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은혜를 원수로 갚다 -4
만약 이탈리아 축구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꼽을 게 분명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가 마지막으로 월드컵을 들어 올린 바로 그 대회 말이다.
뭐, 사실 그 대회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대회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후, 이후 두 대회에선 연속 조별 예선 탈락, 그다음 두 대회에선 본선 진출조차 실패한 이탈리아였으니.
무려 15년도 더 된 독일 월드컵이 기억에 남는 마지막 월드컵인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 일인데.
다만 그 외에도, 독일 월드컵이 이탈리아 팬들에게 강렬한 기억이 된 이유는 다양했다.
우선 개최지부터가 같은 유럽 대륙이자 오랫동안 맞부딪쳐 왔던 독일이었다는 점도 그러했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불세출의 명장 마르첼로 리피부터 지안루이지 부폰, 파비오 칸나바로, 젠나로 가투소, 안드레아 피를로, 프란체스코 토티, 루카 토니 등.
스쿼드 자체에 낭만이 가득했던, 어떻게 보면 마지막 낭만의 세대였다는 점 역시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거니와.
무엇보다 독일과 프랑스라는, 유럽 정상의 자리를 놓고 오랜 시간 동안 싸워 온 최고의 라이벌들을 4강과 결승에서 연이어 꺾어내며 우승했다는 점이 이탈리아 팬들에겐 가장 좋은 기억일 게 분명했다.
특히, 프랑스와 펼친 결승전은 말 그대로 혈투였다.
전후반 90분에 더해 이어진 연장 30분에서마저도 두 팀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마침내 승부차기까지 가서야 월드컵의 주인이 가려졌으니.
그야말로 결승전 중의 결승전다운 경기였던 것.
비록 아쉽게 패배하기는 했으나, 그 시절 프랑스 역시 우승을 차지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했던 팀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다만.
그런 프랑스가 대회 초반부터 우승 후보로 거론됐던 건 아니기도 했다.
초반엔 되려 이름값만 남은, 한물간 팀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게 프랑스였으니까.
감독의 선수 기용 문제라든가,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 덜그럭거리는 조직력까지.
실제로 프랑스는 조별 예선에서도 미진한 경기력으로 간신히 1승 2무를 기록하며 어렵사리 토너먼트에 진출했던지라, 그러한 평가가 틀린 평가는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랬던 프랑스에게서 전성기 시절의 향기가 풍기기 시작한 것은 8강 토너먼트서부터였다.
8강, 프랑스와 브라질의 대결.
이 경기에서 프랑스는 마치 각성이라도 한 듯 이전과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결국 브라질을 꺾는 기염을 토하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인데.
사실 이 경기가 이탈리아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경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탈리아에서 큰 화제가 된 이유는.
워낙 브라질이 대회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초호화 스타 군단.
호베르투 카를로스부터 카푸, 카카, 호나우지뉴, 아드리아누, 그리고 호나우두까지.
이게 국가대표팀에서 나올 수 있는 멤버인지 싶을 만큼 강력한 스쿼드를 자랑하던 게 당시의 브라질이었다.
실제로 조별 예선 3경기와 16강전에서 4전 전승을 거두며 이름값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도 했고 말이다.
따라서 이전까지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프랑스가 브라질을 꺾을 수 있을 거란 예측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탈리아 팬들도 이 경기를 봤던 게, 강력한 우승 경쟁자인 브라질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려는 마음 반, 그리고 유럽 라이벌인 프랑스가 얼마나 시원하게 깨지는지 보려는 마음 반이었달까.
한마디로 브라질에게 탈탈 털리는 프랑스를 보면서 한껏 놀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이탈리아는 그 시점에서 이미 우크라이나를 3대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해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경기의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프랑스의 승리였다.
사실 뭐, 이변이라고까지 하기엔 프랑스가 그런 말을 들을 만큼 만만한 팀이 아니기는 하다만.
그래도 브라질의 8강 탈락은 ‘충격’이라고 표현될 만큼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경기 결과 자체보다 더 놀라웠던 건 경기 자체였다.
뭐 어떻게 불운이 겹쳐서 브라질이 패배했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게 아니라, 그 즐비한 스타들이 프랑스의 한 선수 앞에서 평범한 선수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지네딘 지단이었다.
외계인 호나우지뉴도, 신이 내린 재능 호나우두도, 이듬해 발롱도르의 주인공인 카카도.
이 경기에서만큼은 들러리일 뿐이었다.
주인공은 지단이었고.
이 경기를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이야기했다.
지단이 공을 잡을 때면, 그라운드 위의 모든 게 지단에게 맞춰지는 것 같았다고.
그만큼 지단은 혼자서 경기를 휘어잡았고, 경기의 템포를 자신의 템포에 맞추며 스타 군단 브라질이 자신을 따라 뛰도록 만드는, 상대마저 지휘해버리는 지휘자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그 경기야말로, 한 선수가 한 경기를 지배해버린 경기였던 것이다.
[후반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추가 시간도 그리 길진 않을 것 같은데요.] [나폴리라면 뭐 3분에도 두 골을 넣을 수 있는 팀이긴 하지만, 오늘은 글쎄요. 남은 5분의 시간이 상당히 촉박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지금도, 예. 리에게 공이 갑니다. 로보트카가 빠르게 붙어보지만, 빼앗기지 않습니다. 공의 소유권을 쉽게 내주는 법이 없습니다, 리.]그래서, 나폴리와 피오렌티나가 경기를 펼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팬들이 조금은 뜬금없이, 15년도 더 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는.
나폴리를 홀로 연주하고 있는 소년의 지휘가 마치 그 날 브라질을 연주하던 지단의 지휘를 연상케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감히 그 둘을 나란히 세우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나폴리가 강한 멤버들을 보유하고 있다곤 하나, 그 시절 브라질을 빗대기엔 한참 무리가 있기도 하거니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소년을 지단과 비교하는 건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니까.
다만, 기억 속.
뇌리에 깊게 박혀 있는 그 날의 냄새를 얼핏 맡기엔 충분한 정도였다는 거다.
나폴리가 이렇게 맥없는 경기를 하는 팀이 아니라는 건 나폴리 팬들도 알고, 피오렌티나 팬들도 알고, 그냥 모두가 아는 사실.
그런데 오늘은 좀처럼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하는 게, 마치 약 먹은 파리처럼 비틀비틀거리고 있다.
그 약이 저 소년이었다.
유벤투스에서 뛴 적이 있는 지네딘 지단에게, 이탈리아 사람들은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 마에스트로가 월드컵 8강 무대에서 브라질이란 곡을 멋지게 연주한 지 17년.
그 독주(獨走)를 연상케 하는 무대가 소년 지휘자의 발에서 다시 선보여지고 있었다.
*
“좀 더 앉아 있어도 돼. 스타킹도 좀 정리하고, 신발 끈도 한번 묶어주고.”
사포나라 선배의 조언에 따라 괜히 스타킹을 내렸다가 다시 올리고, 잘 묶여있던 신발 끈을 푼 뒤 다시 묶는다.
공을 몰고 방향 전환을 하다 상대의 태클에 넘어진 상황.
종아리 쪽을 차이는 바람에 좀 아프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속으론 웃음이 나오더라.
89:41
NAP 0 : 1 FIO
슬쩍 전광판을 바라보니 90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추가 시간까지 대충 가늠을 해보자면 남은 시간은 5분쯤 되려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 벌 수 있으면 좋은 거니까.
음.
솔직히 말하면 조금의 시간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5분?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특히 운동장 위에서라면, 그리고 전광판의 시계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5분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 최대한 길게 호흡하며 천천히, 휴일 아침 침대 위에서 그러는 것처럼 밍기적대며 느긋하게 일어난다.
“집중해보자! 5분만!”
“침착하게! 흥분하지 말고!”
이 5분이 나에게만 긴 시간은 아닐 거다.
되돌아보면, 그 5분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꽤 많았던 우리였으니까.
시작한 뒤 5분, 그리고 끝나기 직전 5분.
이건 어느 팀이든 조심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특이 우리에겐 더더욱 그랬다.
덕분에 감독님께 된통 혼난 적도 많지 않았나.
그 5분이 뭐라고.
그래도 나름 밖에선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희망이기도 한 사람들인데.
그 5분 때문에 숙제를 안 해온 중학생처럼 혼이 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건, 전부 좋은 경험이었다는 거다.
물론 그 당시엔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그게 결국 오답 노트의 한 페이지가 되어 지금, 우리에겐 답안지가 되어주고 있지 않나.
예전의 나였다면 이미 한껏 흥분해서 벌써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랬을 거다.
끝까지 경기에 집중할 생각은 안 하고, 지우가 방금 그거 봤을까, 관중들이 보기에 오늘 나는 어땠을까 따위의 생각들로 머릿속이 지저분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지금이 그럴 때는 아니라는 것과 그러다간 꼭 사고가 난다는 걸.
문득, 책에서만 보던 케케묵은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
솔직히 어릴 땐 그저 희망을 주기 위해 하는 말, 그러니까 하얀 거짓말 같은 건 줄로만 알았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일종의 위로 같은.
하지만 이제는 저 말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실패는 정말로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삐이익-!
다시 휘슬이 울리고, 그래도 쓸데없이 경고는 받으면 안 되니까.
적당히 줄 곳을 고민하는 척 하다 패스를 넘기며 경기를 재개시킨다.
그리곤 언제 늑장을 부렸냐는 듯, 시치미를 떼며 분주하게 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은 시간이 짧다고 적당히 하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목숨을 거는데 적당히 해서 이길 생각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머리와 발을 동시에 굴려 이 몸뚱아리로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을 끌어내려 노력한다.
남은 5분이 시작 후 5분이라는 생각으로, 아니.
그냥 시간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한다.
파아앙-!
하프 라인과 평행선을 그리듯 가로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원투 패스를 주고받는다.
파아앙-!
패스 한번을 주고받을 때마다 눈앞에 상대가 바뀔 만큼 중원에 사람이 많다.
빨리 공을 가져가 우리 골대로 향하고 싶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파아앙-!
그 덕에 흐비차의 얼굴도 스쳐 지나가는데, 워낙 볼 운반 능력이 좋은 선수인 만큼 절대 빼앗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끝에서 끝까지 왔다.
타탓-!
방향을 우리 진영 쪽으로 꺾는다.
여기서 역주행이라니, 아무리 운전면허가 없다지만 이게 위험한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다.
골대와 가까운 곳에서 공을 빼앗길수록 더 위험하다는 건 상식이니까.
그리고 그건 반대로 얘기하면, 상대 입장에선 높은 지역에서 공을 빼앗을수록 좋은 기회가 된다는 뜻이다.
기회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상대가 아니다.
타타탓-!
상대 선수들이 한층 더 빠르게 달려드는 것이 느껴진다.
빠르게, 빠르게.
그러다 보니 다들 보폭이 크다.
파아앙-!
달려드는 상대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며 터치 라인에서 탈출한다.
동시에 도저히 빠져나가기 어려울 듯한 좁은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순간 어림잡아도 네댓 명은 되는 것 같다.
대체 몇 명이 이쪽으로 쏠린 거야.
뻐어어어어엉-!
길게 앞으로 차버린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차버리진 않았다.
반대편에 사포나라 선배가 멀뚱멀뚱 서 있는 게 보였다.
좀 뛰라고 그쪽으로 보냈다.
슈우우우우웅-
근데, 뛰기 싫은가 보다.
하늘 높이 뜬 공이 선배에게 향하는데, 선배는 제자리에 선 채 그 공을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파아앙-!
그 공을 손으로 잡는다.
순간 뭐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잠시 후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공이 공중에 떠가는 사이 이미 휘슬이 울린 것이었다.
“이야아아아!”
“이겼다아!”
여기저기서 풀썩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쇳소리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풀썩-
나 역시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등을 잔디 위에 눕힌다.
“허억, 허억···”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의 높낮이가 도무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건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어서,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알아서 진정되길 기다리기로 한다.
···오늘따라 하늘이 더 예쁘다.
“···”
좋은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