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57)
“어때? 좀 부자 같아 보여?”
“···”
“···웃참 뭐냐? 죽을래?”
“아, 아니. 부잣집 딸 같아.”
“그치?”
하얀 천을 뒤집어쓴 채 이리저리 거울을 들여다보는 지우를 보며,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는 웃음을 되돌려 보낸다.
‘구트라’라고 하는 거다.
그, 중동 사람들이 머리에 쓰고 다니는 거 말이다.
기념품 꼭 사 오라길래 공항에서 사 온 거다.
사실 더 좋은 걸 사 오고 싶었는데, 딱히 시간이 없어서 저것 밖에 못 사 왔다.
그래서 엄청 욕먹겠구나 각오하고 왔더만, 저것도 재밌다고 머리에 써 보는 모습이 귀엽다.
바보.
저거 남자만 쓰는 건데.
“야, 근데 이거 그거 같지 않아?”
“···뭐?”
“그, 결혼하면 웨딩드레스 입잖아. 그때 머리에 쓰는 거. 그걸 뭐라고 하더라.”
“나도 모르지.”
“암튼 그런 느낌이야. 뭔가 나 결혼할 때 모습 미리 보는 것 같네. 그땐 당연히 이거보다 훨씬 더 예쁘겠지만.”
음,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하아, 진짜. 누군진 몰라도 참 복 받았다. 이렇게 예쁜 신부의 신랑이 될 사람은.”
···그나저나 참 부럽다.
어떻게 저렇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항상 느끼지만 지우는 나와 정반대라, 저런 자신감이 참 부럽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음? 뭘?”
“미래의 내 남편 될 사람 말이야. 진짜 복 받은 거 아니냐?”
“···”
“대답.”
“어, 어···”
“하, 진짜 내가 다 부럽네. 내가 그 남자였으면 진짜 매일 아침에 절하고 하루 시작한다.”
“···”
···음.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문득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뭐든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뜻인데, 이 말에 따르면 차라리 내가 나은 게 아닐까.
다만 낄끼빠빠라는 사자성어도 있기에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기로 한다.
어쨌거나, 혼자서도 잘 노는 지우는 내버려 두고.
소파에 편안히 등을 기대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어제 카타르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오늘이 12월 8일.
리그 재개가 내년 1월 5일이니까 거의 한 달의 시간 동안 시합이 없다.
따라서 내겐 상당히 긴 겨울 방학이 주어진 셈.
16강에서 탈락한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쓰레기인 걸까.
그치만 달콤한 걸 어떡해.
육체적인 피로가 한계점까지 다다른 느낌이었는데, 이제 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걸.
물론 팀과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앞으로의 한 달 동안 뭘 하면서 알차게 보낼지 개인적으로도 계획을 좀 짜봐야 할 것 같다.
뭐, 시즌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리그는 이제부터 시작인 거나 마찬가지에, 챔피언스 리그 16강이라는 큰 시합이 2월에 잡혀있기도 한 만큼.
마냥 쉬기만 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한 달은 정말 제대로 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게 당장의 마음.
뭘 하면 좋을까.
뭘 해야 제대로 에너지를 제대로 채워 넣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제 뭐 함?”
나름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건지 지우가 옆에 앉으며 말한다.
이에 어깨를 으쓱이자 지우가 묻는다.
“훈련해야 되지?”
“음··· 그치? 시즌 끝난 건 아니니까.”
“···그치. 열심히 해야지, 훈련.”
그 물음에 대답하니 지우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방금까지도 신나 있던 애가 갑자기 풀이 죽어버리는 모습.
이에 나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그 전에 좀 쉬려고. 힘들어.”
“그치? 쉬긴 쉬어야지. 너 요즘 엄청 바빴잖아. 맨날 시합한다고 여기저기 오가고.”
“응···”
“뭐하고 쉴 건데?”
음··· 글쎄.
“여행이나 갈까.”
딱히 고민하지 않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툭 던지듯 내뱉는다.
여태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수천 킬로미터는 족히 쏘다녔으니 집에 콕 틀어박혀 쉬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나.
그렇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도 정작 제대로 즐긴 나라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나도 일이 아니라,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음··· 글쎄.”
지우의 물음에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라.
어디론가 가고 싶기는 한데, 당장 딱히 떠오르는 곳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어딜 가든 상관이 없겠다는 게 더 맞겠다.
그냥 어디든 좋은데, 대신···
“좀 있으면 겨울 방학인가?”
“응? 나?”
“어.”
“응. 그치. 방학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지우에, 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흘러가는 듯 말했다.
“그럼 뭐 할 거 없겠네.”
“뭐, 딱히 할 거 없지?”
“그럼 뭐··· 같이 가든가. 할 거 없으면.”
여행을 하든 뭘 하든, 결국 목적은 재충전.
그래서 무엇이 내게 가장 큰 동기부여냐고 묻는다면, 그게 저 이상한 선물을 받고도 헤헤 웃는 바보라는 걸 부정할 순 없는지라.
그 이유야 뭐가 됐건 지우는 에너지가 넘치는 배터리 같은 존재이니, 그 에너지를 좀 나눠 받자고 요구한 거다.
그러자 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러든가. 딱히 할 거 없으니까. 방학 때 뭐 할지 고민이었는데 마침 잘됐네, 뭐.”
“···그럼 잘됐네.”
“응. 잘됐네.”
괜히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 없이 잘됐다는 말만 중얼거린다.
그런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안도감이 드는 것이 기분이 묘하다.
덕분에 마음이 싱숭생숭한 와중, 지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또 거울 앞으로 향한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잠깐이나마 힘없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아, 피곤하네. 여행가려면 옷도 좀 사고 해야되는데. 난 세상에서 쇼핑이 젤 어렵단 말야. 다 잘 어울려서.”
“···”
그리곤 들어주기 어려운 헛소리를 하는데, 그 모습이 누가 보아도 기분이 좋아서 하는 헛소리다.
순간, 그런 지우의 모습이 마치 산책가자고 했을 때 신나 하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음에.
만약 지우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 헬리콥터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귀엽기는.
“···.”
···음.
그나저나,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일단 가는 걸 결정했으니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인데.
날씨도 좋고 풍경도 예뻤던 바르셀로나?
혹은 세비야도 좋았고.
아니면 파리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아예 안 가본 곳에 가보는 것도 괜찮겠고.
“···아.”
그렇게 머리를 굴려보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손가락을 튕긴다.
다른 곳도 다 좋은데, 지금 이때 가면 좋을 것 같은 곳이 불쑥 떠오른 것.
“···가고 싶은 곳 떠올랐어.”
“응? 어디?”
비록 날씨도 안 좋고, 딱히 볼거리도 없고, 심지어 맛있는 음식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맨체스터.”
이번엔 여기가 좋겠다.
ㆍㆍㆍ
영국엔 박싱 데이(Boxing Day)라는 날이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그게 뭐에서 유래된 건지, 뭐 하는 날인지까진 나도 모른다.
다만 찾아보기로, 그 박싱 데이가 있는 주에 프리미어 리그 팀들은 반드시 경기를 하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리그가 겨울 휴식기를 가질 때에도 프리미어 리그는 쉬지 않는 게 그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 전통은 월드컵이 있는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리에 같은 경우 충분히 휴식기를 가지고, 내년 1월 5일부터 다시 경기가 시작되는 반면.
프리미어 리그는 12월 27일부터 리그가 재개된다고.
그게 곧 이 귀한 휴가를 날씨도 별로고, 볼 것도 딱히 없는 맨체스터에서 보내기로 한 이유였다.
“야, 그래도 날씨 운은 좋다. 한 번도 비가 안 오네?”
“그러게.”
“역시 나인 듯? 내가 오니까 날씨도 알아서 맑아지네.”
“···그래.”
“반응 뭐냐?”
지우의 헛소리를 익숙하게 넘기며 주변을 둘러본다.
아늑한 방이다.
한쪽에는 간단한 먹을거리들이 뷔페처럼 깔려있고, 정면엔 유리창이 시원하게 나있어 시야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다.
예매가 조금 늦은 탓인지, 제일 싼 좌석과 비싼 좌석밖에 자리가 남지 않아 큰맘 먹고 돈 좀 썼다.
VVIP 룸이라고 했나.
솔직히 혼자 왔다면 그냥 제일 싼 좌석에 앉았을 텐데.
혼자 온 게 아니라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티켓을 끊었다.
내 돈···!
“오, 맛있다. 먹을 만하네. 아저씨도 좀 드세요.”
“어, 그래. 본전은 뽑아야지. 야, 지안아. 얘들이 확실히 돈이 많긴 한가 보다. 시설이 아주 눈이 돌아간다.”
“그러니까요. 쟤네 경기장이랑 비교가 안 돼.”
그래도 뭐, 지우와 아빠가 만족하는 것 같으니 아깝지는 않다.
이래서 돈이 좋다는 게 아닐까.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좋은 것만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구단과 푸마에게 다시금 감사를.
“흐음.”
어쨌거나, 방 안 구경을 마치고 시선을 핸드폰으로 옮긴다.
경기 시작까지 얼마 안 남은 시점.
지우가 가르쳐준 SNS에 접속해 맨체스터 시티의 선발 라인업을 확인한다.
사실 말이 휴가긴 하지만, 진짜 쉬기만 할 거면 맨체스터로 올 일은 없었을 테고.
한 달 뒤면 만나게 될 맨시티의 축구를 직접, 미리 봐두자는 목적이 컸던지라.
어쩔 수 없이 지금 만큼은 잠시 휴가 모드를 꺼두고, 분석 모드로 경기를 지켜볼 생각.
그래서 노트도 따로 챙겨왔다.
뭐 그래 봐야 내가 분석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고, 시합이 다가오면 나보다 훨씬 전문가인 분들께서 전력 분석지와 함께 브리핑을 해주실 테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나름 공부도 될 테고 말이다.
“라인업 빡세네···”
선발 라인업을 확인하던 중,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오기 전에 미리 조사를 좀 하고 왔는데, 거기서 봤던 주요 선수들이 모두 명단에 포함된 탓.
골키퍼에 에데르송.
수비에 스톤스, 중원에 로드리.
데 브라이너.
베르나르두 실바.
잭 그릴리쉬.
필 포든.
그리고 최전방에 엘링 홀란드까지.
주전 선수들이 모두 나온 명단이라 설렘이 느껴지는 동시에, 한 편으론 조만간 이 명단을 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오싹함도 든다.
이 선수들의 몸값을 다 합치면··· 수천억도 아니고 무려 1조가 넘는다더라.
그것도 간신히 넘기는 게 아니라 훌쩍.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그런 돈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나로서는 무슨 태양계, 아니 은하계를 바라보는 느낌인데.
“오, 선수들 나온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경외심마저 느끼던 와중, 지우의 말에 고개를 든다.
그러자 그라운드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보였다.
슬슬 경기가 시작되려는 모양.
유리창 너머로도 경기장이 시끄러워지는 게 느껴지기 시작해, 나도 괜히 긴장되기 시작한다.
“···”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맨시티 선수들이 먼저 입장하고, 그 뒤로 네라주리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따라서 입장한다.
오늘 맨시티의 상대는 뉴캐슬이라는 팀인데, 현재 리그에서 5위를 달리고 있는 상당한 강팀이라고 한다.
덕분에 여러모로 배울 게 많은 경기가 될 것 같은 예감.
이윽고 양 팀 선수들이 악수를 마치고, 각자의 진영으로 흩어지며 경기 시작이 임박한다.
그리고 마침내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된다.
“···”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 경기를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올려다봐야 할 선수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일 터.
배울 건 배울 거지만, 한 편으론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저들이 유럽에서 가장 강한 팀으로 불리는지.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나 잘한다는 건데.
“···”
그렇게 5분, 10분이 흐르고.
어느새 완전히 몰입해 시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옆에서 들려온 지우의 물음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 뭐라고?”
“보니까 어떻냐고. 잘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음.
당연히···
“이길 순 있지.”
“오올.”
이길 수 없다고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일 순 없으니 나름 자신있게 대답한다.
그러나···
“···”
경기를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큰일 난 것 같다는 생각을 속으론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