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가치 판단 -1
2023년 5월 4일.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랑키.
제노아 원정에서 돌아온 지 불과 4일 뒤.
평소라면 훈련장에 있을 시간이지만, 우리는 경기장 라커룸에서 경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 테이핑 좀 도와줘.”
“거기, 박스에서 붕대 남는 것 좀 더 가져와 봐.”
컵 대회에서 모두 탈락한 터라 우리가 소화하는 일정이라곤 리그 경기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월드컵으로 일정이 밀린 탓에 시즌 일정이 빠듯해졌고, 5월부터는 한 달 동안 여섯 경기를 치러야 하는 일정이 우릴 반기고 있는 중.
덕분에 경기 전임에도 다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힘내서 가보자. 충분히 할 수 있어.”
“힘내자, 힘내자!”
힘들지 않다면 힘내자는 말도 하지 않을 터.
나부터도 그렇다.
이렇게 자기 최면이라도 걸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버거운 일정이다.
덕분에 오늘은 전술 브리핑을 하면서도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브리핑을 들으면서 동시에 각자 몸 상태를 체크 하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조치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구는 다리 전체에 테이핑을 하느라 바빴고, 누구는 붕대까지 꺼내 들었다.
하프 타임에나 나와야 할 아이싱도 벌써 여기저기서 보이는 중.
풍경만 보면 이게 라커룸인지 치료실인지, 경기 전인지 후인지 헷갈리는 풍경이랄까.
“움직여 볼래? 느낌 어때?”
“불편하진 않아요.”
“잡아주는 느낌은 들고?”
“네.”
“그래. 좋다.”
내 무릎 주변에도 테이핑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자리를 잡았다.
뭐, 통증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닌데 예방 차원에서 하는 게 좋다고.
원래는 안 그랬는데 요즘 일정도 그렇고, 플레이 스타일도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은 터라 조심하는 중이긴 하다.
나도 아예 안 다쳐본 건 아니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휴우-”
나보다는 다른 선배들이 문제다.
나야 미리 조심하는 정도라면, 몇몇 선배들은 통증이 있는 걸 참고 뛰는 수준이니까.
그러고 보면 문득, 이렇게까지 해서 우승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만.
반대로 이렇게까지 했는데 우승을 해보긴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 역시 든다.
···그래도 솔직히 누군가 다쳐서 상처를 입을 바에야 무리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긴 한데.
뭐, 그거야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어쨌거나.
쉬어야 할 상황에 쉬지도 못하고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게 참 가혹하게 느껴지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다.
모든 사정을 다 이해받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경기는 해야 하고, 그걸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오늘도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 팬들이 보러 온 건 우리다.
그러니 우리는 경기장에 나가, 팬들이 보고 싶어 한 걸 보여드려야 할 뿐이다.
“자, 모여 봐.”
슬슬 경기 시간이 임박해 오고.
감독님이 먼저 라커룸을 나선 뒤, 주장이 모든 선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오늘도 역시나, 주장은 경기용 유니폼을 입고 있는 채다.
그 유니폼으로 가려진 아래 얼마나 많은 붕대와 테이핑들이 덕지덕지한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되려 우리에게 묻는다.
“힘들지?”
슬쩍.
주장이 모두의 얼굴을 훑어보곤 피식 웃으며 얘기한다.
그러자 0.1초 만에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아니.”
“괜찮아.”
“할 만해.”
“감사하지.”
주장이 얼마나 고생인지야 나뿐만 아니라 다들 아는 사실인데.
그 앞에서 어떻게 힘들다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로메로는 뭐라 말하려 한 것 같긴 하다만, 다행히 옆에 있던 사포나라 선배가 입을 잘 막아준 것 같다.
“좋다. 다들 눈빛이 좋아.”
주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더한다.
“그래. 솔직히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야. 근데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냐. 어차피 우리만 힘든 것도 아니고. 상대도 다 똑같이 힘들 거야. 맞잖아?”
“그렇지.”
“그러니 멘탈 잘 잡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고.”
“오케이.”
주장이 말했듯,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들이긴 하나.
이상하게 눈빛에서만큼은 힘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살아있다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개개인이 아닌, 피오렌티나라는 이름 하나로 묶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소속감이라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각기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
그렇게 묶인 사람들은 개개인이 낼 수 있는 힘 이상을 내곤 한다.
“자, 가보자.”
“가자!”
“FORZA-!”
“VIOLA-!!”
힘찬 목소리가 라커룸을 가득 메우고, 그 목소리에 떠밀리듯 경기장으로 향했다.
*
복도를 지나, 터널을 나오고, 그라운드 위에 서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치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그리고 나는 킥 오프를 위해서 센터 서클 중앙에 선다.
“···”
하필.
이런 상황에서 반대 진영에 있는 선수들이 인테르의 선수들이라는 건, 일종의 시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하늘이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랄까.
너희가 과연 우승이란 걸 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보겠다!
뭐 이런 느낌.
이것조차 이겨낼 수 있으면 우승할 자격이 있는 것이고, 없으면 거기까지라는 거다.
그런 면에서, 새삼.
오늘 경기는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며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테르는 이 어려운 우승을 여러 번이나 해본 팀이니까 말이다.
삐이이이익-!
파아앙-!
휘슬이 울리고, 공을 뒤로 보내며 경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최대한 힘차게 상대 진영을 향해 뛰어간다.
어떻게 보면 오늘은 연기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 저쪽이나 힘든 건 매한가지지만, 힘든 모습을 보이게 되면 곧바로 물어뜯길 테니.
최대한 멀쩡한 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꽤 자신 있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연기하는 건 내 전문 분야기도 하니까.
···마테오가 내 자랑을 해보라고 했을 때 이걸 얘기할 걸 그랬나.
파아앙-!
어쨌거나.
동료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하다.
라커룸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다들 힘이 없어 보였건만, 언제 그랬냐는 듯 활발히 패스가 돌기 시작한다.
타타탓-!
이에 상대도 기다리지 않고 압박을 올라가는 모습.
그 압박으로부터 동료들을 돕기 위해 슬쩍 아래로 내려간다.
타탓-!
내가 내려가면, 우리의 포메이션은 4-3-3에서 4-4-2 비슷한 형태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내가 비운 중앙 자리를 양쪽 날개인 사포나라 선배와 로메로가 채워주고.
중원은 패스를 돌릴 수 있는 대형을 만들며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은 더욱 볼 소유가 중요한 경기다.
상대의 압박이 워낙 강하고, 또한 수비하는 시간이 길어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타타탓-!
지금도 압박이 어마무시하다.
공을 잠깐이라도 갖고 있기 어려울 만큼 금새 압박이 달라붙는다.
내가 내려오면서 중원의 숫자를 하나 늘렸지만, 상대는 애당초 3-5-2의 전형이라 중원 숫자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 대상 1호인 건··· 이 남자다.
타탓-!
공을 건네받기 무섭게 호리호리한 체형의 선수가 달려든다.
77번이라는 인상적인 등 번호에, 이름은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경기 당 12km 전후를 뛰면서도 매 경기 출전하는 괴물이라고 했던가.
지금 이렇게 뛰는 걸 보면 금세 지치겠구나 싶을 정도인데, 저런 페이스를 후반까지도 유지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러면서도 기술이 좋고 공수 전환이나 조율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해서.
절대로 그에게 공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오늘 나는 이 선수와 경기 내내 같이 놀아야 한다.
타탓-!
직선으로 달려드는 상대의 발을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피해낸다.
그러나 곧바로 따라옴에, 이번엔 엉덩이를 뒤로 빼며 등을 지고 공을 지켜낸다.
버틸 만하다.
보통 중앙에서 뛰는 선수들은 몸으로 상대하기 버거운 편인데, 지금은 나름 버텨진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그의 적극적인 태도.
적당히 압박만 주는 게 아니라 계속 밀쳐대며 어떻게든 발을 뻗어 공을 건드리려 하고 있다.
덕분에 숨돌릴 틈이 없는 느낌.
사실 이럼 나쁠 게 없는 게, 적당히 지켜주기만 하다 보면 상대 체력만 빠지는 거니까 나쁠 게 없다만.
브로조비치는 지치질 않는다니 오래 비비적대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다.
오늘은 나도 체력을 똑똑하게 써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 넉넉하진 않으니까.
타탓-!
슬쩍 손과 엉덩이를 사용해 상대를 뒤로 밀어내고, 반동을 통해 거리를 벌린 후 돌아선다.
그리고 대치한다.
몸으로 비비적거리는 건 안 되지만, 그래도 오래 데리고 있어야 하는 건 맞다.
브로조비치가 다른 동료에게 붙을 경우 상황은 위험해진다.
그러니 내가 위험 부담을 안고 있어야 하는 게 맞다.
동료들을 무시한다거나, 책임을 내가 떠안으려는 게 아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
공을 지켜야 한다면 그게 나여야 할 뿐이다.
타탓-!
브로조비치가 다시 달려든다.
아까 잠깐 몸싸움을 하면서 느낀 건데, 정말 노련하더라.
워낙 적극적으로 붙어오는 터라 반칙을 유도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선을 애매하게 넘지 않으려는 게 느껴져 금방 포기했었다.
영리한 선수다.
내가 생각하는 걸 브로조비치도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이상을 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테오가 그런 숙제를 내줬었다.
다른 팀에서 날 1,500억에 사려고 한다던데,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오라고.
···웃기는 숙제다.
그래도 하긴 해야 하니까, 내 나름대로 생각해봤다.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해봐도 1,500억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기는 하다만.
남들이 그렇다는데 뭐.
이제 나도 마테오의 말 대로,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타타탓-!
브로조비치가 지척까지 달려들었을 때, 오른발에 있던 공을 왼발로 옮기며 상대의 발을 피해낸다.
동시에 왼발로 공을 앞으로 밀고, 붙잡으려는 브로조비치의 손을 뿌리치며 앞으로 치고 나간다.
저랑 같이 가시죠.
다른 사람들 귀찮게 하지 말고.
타타탓-!
빠르게 속도를 올려 하프 라인을 단숨에 넘는다.
방향은 중앙.
곧바로 우르르, 내 주변을 향해 상대 선수들이 공간을 좁혀 오는 게 느껴진다.
굳이 눈으로 하나, 둘 셀 필요도 없는 것이.
그냥 내 주변에 있는 상대 선수 모두가 달려들고 있다.
그렇다는 건 어디 하나가 비는 정도가 아니라, 여러 군데가 비고 있다는 뜻.
머리 아프게 계산할 것도 없이.
수비 뒷공간을 향해 공을 툭, 찍어 차올린다.
파아앙-!
나를 향해 다가오던 수비수들이 멈칫하며 고개를 들더니, 이내 황급히 몸을 돌려 돌아가기 시작한다.
두둥실 떠가는 궤적의 끝에선 로메로가 빈 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녀석도 꽤 연기에 소질이 있는 듯하다.
라커룸에서만 해도 투덜투덜이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넘치는 모습이다.
타타탓-!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스를 향해 뛴다.
로메로가 슈팅을 때리든, 패스를 선택하든.
어느 쪽이든 쇄도는 필수.
패스라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고, 슈팅을 때리더라도 세컨 볼이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에 쇄도해야 한다.
어느 쪽일까.
···이젠 로메로의 옆 통수만 봐도 어떤 선택을 내릴지 알 것만 같다.
준비하자.
파아앙-!
순식간에 털린 뒷공간 탓에, 그 공간을 커버하느라 상대의 수비 라인이 흐트러진 와중.
벌어진 수비 사이로 꺾어낸 로메로의 패스가 내 쪽으로 향해온다.
크로스와 패스의 중간 느낌.
투우웅-!
항상 느끼지만 로메로의 패스는 배려가 부족하다.
땅볼이면 잘 깔아서 주든지, 높게 줄거면 가슴이나 머리 높이로 줄 것이지.
애매하게 바운드 되어 오는 게 무릎 높이다.
타탓-!
그 와중에 등 뒤에선 수비 하나가 붙어오는 중.
그 기세가 멈출 것 같지 않은 게, 내 뒤를 막는 게 아니라 앞으로 튀어나가 패스를 끊어내려는 것 같다.
먼저 앞서 나가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몸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
페널티 박스 안이니, 내가 유리한 싸움이다.
퍼억-!
슬쩍 손을 뻗으며 먼저 자리를 잡으니, 등 뒤에서 충격이 느껴져 온다.
다만 넘어질 정도는 아니다. 급하게 속도를 줄이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로메로의 패스는 코앞에 도착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마테오가 숙제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왔냐고 묻는다면··· 내 입으로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긴 좀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인테르랑 경기 봤냐고.
거기에 그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그러려면 보여줘야겠지.
파아앙-!
무릎으로 공을 받아낸다.
공이 살짝 튀어 오른다.
그 공이 다시 떨어질 때, 오른발로 다시 공을 차올리며 재빨리 몸을 돌려 뒤로 돌아선다.
슈우우웅-
수비는 자기 머리 위로 지나가는 공을 바라보느라 반응이 늦는 게 보인다.
저건 사람의 본능인지라 어쩔 수 없다.
타탓-!
수비의 등 뒤를 파고들어, 떨어지는 공을 기다린다.
속도가 각도를 계산해 보니 불필요한 터치를 가져가기보단 왼발로 바로 때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 판단을 그대로 이행한다.
뻐어어어어엉-!
발등에 얹히는 감각이 마치 복숭아 같다.
상큼하네.
슈우우우우웅-
철썩-!!
물론 흔들리는 골망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