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하기 싫어서 안 한 거지
같은 시각, 온건파 지부.
브릴리스는 늘 그래 왔듯, 하늘에 뜬 달을 친구 삼아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보고 있었다.
지부 습격의 범인 추적, 영지 운영, 그리고 오늘 있었던 전체 회의의 뒷정리까지.
평소보다 3배는 더 바빠진 탓에 차 한 잔 마실 시간 없이, 오직 일에만 열중했던 그녀는,
-벌떡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뭐지?”
마치 어딘가로부터 신호를 받은 듯한 기분이랄까.
이유 모를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 한편에서 잔뜩 피어올랐다.
“벨져 님?”
브릴리스는 뭐에 이끌리듯 부리나케 방을 나갔다.
사실 전체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가자고 할 줄 알았다.
허나 벨져는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지부에서 하루를 머무르겠다고 말했다.
브릴리스로선 조금 뜻밖이었지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어쨌든 좀 더 편한 환경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휴식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 이유를 알고자 브릴리스는 황급히 벨져의 방으로 달렸다.
그러다 돌연 발을 멈춘 곳이 있었으니,
바로 히블즈의 방이었다.
브릴리스는 한 번 숨을 고른 뒤, 조심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
대답은 넘어오지 않았다.
한 번 더 두드려 봐도 달라지진 않았다.
불안감이 더욱 솟은 브릴리스는 즉각 문을 열었다.
그런 그녀를 반겨준 건, 빈방에 맴도는 공허함 뿐.
히블즈는 보이지 않았다.
브릴리스는 약 2초 정도 방 너머를 응시하다가, 다시 벨져의 방으로 달렸다.
문 앞에 이르고선 노크도 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었다.
“벨져 님!”
이번에도 방의 주인은 없었다.
대신,
“어서 와 브릴리스.”
“세, 세나 님?”
세나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일순간 멍해진 브릴리스를 보며 세나는 푸근하게 말했다.
“벨져라면 조금 전에 집으로 갔어.”
“저, 저택 말입니까? 무엇 때문에 가신 건지……?”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혹시라도 네가 오면 대신 전해 달랬어.”
“그, 그랬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나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인 브릴리스는 다시 몸을 돌렸다.
하지만,
“큭?!”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치 급속도로 무거워진 공기가 몸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간신히 눈을 돌려 아래를 보니, 바닥에서 정체 모를 오라가 일렁이고 있었다.
“다시 일하러 가는 거라면 풀어줄게.”
“예에?”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거라면 풀어줄 수가 없어.”
세나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푸근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벨져가 나한테 부탁했거든.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진, 널 여기서 절대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이번 일은 그냥 자기가 해결할 테니까, 넌 그냥 원래 하던 업무에만 집중하래.”
“그럴 순 없…!”
한 걸음 더 내디디려던 브릴리스는 끝내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넘어진 와중에도 나아가기 위해 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 브릴리스의 앞에 세나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았다.
“하수인이면 하수인답게 굴어.”
“그,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으란 말입니까?”
“아니. 벨져를 믿으란 거야. 벨져도 아무 생각 없이 널 가두라고 하진 않았을 테니까. 너도 알잖아?”
세나는 슬며시 브릴리스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곤 반대쪽 손을 까딱이니, 브릴리스의 몸을 짓누르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벨져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 그러니 믿어.”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브릴리스를 보며 세나는 미소를 지었다.
간신히 숨을 고른 브릴리스의 낮은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 * *
현 상황을 모르는 이가 내 얼굴을 본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히블즈가 여기 나타날 것임을 나는 예감했다고.
그래서 저렇게 덤덤한 거라고.
물론 내 표정만 봤을 땐 그리 보이겠지.
하지만 지금의 난,
놀랐다.
그것도 매우 많이.
일단 상황을 설명하기에 앞서, 지구에서 유명한 두 개의 문장을 읊어보고자 한다.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등잔 밑이 어둡다.
아직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온건파 지부 습격 사건의 범인을 난 이미 알고 있다.
페로나 룩스리아.
색욕의 종주, 루비아의 또 다른 동생이라는 몽마족.
나로선 일면식도 없는 마족이지만, 어쨌든 그 몽마족이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루비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뭐 거기까진 좋다 이거야.
나를 싫어할 수 있지.
근데 그 싫다는 표현으로 이런 번거로운 도발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정말로 나한테 경고를 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을 취했어야 한다.
아예 영지를 직접 공격한다든지, 아님 몽마족답게 내 정신에 침투한다든지,
어느 쪽으로든 내가 위협을 느낄 만한 행동을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경고랍시고 한다는 게 고작 온건파 지부 습격?
그것도 단원들을 직접 공격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화재만 일으켰다?
이건 경고가 아닌, 내 심기를 건드리는 명백한 도발이다.
그래서 브릴리스에게 부탁해 온건파 단원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했지.
불만 있으면 직접 와서 말하라고.
설마하니 그 페로나라는 몽마족이 단원들 사이에 숨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협력하는 마족은 있을 거란 추측은 들었다.
무슨 근거냐고?
솔직히 말하면 감이 90 프로였다.
그냥 느낌이 그랬거든.
그래서 미끼를 던져주고자, 경고와 함께 또 다른 영지를 만들 것이라는 계획도 말해줬다.
줄을 던졌으니, 이제는 고기를 낚을 일만 남았을 터.
문제는 그 낚인 고기가,
나로선 생각지도 못한 고기라는 것이다.
“브릴리스와 지부에 있는 줄 알았는데?”
히블즈의 목소리엔 당황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도 내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마 지부에 있는 브릴리스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혼자 온 것인가?”
“그랬다면 이렇게 빨리 오지도 않았겠죠.”
나는 창문 밖으로 눈길을 보내며 무언의 의사를 보냈다.
달빛이 드리워진 창문 밖에는 성체로 변한 수호가 거대한 눈으로 히블즈를 응시 중이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말해주자면, 난 자네에게 딱히 불만 같은 건 없네. 그러니 자네 방으로 찾아갈 이유도 없었던 게지.”
“아, 그럼 순전히 본인 할 일을 하러 오신 거다?”
히블즈는 부정하지 않았다.
“뭐 좋습니다. 자기 할 일 하러 오셨다는데 제가 뭐라 할 건 없겠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 가보시죠. 가시는 길 막진 않겠습니다.”
“순순히 보내주겠다는 건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제가 뒤따를 수 있을 테니까요.”
히블즈의 표정은 그제야 조금 변했다.
“그거, 집에서 혼자 보시려고 가져가시는 건 아니잖아요?”
분명 전하려고 하는 마족이 있을 거다.
그 마족이 내가 찾는 마족일 가능성이 크다.
“허허. 여유만만한 태도는 여전하군. 그러다 내가 다른 곳으로 안내하면 어쩌려고?”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게 해야겠죠.”
“마왕 후보답게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건가?”
자료를 내려놓은 히블즈는 정면으로 나를 마주했다.
“자네와 처음 힘을 겨뤘을 때가 생각나는군.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어디 가서 힘으로 굴복당하면서 살진 않았었네. 거의 전력으로 힘을 발휘했던 내가 전의(戰意)를 잃을 정도로 깨졌던 건, 자네가 처음이었지.”
“갑자기 옛날이야기는 왜 하십니까?”
“자네는 내가 봐왔던 마족 중에 가장 별난 마족이야. 마왕이 될 거라고 모두에게 선언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 눈엔 전혀 마왕이 될 마족처럼 보이지 않아.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난 자네에게서 거부감이 느껴진다네.”
히블즈는 슬그머니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곧 그의 주름진 손 위로 마력의 구체가 발현되었다.
“지금도 그래! 마왕 후보면 후보답게, 압도적인 힘으로 모두를 굴복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터인데. 오히려 나나 단원들에게 존대까지 하면서 배려를 해주고 있어. 마치 존중한다는 듯이…….”
“제 성격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야! 대부분의 단원들은 거기에 감복한 모양이지만, 난 아니네. 난 아직도 자네가 낯설어. 어쩌면 그 낯선 거부감이 두려움으로 변해버린 탓에 지금까지 자네와의 싸움을 주저한 건지도 모르겠군.”
지금은 그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나도 힘을 가진 마족으로서, 자네와 제대로 붙어보고 싶단 욕망이 있네. 이번엔 저번처럼 전의를 상실할 일은 없을 거야.”
“평화를 지향하는 단체의 수호자라고 불리시는 분이, 어째 일은 평화롭게 해결하질 않으시네요?”
“피차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자네도 마왕이 되려 하면서 정작 힘으로 해결하는 걸 꺼리니 말이야.”
부정은 못 하겠단 마음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손은 자연스레 검 자루에 얹어졌다.
-스릉!
달빛에 반사된 아크베리아의 검신이 밝게 번쩍였다.
그 번쩍임에 맞춰 히블즈도 마력을 추가로 발현시켰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이어서 추진력을 이용해 검을 내질렀다.
-쾅
히블즈는 마력을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검을 여유롭게 쳐냈다.
대신 파동으로 인해 방에 있던 수많은 문서들이 폭풍에 휩쓸리듯 휘날렸다.
저택 시종들의 곡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온다.
장소를 옮겨야겠단 생각에 다시 한번 검을 내질렀다.
히블즈는 두 손을 교차시켜서 막아냈다.
나 또한 거기에 멈추지 않고 발을 움직이며 그를 창문 쪽으로 인도했다.
-쨍그랑!
나와 히블즈의 몸이 동시에 창문 밖으로 추락했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히블즈는 방어 자세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목을 뒤로 내빼더니, 그대로 헤딩을 날렸다.
-퍽!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순간 정신이 멍해진 나머지, 검의 파지가 흔들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히블즈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후.
이 할아버지.
아무래도 휴가가 아니라, 폐관 수련을 하고 오신 모양이다.
중심을 잃고 바닥에 추락하려는 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수호가 꼬리로 받아줬다.
[괜찮으신가요?]“덕분에.”
재빨리 몸을 일으켜서 바닥에 안착했다.
히블즈는 이미 신체 강화술이 완료된 상태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보지 못했던 자네의 진짜 힘을 보여주게나. 이번엔 피하지 않고 맞설 준비가 되어 있네.”
피하지 않다가 영영 못 일어나실 수도 있을 텐데.
뭐 지금은 말해봐야 듣지도 않을 것 같다.
전의에 불타오르는 히블즈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던 것도 잠시,
나는 아크베리아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러곤 앞으로 나섰다.
“검을 쓰지 않을 생각인가?”
“진짜 힘을 보여달라면서요? 보여드릴 테니 알아서 들어오시죠.”
의아함을 느낀 듯 히블즈의 미간이 움츠러들었다.
허나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으며, 곧장 달려들 준비를 시작했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히블즈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고,
정확히 내 왼쪽 볼따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팍!
0.1초.
아니 0.01초만 늦었어도 못 막았을 것이다.
이 속도면 그 미친 마왕과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다소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어쨌든 막았다는 게 중요한 거다.
나는 손가락 하나의 거리에서 히블즈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제가 마왕 후보답지 않아서, 낯설었다고 하셨습니까?”
그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제일 잘 안다.
이들에게 익숙한 마왕이란 존재가 누구인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가장 근거리에서 경험한 내가 제일 잘 알지.
압도적인 힘으로 모두를 굴복시키는 절대적인 존재.
하지만,
마왕은 꼭 그래야 한단 법도 없지 않은가?
“힘이 없어서 못 한 게 아닙니다.”
“뭐?”
“하기 싫어서 안 한 거지.”
한 손으로 잡은 히블즈의 주먹을 비틀어서 움켜쥐었다.
동시에 내 몸, 그리고 마혈석에 담긴 마력을 전부 오른손으로 집중시켰다.
평소 있는 줄도 몰랐던 마력들까지 전부 모여들었으며, 그냥 한계까지 끌어낸단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끌어내려 했지만,
-털썩
이미 내 힘을 견디지 못한 히블즈는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내 손에 주먹이 붙들린 채.
“이제야 처음으로…….”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던 그는,
“자네가 마왕처럼 보이는구먼…….”
그대로 정신을 잃고 엎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