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0
제160화. 심판관
선두에 자리한 교회원은 말에 올라탄 채, 나를 한참을 내려봤다.
나 역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잠시 후, 말에서 내린 그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그 상태로 눈동자만 움직이며 내 전신을 쭉 훑었다.
난 엊그제 밤, 이 남자의 얼굴을 봤기 때문에 초면이 아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내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나와 초면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본다는 건,
본능적으로 느꼈다는 뜻이 된다.
내 시선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는 것을.
“교회원증 보여주시죠.”
그는 검문관들과 똑같이 내게 교회원증을 요구했다.
“검문이라면 아까 문 앞에서 했는데?”
“성지를 지키는 성교회원으로서, 성지를 돌아다니는 수상한 자들에게 신원 증명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권리입니다. 협조해주시죠.”
어련하실까.
나는 요구한 대로 불법 거래로 구입한 교회원증을 내보였다.
교회원증을 본 남자의 미간이 골짜기처럼 좁혀졌다.
불법으로 구매했다는 걸 안 것이다.
“성지엔 왜 오셨습니까?”
“그것도 아까 검문하면서 다 말했는데?”
“그럼 한 번 더 말하시죠.”
그는 말함과 동시에 허리춤에 찬 검 자루에 손을 얹었다.
여기서 더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다음엔 심문 강도를 일종의 경고성 행위였다.
나는 팔짱 낀 자세를 취하며 시선을 돌렸다.
“동상을 보러왔습니다.”
“동상?”
“100년 전, 마왕을 물리친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이 레펠타리 중심부에 세워졌다는 용사의 동상을 보러왔는데……, 이미 없어진 모양입니다.”
의심이 가득했던 남자의 얼굴에서 돌연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디서 왔는진 모르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무지하군요. 용사의 동상은 이미 80년 전에 철거된 지 오래입니다. 동상뿐 아니라, 대륙 곳곳에 남아있던 다른 용사의 흔적들 역시 전부 파괴되거나 소실됐습니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내 등 너머를 가리켰다.
“대신 이 길로 쭉 나아가 성지 중앙으로 가면 제단이 하나 있습니다. 이왕 온 김에 그곳이나 한번 들러 보시죠.”
“제단? 누구를 기리는 제단입니까?”
“그야 당연히 지고하신 4현자님들을 기리는 제단이죠.”
순간 머릿속에서 빠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를 기려?
“용사가 소환되기 전부터 존재하셨고, 용사가 처벌된 이후에도 대륙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4현자님들이야말로. 우리 성교회가, 그리고 레지에타 선민들이 찬양해야 할 위인들 아니겠습니까? 한낱 욕심에 빠져, 타락의 길로 접어들다가 심판된, 용사 따위가 아니라…….”
아주 지랄도 유분수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간신히 물었다.
“그 현자들이란 자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남자의 입에서 다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말을 여태 뭐로 들었습니까? 마왕을 물리친 지 100년. 용사를 심판한 지 80년이 지났습니다. 대륙의 평화라는 신명(神命)을 달성하신 현자님들은 이미 대륙을 밝혀주는 빛의 일부가 되셨습니다.”
뒤졌다는 소리네.
현자니 뭐니 칭송하긴 해도, 어쨌든 그들도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이미 그 당시에도 주름 자글자글했던 늙은이들이 지금까지 살아있기란 불가능하겠지.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당연한 거긴 한데.
이 찝찝함은 뭘까?
이미 뒤져도 몇십 년 전에 뒤진 늙은이들의 영향력이 아직도 판을 치는 것도 모자라, 성지 내에서 거의 탄압 비슷한 식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낸다라.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지.
나는 자연스레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뭐 하는 겁니까?”
이를 본 교회원이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구린 냄새가 나서요. 악취라고나 할까?”
-스릉!
그러자 녀석은 아예 대놓고 칼을 뽑아 내게 겨눴다.
다른 교회원들도 일제히 말에서 내리며 똑같이 칼을 뽑았고,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원으로 둘러쌌다.
나 또한 검 자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뭐 하는 거지?”
“감히 신성한 성지에서 악취가 난다는 망언을 지껄여? 성교회 직속 심판관 로단 크리스티아의 이름으로 너희 모두를 연행하겠다!”
어이가 없다 못해 뒷골이 띠잉 울린다.
그럼 악취를 악취라고 하지, 꽃향기라고 할까?
이미 처음부터 날 의심하고 있던 와중에, 적당히 끌고 갈 구실을 내세운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골치 아픈 상황에 빠졌다.
“얌전히 순응해!”
지시를 받은 교회원 중 일부가 밧줄과 수갑을 들이밀며 다가왔다.
[어떡할까요 벨져 님? 아까처럼 기를 억눌러버릴까요?]그러기엔 이미 주위엔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졌다.
수십 명의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보리며 수군거림과 비난의 시선을 보내준 덕에, 우린 그야말로 죄인 포지션이 되고 말았다.
“후.”
머리가 아프다.
성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고통이 머리를 짓누르는 탓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가 힘들다.
어차피 평화적으로 해결하긴 그른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깽판이나 제대로….
“멈추십시오!”
아크베리아의 검날 일부가 세상 밖으로 드러난 순간, 뒤에서 낯선 여인의 외침이 울렸다.
우릴 둘러싼 교회원들과 똑같은 옷을 입은 또 하나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선두엔 검은 머리의 단발 여성이 자리했다.
여성은 오자마자 로단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로단 심판관?”
“감히 신성한 영지에서 악취라는 망언을 퍼부은 죄인들을 이송하던 중이었습니다.”
대답을 잇는 로단의 목소리엔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누가 봐도 같은 소속이지만, 썩 좋지 않은 사이임이 보였다.
“성교회의 권위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이런 교인들이 밀집한 중심부에서 이런 소란을 벌이는 건, 심판관으로서 지양할 일입니다.”
“그럼 성지의 위대함을 모욕한 저들을 이대로 보내라는 겁니까? 아이리네 심판관?”
여인의 시선이 그제야 내 쪽으로 향했다.
허나 마주한 시간은 불과 2초 남짓.
그녀의 시선은 다시 로단에게 돌아갔다.
“성지의 치안 유지 및 규율 수행은 제 담당입니다. 제식대로 처리할 테니, 로단 심판관은 본인의 책무를 마저 수행하시지요.”
“제가 보는 앞에서 처리하시죠. 그전엔 한 발짝도 못 움직입니다.”
두 심판관은 한 치의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리네란 이름의 여인은 이내 발을 떼고 내 앞으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성교회 직속 심판관 아이리네 로테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성지에서 추방합니다. 지금 당장 레펠타리를 떠나주시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떠나라.
우리로선 전혀 나쁠 거 없는 지시였다.
“뭐 하자는 겁니까 아이리네 심판관!”
오히려 같은 편에서 악을 쓰며 반대했다.
로단을 비롯한 무리들이 나서려 하자, 아이리네의 무리들이 가로막으며, 졸지에 묘한 대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콩가루가 따로 없네 아주.
“남쪽으로…….”
그때, 아이리네란 이름의 여성이 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남쪽으로 최대한 멀리 가십시오.”
* * *
“젠장!”
일순간 내리친 주먹 탓에 탁상이 크게 울렸다.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 분노에 로단은 연신 주먹을 내리쳤다.
“아이리네!!”
로단은 같은 심판관 직위지만, 자신과는 가치관이 너무나도 다른 아이리네를 매우 증오했다.
자신은 분명 성교회에서 정립한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건만, 그녀는 사사건건 지적하며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려 들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성지를 모욕한 이방인들을 잡아들여 교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자신을 아이리네는 면전에서 무시했다.
왜?
자신이 뭐가 그렇게 아니꼬와서?
로단은 스스로를 가장 참된 교회원이라고 믿었다.
교회가 저술한 성서는 안 읽은 게 없으며, 성지 레펠타리 외에도 성교회와 현자들의 흔적이 묻은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그 유지를 받들고자 했다.
언젠간, 자신도 현자라는 칭호가 어울릴 인간이 되기 위해서.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냐 아이리네?”
반면, 아이리네의 행보는 로단과는 정반대였다.
출신지도 모르는 지역에서 넘어와 어느 날 갑자기 교회의 심판관으로 임명되면서, 레펠타리 행정 업무에 관여하였고,
교회의 자금을 더 충당한다는 목적으로 암표 출입증을 만들어, 교회원이 아닌 외부인들이 성지로 드나들도록 유도했다.
그녀는 정말로 성교회를 위해 일하는 것일까?
로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성교회에겐 좋지 않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으리라고 보았다.
거기다 낮에 봤던 그 무리들.
하나 같이 망토를 쓰며 머리와 몸을 가린 것이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겼다.
하지만 정말 수상한 건 따로 있었다.
“그 눈…….”
본 적은 없지만 받은 적은 있는 듯한 그 꺼림칙한 시선.
그 시선엔 여태 로단이 수많은 인간을 봐오면서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른 기척이 느껴졌었다.
마치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근원체가 아닌 듯한 그런 낯선 느낌 말이다.
결심이 선 로단은 잠시 풀어헤쳤던 망토 줄을 다시 매만졌다.
“렉스!”
로단의 부름에 대기 중이던 교회원이 들어왔다.
“아까 놓쳤던 그 이방인들을 쫓는다. 아이리네 심판관은 모르게!”
지시를 받은 교회원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로단 역시 성서와 지팡이를 챙기며 밖으로 나갔다.
그 광경을 검은 망토의 낯선 사내가 창문 너머에서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리네 님. 지금 로단 심판관이 움직였습니다.”
통신 마법을 이용해 보고를 마친 사내는 빠르게 사라졌다.
* * *
성지를 빠져나온 로단과 교회원들은 환히 뜬 달 아래의 평지 위에서 거칠게 말을 몰았다.
그들이 향한 곳은 레펠타리의 남쪽.
말을 몰던 한 교회원이 로단에게 물었다.
“로단 님. 이쪽으로 가는 게 맞습니까?”
“냄새가 난다. 그 사내의 냄새가…….”
성지에서 나온 순간, 뭐라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일련의 익숙한 냄새가 로단의 코를 자극했다.
로단은 그 냄새를 따라가면 틀림없이, 그 무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불빛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둠이 드리워진 숲 저편으로 작은 불빛이 나타났다.
불빛 위에서 달빛 사이로 비친 미세한 연기까지 보였다.
얼마 안 가, 작은 모닥불 주위로 빙 둘러앉은 세 존재가 보였다.
메이와 수호, 그리고 벨져였다.
“베짱도 좋군.”
말에서 내린 로단은 즉각 검을 뽑았다.
“아까 미룬 너희의 심문을 이 자리에서 재개하겠다!”
다른 교회원들도 일제히 검을 뽑으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형성했지만, 벨져 일행은 위기를 느끼긴커녕, 덤덤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에 수호가 일어섰다.
[낮에처럼 조용히 해결하겠습니다.]싱긋 웃으며 엉덩이를 털고 나가려고 하자, 벨져가 손을 들어 막았다.
“앉아 있어.”
벨져의 지시에 수호는 순순히 앉았다.
모닥불이 뒤적거리던 꼬챙이를 쥔 채 일어선 벨져는 교회원들의 앞으로 터벅터벅 나아갔다.
“물어도 내가 물어보는 게 맞지.”
벨져는 꼬챙이를 까딱였다.
도발에 넘어간 로단이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 익숙한 금빛의 오라가 발현되었다.
그 빛을 마주한 벨져는 다시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시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쾌함은 덤.
벨져는 꼬챙이를 벗어던지고, 아크베리아를 뽑았다.
다른 세계에서 수많은 피가 묻은 마검의 검날을 본 교회원들은 기겁을 금치 못했다.
“무, 무슨 살기가 저렇게!”
일부는 손에서 떨림이 일다 못해 검을 놓치기까지 했다.
허나 로단만큼은 굴하는 기색 없이 벨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순순히 응할 생각은 없나 보군. 성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겐 가해지는 건…….”
검을 고쳐 쥔 로단이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달렸다.
“심판뿐이다!”
사선으로 휘두른 로단의 검을 벨져는 몸을 틀어 가볍게 회피했다.
검이 휘둘러지는 그 찰나의 순간, 어디선가 돌풍이 일면서 검격이 일으킨 바람과 겹침이 이뤄졌고,
-후웅!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벨져의 머리를 가리고 있던 후드가 벗겨졌다.
이후 메이, 수호를 제외한 모두가 경악했다.
“저, 저건?”
머리 양쪽으로 뾰족 솟아오른 두 개의 뿔.
그건 인간으로선 가질 수 없는 이질적인 신체 부위였다.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한 교회원들과 달리, 로단은 놀라움을 비롯해 약간의 희열이 섞인 눈으로 입을 벌리며 소리쳤다.
“마족!!”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