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56)
촤악-!
방의 커튼을 열어젖히자···
“···읏.”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얼굴을 돌리고 만다.
이걸 화창하다고 해야 할까.
화창이라는 단어로 부족해 보이는 것이, 그 한 단계의 위의 표현이 있다면 지금 쓰고 싶다.
분명 12월은 여기서도 겨울이라고 그랬는데.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도무지 겨울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울 만큼 밝은 태양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은 피렌체의 여름과 비슷하고.
깔끔하게 잘 닦인 도로 위엔 이글이글 아지랑이까지 피어오르고 있으니, 이걸 어찌 겨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음, 아니다.
누군가에겐 이게 겨울일 수도 있지.
겨울은 꼭 춥고 눈이 내려야 한다는 건 내 고정관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카타르의 겨울은 뜨거웠다.
그 뜨겁다는 게 꼭 날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모로 의미다.
날씨도 물론 뜨겁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것이 이곳에 있었고··· 지금도 있는 중.
그런 가운데서도 조금 으슬으슬한 기분이 든다는 게 웃기지 않을 수 없다.
지내는 호텔 방은 물론 버스로 이동할 때도, 심지어 경기장에서도 풀 가동되는 에어컨 바람을 쐬었던 탓.
덕분에 바깥 날씨는 저러한데 감기를 조심해야 했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딱 그거 하나만 내가 아는 겨울 같긴 하더라.
환기나 좀 해볼까.
“···.”
···라는 생각으로 창문을 열었다가, 다 열기도 전에 다시 닫아 버리고 만다.
열린 틈 사이로 기다렸다는 듯 파고드는 열풍에, 왜 어딜 가든 에어컨을 틀어두는 것인지 금세 이해해 버렸기 때문.
안 그러기로 했지만, 또 한 번 이게 겨울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아무튼··· 환기는 포기하기로 하고.
“으으읏··· 차.”
대신 기분만이라도 낼 겸,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켠 뒤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노트를 펼친 뒤 펜을 쥔다.
일기 또는 소감문을 써 볼 생각.
제목은··· ‘그곳에 내가 있었다’ 정도로 할까.
조금 오글거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누구한테 보여줄 건 아니니 괜찮겠지.
어쨌거나, 펜을 꾹 쥐고 한 자 한 자 눌러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요즘은 핸드폰이나 노트북만 써서 키보드 두드리는 것에만 익숙하지, 이렇게 펜으로 쓰는 건 엄청 오랜만이라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릴 땐 전술 노트 같은 걸 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따로 쓰지는 않았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글씨를 못 썼나 새삼 놀라는 중.
아무튼, 여기 와서 느꼈던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간다.
덕분에 좀 두서도 없고, 좀 오글거리기도 한데.
다시 말하지만 어차피 나만 볼 거니까.
“···됐다.”
그렇게 소감문 작성을 마치고, 뻐근해진 손을 주무르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이렇게 적어두면 가끔 꺼내보면서 지금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겠지.
어디, 처음부터 한 번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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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곳에 내가 있었다.
평생 와볼 일 없을 것 같았던, 내겐 저 멀리 화성, 목성이나 다를 게 없었던 카타르라는 곳에 왔다.
카타르에서 열리는 월드컵 때문이었는데, 놀랍게도 구경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선수로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나곤 하는데, 내가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뛰었다는 건 그중에서도 가장 상상 못 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래서 감격스럽다든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쁘다든가 하진 않았다.
처음에는 말이다.
사실 그다지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요 몇 달간 여러 대회를 뛰면서 지치기도 했고, 너무 큰 대회라 부담스럽기도 해서 그랬다.
근데 어차피 와야 할 거, 가기 싫다 싫다 해봐야 나만 힘드니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기로.
그러자 놀랍게도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달라진 건 내 마음뿐인데, 모든 게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는 카타르에서 네 번의 시합을 했다.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 그리고 16강에 올라가 브라질과 붙었다.
첫 시합인 우루과이전에서 나는 후반 12분에 교체로 들어갔다.
엄청 긴장이 됐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이게 월드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이 됐다.
그래서인지 들어가서도 조금 몸이 굳어 있는 느낌이었고, 동료들과 소통도 잘 못 했다.
첫 시합이라 중요한 시합이었는데 비겨서 아쉬웠다.
조금 딴 얘기긴 한데, 토레이라 선배랑 적으로 만나니까 느낌이 이상했다. 근데 선배는 벤치였다. 끝나고 유니폼을 바꿨고 서로 16강 가자고 약속했다.
두 번째 시합은 가나전이었는데 선발로 뛰었다. 이날도 떨리긴 했지만 우루과이전 때보다는 훨씬 덜했다.
그렇지만 쉬운 시합은 아니었다.
여전히 소통하는 부분에서 부족했다.
한국어를 까먹어서 말이 안 통했다는 게 아니라··· 뭐라 그래야 되지. 조금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
아무래도 내가 합류한 게 얼마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피오렌티나를 벗어나 새로운 팀에서 뛰어본 게 처음이라 서투르기도 했고.
좀 더 일찍 대표팀에 합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날은 한 골을 넣었다. 기분이 무지 좋았다. 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지우한테 메시지가 50개 넘게 와 있었다. 심장 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고··· 귀여워서 힘이 났다.
근데 경기는 졌다. 역전을 당하고 말았는데, 나는 이미 교체로 빠진 뒤라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마지막 시합이 엄청 중요해졌다.
여기서 이기고, 가나가 우루과이한테 이기거나 비겨야 우리가 16강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덕분에 가능성이 낮다고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겼다···!
나는 선발로 시합을 뛰었고, 초반에만 해도 쉽지 않겠다고 느꼈는데 중반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호날두가 여러모로 우리 팀을 도와준 덕분이었는데, 그의 전성기가 아닌 게 고마운 일이었다.
게다가 가나가 우루과이랑 비기면서 우리는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팬들은 엄청 기뻐해 주셨다.
늦은 시간에 호텔 앞까지 오셔서 응원을 해주셨다. 우리한테 막 감사하다고 해주시는데 내가 더 감사한 일이었다.
16강 상대는 우승 후보 브라질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작 전부터 선배들마저도 긴장한 게 느껴질 정도였다. 몇몇 선배들은 네이마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얼마 전에 봤던지라 딱히 신기하진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브라질은 강했다.
게다가 운도 우리한테 안 따라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운도 실력이라서 핑계에 불과하지만, 초반에 실점을 내준 게 독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나를 포함해 모두 체력적으로 바닥이 나 있기도 해서 많이 흔들렸다. 소통이 더 안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두 골을 넣었다.
하지만 시합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는 졌고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되게 많이 아쉬웠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주변에서 16강 간 것도 기적이라 그러고,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해서 탈락한다 해도 크게 아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왜인가 생각해보면, 경기 전에 잔뜩 쫄았던 거에 비해선 할 만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큰 점수 차로 져놓고 이렇게 말하면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냥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분명 브라질은 전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유처럼 대단한 팀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는데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차이가 있었다면 우리보다 좀 더 여유가 있었다는 정도?
진짜 운만 더 따라줬으면 대등한 시합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튼, 그래서 시합 끝나고 인터뷰할 때 그렇게 얘기했던 거다.
그 첫 월드컵 뛰어본 소감 물어봤을 때, 다음 월드컵에선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한 거.
근데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해서 괜히 얘기했다 싶었다.
그냥 내 느낌을 말한 것뿐인데 내가 무슨 영웅이자 희망처럼 되어있더라.
사실 내가 다음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카타르 월드컵은 끝이 났다.
그래서 소감을 얘기하자면,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고작 네 경기밖에 안 됐지만 그 네 경기 모두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힘들고 긴장되는 경기였던지라, 끝나고 나니 뭔가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한 번 죽도록 힘들고 나면, 진짜 죽는 게 아닌 이상 성장하기 마련이니까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믿기지 않긴 한다.
하지만 사실이다.
카타르 월드컵이라는 곳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걸 얻어간다.
이제 돌아가면 월드컵이 끝날 때까진 시합이 없으니까 쉬면서 지우랑 놀아야지.
2022년 12월 7일, 카타르 날씨 화창함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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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솜씨를 생각해보면, 나름 뭐 잘 썼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를 캐리어에 던져둔다.
시계를 보니 슬슬 씻고 나갈 시간이었다.
ㆍㆍㆍ
카타르 월드컵은 그 개최지가 정해진 순간부터 이미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은 대회였고, 조별예선이 시작된 이후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역대 월드컵 중 최초로 중동에서 열린 월드컵이자 11월에 열린 월드컵, 첨단 VAR 시스템 도입, 에어컨이 가동되는 경기장, 그리고 메시와 호날두의 라스트 댄스 등.
시작부터 많은 이야깃거리가 즐비했으나, 대회가 시작된 직후.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역시나 ‘이변’이 될 것이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이변이 일어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여기저기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벌어졌기 때문.
개막 둘째 날,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발목을 잡힌 것을 시작으로.
그다음 날엔 전차군단 독일이 일본에 패했고, 다크호스로 꼽혔던 덴마크가 호주에게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모로코가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거나, H조에선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잡아내며 16강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렇듯, 카타르 월드컵의 시작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매 대회 그렇듯.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별예선 3경기에서 모두 골을 터뜨린 네덜란드의 코디 학포(23, 아인트호벤), 어린 나이에도 거대한 벽처럼 크로아티아를 지킨 요슈코 그바르디올(20, 라이프치히), 모로코의 돌풍을 이끈 아제딘 우나히(22, 앙제)까지.
모두 20대 초반에 불과한 신성들임에도, 그 활약이 기존의 스타들보다도 뛰어났던지라.
세계 유수의 빅클럽들이 대회가 끝나기도 전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한 두 명의 신성을 꼽으라면, 역시나 잉글랜드의 주드 벨링엄(19, 도르트문트)과 대한민국의 지안 리(17, 피오렌티나)가 될 것이었다.
사실 두 선수 모두 대회 전부터 이름을 알린, 이미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었다.
특히 주드 벨링엄의 경우, 대회 전 FIFA 산하 연구소 ‘CIE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예상 이적시장 가치가 무려 약 2억 200만 유로에 육박,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의 831명 중 #1에 랭크된 정도이기까지 했으니.
그의 이번 대회 활약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된 바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흐름에서 지안 리의 활약 역시 비슷하게 예상이 되었었지만, 그의 활약이 좀 더 인상 깊게 다가온 이유는 그의 국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잉글랜드와 달리 대한민국은 비교적 약팀으로 분류되는 팀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불리함 속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브라질전에서 그의 플레이는 압권이었다.
분명 경기는 브라질이 승리했고, 경기 내용도 브라질이 우세한 경기였으나.
경기가 끝난 뒤 기억에 남는 건 그런 브라질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던 리뿐이었다.
만약 네이마르나 비니시우스가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면, 그 정도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그런 재밌는 의문이 들 정도로 리가 보여준 활약은 대한민국 유니폼을 뚫고 나오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본 기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었다.
모든 16강전이 끝난 직후 다시 발표된 자료에서, 지안 리가 2억 100만 유로라는 예상 가치를 갱신하며 주드 벨링엄을 턱밑까지 추격한 걸 보면 말이다.
-카타르 현지에서, BBC, Georgi Harri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