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은혜를 원수로 갚다 -3
전반전이 20분을 지나는 무렵.
전광판에 적힌 스코어는 여전히 0대0.
리그 순위와 마찬가지로, 팀 득점 순위 역시 1, 2위를 달리고 있는 양 팀의 대결인데.
그런 것치곤 심심할 만큼 잠잠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물론 아닌 경우도 허다하긴 하나, 보통 1, 2위 간의 맞대결은 화끈한 경기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일단은 서로 간의 힘의 균형이 적절히 맞아 떨어지기에 그럴 수밖에 없고.
특히 나폴리와 피오렌티나는 현재 승점 3점 차로 경쟁 중이기까지 하니, 아무래도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탓.
덕분에 그라운드 위는 물론, 관중석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쉽게 못 들어가네.”
“조금 더 과감하게 해도 되지 않나?”
“신중할 수밖에 없긴 하지. 상대가 상대니까···”
원정팬석에 앉은 피오렌티나 팬들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한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흐름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나.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좀처럼 날카로운 공격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집중력이 살아있는 수비라든가, 중원 지역에서의 볼 소유는 좋았다.
그건 나폴리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조금 과감하게 해도 될 것 같은 장면에서도 한 수 접는 듯한 느낌인 게 아쉽다는 얘기.
물론 상대가 상대고, 스쿠데토의 향방이 가려질 수도 있는 중요한 경기다 보니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만.
너무 신중한 나머지 지레 위축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지. 상대도 과감하게는 못하고 있으니.”
“나폴리도 우릴 만만하게 볼 수는 없겠지.”
“컨디션도 막 좋은 느낌은 아닌 것 같은데. 나폴리도 스타팅이 잘 안 바뀌는 팀이잖아. 그런 점에선 다행이야. 오늘따라 실수도 좀 있고.”
“뭐, 사실 아쉽다는 게 그래서인 거지. 오늘 나폴리는 우리가 쫄 필요 없어 보이니까···”
뭐, 어쨌든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
나쁘다고 할 수 있는 흐름은 아니었다.
일단은 나폴리의 파괴력이 아직까진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만 해도 청신호.
현재 나폴리의 공격력은 리그 내 최상급이다.
리그에서 그 어떤 팀보다 많은 득점을 올린 팀이 나폴리니까.
흐비차나 오시멘 등을 앞세운 그 화력에 양 밀란이나 유벤투스 같은 팀들도 수비벽이 허물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공격진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다행인 셈.
사실 좀 의아하기는 했다.
나폴리가 생각보다 덜 공격적으로 경기하고 있다는 점이 말이다.
말했듯 어느 팀과 붙어도 본인들의 공격적인 색깔을 유지하는 게 나폴리인지라.
오늘도 그렇게 나왔다면 쉽지 않았을 텐데, 알아서 먼저 신중한 경기를 해주고 있으니 의아하면서도 다행인 일.
다만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닌 게, 나폴리도 형편이 여유로운 팀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피오렌티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쪽도 특정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꽤나 높은 팀이다.
따라서 경기 운영도 그 선수들의 컨디션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고, 그 큰 영향력을 가지는 선수들의 컨디션이 오늘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러니 경기 운영도 지금처럼 약간은 체력을 아끼는 듯 보일 만큼 신중하게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
하지만, 그것은 일반 팬들의 시각에서였다.
보다 더 날카롭게 분석이 가능한 전문가의 눈엔 분명 더 보이는 게 있었다.
지금, 나폴리 특유의 맛이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과연 그것이 나폴리의 내부 사정 때문일까.
과연 지금의 경기 템포가 그들이 의도한 대로인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
관중석 한켠, 피오렌티나 U17 팀의 감독 토니 루초가 두 손을 입 앞에 모은 채 경기를 집중해서 보고 있다.
마침 어제, U17 팀도 나폴리와의 경기가 있던 터라 이곳에 있을 수 있던 그다.
덕분에 U17 소속 유소년 선수들도 옆자리에 앉아 있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지금 중요한 건, 나폴리가 공격적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서 신중하게 경기를 펼치고 있는 거냐고 한다면··· 토니 감독의 생각엔 그렇지 않다는 게 중요한 점이었다.
나폴리는 원래 그들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하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들의 공격적인 축구가 상당히 위력적이라는 건 이미 순위가 증명해주고 있는데.
주축 선수들의 컨디션?
한눈에 봐도 문제가 보이진 않았다.
수비진에 누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에이스인 흐비차나 오시멘의 몸놀림도 꽤 가벼워 보였다.
경기 초반만 해도 그 둘은 충분히 잘 보였다.
그럼 뭐, 워낙 중요한 경기다 보니까?
서로 승점 1점씩만 나눠 가져도 나쁠 게 없다 보니까?
글쎄.
그렇게 생각하기엔, 나폴리는 그런 식으로 승점을 쌓아온 팀이 아니었다.
무승부도 3번 밖에 없다.
다른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특유의 색깔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 왜일까.
결론은 하나뿐이다.
‘···완전히 통제당하고 있다.’
공격적으로 경기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가 없을 뿐이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경기의 템포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나폴리의 시도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보이고 있었다.
빠르게, 빠르게.
시합을 핑퐁 게임처럼 만들고 싶어한다는 게 눈에 보일 만큼 나폴리는 빠르게 공격하고 빠르게 압박을 가했다.
다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맥을 끊어대는 이가 있었으니, 자신의 애제자였다.
‘···애제자라고 해도 되겠지?’
문득 제자라고 부르기엔 너무 큰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으나, 어쨌든.
계속해서 상대의 맥을 끊어내고, 시합의 템포를 느리게 만들고 있는 건 지안이었다.
최대한 상대 진영에서 공을 소유해, 공이 상대 진영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공격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확실하지 않다면 한 수 접어, 상대에게 최대한 공격권을 내주지 않고.
조율, 조율, 조율.
언뜻 보기엔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겠지만.
눈치가 빠른 사람들을 알아차렸을 거다.
지안의 발에 공이 들어갈 때마다 한숨을 돌릴 수 있는 타이밍이 생겼었다는 걸 말이다.
지안은 완전히 경기의 템포를 주도하고 있었고, 나폴리는 그런 지안의 템포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어쩔 수 없이.
저 속주(速奏)로 유명한 연주자들이, 자꾸 안단테를 그리는 지휘자 때문에 애가 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자꾸 마음만 급하다 보니 실수도 나오고 있는 것이었고.
“···안드레아.”
“예?”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토니 감독이 옆자리에 앉은 제자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자 안드레아라는 이름의 소년이 고개를 돌리는데, 토니 감독은 그 안드레아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다···
“···아니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토니 감독은 조용히 헛웃음을 지었다.
사실, 보고 배우라 하려고 했다.
안드레아라는 친구가 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친구라.
조율이란 건 저렇게 하는 것이니 보고 배우라 하려고 했다만.
‘지금은 그냥 감상만···’
아무리 자신이 지도자라고 해도, 저걸 눈으로 보고 배우라는 얘긴 차마 못 하겠다 싶었다.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후우, 후우-”
공이 잠시 터치 라인을 나간 사이.
그 틈을 타 크게 호흡하며 전광판을 흘끗 바라본다.
74:39
NAP 0 : 0 FIO
어느덧 벌써 75분이 다 되어가고 있는 무렵.
경기 종료까지 15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나, 아직은 한 골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별일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간 경기였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이미 90분을 뛴 듯한 피로감이 느껴지는 게 그 증거.
물론 그것이 지난번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과한 의욕이 불러온 참사는 아니고.
육체적인 피로함보다는 심리적인 피로함이 더 컸다.
큰 권력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할까.
마치 모든 걸 내가 조종하는 듯한, 내가 경기의 템포를 조절한다는 건 꽤 재밌는 일이긴 했다만.
그러다 보니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 건방진 얘기일 수도 있다만, 우리 팀이 항해 중인 배라고 치면 그 배의 방향키를 잡은 게 나라서.
내가 방향을 맞게 잡지 않으면 암초에 부딪힐 수도 있고,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는 일이 아니던가.
덕분에 계속해서 속으로 되물으며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맞나.
계속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맞나.
당장은 배가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몇 번이고 다시 체크 할 수밖에 없더라.
축구라는 게, 딱히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삐익-!
우리의 스로인으로 경기가 재개된다.
우리 진영 깊숙한 곳, 주장이 공을 던지고.
그 공을 나스타시치가 받아 공을 앞으로 툭 차 놓으며 전방을 바라본다.
어느덧 상대는 강한 전방 압박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의 압박을 생각보다 잘 벗겨내 온 탓일 터.
또한 상대의 체력 역시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인 탓도 있을 거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경기를 하고 있고.
상대는 조금 못마땅하게 경기를 하고 있다.
그게 내겐 유일한 지도였다.
이 방향이 맞는 방향이라고 알려주는 지도.
“···”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보는 지금, 나는 느끼고 있다.
이제 안전한 항해를 끝내고 목적지에 닻을 내릴 시점이라는 걸 말이다.
타타탓-!
상대 수비와 3선 미드필더 사이 공간에서 조금 아래 지역으로 위치를 옮긴다.
파아앙-!
파아앙-!
동시에 후방에선 몇 번의 패스가 이뤄지고, 곧 공이 내 발밑까지 이어져 온다.
나 역시 패스를 간결하게 처리하며 패스의 흐름을 살리되, 그 방향이 측면으로 향하게끔 만들어낸다.
타타탓-!
그런 뒤엔 다시 몸을 돌려 전방으로 올라간다.
상대 진영의 공간이 그렇게 넓지는 않다.
전반에 비해 전체적으로 내려선 탓.
그러나 빈틈이 없냐고 한다면, 그렇지도 않다.
아무리 내려섰다고 한들 그것은 비교적의 이야기고.
상대는 아직도 여전히 공격을 하고 싶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아앙-!
왼쪽에서 공을 이어받은 사포나라 선배가 방향을 중앙으로 트는 게 보인다.
이에 나는 자연히 왼쪽 대각선으로 움직여 사포나라 선배의 자리를 차지하고.
파아앙-!
다시 내게 향해오는 패스를, 터치 라인을 등 뒤에 둔 채 받아낸다.
그러자 곧바로 상대 수비가 상당한 경계심을 보이고 붙어온다.
···하나가 아니고 둘.
당연히 있어야 할 우측 풀백에 더해, 괴물이 박스를 벗어나 길목을 틀어막는 게 보인다.
문득, 오답 노트를 꺼내 들어야 할 때임을 느낀다.
타탓-!
수비를 앞에 둔 채 적당히 발재간을 부려본다.
어떻게든 이 왼쪽 측면을 부수겠다는 의지를 몸으로 표현하듯 상체를 흔든다.
그러나 그것은, 그 너머를 흘끔이는 내 시선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상대 수비의 시선을 오롯이 내 발에 묶어두기 위함.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얘기일 거다.
굳이 괴물과 싸울 필요는 없다.
파아아앙-!
오른발을 세운 뒤, 공을 왼쪽에서부터 깎아낸다.
사뭇 너무 깊게 준 패스가 아닌가 싶지만, 아웃프런트로 강하게 회전을 먹인 터라 그 궤적이 박스 안쪽으로 흘러 들어간다.
타타탓-!
그 궤적의 끝엔 어느새 쇄도 중인 사포나라 선배가 있다.
박스 안 좌측면.
최대 위험 지역이라기엔 내게 수비가 몰린 탓에 공간은 꽤 여유로운 편.
순간, 사포나라 선배가 슈팅을 망설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선배에 대한 믿음으로, 굳이 때리라고 외치지는 않기로 한다.
패스 자체가 때리라고 외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뻐어어어어엉-!
사포나라 선배가 역동적으로 몸을 뒤틀며 왼발을 휘두른다.
이에 발에서 떨어져 나간 공은 반대편 골대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눈에 보이는 건 입을 큼지막하게 벌린 채 내게 달려오는 사포나라 선배의 얼굴이다.
철썩-!!
지난번 경기에서 배운 게 많다.
그 가르침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인데, 물론 죄책감을 느낄 필요 따윈 없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