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0
제110화. Treasure
“그만 나풀거리고 얌전히 잡혀라! 내 굶주림을 더 지속시키지 말란 말이다!”
이미 눈앞의 마족이 마왕 후보라는 걸 잊은 진 오래.
그룸의 몸 곳곳엔 이미 아크베리아에 베인 자국으로 가득했다.
허나 몸에 상처가 나든 말든, 당사자는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어차피 상처라고 해봐야 생채기가 전부.
제아무리 벨져의 검술이 뛰어나다고 한들, 마력을 담지 않은 검으로 용마족의 신체를 완전히 가르는 건 불가능했다.
이를 벨져도 인지하고선 눈, 콧구멍 등 취약 부위를 집중적으로 노렸지만,
“어지간히 해라, 진짜!”
그마저도 쉽진 않았다.
중간중간 짜증이 치밀어오른 벨져는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다 말고, 그룸의 얼굴을 여러 번 걷어찼다.
그럴 때마다 그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혀를 날름거렸다.
그렇게 그룸의 온 신경이 벨져에게 집중된 사이,
아이스 리퍼와 화이트 위치는 잠시 전투를 멈춘 채, 둘의 일전을 관전했다.
“뭐 하고 있냐 아이스 리퍼! 이 틈에 저년을 제압하란 말이다!”
이를 가만 놔둘 리 없는 네로가 고함치며 지시했다.
지시를 받아들인 리퍼는 다시금 낫을 앞세우며 타깃을 향해 날아들었다.
화이트 위치는 두 후보의 싸움에 정신이 팔렸는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쐐액!
뒤늦게 고개를 돌릴 틈조차 없을 만큼의 빠르기.
찰나의 속도로 날아든 리퍼의 낫은 화이트 위치의 몸을 깔끔하게 반으로 갈랐다.
표적을 처리한 것에 희열을 느낀 듯, 리퍼의 입가로 미소가 서렸다.
-스스스
하지만 갈라진 화이트 위치의 신체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일순간 하얀 가루로 변해 분산되더니, 속절없이 부는 눈보라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뭐야? 겨우 이 정도로 소멸한 거야?”
이런 싱거운 마무리는 네로도 원하지 않았다.
허겁지겁 달려온 네로는 화이트 위치가 사라진 방향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소멸한 것이 아닙니다. 본체가 아니었을 뿐이죠.”
이노투스가 그 뒤를 따르며 상황을 설명했다.
“본체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분신, 즉 가짜란 뜻입니다. 진짜 화이트 위치는 아무래도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여태껏 껍데기 같은 존재에게 힘을 썼단 말이야?”
네로는 자신의 힘이 애먼 곳에 낭비된 것에 분노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벨져 역시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선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뭐야 어디 갔어?”
화이트 리퍼는 둘째치고, 프린과 루비아 또한 보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 본능적으로 든 생각은,
“튀었네.”
도주였다.
설마하니 둘이 사이좋게 손잡고 차나 마시러 갔을 리는 없을 터.
루비아는 그렇다 쳐도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프린을 놓친 건 손해였다.
하지만 벨져는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그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품에서 붉은 보석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동맹을 조건으로 루비아로부터 받은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벨져 본인의 것이었다.
두 개의 마혈석을 유심히 지켜보던 벨져는 대뜸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 틈을 놓칠 리는 없는 그룸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왔다.
“드디어 얌전히 잡힐 마음이 생긴 것이냐!”
침으로 범벅된 수십 개의 이빨이 코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
-쾅!
벨져는 막다른 절벽을 뒤로한 채, 옆으로 재빠르게 몸을 내뺐다.
표적을 놓친 그룸의 이는 그대로 절벽의 단단한 얼음과 만나고 말았다.
-쿠구궁!!
충격을 버티지 못한 얼음 절벽은 큰 굉음을 내며 무너졌다.
“우와악!”
그룸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쏟아지는 얼음 파편에 깔리고 말았다.
그 광경을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지켜본 벨져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자고 있어라!”
그러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급히 달려갔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체?”
“벨져 후보를 쫓아야 합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네로와 이노투스도 벨져가 향한 곳으로 달렸다.
그렇게 한바탕 개판(?) 같은 상황이 지나가고.
잠시 후, 무너진 얼음덩어리 속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푸확!!”
덩어리를 걷어내고 다시 얼굴을 내민 그룸.
허나 이미 주위엔 그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뭐야? 다 어디 갔어!!!”
그룸은 먹이를 놓친 것에 대한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지만, 그마저도 불어오는 눈보라에 묻히고 말았다.
* * *
리고 섬 중앙에 우뚝 속은 얼음산.
루비아와 프린은 현재 얼음산 중턱에 자리한 동굴 안을 걷는 중이었다.
입구는 작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넓어졌다.
마족 열 명이 양팔을 벌리고 지나가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우와 여기 무슨 신전이야? 누군진 몰라도 엄청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놨네~?”
예상치 못한 동굴 내부에 루비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건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 동굴 같은 게 아니었다.
얼음 벽돌을 깐 것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바닥.
활활 타는 횃불을 그대로 얼린 듯, 정체 모를 빛을 반사하는 내벽.
특정 목적으로 가지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임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흥미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는 루비아를 뒤로한 채,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프린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동굴 광장.
“어머~?”
눈 앞에 펼쳐진 낯설면서도 황홀한 광경에 루비아는 넋을 잃었다.
“보물을 처음으로 발견한 기분이 이런 걸까? 썩 나쁘진 않네?”
광장의 중앙에는 집채만 한 크기의 얼음덩어리가 떡하니 자리했다.
그 안엔 남성으로 추정되는 장신 마족의 시신이 담겨 있었다.
시신은 얼음을 깨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온전하게 보존된 상태였다.
단 하나 온전치 못한 부분이 있다면,
목이 없다는 점이었다.
“죽은 지 100년이 넘은 시신으로부터 이렇게 깊은 아우라가 느껴질 정도면, 살아있었을 땐 대체 얼마나 대단했던 걸까? 분명 말로는 표현이 안 될 만큼 멋있었겠지~?”
과거 마계를 제패하고, 강자를 찾고자 인계 침공을 감행한 절대자.
그 이름도 유명한 전대 마왕 벨시페르.
리고 섬에 온 마왕 후보 중 가장 먼저 보물을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시신으로부터 매력을 느낀 듯, 루비아는 입술을 어루만졌다.
“근데 전대 마왕의 시신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시신을 수습했던 부관 아만 크라우넬이 처형되면서, 그때 같이 불로 태워진 거 아니었어?”
이건 이제껏 마족들 사이에서 퍼져있던 정설이었다.
루비아의 옆에서 함께 시신을 바라보던 프린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전대 마왕님께선, 인계 침공 전에 한 가지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만약 자신이 죽은 상태로 몸만 돌아오게 된다면, 자신의 시신을 이 리고 섬의 만년빙 안에 묻어달라고요.”
“왜? 이 섬에 뭐 특별한 추억이라도 있었대?”
“한 세계를 제패한 절대자라고 한들, 그분의 목숨은 무한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마족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셔야 했죠. 전대 마왕님께선 자신이 죽고 난 후, 이 마계에 이름만 남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좀 더 확실한 흔적을 남기는 걸 원하셨죠. 먼 훗날 자신을 이어 마왕이 될 자격을 갖춘 자가 생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깨달음을 얻길 바라셨죠.”
다음 시대를 호령할 마족에게 전대의 마왕이 전하고자 했던 절대자의 품위.
비록 목이 없는 상태라곤 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할 만큼의 엄청난 위엄을 루비아는 느낄 수 있었다.
“전대 마왕은 듣던 거와 다르게 굉장히 낭만적이었구나~?”
그의 매력에 한층 더 빠져든 듯, 루비아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래서? 그 유언을 따르겠답시고, 이 대단한 시신을 대체 누가 여기까지 옮긴 거야?”
그 질문에 관해선 프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스윽 고개를 돌리더니, 루비아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여러분을 이곳으로 오게 한 자와 관련 있는 자라고 해야겠죠…….”
수수께끼 같은 대답에 루비아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입꼬리는 위로 올라가 있지만, 웃었다곤 할 수 없는 애매한 표정이었다.
“우릴 여기 오게 한 자와 관련 있는 자라……. 생각하기 너무 어려운데? 난 잘 모르겠다~!”
급 고개를 젓던 루비아는 대뜸 왔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 생각은 어때? 다일 후보?”
그 말에 모퉁이 너머로 숨어있던 두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만의 종주 다일과 그의 퍼밀리어 페르였다.
다일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화이트 위치가 나타났을 때부터라고 해야겠지? 구석에서 후보들끼리 투닥거리는 걸 관전하고 있었잖아? 이후 몰래 사라지려는 나를 뒤따라온 거고.”
“용케 알고 계셨으면서도 막지 않으셨군요.”
“달리 막을 수단이 없었을 뿐이야. 당신이나 나나, 여기선 제대로 된 힘을 못 쓰는 상태잖아?”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다일은 슬며시 시선을 돌려 루비아를 이곳으로 이끈 프린을 보았다.
마족의 눈동자는 기본적으로 검은색 혹은 붉은색을 띤다.
하지만 현재 프린의 눈 색은,
“보라색 눈동자……. 독을 써서 그녀의 정신을 현혹시킨 겁니까?”
“빙고! 역시 다일 후보는 눈치가 빠르네?”
루비아는 숨기지 않고, 가지고 있던 독초(毒草)를 보란 듯이 꺼내 보였다.
그녀는 괜히 몽마족의 대표가 아니었다.
몽마족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정신 지배와 현혹.
마력 없이도 그 특기를 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숙지한 마족이 바로 루비아 그녀였다.
“그래서 다일 후보는 날 제압하고 이 보물을 차지할 생각이야?”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왔으니까요.”
“당신 퍼밀리어도 검사였지? 와! 쟤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 둘 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네?”
미켄도 자리를 비운 지금, 루비아를 지켜줄 수 있는 마족은 없었다.
페르는 검 자루에 손만 얹을 뿐, 입을 열진 않았다.
“조용히 물러나 주신다면, 저희도 루비아 후보에게 손을 댈 일은 없을 겁니다.”
“이거 완전, 씨는 내가 뿌렸는데 거두는 건 다일 후보가 됐네?”
애써 보물을 위치를 찾아놓고 뺏길 상황에 부닥쳤지만, 루비아의 표정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뭐 괜찮겠지! 애초에 난 전대 마왕의 마력에 욕심이 없었으니까! 그룸 후보나 네로 후보의 손에 들어갈 바에야, 다일 후보의 손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낫다고 봐!”
“다행이군요. 그럼…….”
“근데 안 될 것 같아~!”
잠시 미소가 지어졌던 다일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루비아는 양손을 뒤로한 채,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보물을 마주하고 나니, 욕심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다일 후보에겐 넘겨줄 수 없을 뿐이야~!”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루비아 후보에겐 지금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상태이지 않습니까?”
“나야 그렇긴 하지! 근데…….”
그 순간, 검 자루에 손을 얹었던 페르의 눈이 뒤로 돌아갔다.
낯선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쟤들은 어떨까?”
-채앵!
금속과 금속이 부딪힌 날카로운 소리가 벽에 반사되면서 깊은 울림이 퍼졌다.
몸을 돌린 동시에 재빨리 검을 뽑은 페르.
그의 앞엔 금발의 익숙한 미형의 남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루비아의 퍼밀리어 미켄이었다.
“안 되지, 안 돼. 정원사의 허락도 없이 꽃을 만지려고 하면 쓰나?”
두 손의 손톱으로 검을 막아낸 미켄은 조금은 감정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등장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페르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퍼밀리어가 주인 곁에 있지도 않고, 이제야 나타나는군.”
“잠시 다른 꽃들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야.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우리 누님은 꽃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꽃이거든~!”
“다른 꽃들?”
그 말을 들은 다일의 눈이 미켄의 등 뒤로 향했다.
자신들이 왔던 모퉁이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명의 여인.
다일로선 별로 반갑지 않은 여인들이었다.
그중 한 명인 이사벨이 매서운 눈초리로 다일을 보며 물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