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59)
유벤투스와의 경기를 마친 다음 날.
오늘은 복귀하는 날인데, 비행기 시간 때문에 오후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난 그 자유시간 동안 백화점에 잠깐 왔다.
혼자 온 건 아니고, 주장과 함께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의 충고에 모자와 마스크까지 중무장을 하고 나왔다.
“다 샀다. 가자.”
“와···”
“왜 놀라?”
“네? 아. 그, 되게 손이 크셔서···”
“손? 아, 하하.”
주장 손에 잔뜩 들린 쇼핑백을 보며 내가 놀라자, 주장이 껄껄 웃는다.
“우리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 시간 있을 때 몰아서 사는 거지.”
“그거 다 선물이에요?”
“이거랑 이거는 내 거고. 나머지 다 선물.”
주장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이 정도 씀씀이는 되어야 주장을 할 수 있는 걸까.
주장이 계산을 하는 동안, 몰래 걸려 있는 옷들의 가격표를 봤는데 헉 소리가 나왔다.
세상에. 옷이라는 게 이렇게 비싼 건지 처음 알았을 정도로 비싸더라.
근데 그 비싼 걸 주장은 시장에서 양말 사듯 슥슥 담더니 한 번에 다 사버렸다.
솔직히······ 좀 멋있다.
U17에 있을 땐 내 주급도 엄청난 거였는데.
여기 오니까 괜히 기죽네···
“뭐야. 왜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봐?”
“아니, 그··· 저는 아직 그렇게는 못 사니까···”
“허, 이 녀석 봐라. 내가 네 나이 땐 주에 20유로도 못 받았어. 그리고, 넌 몇 년만 있어도 나보다 몇 배는 벌 텐데. 네가 날 부러워하면 나는 뭐가 되냐, 인마.”
주장의 말에 머리를 긁적인다.
내가 주장보다 더?
으음. 진짜 그런 날이 올까.
“아무튼, 이제 네 거 사러 가자. 여긴 너무 나이대가 높고. 여자친구도 동갑이라고 했지?”
“···네.”
“가자. 따라와.”
자신 있게 나서는 주장의 뒤를 졸졸 따라간다.
어젯밤, 지우에게 뭘 선물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옷 같은 거밖에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근데 여자 옷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나라서 고민이었다. 남자 옷도 잘 모르는데 여자 옷을 어떻게 알아.
그래서 주장이 고르는 걸 도와주겠다고 했다.
처음엔 괜찮다고 했는데, 자기 아저씨 취향 아니라고, 첫 연애가 12살 때라 10대 취향도 잘 안다고 어필(?)을 하시길래 그냥 알겠다고 했다.
···근데 솔직히 아직 못 미덥긴 하다.
30살 아저씨의 안목보단 차라리 내가 낫지 않을까.
“오, 여기 괜찮네. 한번 보자.”
“넵.”
아무튼 주장의 뒤를 따라 매장으로 들어간다.
일단 각자 둘러보기로 하고 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옷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먼저 가격표부터 확인했는데, 다행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이 정도는 된다.
“어때, 좀 골랐어?”
“어··· 아직요. 잘 모르겠네요.”
“뭐가 그렇게 어려워. 뭐, 평소 자주 입고 다니는 스타일이나 그런 게 있을 거 아냐?”
주장의 물음에 잠시 지우를 떠올려 본다.
으음. 평소 스타일이라.
가끔을 제외하면 지우는 편하게 입고 다니는 스타일인 것 같긴 한데···
“겨울엔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몰라서요···”
“아, 참.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겨울옷 입은 걸 마지막으로 본 게 3년 전이라 잘 모르겠다.
뭐, 나야 그냥 구단에서 주는 패딩 입고 다니면 그만인데 지우는 아닐 테니까.
“음, 어디 보자.”
보다 못한 주장이 옷 몇 벌을 꺼내 내게 보여준다.
“이게 더 어울릴 것 같아, 아니면 이게 더 어울릴 것 같아.”
“음···”
하나는 두꺼운 회색 후드 집업이고 하나는 가디건이다. 지우의 얼굴을 떠올려서 그 두 가지에 대보는데···
음. 도저히 하나만 못 고르겠다.
“느낌이 안 와? 그럼 이거랑 이건 어떤데.”
주장이 이번엔 다른 옷들을 들어 보인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나는 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주장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왜 못 고르겠는데? 이런 스타일 아니야?”
“그게···”
그러게.
왜 못 고르겠지.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는데, 뒤늦게 그 이유가 떠올랐다.
“···다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못 고르겠어요.”
“······뭐? 이놈 봐라.”
내 말에 주장이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짜식이, 좀 치네? 내가 한 수 배울 줄이야. 널 이탈리아 남자로 인정하마.”
“저 한국···”
“그런 의미에서 이거 두 개는 내가 사줄게. 나머지 두 개 사 가.”
“네? 아, 아뇨. 그러실 필요까진···”
“어허. 선물이니까 받아. 그리고, 나중에 잊지 말고. 에이, 아니다. 그냥 다 사줄게. 두 개만 사주는 것도 좀 짜친다.”
그렇게 말한 주장은 말릴 틈도 없이 꺼냈던 옷들을 챙겨 계산대로 휙 걸어갔다.
“···아.”
나는 그런 주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멋있는 사람이 맞다.
나중에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ㆍㆍㆍ
“아들! 어디 다친 덴 없냐?”
“야! 어디 다친 곳 없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빠와 지우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참 정겨운 첫인사다.
팀 닥터 쌤들도 아니고···
“···멀쩡해요.”
“그래? 다행이구나! 고생했다!”
“다행이다! 고생했어!”
내 대답에 둘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는데, 그 타이밍이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근데 뭘 그렇게 싸 들고 오냐?”
“뭐야, 그거?”
“아, 이거···”
현관에 들어서면서 양손에 들린 짐들을 무겁게 내려놓자, 아빠와 지우가 묻는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오다가 주웠어요···”
“···어디를 다녀와야 그런 걸 주워올 수 있는 거니?”
“거기 어딘데? 나도 갈래!”
“그, 사실은 시간이 좀 남아서 백화점에 갔었는데 세일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빠 옷 좀 샀어요.”
“내 옷을?”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자길 가리킨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쇼핑백 하나를 내밀자, 아빠는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듯 입을 벌렸다.
머리를 긁적이며 쇼핑백에서 내용물을 꺼낸 아빠가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신다.
“엥? 진짜 내 거네?”
···뭐지. 당연히 지우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
나, 그 정도로 불효자처럼 살아왔었나···?
괜히 반성하게 된다.
“와, 비쌀 것 같은데. 이거. 내가 입어도 괜찮은 거냐.”
“그럼 아빠가 입지 누가 입어요.”
“어이고··· 참. 이렇게 좋은 건 필요 없는데···”
말은 저렇게 하시면서도, 아빠의 입꼬리가 꿈틀꿈틀 대신다.
별건 아니고 패딩인데, 아빠 건 고르기가 쉬웠다. 어차피 나나 아빠나 취향이 비슷해서.
딱 매장 들어가자마자 아빠 거가 보여서 바로 샀다.
···대충 고른 거 아니다. 진짜로.
“어떠냐, 지우야. 괜찮나?”
“와- 잘 어울려요!”
봐봐. 찰떡이잖아.
얼른 패딩을 입어보신 아빠는 이리저리 옷을 둘러보며 포즈를 취하셨고, 잘 어울린다는 지우의 말에 광대가 올라가셨다.
애써 미소를 숨기시려는 것 같은데 잘 안 되시는 모양이다.
“어어, 이거 봐라. 벌써 땀 난다. 패딩이 아니라 사우나인데, 이거.”
“우와, 진짜요···?”
“사이즈도 그렇고, 딱 내 거기는 하네.”
아빠가 만족스러운 듯 허허 웃자 지우가 부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만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 지우 것도 있냐?”
“에이, 아니에요. 아저씨. 전 괜찮아요.”
아빠의 말에 지우가 손사래를 치는데,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아까부터 영혼 없이 맞장구를 치며 나머지 쇼핑백들을 흘끔대고 있던 지우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 것도 있어.”
“···진짜? 뭐 하러 내 거까지 사 왔어. 진짜 필요 없는데··· 헤헤.”
필요 없다면서도 지우의 입꼬리가 베시시 올라간다.
괜히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진짜 필요 없어? 그럼 환불···”
“야, 야. 귀찮게 무슨. 네 시간 낭비할 순 없지!”
누가 뺏어가기라도 하는지 얼른 쇼핑백들을 붙잡는 지우다.
그 안의 내용물들을 확인한 지우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뭐가 이렇게 많아!?”
“그, 사실 내가 산 건 아니고. 선배가 사주신 거야.”
“선배가?”
“응.”
주장은 자기가 사준 거라 얘기하지 말고, 내가 산 거라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긴 좀 그런 것 같아서.
이게 한두 푼도 아니고 말이다.
“근데 선배가 왜 나한테 이런걸···?”
“응? 뭐, 그냥.”
지우가 고개를 갸웃이면서 날 바라본다.
내가 그 눈을 바라보자, 지우가 갑자기 씨익 미소를 짓는다.
“아아, 알았어. 선배가 산 걸로 쳐줄게.”
“···?”
“고맙다고 전해드려. 그렇게 믿어 줄 테니까.”
···뭔 소리야.
진짜 선배가 사준 거 맞는데.
하지만 기뻐하는 지우를 보니 딱히 막 해명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근데, 무심코 아빠와 눈이 마주쳤는데···
한 가득인 지우의 옷들과 패딩을 번갈아 쳐다본 아빠의 표정이 이내 조금 시무룩해진다.
아, 아니···
양은 차이 나도 아빠 거가 더 비싼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ㆍㆍㆍ
이탈리아의 세리에는 12월 하순부터 1월 초까지, 대략 2주 동안 경기를 치르지 않는다.
겨울 휴식기를 가지는 건데, 사실 선수들에게나 휴식기지 구단들은 이 시기에 오히려 더 바쁘다.
1월 1일 날이 되면 겨울 이적시장이 공식적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의 피오렌티나는 더더욱 바쁠 예정이었다.
처분해야 할 선수들도 꽤 있고,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도 꽤 있다.
무엇보다, 유럽 전역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핫한 매물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 피오렌티나이기에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키에사는 웬만하면 완전 이적이 마무리될 것 같고···”
피오렌티나의 높으신 분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파올로 디렉터가 찡그린 눈으로 서류를 검토하며 말한다.
“그다음은 블라호비치인데 말입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팀은 물론 유럽을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던 이름이 나오자 다들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블라호비치와는 이미 몇 차례나 재계약을 시도했지만, 모두 결렬된 터라 이젠 보내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파올로 디렉터가 말했다.
“조금 변동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이야기가 가장 진전된 게 다들 아시다시피 유벤투스였는데···”
“뭐, 더 좋은 제안이라도 왔습니까?”
“그건 아니고, 아예 다른 제안이 왔습니다.”
“아예 다른 제안?”
파올로 디렉터가 고개를 끄덕인다.
“블라호비치 대신 지안 리를 영입하고 싶다는 연락을 슬쩍 받았습니다. 블라호비치에게 책정했던 금액과 비슷한 수준을 제시하고 싶다더군요.”
“···비슷한 금액?”
“그 정돕니까?”
“예. 정확히는 조금 밑도는 수준이긴 하지만.”
파올로 디렉터의 말에 다들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블라호비치와 비슷한 수준의 제안이라니.
1군에 데뷔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선수에게?
아니 뭐, 사실 이적시장에서 나이가 깡패인 것은 사실이다.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면 한 살이라도 어린 선수가 더 비싼 금액을 받는 게 이 바닥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지안은 16살이고, 아직 반 시즌도 치르지 않은 신인 중의 신인이었다.
그런 신인에게 블라호비치와 비슷한 수준의 제안을 했다니.
“급하긴 급한 모양이로군.”
“모가지 날아가기 직전일 테니까.”
다들 피식피식 웃으며 중얼거린다.
유벤투스가 정말 급하긴 한 모양이었다. 저번 경기를 기점으로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긴 했으니까.
“그럼 리를 유베로 보내고, 블라호비치를 잉글랜드로 보내게 되는 겁니까? 그게 맞는 것 같은데.”
누군가 손을 들며 말한다.
블라호비치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건 유베 뿐만이 아니니, 유베가 그를 포기한다 해도 보낼 곳이 많다.
하지만 파올로 디렉터는 고개를 저었다.
“리는 절대 안 됩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예. 뭐,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계약 기간이 얼마 안 남은 것도 아니고. 팔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파올로 디렉터의 말에 다들 그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지안은 사실상 NFS(Not For Sale)인 선수다. 블라호비치는 팔아도 그는 팔 수 없다. 팬들이 워낙 기대하고, 사랑하는 선수기 때문이었다.
그런 선수는 잘못 팔았다간 탈이 나는 수가 있다.
근데···
“그래도 그 정도 금액이면··· 고민은 한 번 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의 말에, 이번에도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상 패닉 바이인 거 같은데. 유망주를 그 가격에 팔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히 정상적인 느낌의 제안은 아니긴 했다.
아무리 센세이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곤 하나, 이제 막 데뷔한 유망주에게 최근 몇 년간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였던 블라호비치와 비슷한 수준의 가치를 책정하다니.
궁지에 몰린 유벤투스기에 가능한 제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고, 지금이 아니면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아니요.”
하지만 파올로 디렉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됩니다.”
“절대라고 할 것 까지는···”
“아니요. 지금은 우리가 무조건 손해입니다. 왜? 리의 가치는 앞으로 계속 우상향할 테니까요. 지금이 고점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돈이 복사가 될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계획은 이렇습니다.”
파올로 디렉터는 자신의 생각을 설명을 시작했다. 누구보다 이지안을 빠르게 알아보고 계약을 성사시킨 파올로 디렉터라, 모두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