놀란 북궁설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름 좀 빌리지, 뭐.”
“이, 이러다 정천맹이 알기라도 한다면 어쩌시려고요?”
“괜찮아.”
난 대충 북궁설의 반응을 떠넘기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지.”
본래라면 별채에서 좀 진득하게 독기를 좀 제어해 보려 했다.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이 터졌으니, 해결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난 그대로 완성된 깃발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 넌 좀 잘 보이게 이 근방 담벼락에 좀 꽂아 두라고. 높은 곳이 없어서 좀 걸리긴 하지만…… 일단 뒷문 쪽을 부탁하지.”
“아, 알겠어요.”
북궁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대충 서너 개 정도를 쥐어 주고 나는 나머지를 싹 긁어모아 그대로 정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서희를 비롯한 모두에게 깃이 든 목함을 건네주었다.
“이것들은 좀 구석구석 꽂아 봐.”
“엥? 정천맹?”
서희가 깃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장 좀 하려고.”
대충 눈치를 챈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귀면탈혼과 광흑에게 지시를 내려 깃을 꽂기 시작했다.
“지붕은 내가.”
무공을 배우지 못한 서희는 정문 앞을 맡았고, 난 지붕 쪽을 맡았다.
대략 스무 개쯤 꽂았을까?
깃발이 바람에 일제히 펄럭이는 모습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야, 이게 주씨세가 이름을 박아 넣었어야 했는데…….”
물론 곧 그 날이 올 것이다.
당당하게 주씨세가의 이름을 박아 넣은 깃발이 일제히 나부끼는 그 날이.
“히유, 다 끝났어.”
서희가 지붕 위에 있는 날 올려다보며 외쳤다.
“좋아.”
그럼 이걸로 준비는 끝마친 셈이다.
만약, 저들이 정천맹의 깃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다면?
스윽.
난 그대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럼 뒤져야지. 뭐.”
톡톡히, 값을 치르게 해 줄 심산이다.
* * *
준비를 끝냈다.
파고들면 허술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정천맹이 개입한 것처럼 꾸몄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날이 밝았다.
난 해가 뜨기 무섭게 초영부터 찾았다.
“아직 정보들이 취합되지 않았습니다. 따로 추려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아직 초영에게 들어온 정보는 없는 것 같았다.
“설마하니 전력을 모아서 치고 들어올 생각인가?”
어젯밤부터 난 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주위 반경 일대에 기막을 펼쳐 혹시라도 드나드는 이들이 있을까 세심히 살피기도 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흠.”
뭔가 불길하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봉칠이 시켜서, 애들 좀 풀어놔.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보고하게 시키고.”
“조치하겠습니다.”
초영이 살짝 고개 숙여 답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단주님.”
“왜.”
초영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 빙궁에서 도망치셨다는 분을 좀 만나도 되겠습니까?”
“흠, 글쎄. 내가 너희에게 정체를 발설했다는 걸 아직 모르거든.”
“잠시 확인할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초영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개방의 문제인가?”
“그렇습니다.”
개방의 문제라, 이를테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에 대한 침묵?
전국에 퍼져 있는 거지새끼들을 이끄는 곳이 바로 개방이다.
그런 개방을 총지휘하는 것이 바로 태상방주, 노걸개였고 말이다.
고작 북궁설을 쫓기 위해 삼천이 넘는 무인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무림에는 그 흔한 소문 하나 퍼지지 않았다.
그건 정보를 쥐고 있는 개방도가 암암리에 입을 다물었다는 말이 된다.
“내가 직접 물어보지.”
초영은 궁금한 것이 많은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곧장 북궁설이 있는 별채로 향했다.
북궁설은 내부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뭐하냐?”
내 물음에 북궁설이 후욱 하고 짧게 심호흡하며, 자세를 풀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요. 후…….”
아무래도 꽤나 긴장한 듯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차라리 그냥 제가 도망치는 걸로 하는 건 어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때.”
“조용한 거 보면 몰라?”
난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미 저들은 의심을 하고 있는 거야. 널 이곳에 숨겨뒀다고 확정을 했을 거라고.”
“죄송해요.”
북궁설이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후후, 근데 내가 궁금한 게 있단 말이지.”
난 이때다 싶었다.
초영이 부탁했던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새외삼변, 그들을 움직이는 패주들이 부활했다는 것은 곧 중원에서는 엄청난 위협이 되는 거거든?”
“네, 그렇죠.”
북궁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아버지도 그 점에 대해 염려하셨었어요. 패주들이 다시 세력을 규합하려 할 때도 가장 먼저 반대했던 것이 저희 아버지였거든요.”
난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환, 내게 가장 먼저 세력이 찢겨나간 자.’
북해빙궁은 삼변 중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빙궁의 빙마대는 궁주 직속 호위들로 전성기 때의 신기검단과 호각으로 겨뤘던 놈들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난 더욱 철저히 북해빙궁의 세력들을 분쇄시켰다.
“지금부터 내가 이걸 알아야 우리 가문도 또 너도 무사할 수 있을 거 같거든?”
본격적인 질문을 던질 시간이다.
“중원에서 그 삼변들을 돕고 있는 놈들이 있나?”
“네, 있어요.”
북궁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난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재차 물음을 띄웠다.
“그들은 본 적 있나?”
“음…….”
북궁설이 고민했다.
그녀로서는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충분히 고민될 사안이다.
하지만 폐를 끼치기도 했고, 이 정도쯤은 말해 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보긴 봤어요. 저희 궁과 접촉했던 세력이 있었거든요. 한 일 년 전쯤인가?”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만약 빙궁과 접촉한 세력이 개방이라면?
그 자체로 중원을 뒤흔들 거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난 북궁설의 입에서 개방이라는 이름이 절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에 확신한다.
개방이 그렇게 멍청한 놈들이 아니니까.
‘분명 정체를 숨기고 접근했겠지.’
“그들이 접근했다면, 뭔가 조건 같은 걸 내걸었을 텐데?”
내 물음에 북궁설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잘 기억나진 않은데 당시에 아버지께서도 고민을 많이 하셨을 정도로 엄청나긴 했어요.”
북궁설이 손바닥을 탁 마주쳤다.
“아, 기억났습니다. 그들.”
북궁설이 눈을 반짝였다.
“사륭회.”
“…….”
어?
이건 좀 다른데?
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와?
“사륭회……?”
형에게서 들었던 그들이다.
조부가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는 미지의 세력.
“네, 사륭회. 확실해요.”
북궁설이 빠득 이를 갈았다.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정확히 일 년 뒤, 지금. 반란이 일어나요.”
“…….”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곧 그들을 구워삶을 사륭회가 구축한 세력이 빙궁 내부에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장 삼변은 나오지 못할 거예요.”
“왜지?”
내 물음에 북궁설이 자신의 품을 쓰다듬었다.
“이 보물이 중원과 빙궁을 가로막은 혹한의 협곡을 열어 줄 열쇠거든요.”
처음 듣는 말이다.
당시 빙궁을 막아 낼 때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북궁설이 추가 설명을 보탰다.
“협곡은 항시 눈보라가 몰아치는 죽음의 대지예요. 이 보물이 있으면 눈보라는 멎고 협곡을 쉽게 건널 수 있지만, 없다면…….”
“진법이구나.”
무려 자연환경을 이용한 천혜의 요새.
현재 빙궁은 그 요새 안에 열쇠 없이 갇혀 있는 셈인 것이다.
“보통 때면 항상 열려 있어야 할 협곡이지만, 지금은 제가 가지고 도망쳐서…….”
“잘했네.”
난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저들이 왜 북궁설을 그토록 쫓아오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얘기는 절대 비밀이에요. 절 도와주셨고, 또 신기검단주님을 아신다기에 말씀드리는 거…….”
“알아. 아무튼 정말 필요한 정보였다.”
사륭회가 개입됐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찾아낼 줄은 몰랐지만, 그들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는 찾아낸 셈이다.
‘알았대도 지금 당장 움직일 수는 없지만.’
어쩌면 오히려 좋을 수 있다.
그들이 주씨세가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말해 줘서 고맙군. 알았으니 쉬라고.”
일전에 초영에게 사륭회에 관한 건 말하지 않았다.
또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설프게 그들의 뒤를 잡았다가는 오히려 이제 막 재건하려는 주씨세가의 흔적만 노출시킨 꼴이 될 테니까.
‘사륭회는 가늠이 되지 않는 조직이라 했으니까.’
어쩌면 개방이 얽혀 있을…… 아니, 필연적으로 얽혔을 것이다.
“초영을 내게 접근 시킨 것도 노걸개의 지시였을 테고.”
하지만 초영은 내게 반쯤 돌아섰다.
그녀가 사륭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초영은 사륭회가 어떤 세력인지 잘 모른다.
그렇기에 내게 건 것이다.
‘재밌겠네.’
기막힌 수가 생각났다.
개방을 골려 주고, 나아가 사륭회의 눈을 속이면서 착실하게 주씨세가의 세력을 안전하게 성장시킬 방법이.
‘반간계.’
적의 첩자를 이용해 적을 제압한다.
삼십육계 중, 패전계에 등재된 이간계의 일종이다.
앞으로 초영을 좀 자주 써 먹어야 할 것 같다.
* * *
강소성 남부, 회창현.
이름 모를 한 산속에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끄응.”
그들은 중앙 군막에 들어서기 무섭게 신음을 내질렀다.
내부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주씨세가란 곳을 들어 본 분 계시오?”
가장 먼저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지만 악안에는 딱히 걸출한 문파가 없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무양문주님.”
상석에 앉은 노인은 바로 섬서 무양문의 문주였다.
들려온 대답에 무양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빙궁의 계집이 숨어 있는 걸로 의심되는 그 주씨세가에…… 정천맹의 깃발이 꽂혀 있더이다.”
“…….”
“…….”
내부에 삭막한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입을 닫고 무겁게 표정을 떨궜다.
정천맹.
고작 그 세 글자가 주는 충격은 엄청났다.
“정천맹은 청해에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그들이…… 혹 잘못 보신 건 아닐지?”
“척후를 통해 미리 알아낸 바요. 선풍문주.”
무양문주가 맞은편에 앉은 중년인, 선풍문주를 향해 차갑게 일갈했다.
“지금 본 무양문의 정보를 의심한다는 거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리 들리셨다면 사과드리지요.”
선풍문주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연배로 보나, 무력으로보나 현재 무양문의 심기를 거스를 문파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꿀 먹은 벙어리도 아니고…… 의견 좀 내 보시오.”
무양문주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크게 소리쳤다.
찔끔한 문주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거렸다.
헛기침 소리만 가득 내부를 메웠다.
“쯧쯧, 답답해서 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무양문주로서도 별다른 계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상대가 무려 정천맹이다.
무림맹조차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거대한 세력인 것이다.
여기서 제일 강한 무양문이 수십 개가 뭉쳐 공격해도 정천맹은 일 할의 타격도 받지 않을 만큼 견고하고 강력하다.
“혹시 정천맹주도 소문을 들은 것이 아닐까요?”
“흠, 빙정 말이오?”
무양문주가 일리가 있다는 듯 방금 이야기를 꺼낸 상대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명분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빙궁의 후계자는 주씨세가에 있고, 그 후계자는 빙정을 쥐고 있지요.”
“흠.”
무양문주가 더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빙정을 없앨 수 있다면 빙궁은 절대 중원을 도모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하긴, 명목상 우리는 빙궁의 발호를 막으려는 걸로 보일 테니. 일리가 있소.”
선풍문주를 비롯한 대다수의 문주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을 얻은 사내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정천맹의 주력이 상주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거리가 머니까요. 그렇다면…… 암살대를 보내 그 후계자를 처리하고 그 책임을 정천맹에 뒤집어씌우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습니까?”
“오호라, 만약 실패한다 해도 빙궁에서 보낸 암살대로 위장만 한다면 들킬 리도 없을 테고.”
무양문주가 눈을 빛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했다.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
“그…… 암살대를 보낸다는 것이 조금…… 큼.”
무양문주가 피식 웃었다.
“각자 비밀리에 꾸리고 있는 살수들이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니오?”
그의 말에 찔끔한 문주들이 저마다 눈을 피하며, 헛기침만 해 댔다.
“오늘 밤, 우리는 빙정을 취할 것이오.”
무양문주의 선언에 회의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