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새 둥지 -1
사람은 확실히 냄새에 민감한 동물인 것 같다.
냄새만으로 기분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옛날 기억들 역시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이 그렇다.
병원 특유의 냄새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상태다.
이제 나도 곧 있으면 성인인데.
이 냄새 앞에선 엄마 손에 이끌려 의사 선생님 앞에 앉은 꼬맹이가 된 기분이다.
“음···”
종이 몇 장을 유심히 읽어내려가는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 있으려니 괜히 긴장이 된다.
아침 일찍부터 신체검사를 받았다.
뭐 키나 몸무게, 시력을 재는 간단한 신체검사는 아니고.
꽤 오랫동안 정밀검사를 받았다.
메디컬 테스트라는 건데.
구단에서 큰돈을 내고 나를 영입하려는 것인 만큼, 내 몸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기 위한 검사가 메디컬 테스트다.
검사를 위해서 피도 뽑았고, 몸에 이상한 걸 붙이고 초음파 검사도 받고, 마스크 같은 걸 쓴 채 런닝머신을 달리기도 했다.
심지어 무슨 MRI 검사라는 걸 받을 때는 관 같은 곳에 들어가 시체 체험까지 했다.
그렇게 온몸 구석구석을 검사받았으니, 긴장이 되는 게 당연한 걸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의사 선생님의 표정도 심각한 것처럼 보이고.
“전체적인 검사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이내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부상 이력도 크게 없고, 검사 결과에서도 고질적이라고 볼 수 있는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상태도 전체적으로 안 좋은 곳 없이 깨끗하고요. 다만, 아직 신체 발육이 완전히 끝났다 볼 순 없으므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겠습니다. 그 정도를 제외하곤 아무 문제 없을 것 같네요.”
듣다 보니 나쁜 얘기는 아닌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옆에 앉은 다른 아저씨가 먼저 길게 한숨을 내쉰다.
누가 보면 방금 말한 게 자기 검사 결과인 것 같은 반응인데, 저 아저씨는 그냥 맨시티 쪽 관계자일 뿐이다.
왜 저렇게 좋아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이상 없습니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도 그러신다.
내가 해야 할 대답을 아저씨가 대신한다.
누가 보면 내 아빠라도 되는 줄 알겠다.
나 입양아는 아닌데.
“고생하셨습니다.”
어쨌거나,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오는 기분은 언제나 산뜻하다.
안 좋게만 느껴지던 병원 특유의 냄새도 이젠 느껴지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
진료실을 나와 복도에 서니 관계자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말한다.
“마음이 홀가분하군요. 이제 우리 팀 선수가 되신 겁니다.”
“···아, 네.”
“피곤하겠지만, 남은 일정들이 있어서요. 같이 가죠. 사진 몇 방 찍는 거라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저씨를 따라 밖으로 향한다.
···음.
이걸로 이제 진짜 끝인가.
이제 우리 팀 선수라는 말에서, 그 우리 팀이 피오렌티나가 아니라는 게.
새삼 기분이 이상했다.
*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작은 스튜디오였다.
관계자님을 따라 들어가니, 이미 안에선 준비로 부산한 모습이었고··· 한쪽에 준비된 소품들은 온통 하늘색이었다.
이젠 보라색 대신 입어야 할 것들.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들인 것이다.
“이거, 먼저 갈아 입어줄래요?”
관계자님이 얼른 유니폼 하나를 들고 오더니 내게 건넨다.
내 이름인 JIAN LEE가 마킹되어 있고, 등 번호는 7번이다.
사실 10번이 욕심나기는 했으나, 이미 10번을 쓰고 있는 선수가 있다 하여 빈 번호인 7번을 받게 되었다.
뭐, 등 번호에 욕심이 있는 편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피오렌티나에서 쓰던 번호가 10번이었던지라, 같은 번호를 이어가고 싶었을 뿐인데.
맨시티 쪽에서 나를 위해 7번을 비워뒀다는 식으로 말하니 더 욕심을 내기는 그랬다.
언젠가, 나중에 찾을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받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잘 어울려요. 아주 잘 어울려요.”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니 관계자님이 박수까지 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옷 사러 온 거 아닌데 왠지 사야 될 것만 같은 기분.
어쨌거나, 옷을 갈아입고 우산 같은 조명들이 비추고 있는 스튜디오에 선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준비를 마친다.
“우선은 그냥 자유롭게 몇 장 찍을게요. 어려우시면, 손가락으로 가슴에 엠블럼을 가리키면서 환호하는 것부터 가볼까요?”
···음.
잘할 수 있을까.
사진을 찍는 건 언제나 어색한 일이다만, 오늘은 더 그럴 것 같다.
조금의 연기까지 가미되어야 할 듯해서 말이다.
그래도 그게 새로 뛰게 될 팀에 대한 예의니까.
한껏 기쁜 척해야겠지.
“가봅시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조명이 켜지고.
나는 맨체스터 시티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채 촬영에 들어갔다.
*
“엄청 좋지? 대박이지?”
“···좋네.”
“여기서 숨바꼭질하면 1시간은 숨을 수 있을 것 같아. 해볼래? 해볼래?”
두 팔을 벌리며 호들갑을 떠는 지우를 보며 피식 고개를 젓는다.
방금 막 오늘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한 참.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중 나와 있던 관계자님을 따라 다녔고, 지우는 먼저 이곳에 와서 나를 기다렸다.
구단에서 이번 일정 동안 머무르라고 제공해 준 호텔인데, 1층 로비에서부터 느껴지더라.
확실히 돈 많은 구단은 다르구나··· 하는 게.
역시나 방도 지우가 얘기한 것처럼 숨바꼭질하면 찾는 데 1시간은 걸리겠다 싶을 만큼 크고 화려했다.
···음.
문득 동료들 생각이 난다.
다음 시즌엔 동료들도 원정을 가면 이런 호텔에서 묵을 수 있지 않을까.
“하아, 이제 발표만 남았네요! 왜 제가 더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에이전트님이 화장실에서 손을 털고 나오며 말한다.
어쩌다 보니 이번 일정에서 우리의 보호자가 된 에이전트님인데, 아빠는 이탈리아에서 정리할 게 남아 그렇게 됐다.
“···저도 떨려요.”
“하하, 그래요? 떨릴 만하죠! 뭐 다 알고는 있겠지만, 오피셜이 뜨면 다들 더 놀랄 겁니다!”
나와 지우, 에이전트님이 소파에 둘러앉는다.
둘러앉는다고 표현하면 뭔가 두런두런한 느낌인데, 소파가 우리 집 침대보다 몇 배는 커서 실은 널찍널찍한 느낌이다.
“왜요? 왜 놀라요?”
지우가 에이전트님에게 묻는다.
그러자 에이전트님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엄청난 계약이니까요! 우리 선수님께선 엄청난 선수인 만큼,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되었으니 다들 놀라게 될 겁니다!”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인 에이전트님이 말을 잇는다.
“맨시티가 돈이 많은 구단이란 건 알고 계시죠?”
“네. 이 호텔만 봐도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돈을 주고 선수를 영입한 사례들이 많거든요. 순수 이적료만 1,000억이 넘는 영입이 다섯 명이나 있었단 말이죠?”
“헤엑! 1,000억이요?”
1,000억이라는 소리에 지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눈뿐만 아니라 입도 떡 벌어졌다.
그 모습에 에이전트님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음! 복잡하게 말씀드릴 필요도 없고! 한 가지만 딱 말씀드리면!”
그러더니 갑자기 무게를 잡고 말한다.
“그 맨시티에서. 가장 비싼 이적료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이지안 선수님이 되셨습니다. 참고로-”
“참고로?”
“원래 가장 비싼 이적료를 기록했던 맨시티 선수는 잭 그릴리쉬라는 선수였는데요. 그 선수의 이적료는 무려!”
“무려!”
“거의 1,700억에 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침 떨어지겠다.
안 그래도 떡 벌어져 있던 지우의 입이 더 벌어진다.
벌레 들어가겠네.
하지만 지우는 입을 다물 생각이 없는지, 입을 벌린 그대로 고개를 돌리더니 날 바라본다.
“···너 그 정도였어?”
이럴 땐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 말 뿐이다.
내가 내 입으로 얘기하는 건 별로 멋이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에이전트님을 말리고 싶으면서도 한 편으론 더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아무튼! 제 입장에서는 빨리 내일이 됐으면 좋겠네요! 내일이면 오피셜이 뜰 테니까. 뭐, 선수님께선 부담이 된다거나 하진 않으시죠?”
“음···”
부담이라.
사실 안 된다면 거짓말일 거다.
많은 이적료를 내가 먼저 요구한 것은 사실이었다. 많은 이적료를 줄 수 있는 팀으로 가겠다고 했었으니까.
애당초 우리 팀이 돈이라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한 이적이었으니 그랬다.
다만, 그래서 나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새 팀은 나를 비싸게 산 거니까.
그 돈 만큼 돈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오천 원짜리 음식을 시켰다고 했을 때.
음식의 양이 적거나 맛이 좀 없더라도 값이 싸니까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하지만 그 음식의 가격이 10만 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거다.
조금이라도 맛이 없으면 실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격에 따라 받아들이는 기준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얘기인 거다.
지금은, 내가 그 음식인 셈이었다.
팀은 어마어마한,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나를 샀고.
그 금액은 곧 팀이 내게 거는 기대를 의미하는 지표인 셈이다.
따라서 적당히 잘 해도 안 되는 거다.
어마어마하게 잘 해야 된다.
나와 피오렌티나가 받은 돈이 어마어마하니까.
심지어 이적이 완료된 이후로도 돈을 더 주겠다고 하기까지 했다.
“그··· 그거 맞죠?”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제 성적에 따라서 이적료를 추가 지급한다고 했던 거요.”
내 물음에 에이전트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런 옵션이 있죠! 구체적인 건 계약서를 보시면 되겠지만, 성적에 따라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잘하면 잘할수록 보너스 개념으로 피오렌티나에게 돈이 더 들어가는 거죠!”
내가 말한 게 저거다.
처음에 내는 이적료가 다가 아니라, 내가 맨시티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추가 이적료가 더 지급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잘하면 피오렌티나가 돈을 더 받게 되는 거고, 못하면 더 받지 못한다는 뜻.
“···”
그러니 더 잘해야 한다.
팀을 옮겼다고 해서 피오렌티나와의 인연이 끝이 난 것은 아닌 거다.
비록 이탈리아가 아닌 영국이고, 피렌체가 아닌 맨체스터이고, 보라색 유니폼이 아닌 하늘색 유니폼이지만.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피오렌티나를 위해 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모로.
반드시 잘해야만 하는 이유가 넘치는 것이다.
“뭐, 너무 걱정은 마십쇼! 하던 대로만 하시면 될 겁니다! 모든 것엔 순서가 있지 않습니까?”
순서?
무슨 말이냐는 듯 에이전트님을 바라보니, 에이전트님이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이적료긴 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하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했으니 그만큼의 이적료가 발생한 겁니다!”
“···”
“그러니 돈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할 필요 없고, 그냥 자부심만 가지면 되는 겁니다! 이 팀이 그만큼 나를 필요로 했구나! 내가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죠!”
···음.
에이전트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럴 수 있겠다.
아까 했던 음식으로 다시 생각하자면··· 에이전트님의 말씀은 이런 게 아닌가.
비싸서 맛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맛있으니까 비싼 거다··· 라는.
뭐, 그렇게 생각해도 부담이 당장 다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그런 생각들을 무기로 삼아 부담과 싸워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와아···”
그나저나··· 슬쩍 지우를 보니, 지우의 입은 아직도 다물어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에이전트님께서 나를 과하게 띄워주셨다 보니 그런 듯했다.
흠.
저런 지우의 모습을 보니, 평소엔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에이전트님의 수다스러움과 과한 텐션이 오늘따라 고맙게 느껴졌다.
아직 잘 시간은 멀었으니까.
이왕이면 좀 더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 제 이적료가 맨시티 안에서 1위라는 거죠?”
“예! 근데 안에서만이 아니에요! 리그 전체도 봐도······”
그런 생각으로 넌지시 말을 꺼내니 기다렸다는 듯 받는 에이전트님의 모습을 보고, 음흉하게 속으로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