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
제14화. 탐욕의 종주
용사 시절 때 얻은 직업병이랄까?
내가 말하지 않은 내 정보를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발설하면 자연스레 몸에서 경계심이 솟는다.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나는 이 시장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검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입밖에 내민 적이 없다.
한데, 이 수상한 노파는 내게 분명히 말했다.
그 양으론 ‘마’ ‘검’을 만들 수 없을 거라고
경계심에 이끌린 내 손은 그대로 검자루에 얹어졌다.
“얼굴을 가리면 뭐하오? 본인이 누구인지 다른 쪽에서 다 드러내고 있으면서.”
노파는 그런 내 의심을 꿰뚫기라도 한 듯 무심하게 말했다.
“상인만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박식한 직업도 없소. 아마 몇몇 눈치 빠른 상인들은 당신의 외관을 본 순간 정체를 눈치챘을 거요.”
“무, 무슨 수로 말입니까?”
“이 마계에서 허리춤에 검을 차고 다니는 마족이 얼마나 있겠소?”
그 말에 내 시선은 부리나케 검으로 향했다.
이전에도 설명했듯 검은 마족들의 애용품이 아니다.
일부가 장식품으로 쓴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집안 전시용이지, 나처럼 몸에 보란 듯이 차고 다니진 않는다.
참고로 난 암시장에 들어선 이후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줄곧 이 검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완벽한 내 실수다.
이런 눈치 빠른 능구렁이들이 득실대는 굴속에서 여태 내 정체를 그냥 드러내고 다녔다.
그런 작은 것도 캐치 안 하고 뭐 했냐고?
굳이 변명하자면 이것도 직업병이랄까?
원래 검사들 사이에선 검을 애인처럼 소중히 다루란 말이 있거든.
난 내 애인을 내가 언제 어디서든 보이고, 꺼낼 수 있는 자리에 잘 놔뒀을 뿐이다… 는 개뿔!
이런 머저리 등신 같은 놈.
이 이상 정체를 숨기는 건 의미가 없겠지.
나는 마스크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낸 채 노파에게 물었다.
“제가 마검을 만든다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
“애초에 마검을 만드는데 사이클롭스의 안액이 왜 필요한진 아시오?”
모른다.
앞서 흑광석과 라미아의 비늘을 구할 때 와는 다르게, 울타비스는 사이클롭스의 안액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모르는 모양이군. 사이클롭스는 마수 중에서도 마법이나 계약으로 통제하기 가장 힘든 마수요. 그 마수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눈이지.”
노파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사이클롭스의 안액에는 본인들의 흉포한 성정을 다스리는 억제 성분이 들어있소. 녀석들이 아직 산을 벗어나지 않고, 영역에 머무르는 이유도 그 성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그 성분이 마검이랑 무슨 관계가 있단 겁니까?”
“흑광석으로 칼날에 마력을 담고, 라미아의 비늘로 마력의 누출을 막을 수 있지만, 그걸로 마력의 폭주까진 억제할 수 없소. 그 폭주할 마력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이클롭스의 안액이라는 거로군.
하기야, 내가 사용했던 성검 아크베리아에도 ‘여신의 눈물’이라고 하는 성력 억제제가 있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에 이해하는데 어렵진 않았다.
“이 양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말한 그대로요. 그 병에 담긴 양으론 억제 성분의 힘을 다 끌어내진 못할 거외다. 못해도 그거에 열 배 이상은 필요하겠지.”
“그럼 좀 더 주시…….”
“안타깝게도 우리 가게에 있는 사이클롭스의 안액은 그게 끝이고.”
“다, 다른 가게에는요?”
“이미 딴 곳 다 둘러보고 못 찾아서 마지막에 여기로 온 거 아니오?”
와, 이 할머니.
사람 아니, 마족 속 꿰뚫는 능력이 보통 뛰어 나신 게 아니네.
인간이나, 마족이나 이래서 어르신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거다.
어쨌든, 저 노파의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이 안액은 내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라는 건데.
이걸 사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나름 희소성 있는 상품일 텐데, 의미도 없을 저한테 이리 싸게 파셔도 되는 겁니까?”
“의미 없는 상품인 건 나한테도 마찬가지외다. 희소성이 있으면 뭐하나? 어차피 사는 마족이 아무도 없는데.”
하기야, 그것도 그렇겠네.
뭐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굳이 거저 준다는 걸 안 살 바보짓을 할 필욘 없겠지.
나는 노파가 제시한 동화 한 닢을 테이블 위로 살포시 올려놓았다.
동화를 받은 노파는 내게 미련 없이 안액을 내밀었다.
“주인께선 이 가게를 운영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한 30년 됐지. 한데, 그건 왜 물으시오?”
“아니 뭐. 젊으셨을 적엔 왠지 장사 말고 다른 일을 하셨을 것 같아서요.”
노파는 그 물음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거래를 마친 우리는 그렇게 가게를 나왔다.
“뭔가 많이 아쉬운 상황이로군요.”
“뭐 저 가게 주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걸 들고 그 괴짜 대장장이한테 가봐야 알겠지만…….”
사실, 그 노파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딱히 없지 않은가?
왠지 울타비스에게 가도 같은 대답을 들을 것 같았다.
“혹시 마법으로 양을 늘릴 순 없을까?”
“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냥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건데, 의외로 메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정말?”
“네! 하지만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아요. 정확한 복사를 위해선 이 안액이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지 세밀하게 분석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그렇게 분석한 성분을 얼마나 늘릴지 계산하고, 또 이에 필요한 마력의 조절량도 실험해봐야 하고, 또…….”
“아, 아니 잠깐만! 그거 다 계산하면 얼마나 걸리는 건데?”
“아마, 최대한 빨리하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거 혹시……. 네가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밤낮을 지새웠을 때 기준이니?”
“네!”
제발 그 해맑은 얼굴로 무서운 말 좀 안 해줬으면 좋으련만.
나는 절대로 하지 말라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
메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얘 앞에선 뭔 말을 못 하겠네.
-웅성웅성
시장치곤 고요했던 장내가 갑자기 요란스러워졌다.
“뭐야? 오늘 온단 말 없었잖아?”
“그 재수 없는 마족이 언제는 뭐 예통 넣고 왔어? 하여튼, 요새 후보 일 때문에 좀 잠잠하나 싶더라니…….”
상인들의 움직임이 안팎으로 꽤나 분주해졌다.
뭔가 이 시장의 최대 고객님이 오신 것 같진 않고, 분위기만 봤을 땐 무슨 불시 검문이라도 온 것 같은데?
곧 저 멀리 검은 제복을 차려입은 우락부락한 마족 집단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갑자기 브릴리스가 내 몸을 붙잡더니,
“베, 벨져 님! 숨으십시오!”
구석으로 부리나케 몸을 피했다.
“왜 그래? 브릴리스?”
“아무래도 그가 온 것 같습니다!”
“그? 그가 누군데?”
나는 나무 상자 더미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어 다시 상인들의 눈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십수 명은 족히 돼 보이는 하수인들 사이로 가마가 하나 보였다.
가마는 앞뒤 두 명씩, 총 네 명의 어깨에 짊어진 채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마 위엔 그들의 주인처럼 보이는 한 마족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라?
쟤 낯이 익은데?
지구로 가면 못해도 고도 비만 환자로 취급받을 푸짐한 체형의 마족.
그때 회담장에서 봤던 마족, 즉 마왕 후보 중 한 명이다.
이름이 아마…….“
“탐욕의 종주, 네로 아와라티아 후보입니다!”
* * *
누군가는 말했다.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첫째는 욕망, 둘째도 욕망, 셋째도 욕망이다.
또 누군가는 말했다.
참된 욕구는 없이는 진정한 만족은 없으며, 욕망이 없는 곳에는 근면도 없다.
즉 욕망(慾望)을 탐하는 것은 모든 생물이 삶을 지속하는 데 있어 필요한 원동력이며 근원이기에, 절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칠죄종 중 탐욕을 상징하는 가문 아와라티아(Avaratia).
그 상징에 걸맞게 아와라티아 가는 마계에서 가장 많은 부와 재물을 축적한 가문이었다.
“오늘 시장 분위기가 왜 이래? 저번에 왔을 때보다 반은 줄은 것 같은데?”
“최근에 지시하신 출입증 허가제의 여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본래의 상권을 회복하겠습니다!”
“회복하는 걸로 끝이야?”
“무, 물론 회복을 넘어 더 확장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가마 위의 마족은 그제야 만족의 미소를 보였다.
그의 이름은 네로 아와라티아.
탐욕의 종주이자 8명의 마왕 후보 중 한 명이며, 이 암시장의 주인이기도 했다.
수십 명의 하수인에게 호위를 받으며, 가마 위에서 느긋이 장내를 돌아보는 그의 모습은 이미 왕좌에 군림한 군주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내려.”
지시가 내려지자 하수인들은 번개와 급히 가마를 앉힌 뒤, 전부 등을 보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네로는 그들의 등을 계단 삼아 여유롭게 땅에 안착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마수의 사체를 파는 어느 낡은 상점이었다.
네로는 그 안으로 하수인 없이 혼자 들어갔다.
-띠링
종소리가 들렸음에도 노파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네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가운 인사를 내뱉었다.
노파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대는 어찌 그렇게 항상 주변의 시선을 강탈하면서 오는 것이오?”
“강탈이라니요? 그저 마왕 후보로서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예행연습이랄까요?”
“후보가 되기 전부터 그래 오지 않으셨소?”
정곡을 찌르는 노파의 말을 네로는 능청스러운 웃음으로 넘겼다.
“그래서, 오늘은 뭐 하러 오셨소?”
“시장에 물건 사러 오지, 뭐 하러 오겠습니까?”
“말 한마디면 원하는 모든 걸 방구석까지 배달시킬 수 있는 분께서, 굳이 여기까지 행차하신 이유를 묻는 거외다.”
“이 가게가 배달이 안 되니, 제가 직접 온 것 아니겠습니까?”
네로는 가게 구석에 있는 흔들의자로 다가가 털썩 앉았다.
“사이클롭스의 안액을 구하러 왔습니다.”
노인은 살짝 멈칫했다.
“그게 왜 필요하시오?”
“왜긴 왜겠습니까? 당연히 사이클롭스를 제 손으로 다스리기 위해서죠.”
즉 계약 마수로 삼겠다는 소리였다.
“지금 있는 마수로도 성에 안 차시는 모양이군.”
“그렇기도 하고, 일이 좀 있었습니다.”
“일?”
“예. 며칠 전, 레트나 화산 인근 호수에 서식하는 제 계약 마수 하나가 어떤 얼뜨기에게 꼬랑지를 잘렸다더군요. 듣는 순간, 바로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떤 정신 나간 마족이 제 마수를 건드릴까요?”
“확실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마족은 아니었겠군.”
노파는 네로의 말에 동조해 주었다.
“근데, 그 마수도 솔직히 어디 가서 꼬랑지 잘릴 마수는 아니거든요? 제가 계약한 마수 중에서도 나름 상급에 속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당했다 하니,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지금 있는 것에 안주해선 안 되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아무리 그래도 사이클롭스는 마계 전체 역사를 통틀어 그 누구도 계약을 이뤄내지 못한 마수요. 아무리 그쪽이라 해도 쉽진 않을 터인데?”
“전 장차 이 마계를 지배할 마족입니다. 그런 제가 다스리지 못할 마수가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죠.”
노파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네로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그런저런 이유로 전 지금 사이클롭스의 안액이 필요합니다. 제 정보망에 의하면 이 마계에서 그 안액을 파는 가게는 여기가 유일하더군요.”
그때, 다시 한번 가게의 문이 열리더니, 마족 한 명이 묵직한 자루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자루 안에는 금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터이니, 그 안액을 지금 바로 팔아주시겠습니까?”
“뭐, 우리 가게에서 사이클롭스의 안액을 파는 건 사실이지만…….”
노파는 금화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거 안타까워서 어쩌지? 우리 가게에 딱 하나 있던 사이클롭스의 안액은 이미 팔렸소.”
여유가 가득했던 네로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팔렸다고요? 언제요?”
“불과 10분 전이요.”
정확히는 10분하고도 30초 전이었다.
순간 가게 안으로 조용한 적막이 울렸다.
“어떤 새끼가요?”
“상인이 물건만 팔면 되지. 구매자의 이름까지 알아야 하오?”
“이런 미친……!”
조용했던 가게 안으로 거친 욕설이 울려 퍼졌다.
곧 욕이나 퍼부을 때가 아니라는 걸 인지했는지, 네로는 자루를 들고 온 마족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암시장 전체를 통제해!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네, 네로 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마족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감히! 이 네로 님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멋대로 건드려?”
솟아오른 분노가 좀처럼 식혀지지 않는지, 네로는 거친 숨을 남발했다.
“괜히 엄한 마족들 잡을까 봐, 내 우려심에 하나만 알려드리지…….”
노파는 네로가 박차고 일어선 의자를 정리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사이클롭스의 안액을 사간 그 마족.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소.”
“검?”
마계에서 검을 차고 다니는 마족은 소수가 아니라 거의 없는 정도다.
허나 최근 라미아의 꼬랑지를 자른, 그 정신 나간 마족이 누구냐고 직접 심문했을 때, 당사자인 라미아는 이렇게 말했다.
검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네로와 똑같은 마왕 후보 중 한 명이라고.
이윽고 범인의 정체를 깨달은 네로의 이마와 목으로 굵은 핏대가 돋아났다.
“벨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